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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an 02. 2024

마누라 행차

   손님이 몰려 북적대는 지난 토요일 점심 나절, 마스크를 쓴 여자가 점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처음엔 몰라봤다가 어디서 많이 본 실루엣이 영판 마누라라 우짠 일인가 싶었다. 마누라가 지인들 사이에서 평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관계 친소를 떠나 그 분위기에 금세 스며드는 적응의 귀재라는 점이다. 개업할 때 얼굴 한번 내민 이후로 근 2년 만에 찾은 남편 점방이니 쭈볏거릴 법도 한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대기석에 앉은 손님한테 "안녕하세요? 금방 끝나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꼭 자리 잠깐 비웠다가 돌아온 직원인 양 군다. 오죽했으면 그 손님은 깎새를 보고 "사모님 오시길래 옆자리 앉혀서 깎아 줄 줄 알았지"하더라니까.

   아무튼 뜻밖에 행차를 나선 마누라께선 개금골목시장엘 들러 남편 점심거리와 집에서 먹을 반찬거리를 바리바리 사 온 덕분에 김밥, 오뎅국물, 과일사라다로 모처럼 푸짐하게 점심을 때울 수 있었다. 남편 점심 먹으라고 한쪽으로 몬 뒤 점방 구석구석을 쓸고 닦던 마누라는 손님이 없는 틈을 노려 예의 잔소리를 시전하신다. 먼지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선반이며 곁방 테이블 위에다가 식기 말리느라 깔아놓은 타월에 낀 곰팡이하며. 그러고는 잔소리만 늘어놓을까 봐 점방을 안 들른다며 너스레를 떤다. 어련하시겠어?

   그래도 깎새는 그날 점방에서 조잘대는 마누라 잔소리가 전혀 싫지 않았고 그러는 마누라가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었다. 문득 한창훈 소설이 떠오르면서 망측하게도 그길로 당장 마누라 손을 낚아채 점방에 딸린 곁방으로 데리고 가고 싶은 색정을 참느라 아주 혼이 났다.

   주낙질하러 배를 띄운 오씨는 심사가 뒤틀려 있다. 뭔가 가득 차서 해소해야 할 필요가 충분한데 눈치껏 고쟁이 한 번 내려주지 않은 아내 세포댁이 야속해서다. 세포댁은 세포댁대로 고되다. 사업마다 털어먹는 이혼한 아들이 두 아이 슬쩍 내려놓고 또 일 벌이러 나가는 바람에 팔자에도 없는 애 농사 짓느라 뜬금없이 쎄가 빠져서다.

   돼지 비계 쪼가리 하나 없고 날 추운데 멀국도 안 챙겨 왔냐는 둥 밥 투정을 부리지만 실은 서방 홀대하는 세포댁이 너무 서운한 오씨. 죽은 시엄씨를 다시 모시는 게 낫지 죙일 애새끼들 치다꺼리에 정신도 하나 없고 안 쑤시는 데가 없는데 서방이라고 뭐하나 거들 생각은 안 하고 그것만 안 준다고 떼를 쓰는 게 서운한 세포댁.

   마음이 꼬이니 일도 덩달아 꼬이는지 갑자기 배 엔진이 꺼져 버린다. 프로펠러에 적잖은 밧줄이 단단히 감겼기 때문이다. 낫 감아 묶은 대나무를 집어넣어 낫질을 해보지만 되레 낫 모가지가 쑥 빠져 버렸다. 되는 일 없이 심사만 꼬일 대로 꼬인 오씨는 밧줄 풀러 바닷물로 뛰어든다. 고투 끝에 밧줄은 풀었지만 오씨가 정신을 잃고 그대로 가라앉을 찰나, 세포댁이 갈고리로 걸어 올렸다. 소설 마지막 대목은 원문 그대로 옮긴다. 달콤하면서도 에로틱한 장면으로 극치다.


​   눈 떠보니 홀랑 벗겨져 있는데 똑같이 벗어 알몸인 세포댁이 언 몸을 꼭 껴안고 있는 것 아닌가. 가슴께를 누르느라 양 젖이 옆으로 잔뜩 퍼져 있고 아랫도리는 행여 물 샐 틈 있을세라 촘촘히 밀착한 상태이며 그 위로 적잖은 엉덩이 두 개가 달처럼 포실하게 떠 있는데 두 팔로 목과 머리를 껴안고 그렇게 이불처럼 덮고 있는 것이다. 온기는 세포댁에게서 온 거였고 그만큼 그녀는 떨고 있었다.

   "정신 좀 드요?"

   "이 사람아…."

   ​그는 입이 차마 안 떨어졌다. 굳이 말 마무리할 필요도 없다. 앞뒤 볼 것 없이 군용모포 끌어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는 아내를 꼭 껴안는다. 석 달 만이다.(한창훈, 「주유남해舟流南海」,한겨레출판, 2010 에서)


   퇴근 뒤 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데 막내딸이 MBTI 검사를 하겠다며 질문을 퍼붓는다. 한참을 묻고 답했더니 'INFP형'이라는 결과를 내밀고는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양 놀라워한다. 그게 무얼 뜻하냐고 물었더니 마누라가 옆에서 "나랑 정반대라는 소리야" 간명하게 설명했다. 바로 알아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누라는 'ESTJ형'이라나. 

   기질이 상반된 두 남녀가 한 이불 덮고 잔 지 사반세기가 다 되어 간다. 안 맞는 건 끝까지 안 맞고 안 맞아서 생기는 갈등도 여전하다. 다만 불화의 칼끝이 전보다는 눈에 띄게 무뎌진 건 식구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변모다. 나이가 든다는 건 대수롭지 않은 잡사라도 마누라가, 남펀이 달리 보이는 호들갑이 는다는 게 아닐까. 그런 호들갑이라면 서로를 위해서 환영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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