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를 한다는 것
나는 학원강사이다. 그러다보니 '어느 학과에 가는 것이 좋냐'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듣는다. 그런 학생들의 질문은 '요즘은 유튜버가 돈을 잘 번다던데요~'라는 일반화로 이어진다. 그럴 때마다 하는 이야기가 있다. '너의 인생은 직업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이다. 이를테면 삼성전자에 입사하더라도 32만명 직원들의 인생은 각자 다를 것 아닌가. 사람을 정의한다는 것이 그래서 어렵다. 이름 앞에 직업을 붙인다고 그 사람을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튜버만 해도 그렇지 않나.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 하면 사실 다 유튜버다. 그런데도 누구는 연예인이고, 누구는 영혼을 끌어모아 30명의 구독자를 거느린다.
대부분이 취업시즌이 되어서야 자신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자기소개서(a.k.a자기속여서)를 써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의 이름만 말한다고 자기를 소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트럼프 정도의 사람은 '저는 트럼프(頭濫䬌)입니다.'라고 이름 석자만 말해도 자기소개가 끝날텐데 말이다. 문제는 일반시민이 어디 그 정도가 될 수 있냐는 것이다. 여차저차 자신과 가장 유사한 수식어를 붙여야만 자기소개가 된다. 게다가 취준생일 때 쓰던 자기소개서는 진정한 의미의 자기소개는 아니었다. '이 회사에서 더 야근할 수 있습니다'라는 정도의 어필이었을 뿐이지.
그렇다면 이 글을 쓰는 나는 누구인가? 나도 자기소개가 참 어렵다. 왜 어려울까에 대해 고민해보니, 결론이 나왔다. 뭔가 있지도 않은데 있어보이려고 하니 어려웠던 것이다. '일은 하기 싫은데 돈은 벌고 싶고' 뭐 그런 기분 말이다. 일단 나는 수학을 가르치는 학원강사이다. 그런데 이 직업이 나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내 삶의 목표는 직업이 아니라 사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행복도를 높이는 삶' 정도가 되겠다. 지구 반대편의 인류를 구한다든가, 세계 최고의 무언가가 된다든가 하는 그릇은 못 된다. 그런 인생만 행복하다면, 아이언맨 말고는 다 불행해야지.
행복한 삶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일단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는 결론은 나온다. 흔히 말하는 '경제적 자유'가 필요하긴 한데 그 크기가 아주 크지는 않아도 되겠다는 결론이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나만의 행복을 전해주고 싶다. 지구 반대편까지는 아니고 주변 사람들정도만. 그러니까 내일의 페라리를 꿈꾸며 고통을 감내하느니, 오늘도 잘 굴러가는 소나타를 몰며 '드라이브 하기 좋은 개꿀코스'에 대해 탐구하겠다는 것이다. 쓰고보니 두루뭉술한 이야기를 참 길게도 써놨는데, 내 생각이 그렇다. 이렇게 살아야 당장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그러다보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곁에 남지 않겠나.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자기소개는 '내가 나를 소개하지 않아도, 상대가 나를 이미 알고있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자기소개로 시작해서 왠지 유언장처럼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