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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Dec 23. 2023

시놉시스

   소설 쓰기를 늘 갈망했다. '문학적'이란 거창한 수사까지 필요없다. 그저 마음 살포시 적실 여운 남는 글이면 족했다. 몇 번 끼적거려 봤다. 그 즉시 현타가 왔다.

   '내 주제에 무슨'

   그런데도 미련을 못 버린다. 이 미련이 어쩌면, 상투적이긴 하지만,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원동력일지 모르겠다. 오르지 못할 나무인 줄 뻔히 알면서도 쳐다보길 멈추질 않는 그 자체로 낙을 삼는 변태성. 나쁘지 않다. 

   드라마 대본은 아니고 그렇다고 소설도 아닌 정체가 모호한 무언가를 구상하다 시놉시스부터 준비해야겠다 싶어 예전 것 중에 쓸 만한 게 있나 뒤졌다. 여러 잡동사니 중에 댓글(블로그에서)이 6개나 달린 최고의 호평작(?)이 있긴 있었다. <조카와 고모>란 제목인 콩트다. 그 글을 읽고 평을 좋게 해준 이들은 이후 글에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지속가능성 미확보. 극복하기 어려운 취약점이자 난제다. 아무튼 시놉시스 하나는 확보했다. 


  

   <조카와 고모>


​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와 아들뻘 되는 사내아이가 학원문을 열고 들어왔다.

   - 원장님 안 계세요?

   재활 치료차 낙향했다고 하자,

   - 그렇게 얘기하는 분은 누구?

   원장 대리라고 하니까 미심쩍어하는 표정이 역력한 중년 여자.

   - 원장님 밑에서 배워야 제대로 배우지. 그냥 가자 얘.

   말투에서 빈정거림이 묻어 나왔다. 입도 뻥긋 안 하던 사내 아이 시선이 김 씨와 마주쳤지만 이내 중년 여자를 따라 나갔다.

   학원 마감 시간은 다섯 시다. 두 시간 정도 쉰 뒤 이발소를 열어야 해서다. 마감 청소를 하는 중에 학원 문이 열렸다. 몇 시간 전에 봤던 사내 아이다.

   - 미용사 자격증은 있습니다. 바리캉으로 남자머리 커트하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 어머니와 상의했어요?

   - 고몹니다 같이 왔던 분. 

   - 아무튼.

   - 얘기해뒀습니다. 원장 대리면 수제자나 마찬가진데 그 기술이 어디 가겠습니까?

   - 그건 그렇지만.

   - 고모가 듣는 사람 기분은 생각 안 하고 그냥 내뱉는 경향이 있습니다.그래도 뒷끝은 없습니다.

   성환은 스물 한 살이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독학으로 타투 기술을 배워 가게까지 열었다. 어쩐지 팔다리와 목덜미로 삐져 나온 검푸른 문양들이 다 타투였다. 제 몸을 연습 삼아 기술을 익히다 보니 온 몸이 문신 자국이라고 했다. 

   - 타투도 한때니 평생 써먹을 기술이나 배워보라고 하데요 고모가. 그러고 끌고 간 데가 미용학원이었어요.

   성환이 어렸을 적 꿈꿨던 직업은 이발사였단다. 하얀 가운을 입고 점잖게 가위질하는 이발사가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단다. 미용사 자격증을 땄을 때 어릴 적 꿈이 새삼 떠올랐단다. 군대 갈 때가 됐고 해군 이발병을 지원하고자 했다. 그러자니 남자 머리 깎는 기술을 익힐 학원을 물색했다. 혼자 알아봐도 된다고 말했지만 묵살하고 고모가 데리고 다녔다. 꼭 고모가 확인하고 검증한 학원이어야만 한다면서.

   <대성이용학원>이 여타 학원들에 비해 내세울 만한 장점은 '무료이발'이다. 병들기 전까지 이 원장이 내내 고수했던 원칙은 <대성이용학원>은 무료로 이발해 준다였고 원장을 대신해 학원을 꾸리는 김 씨라고 해서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하루에도 이용객 수십 명이 들락거린다. 학원생 입장에서는 대환영이다. 업계에서 통용되는 격언 중에 '가발 암만 많이 깎아봐라, 사람 머리만 한가'가 있다. 실제 두상을 두고 머리 깎는 연습을 최고로 치는데 <대성이용학원>은 사람 머리를 매일매일 조달하니 알조다. 간혹 자기가 실험용 모르모트라며 빈정거리는 이가 있지만 그때뿐이다. 그리 비꼬는 사람도 어차피 무료이발을 하러 온 거고 거울을 통해 깔끔해진 머리를 보면 '아이고 선생님,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면서 비굴하게 연신 허리를 숙인다.

   젊은이가 상대적으로 기술이 더 빨리 는다. 젊음의 총기가 기술의 노하우를 금세 빨아들여서다. 사람을 앉히고 기술을 시전하자 성환은 스폰지였다. 실제 두상을 깎아 보라고 했더니 난생 처음이라며 적잖이 망설였지만 잠깐의 두려움을 극복한 뒤로는 거의 가위손이었다. 갈수록 깎는 속도가 빨라지고 완성도도 높아졌다. 하루는 김 씨가 야간에 운영하는 <김 씨네 이발소> 곁꾼을 자청했다. 무료가 아닌 요금을 내는 손님 머리를 깎고 싶다면서.

   - 형님, 저는 포항에서 이발소를 차리는 게 꿈이에요.

   원장 대리니 삼촌이니 아저씨 따위 호칭이 영 정이 안 가 형이라고 부르랬더니 냅다 형님, 형님 했다.

   - 하필이면 왜 포항이지?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라는 소설 아세요? 일본 소설가가 썼는데 소설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읽어 봤지요. 소설에 등장하는 이발소는 제목 그대로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곳에 있어요. 제 고향이 포항이라고 말씀드렸나요? 바다가 환히 보이는 언덕이 포항 어디쯤에도 있어요. 그 언덕 위에다 내 이발소를 차리고 싶어서요.

   - 소설하고 현실은 다를 텐데.

   - 설령 희망사항으로 끝나더라도 원하는 걸 이루려는 노력 자체만으로 행복하지 않을까요. 형님, 저 꼭 차릴 겁니다!

   성환이 야간 곁꾼으로 일한 지 며칠이 지났을 즈음 학원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 왔다. 김 씨가 신분을 밝히자 수화기 너머로 여자 목소리가 앙칼지게 들렸다.

   - 젊은 애 꼬드겨서 일 부려 먹으니까 떼돈 벌겠습디까?

   김 씨는 그 목소리를 기억했다. 성환 고모였다.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그 기세 등등하면서 가시 돋힌 하이 톤을 잊을 리 없으니까. 그녀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학원답게 연습만 시키면 될 일이지 종업원이라니 가당키나 하냐는 항의였다. 

   고모 전화가 온 날 공교롭게도 성환은 학원엘 오지 않았다. 이발소에도 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주욱. 전화를 걸고 문자를 보내도 답이 전혀 없었다. 김 씨한테 한바탕 대거리를 해댄 고모는 성환의 행방이 묘연한 뒤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김 씨에게 전화를 했다. 날카로웠던 음색이 점점 무뎌졌고 비감에 찬 목소리로 변해갔다.

   - 걔 연락 아직 없었나요? 

   보름쯤 지났을까. 그날 밤은 손님이 뜸해 일찍 이발소를 파할 작정으로 김 씨가 막 바닥 청소를 하려는데 누군가 이발소 문을 열고 들어왔다.

   - 오늘은 좀 일찍 마감하려고 했는데, 어서오세요. 엇, 이게 누구야?

   - 형님, 술은 좀 드시죠?

   다시는 부산으로 돌아가지 않을 작정으로 포항엘 갔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근처 민박집을 구해 놓고 온종일 언덕에 앉아 바다만 바라봤다. 문득 외롭다고 느꼈다.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곁에 아무도 없었다. 그러다 김 씨가 생각났다.

   - 고모가 형님께 무례하게 굴었습니다. 고모의 그런 안하무인격 태도에 질려서 도망친 겁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성환 부모는 이혼했다. 자녀 양육권을 아버지가 가져갔지만 아버지의 여동생, 즉 고모가 성환을 기르다시피 했다. 서로 진절머리를 칠 정도로 양가가 적대적이었지만 고모는 특히 더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어머니를 화냥년이라고 비난하던 걸 들은 적이 있다. 성환이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일탈을 일삼자 애를 그 지경에 이르게 만든 원인도 다름아닌 그 애미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그런 성환을 어떡하든지 다시 제자리로 끌고 오는 사람도 고모였다. 비록 계도의 표현이 과격하고 드센 게 문제였지만 그런 고모에 의존하려는 경향도 점점 커진 것도 사실이었다. 고모네 슬하에 아이가 없었다. 아이가 없는 이유를 물어보진 않았다. 부부 금슬은 살뜰했지만 고모부가 알아서 공처가인 양 처신하는 걸로 봐선 애초에 고모 기에 눌린 게 아니면 혹시 아이가 없는 원인을 제공한 자가 고모부라 알아서 기는 혐의가 짙다. 성환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는 고모가 처음엔 싫지 않았다. 어머니란 존재를 잊은 지 오래인 성환이었다. 그에게 어머니란 존재는 가정 불화와 붕괴의 원흉으로 적대시할 뿐이었다. 고모는 그런 어머니를 대신해 모성애 비스무리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였으리라. 애정이 애증으로 변질되어가는 게 문제였지만. 

   머리에 피가 말라간다고 성환이 여길 무렵부터 고모의 간섭이 병적인 집착이라고 느껴졌다. 고모에게 알리고 허락을 받아야지만이 모든 게 가능했다. 팔다리가 묶인 채 고모가 조종하는 꼭두각시인 양 무력해지는 스스로가 괴로웠다. 이대로 영영 고모의 그늘 밑에서 지내다간 지레 말라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고모가 독단적으로 미용학원으로 밀어넣었을 때 제 의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데 분개했다. 다행스럽게도 적성에 맞아 분란은 더 이상 없었다. 이걸 밥벌이 수단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생각도 어렴풋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고모 곁을 떠나 독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겠거니 여기자 날아갈 듯이 기뻤다. 

   <대성이용학원>에서 김 씨를 만나 남자머리 커트 기술을 익히면서 다짐했다. 이발소를 차리겠다는 어릴 적 꿈을 현실로 실현시키겠노라고. 학원에서 김 씨를 처음 봤을 때 고모뻘임에도 나이니 연륜이니 따위로 밀어붙이고 보는 꼰대 기질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 차가 제법 나는 큰형이 있다면 자기에게 아마 그렇게 대했을 것 같은 포용력이 참 따뜻했다. 성환이 하는 일이면 뭐든 믿고 맡기면서 용기를 북돋워 주는 사람. 의지하고픈 마음은 같지만 고모하고는 분명 다른 느낌. 그런 김 씨 형님을 두고 마치 어머니를 화냥년이라고 몰아붙이듯 막 대하는 고모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이대로 고모와의 연을 끊겠다고 도망쳤지만 고모의 무례함을 자기라도 대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려고 김 씨를 찾아온 것이다.

   - 네 말은 충분히 알아들었다. 헌데 네가 용서를 구할 정도로 네 고모가 나한테 큰 실수를 저지르진 않았어. 어쨌든 네가 왔으니 부탁받은 걸 전해야겠구나. 네 고모가 너한테 전하라는 말.


​   성환이 김 씨와 나누는 유일한 통신 수단은 문자다. 보통은 성환이 보내고 그에 대한 답신을 김 씨가 보내는 식이다. 그렇다고 성환이 문자를 자주 보내는 편은 아니다.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이지만 문자 내용이 그럭저럭 밝고 건설적이라 김 씨는 마음이 가벼웠다.

   [형님, 요새는 손님이 제법 늘었어요. 한동안 앓는 소릴 늘어놓던 고모도 점점 손이 풀려가나 봐요. 그래도 커트는 주로 내가 맡고 퍼머는 고모가 도맡죠. 그 성미 어디 안 가서 왜 그 따위로 깎냐, 똑바로 못 하겠냐며 손님들 뻔히 쳐다보는데도 면박을 줘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요. 단, 내 결심은 고모한테 시나브로 주입시킵니다. 가게가 궤도에 오르면 꼭 포항엘 가겠다고. 안 보내 주면 저번같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겠다고요. 그리 엄포를 놓으면 대꾸를 잘 안 하지만 절대 안 된다 으름장을 놓지 않는 것만으로 반허락한 줄 압니다. 비행하던 물체가 착륙할 때, 비행체나 탑승한 생명체가 손상되지 않도록 속도를 줄여 충격 없이 가볍게 내려앉는 걸 연착륙이라고 하더군요. 고모와의 관계를 연착륙시키는 작업은 나만의 몫은 아니리라 믿습니다. 고모와 많이 얘기하고 공감할 작정입니다. 

   그리고 형님, 저 해군은 못 갈 것 같아요. 문신 때문은 아니고요, 이발병 선발에 이미용 경력 가산점이 붙는다는데 제 경력이 별거 없잖아요. 보기 좋게 떨어졌죠. 여기서 미용 경력을 쌓아 다시 지원해보라고 하는데 아직 결정을 못 내렸어요. 그냥 남들 가듯이 일반병으로 갈까 싶기도 하고 이참에 문신이나 확 더 그려 넣어 혐오 유발자로 면제를 유발할까 고민 중입니다. 농담입니다^^]

   녀석, 지 얘기만 늘어놓다 마네. 그래, 네가 행복해 보여 나도 기쁘다. 김 씨는 성환이 행방불명이 된 지 열흘이 지났을 무렵 학원을 찾은 성환 고모의 초췌한 얼굴이 떠올랐다. 

   - 이 원장님 밑에서 커트 기술을 배운 적이 있어요.

   남편은 착했지만 무정자증이었다. 아이가 없는 고모는 활력을 잃은 지 오래였고 여가 선용 삼아 일을 하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거라는 주변 권유에 미장원을 차릴 결심을 하고 미용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커트 기술만 따로 이 원장한테 배웠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오빠가 이혼을 했다. 이혼을 하게 된 결정적인 빌미는 성환 엄마가 제공했지만 그 부부는 오래 전부터 이미 곪을 대로 곪은 상태였다. 오빠가 성환 양육권을 가져왔지만 오빠에겐 성환을 기를 만한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친정 엄마가 잠깐씩 돌봤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아이 아빠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보다 못한 고모가 성환을 맡았다. 다행히 남편은 성환을 이뻐라 했다. 처음엔 잠시만 봐주기로 하고 성환을 맡았는데 걔 얼굴을 접할 때마다 자꾸 뭉클해졌다. 그 느낌은 갈수록 성환을 올곧게 키워야겠다는 책임감으로 변했다. 엇나가는 성환을 어떡하든 붙잡아 원상복귀를 시키면 왜 내가 이 짓을 해야 하는지 한심하면서도 이 지경에 이르게 만든 오빠 부부, 특히 성환 엄마가 세상 누구보다 미웠다. 하지만 한바탕 격한 감정이 쓸고 간 자리에는 나 아니면 누가 성환을 똑바로 키우겠냐는 애틋함이 한겨울을 난 쑥마냥 강하게 버티고 있었다. 

   성환을 맡고부터 당연하게도 미장원 차릴 계획은 쏙 들어갔다. 따 놓은 자격증이 어디 가겠냐마는 가게를 언제 차릴지는 요원했다. 타투 가게가 젊은 날의 치기일 뿐이라고 폄훼하면서 성환이를 자극했던 건 한시라도 빨리 홀로서기를 할 여건을 마련해줘야겠다는 성급함에서 비롯되었다. 언제까지 고모가 뒷배가 되어줄 것인가. 사랑하면 할수록 더 모질어졌다. 다른 건 전혀 흥미를 두지 않더니 미용 기술만은 열성을 보이는 성환을 보면서 뭔가가 꿈틀거렸다. 고모와 조카가 함께 운영하는 미장원. 그러면 성환과 인생을 함께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김 씨라는 작자가 끼어들어 성환을 꼬드기다니. 성환이 곁에는 성환을 이용해 먹을 인간들로 득시글거린다. 그러니 피붙이인 고모가 성환이 곁에 꼭 붙어 있을 수밖에. 그런데 김 씨한테 연락했단 걸 안 성환이가 분한 얼굴로 마구 소리를 질렀다. 

   - 더 이상 고모의 장난감이 아니야!​

   김 씨를 형님이라고 부르는 성환이는 더 이상 자기 인생에 끼어들지 말라고 애원했다. 뭔가 오해가 있었다는 불길한 감이 들었지만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은데 어떻게 그냥 둘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그날 성환이가 훌쩍 떠났다. 자기를 찾지 말라는 쪽지만 남기고.

   급한 김에 김 씨를 찾아갔다. 혹시 몰래 성환과 연락을 주고받는지 추궁하려고. 헌데 그는 성환의 행방은 모르지만 성환이 말했다는 '포항', '바다가 보이는 언덕', '이발소' 따위를 늘어놓았다. 그게 성환의 본심 같다면서. 성환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다. 학교에 낼 숙제라면서 그림을 보여줬다. 장래희망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거였다. 파란색으로 칠한 바다와 스케치북 한 쪽 귀퉁이에 둥그런 선을 그려 언덕을 표현했다. 그 언덕에는 '이발소'라는 간판이 걸린 단층 건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흰 가운을 입은 남자와 뽀글뽀글 퍼머 머리를 한 여자가 나란히 건물 옆에 서 있었다.

   - 나중에 크면 이발소 주인이 될 테야.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말야. 거기서 고모랑 오손도손 살고 싶어.

   ​미장원을 개업할 예정이다. 성환이가 찾아오면 이 말만은 꼭 전해 달라고 김 씨한테 부탁했다.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주인이 되기 전에 고모 가게부터 먼저 도와달라고. 어차피 실무 경력이 필요한 직업이니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 모르는 사람 밑에서 일하느니 어중잽이 고모 곁에 제발 있어 달라고. 가게가 정상 궤도에 오르고 어디 내놓아도 한몫 하는 기술자가 됐다 싶으면 보내 줄 테니. 그러면 바다가 보이는 언덕으로 가서 이발소 주인이 되라고. 그게 네가 원하는 진정한 행복이라면 꼭 이루라고. 엄마 같은 고모도 그럼 행복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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