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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an 01. 2024

2024년 새해 인사

   사는 아파트 단지 배후로 작은 갈림길이 있다. 내려가면 청사포, 올라가면 달맞이언덕이다. 거기서 맞는 일출이 여느 명소 못지않아서 새해 첫날 동이 틀 무렵부터 식구들은 부산을 떨곤 했다. 하지만 작년 새해 첫날처럼 올해도 불참이다. 새해 첫날이 정기 공휴일인 화요일이 아닌 다음에야 새해 일출 보기는 난망하겠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듯 깎새는 내일도 모레도 점방 문을 열어야 하니까.

   떡국 끓여 가족들과 느긋하게 새해 첫날 아침을 즐기는 장면은 훈훈하기 그지없겠으나 새해 첫날 한산하기 그지없는 출근 전철 간에서 혼자 비장해진 깎새는 최전선에 투입될 병사인 양 군다. 전선은 전선이지. 생업 전선. 그깟 하루치 매상 몇 푼 된다고 새해 첫날부터 극성이냐고 비아냥거리지 마시라. 가족들과 오붓하게 떡국 퍼먹을 시간에 커트하고 염색 바르는 게 권장할 만한 짓은 아니지만 할 만하니까 견디는 거다. 요컨대 단란함보다는 치열함이 지금 깎새한테는 더 요긴하다고 변명하련다.

   당신에게 새해 문안을 올리려고 끼적거린 글의 골자는 별 거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으니 완고하게 살 까닭이 없다. 고로 우리는 유연해져야 한다. 슬프다고 해서 줄창 슬퍼해서도 안 되지만 행복하다고 넋 놓다간 뒤통수 된통 얻어맞을 수 있음에 유의하자. 트랜디한 드라마에 등장하는 우아하고 찬란한 배우를 동경하지만 그 배우일 순 없으니 목전의 현실에 충실해 스스로 안위를 챙기는 영악함으로 올 한 해를 또 버티자고. 당신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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