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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Dec 18. 2023

오묘한 상술의 세계

   20분 전에 바른 염색약을 씻어 내려고 샴푸를 기다리는 한 중년 남자의 머리통이 등딱지에서 튀어나온 거북이 목마냥 깎새 앞에 놓여져 있다. 그러자 깎새는 <방문객>이란 시가 불현듯 떠올랐고 그가 여기까지 굴러온 내력을 더듬어 보려 애쓴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매달 꼬박꼬박 깎새 점방을 찾곤 하는 단골이 이전에 드나들던 점방을 왜 내팽개쳤는지 그 연유가 궁금한 게 그의 과거사이고, 

   지난달과 비교해 오늘 도포한 염색이 더 감쪽같은지, 커트하고 염색하는 일련의 동작이 점점 능수능란해 어디에 내놔도 솜씨 하나만은 발군이라 자주 찾는지, 그게 아니면 싼 게 비지떡일망정 요금 싼 맛에 찾는 건지 그것이 궁금한 남자의 오늘이며,

   박리다매와 다다익선을 기조로 해 장사는 가늘고 길게 가는 법이라는 애초 포부와는 달리 남는 게 별로 없어서 마누라 인내력이 거덜날 즈음 요금 인상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깎새 사정을 너그럽게 받아들여 전과 다름없이 매달 점방을 찾아 머리 깎고 염색을 할지 그것은 단골의 미래이자 깎새의 미래이기도 하다. 

   기술만으로 해먹는 게 장사가 아니라고 이 바닥 50년 고수는 훈수를 뒀다. 눈치, 코치, 재치로 장사해야 손님도 붙고 돈도 붙는다면서. 손님(방문객) 심중을 더듬어 볼 줄 아는 깜냥이라. 장사가 이문을 남기는 일이라면 그 이문이라는 게 꼭 돈만을 의미하지는 아닐진저.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도 장사하는 맛 아닐까 싶다. 오묘한 상술의 세계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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