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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an 03. 2024

노화 비감

   새벽녘 갑자기 오른다리에 쥐가 나 거실로 뛰쳐나가 총총거렸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아닐 수 없었다. 며칠 전서부터 왼쪽 눈에 가시가 박힌 듯한 이물감으로 따갑더니 급기야 눈물까지 줄줄 흘러내린다. 손목터널증후군은 고질이 되어 버린 지 오래고 디스크가 의심되는 목 부위는 멘소래담 로션 냄새가 늘 진동한다. 손님 몰려 며칠 연달아 무리라도 할라치면 삭신은 더 쑤신다. 육체 노동자가 겪는 당연한 고초라고 치부하기엔 회복력이 너무 더뎌 괴롭다. 올해로 쉰두 살. 나이는 못 속인다는데 깎새를 두고 이르는 속담인 성싶다.

   나이 들수록 서러움만 일파만파다. 소싯적 감지가 잘 안 되던 심신의 변화가 속도감까지 더해 빈도수는 높아지고 변화폭보다 더 심한 상실감으로 인생무상을 증폭시킨다. 머리가 벗겨지니 복건을 쓰기 편해 좋다고 호기를 부리고 이가 빠졌으니 씹지 않고도 넘길 수 있는 술을 즐길 이유가 더해졌다고 너스레를 떠는 옛사람들의 자위에 용기를 얻을 만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복구시킬 순 없다. 무정한 세월이 야속하다. 

   실학의 개두開頭, 성호 이익이 남겼다는 '노인의 좌절 열 가지'를 읽으면서 자기는 해당사항이 별로 없을 줄 자신만만해하던 깎새는 손꼽던 손가락이 모자라자 그만 고개를 떨궜다. 들어맞지 않는 게 단 한 개도 없으니 이미 노인이란 말인가!


   노인의 열 가지 좌절이란, 대낮에는 꾸벅꾸벅 졸음이 오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으며, 곡할 때에는 눈물이 없고, 웃을 때에는 눈물이 흐르며, 30년 전 일은 모두 기억되어도 눈 앞의 일은 문득 잊어버리며, 고기를 먹으면 뱃속에 들어가는 것은 없이 모두 이 사이에 끼며, 흰 얼굴은 도리어 검어지고 검은 머리는 도리어 희어지는 것이다.


​   앞니 하나가 갑자기 빠진 김창흡이 "얼굴이 망가져서 만남을 꺼리게 되니 차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발음이 부정확하니 침묵을 지킬 수 있으며, 기름진 음식을 잘 씹지 못하니 식생활이 담백해지고, 글 읽는 소리가 유창하지 못하니 마음으로 깊이 볼 수 있게 된다"며 신체 기능이 옛날 같지 않아도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는 정신 승리를 선언했다는데 도대체 무엇으로 이 상실감에 맞설지 난감해하는 깎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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