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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Dec 17. 2023

시 읽는 일요일(130)

우물

         안도현


고여 있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깊은지 모르지만

하늘에서 가끔씩 두레박이 내려온다고 해서

다투어 계층상승을 꿈꾸는 졸부들은 절대 아니다

잘 산다는 것은

세상 안에서 더불어 출렁거리는 일

누군가 목이 말라서

빈 두레박이 천천히 내려올 때

서로 살을 뚝뚝 떼어 거기에 넘치도록 담아주면 된다

철철 피 흘려주는 헌신이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은 것은

고여 있어도 어느 틈엔가 새 살이 생겨나 그윽해지는

그 깊이를 우리 스스로 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지만 여전히 돈 때문에 하직하는 사람 천지인 개화된 세상이다. 살을 뚝뚝 떼어 담아주는 우물같은 우리는 그래서 늘 왜소하다. 훈훈하지만 세상을 바꿀 만큼 표도 안 난단다는 소리다. 

   읽을수록 목만 타는 시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 고문으로 괴로움만 남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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