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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Dec 21. 2023

라쇼몽 효과

   『비뚤어진 집』(권도희 옮김, 황금가지, 2013)이라는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을 읽는 중이다. 한 저택에 가족 3대가 모여 사는 레오니데스 집안은 대부호 집안이다. 가장인 애리스티드 레오니데스가 살해당하면서 가족 중 범인을 조사해 나가는 줄거리이다. 주인공인 찰스는 가장이 살해되었다는 명백한 사실을 두고 가족들 중 범인을 조사하지만 하나같이 비뚤어진 구석이 엿보이는 가족 모두는 살인을 부인한다. 근데 이런 구도, 낯설지 않다.

   리들리 스콧 감독 영화 <라스트 듀얼>(2021년 개봉)은 14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장 드 카루즈(맷 데이먼)와 자크 르그리(애덤 드라이버) 간의 결투 재판을 다룬다. 두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신의 뜻을 묻고자 했던 건 "자크가 장의 아내 마르그리트(조디 코머)를 강간했는가"이다. 영화는 '장이 말하는 진실', '자크가 말하는 진실', 마지막으로 '마르크리트가 말하는 진실' 세 파트로 나눠 각자의 서사를 풀어나간다.

   장은 아첨꾼이자 한량이라 신뢰할 수 없었던 친구 자크가 부당하게 자신의 땅을 뺏고, 성주 자리를 뺐더니, 아내까지 겁탈해 "신의 이름으로 그를 응징하고 명예를 회복하리라" 다짐한다.

   아둔한 장과 달리 영민한 지략가인 자크는 운명에 이끌려 마르그리트와 사랑에 빠지고 어렵게 밀회의 기회를 얻어 서로 사랑을 나누었는데, 황당하게도 마르그리트가 자신을 강간죄로 고발했다. 당시 마르그리트가 당시 "노"라고 말하긴 했지만 '여자의 노는 예스 아니냐"며 억울해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목숨을 걸고 끝까지 가는 수밖에. 

   마르크리트는 위태로운 가문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 엄청난 지참금을 들고 파산한 성주의 아들 장과 결혼했다. 글을 읽고 쓸 줄 알지만 정숙한 여자로 살기 위해 앞에 나서지 않았고, 남편이 성을 비울 때면 착실하게 성내 살림을 관리했다. 그러나 아들을 낳지 못했기 때문에 결혼생활은 늘 가시방석이다. 그런 와중에 남편의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진실을 밝힐 수밖에 없다

   영화는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시점에서 보여주는 '라쇼몽' 식 전개를 취하며 관객을 판관으로 초대한다. 그렇다. 같은 사건을 각자의 관점에서 다르게 바라보게 해 객관성이라는 거리두기를 확보했던 시초는 영화 <라쇼몽>이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연출한 <라쇼몽>(1950)은 범죄 미스테리 영화다.

   ​​​헤이안 시대, 헤이안쿄 지방(지금의 교토 지방)의 폐허가 된 라조몬에서, 폭우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세 남자가 대화를 나눈다. 세 남자 중 한 사람은 나무꾼으로서 사흘 전에 산 속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한 사무라이의 시체를 발견한 뒤 관청에 신고를 한 바 있다. 세 남자 중 다른 한 사람은 승려로서 역시 같은 날에 그 사무라이와 사무라이의 아내가 지나가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세 남자 중 또 다른 한 사람은 두 명의 목격자로부터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때는 이날 오전으로 넘어간다. 관청에서 이들이 차례대로 진술을 한다. 사무라이를 살해한 용의자로 지목된 어느 한 산적과 사건 현장에 함께 있었던 사무라이의 아내도 진술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진술 내용이 모두 제각각이다. 결국에는 무당을 통해 죽은 사무라이의 영혼을 불러와 그의 진술도 듣게 된다. 하지만 역시 일치하는 진술이 없다. 사건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든다.(<위키백과>에서 발췌)

   '라쇼몽 효과'는 같은 사건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으로 해석하면서 본질을 다르게 인식하는 현상을 말한다. 인간은 자신이 설정해 놓은 인식이나 기억의 틀에서 벗어난 정보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누락시켜 버린다고 한다. 필요에 따라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 기묘한 존재란 의미겠다. 명백한 진실까지 왜곡시켜 버리는 인간의 이기심이란.

   애거서 크리스트 덕택에 히가시노 게이고 이후로 추리소설 묘미에 다시 푹 빠졌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시작으로 하나씩 하나씩 섭렵해 나갈 예정이다. 『비뚤어진 집』 용의자들은 다들 의심스러우면서도 제각각 납득이 가 범인 색출에 애를 먹는데 이런 내용 전개가 흥미를 자극시킨다. 책을 읽다가 '나는 아니다'로 간단히 요약할 수 있는 '라쇼몽 효과'가 떠올라 씩둑거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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