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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Dec 19. 2023

부산대학교

   식품영양 쪽으로 진로를 굳힌 큰딸은 편입을 모색중이다. 적을 둔 학교에 영 정이 안 가는 모양이다. 편입하고 싶은 대학에 원서를 내고 서류 합격하면 바로 있을 시험에도 대비하느라 독서실에 죽치고 산다. 이런 꿍꿍이를 제 어미한테만은 아직 밝히지 않았다. 시작은 있는데 끝이 흐리멍텅한 용두사미 전력이 많다는 뼈아픈 잔소리를 해대는 어미 앞에서 공약公約 아닌 공약空約으로 비치는 게 두려워서다. 이번엔 그래서 모든 게 일단락되면 툭 털어놓을 작정이다. 단, 편입이 확정되면 합격 소식을 알릴 테고 떨어지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복학을 준비하면 될 터이다. 큰딸은 어미 신망을 잃는 게 계속 신경이 쓰인다. 근데 왜 아비한테는 얘기를 꺼냈을까? 편입을 준비하는 데가 다름아닌 아비가 나온 부산대학교라서 그렇다. 

   큰딸은 자기의 편입 시도가 결코 허황되지 않고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격려받고 싶은 눈치였다. 부산대학교를 나온 아비가 그 적임자임은 당연했고. 2학년까지 따낸 학점은 거의 완벽했고 최근에 딴 토익 점수도 만점에 근접한 큰딸은 입시요강에 나온 자격에 모두 부합했다. 하여 시도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판단한 아비는 큰딸이 꼭 거길 들어가 아비처럼 부산대학교라는 기막힌 신세계를 경험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심정으로 허파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상한 나라에 대학교라고는 SKY밖에 없다고 여기는 이상하고 멍청한 치들이 참 많지만 부산대학교는 SKY 못지않다. 점수로 매기는 대학순위나 천박한 간판 따윌 얘기하는 게 아니다. 금정산 줄기가 박력있게 뻗어 나가 학교를 하나의 숲으로 아우렀다. 울창한 숲, 우람한 바위, 깊은 계곡과 맑은 물, 그 속에 자리한 캠퍼스. 학문과 진리를 탐구하는 장으로써 대학교가 유효하다면 이보다 적합한 곳이 또 있을까.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하려는 미래의 진로에 박차를 가하자면 큰딸도 꼭 부산대학교로 향하는 게 맞고 대를 이어 같은 교정을 밟았다는 자부심이야말로 아비로서 누릴 수 있는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너무나도 어리석었던 탓에 그곳의 진가를 전혀 알지 못한 채 허송세월로 학부 시절을 보낸 아비는 큰딸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은지도 모른다.

   같은 얘기 또 하자면, 아비는 부산대학교 장전동캠퍼스 출신이다. 금정산 아래 웅장하게 펼쳐진 전경이 일품이다. 소설가 김주영이 외롭고 지치고 힘들 때 별다른 약속 없이 인사동에 와서 길 위아래를 두세 번 왔다 갔다 하노라면 촉촉한 고향의 향기가 있었다고 했지만 아비에게 촉촉한 고향의 향기는 장전동캠퍼스다. 도저히 어찌 해 볼 도리 없이 울적해지면 거길 한 번씩 들른다. 가서 만날 사람도, 정한 약속도 딱히 없이 무작정 들른 그곳은 상전벽해라는 말조차 무색할 만큼 건물, 사람, 교정 냄새까지 영 딴판으로 변해 서먹하기도 하지만 옛 정취가 그 잔명을 부지한 오래된 것들로 해서 겨우 한시름 던다. 가던 발길을 멈추고 오래된 것들을 멀뚱히 쳐다보면 시공간을 뛰어넘어 회상의 바다를 유영하는 즐거움에 취한다. “오로지 빈 손을 잡고/그냥 좋기만 하더”란다.

   한국 현대 건축의 거장인 고故 김중업이 설계한 인문관(구 본관)의 회전식 계단을 오르내리면 2000년대 이전 7자리 학번(학년 2자리+학과 2자리+학과 내 이름 가나다 순 3자리) 중 학과를 나타내는 ‘01(국어국문학과)’에 유독 자부심과 애착을 붙들던 철부지 새내기가 떠오른다. 그리도 가고 싶었던 학과인데도 정작 공부와는 담을 아주 쌓고 살았던 학부 시절을 돌이켜보면 천추의 한이지만 책 공부에 버금가는 인생 공부를 오지게 연마했으니 그것으로 퉁치자면 그것대로 의미가 있다. 예전만 같지 않다는 학과 명성이 서글프면서도 인문학의 범주에서 여전히 전위대 역할로 충실할 국어국문학과 출신이라는 줏대가 새삼 전의를 불태운다. 

   타는 목마름을 부르짖듯 물줄기 졸아든 미리내 얕은 계곡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문득 들떴던 축제(대동제)의 왁자지껄이 포개진다. 달랑 파전에 두부김치가 안주의 전부이지만 주점이라는 간판을 버젓이 내걸고 호객 행위를 일삼던 미리내판 포장마차들이 축제 기간 내내 우후죽순 성업중이었고 물 만난 고기마냥 밤낮없이 이곳저곳을 근천스레 술추렴하던 주당들일지언정 그 순수했던 낭만이 곧 이문이었다. 평소에는 각진 사상의 송곳을 호주머니에 쟁여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자들조차 그때만은 불신의 가면을 홀랑 벗어던지고 어깨 겯고 막걸리 잔을 부딪히며 대취했다. 이 얼마나 훈훈한 화해의 순간인가. 미리내는 허물없는 교감을 유쾌하게 담아내던 만남의 도가니로써 아비 기억 속에 각인되었다. 봄이면 어김없이 축제는 열리건만 역병 돈 후 우연히 찾았던 축제는 학교 정문 옆에 기괴하게 세워진 백화점과 대학본부 건물 사이 좁아터진 앞마당에서 몽골텐트가 줄 세워진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해 생소하면서 초라했다. 불과 30년 전후다. 그 사이 우리는 무엇을 얻으려고 낭만을 모두 탕진한 것일까.​

   아, 그 시절 미라보 철길 다리는 제자리를 고수해 순진한 연인들을 여전히 희롱하는가. 예나 지금이나 조락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대학박물관 건물에 세월은 또 얼마나 덧칠을 해댔을까. 아베크족임을 증명하는 공간으로 치부되던 사회대 앞 잔디밭과 벤치들은 과거의 명성을 여전히 누리고 있을지.

   누구든지 마음에 품고 사는 자기만의 장소 한 곳쯤 있게 마련이다. 그곳을 가끔 찾는 속셈은 현실 속 유토피아, 헤테로토피아에서 가슴 저미는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고단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기 위함이겠다. 심장도 숨 쉬려면 쉬어야 하고 사랑에도 휴식이 있어야 하듯 그곳이야말로 우리의 정서가 잠시 정차하고 들르는 휴게소인 셈이다. 세월의 유탄을 피하지 못해 변모하거나 유실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만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디선가 그리운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정서까지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 혼자서만 품고 살던 헤테로토피아를 큰딸과 공유하고픈 아비 심정이다. 모든 게 뜻대로 이뤄지면 따스한 봄 햇살이 찬란한 부산대학교 교정을 함께 거닐기로 새끼손가락 걸었다.


​   실현될 수 없는 유토피아의 개념을 현실에 끌어들인 이가 있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다. 그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는 특별한 단어를 소개하면서 도시공간에 대한 인식을 넓히며 새롭게 했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이 부모 몰래 숨고 싶어하는 이층 다락방 같은 공간, 신혼의 달콤한 꿈을 꾸는 여행지, 혹은 일상으로부터 탈출한 듯한 카니발의 세계나 놀이공원 같은 공간이 실제화된 유토피아인데 이를 헤테로토피아라고 이름하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 주변에 푸코의 헤테로토피아적 공간과 시설이 대단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상의 피로를 보상하는 듯한 노래방이나 디스코텍, 혹은 공연장이나 전시장 심지어 박물관이나 공원도 그런 범주에 들어갈 게다. 이런 공간은 도시에 활력을 부르는 시설인데, 공통되는 특징은 그 속에서의 활동이 늘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상상해 보시라. 그런 공간에서 평생을 보내는 이가 있다면 결코 그 공간은 그에게 유토피아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헤테로토피아는 한시적으로 유효한 유토피아이며 그러므로 일상의 도시공간에서 유용한 존재가치를 가진다. (승효상,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 돌베개, 2016, 80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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