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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Dec 20. 2023

어떤 남자 이야기

   남자는 제대 후 2학년 가을학기에 복학했다. 예비역 복학생들은 대개 졸업 이후 모호한 미래를 불식시키려고 남아 있는 대학생활 전부를 저당 잡혀 학과 공부나 취업 공부에 올인하지만 남자는 약간 빼딱했다. 당장 답이 나오지 않는 진로 문제로 조바심을 내기보다 이전에는 미처 느껴보지 못했던 대학이라는 숨은 가치에 바투 다가서려는 진지함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학과에서 별로 인기가 없는 희곡론에 심취한 나머지 직접 연극 무대에 뛰어든다든지 시를 짓는 창작 동아리에 가입해 문집 발행에 일조하는, 학점 따기와는 거리가 먼 가욋일에 더 몰두하곤 했다. 그런 그를 두고 재벌집 막내아들 행세한다고 퉁바리를 놓는 이가 없지 않았지만 3년 후배인 여자 눈에는 자유롭고 솔직해 보였다. 무엇보다 워커홀릭인 척 굴면서 외도를 일삼다 끝까지 남편이 회심하기를 바랐던 아내에게 야멸차게 이혼장을 내밀던 막장 드라마에나 등장할 법한 아비를 뒀던 여자로서는 자유로우면서도 솔직한 남자의 모습에 마음이 끌렸다. 

   남자와 여자는 학과 스터디 모임을 같이 가입했다. 남자는 둘도 없는 단짝이 주도하는 그 모임에 끌려가다시피 했고 여자는 그 스터디가 학점 따는 데 용이한 방편이라는 속셈에서 가입했다. 친형제나 다름없던 단짝은 구습에 타협하지 않는 완고함으로 인해 지도교수와 불화가 잦아 대학원 시절 이래 시간강사로만 전전하다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얼마 안 있어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에서 남자와 여자는 재회했다. 소문으로 떠도는 근황을 이따금 접하긴 했지만 남자를 직접 만나기는 졸업한 이래 처음이라 반갑기 이를 데 없었음에도 여자를 대하는 남자 태도란 게 학부 때나 다름없이 무덤덤해 슬쩍 섭섭한 여자였다. 한산하기 짝이 없는 장례식장 한 켠 앉음뱅이 식탁에서 마주보고 앉아 쓰디쓴 소주를 마시고 식어빠진 수육 조각을 뒤척거리면서 망자의 덧없는 생애를 복기하는 핑계로 남자와 여자는 그간의 근황을 묻고 또 물었고 다음날 화장장까지 동행했다. 장례식이 일단락된 뒤 모두들 자리를 뜰 무렵 여자는 남자에게 저녁 식사를 청했고 다행히 남자가 응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다음날도 쭈욱 그들은 만났다. 

   여자가 먼저 제안해 남자 집에서 그들은 동거를 시작했다. 남자를 사랑했지만 남자도 자기를 사랑하는지 서로에 대한 확신을 입증할 때까지 시간을 갖자는 의미였다. 변하지 않는 확증을 담보해야지만이 사랑다운 사랑에 이를 수 있다는 결벽증적 발상은 기실 유년시절 부모에 의해 이식된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탓이었으리라. 남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살림을 합친 후 찝찝했던 어색함이랄지 정서적인 거리감은 시나브로 사라지는 성싶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점점 상대를 선명하게 응시하며 집요해지려 했다. 바야흐로 완전무결한 해피엔딩이 완성되는 듯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기간제 국어교사로 적을 둔 여자고등학교 교장과 면담을 가진 이후로 남자는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이전에 교장이 내건 암묵적 제안을 교장 스스로 내팽개쳤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여고에서 전력을 다해 3년을 버텼다. 장돌뱅이 신세나 다름없던 기간제 교사 생활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양 학생들을 정성스럽게 대했다. 학생들은 그런 그를 여느 교사보다 잘 따랐고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도 신망이 쌓여 갔다. 교장은 변수가 없는 한이라는 단서를 달긴 했지만 다음해 정년이 예정된 교사 후임으로 남자를 낙점한 듯한 언질을 수시로 내비쳤고 학교 내부에서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게다가 교장이 남자의 고교시절 국어교사라는 남다른 인연이 확실한 예측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했다. 자리를 가지고 장난치는 은사는 세상에 없는 법이다. 하여 남자의 정교사 임용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불려간 면담 자리에서 올해를 끝으로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해임 통보와 함께 원한다면 다른 학교 기간제를 추천해 주겠노라는 제안을 해 거절했다. 이후 남자가 한 지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교사이던 교장한테 직접 배운 적은 없었다고.

   남자는 내면적인 사람이다. 자기 속을 속속들이 드러내질 않는다. 하지만 여자는 눈치챘다. 전혀 딴판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직면하자 남자는 무척 당황했고 특히 여자한테 몹시 민망해한다는 걸. 여자는 남자를 달래야만 했다. 직업 때문에 당신을 만난 게 아니다, 그러니 당신이 어디에서 무얼 하는가는 나한테는 관심없는 사항이라고, 먹고 사는 문제를 도외시할 순 없겠지만 돈이나 지위 따위로 사람을 재단할 만큼 경박하진 않다고. 그러니 제발.

   ​그럼에도 이미 남자는 확고한 결론에 다다랐고 여자도 더는 견디질 못했다. 헤어지던 날, 여자에 기대어서 현실이란 박토에 깊숙히 뿌리 박고 싶었다고 남자는 고백했다. 20년 넘게 정주하지 못하고 부초처럼 떠돌기만 한 남자로서는 그녀가 기회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너무 순진한 탓이었을까. 그토록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환멸로 돌아올 뿐이었다. 헛된 꿈, 기대가 속절없이 깨지자 마구 밀려드는 수치스러움이 자존감에 큰 생채기를 냈고 여자를 전보다 사랑할 엄두가 안 났던 모양이었다 비극적이게도. 정규직 교사인 여자와 한 이불을 덮고 내일을 함께 꿈꿀 엄두가 더는 안 났다고.

   관계는 이미 절단났다. 그럼에도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는 여전히 남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던 여자란 점이다. 동거하던 집을 나와 근무하던 중학교 근처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다시 남자에게로 돌아갈지 말지 한참을 망설였다. 만약 그때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마했을지 모를 일이다. 남자는 끝까지 침묵했고 그건 단념의 다른 표현이었다.

   ​절망의 수렁에서 여자를 건진 이는 남자 동료 선생이었다. 한 번 결혼 생활에 실패한 동료 선생은 여자와 남자 관계를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고 실토했다. 남자가 왜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는지도 충분히 이해한다며 시름 젖은 여자를 위로해줬다. 그도 기간제 역사 교사였다.


​   “나한테는 과분한 여자였다. 그러니 가뜩이나 빈약한 내 밑천이 그녀를 사랑할수록 더 빨리 바닥을 드러낼 것만 같은 불안감에 떨어야 했어. 유랑을 끝낼 절호의 기회를 절대 놓칠 순 없었다. 나를 택한 여자 결정에 후회가 없게 하려는 내 조바심은 난생처음 느껴본 행복감이었다.

   기간제로만 10년. 거기에 3년을 더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그러니 지난 3년도 한결같이 내 직분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러다가 쥐구멍에 볕이 들 조짐이 꿈틀거렸다. 교장은 수시로 나를 격려하면서 신분 변화는 당연하다고 역설했다. 그 언질은 순수해서 굉장히 설득적이었다. 하여 그녀를 위해서 내 모든 걸 걸고 배팅이라는 걸 해볼 작정을 했지. 

   2학기 기말고사를 앞둔 어느날 호출이 왔다. 교장실에 갔더니 공기가 굉장히 삭막했다. 일부러 사무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게 역력했지만 내색을 안 했다. 교장은 퇴임 교사 후임자 채용이 내부적으로 결정이 됐다고 운을 뗐다. 다음해 학급 축소로 인해 과목별 교사 TO 조정이 불가피하니 계약 만료가 되는 올해를 끝으로 재임용은 어렵겠다고 통보를 하더군. 잘 알고 지내는 여자중학교 교장이 쓸 만한 국어 교사를 물색 중이라고 귀띔을 해줘 원한다면 공식적으로 천거하겠다 선심 쓰듯 제안도 했다. 잘 알다시피 교육 현장에서 교장이 전능한 존재는 아니잖냐고 변명을 늘어놓았는데 안 해도 될 사족이었다. 미안하다는 말 하기가 그리 어려웠을까. 넘어오는 분노를 간신히 참고 정중하게 제안을 거절한 뒤 교장실을 나왔어. 

   겨울방학을 끝으로 학교를 나왔고 머리 식힐 겸 절간으로 향했지. 절방에 누워 있는데 문득 눈물이 쏟아지더군. 정교사라는 알량한 전리품과 사랑을 한데 엮으려 했던 조바심이 모든 걸 망쳤다네. 위태로워질지언정 관계만은 유지하려던 노력은 눈물겨웠고 그게 여자의 진심임은 분명했다. ‘있는 그대로인 당신을 사랑한다’던 말은 그녀가 내뱉을 수 있는 최상의 배려임을 알았지만 나는 일부러 오독誤讀했다. 나는 나의 '성'을 허물지 못했다.”


​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열정이나 도취에 대해 쉽게 말하지만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의 완성은 청춘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넘치는 것은 젊음뿐, 상대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릴 여유는 조금도 갖지 못해 서로를 오독하는 시기를 지나야 우리는 사랑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해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요. 공고한 '나'의 성을 허물고 타인에게 마침내 자리를 내어줄 때, 사랑은 눈부신 그 폐허에서 시작할 테니까요. (백수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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