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배우는 투자의 지혜
오늘부터 그동안 투자를 위해 공부해왔던 것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사람의 머릿속은 구글 검색과 유사합니다. 구글에는 전 세계 웹 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정보들을 취합하여 정리해두지만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는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머릿속에 온갖 정보를 취합하여 저장해 두지만 정확하게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형태로 기억하고 있는지, 어떤 것과 어떤 것을 연결하여 이해하고 있는지는 자기 자신에게 직접 물어보고 답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저 또한 그동안 투자에 도움이 될만한 여러 분야의 서적들을 가리지 않고 찾아보았습니다만, 제 자신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 있는지 알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제가 읽고, 느끼며, 깨달은 모든 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더 이상 미룰 것 없이 시간이 나는 대로 정리를 해보고자 합니다.
두서없이 우왕좌왕 떠드는 것을 피해보고자 앞으로 정리할 내용을 목차 수준으로 정리해보고 이름을 투자의 기본이라 명명하고, 그 첫번째 시간으로 인류의 역사를 통해 투자에 대해 배울 것이 무엇있는지 살펴볼 예정입니다. 그리고 투자에 임하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지식과 투자의 대상을 선별하고, 계획을 세워 투자를 실행하고, 결실을 맺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정리할 예정입니다.
거창하게 이름을 투자의 기본이라 명명하였지만, 사실 제가 언급하는 모든 내용에 대해 다 알아야만 투자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투자의 세계는 불법적인 방법을 제외하고는 어떤 방법이든지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사용하여 성공을 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거시경제 지식을 이용할 수도 있고, 심리학을 이용할 수도 있고, 경영학/재무학 지식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는 지식들은 읽는 분들이 본인에게 적합한 방법들을 만들기 위한 초석이 될 뿐, 이것이 절대적인 전략이나 비법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저 아직 본격적인 투자를 해보신 적 없는 분들이나, 투자를 하고 계시지만 체계적인 지식에 대한 갈망이 있는 분들에게 '이런 지식과 방법들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보는 게 좋습니다'라고 가이드가 될 수 있는 내용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한번 시작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로 본격적인 투자 방법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우리는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투자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투자시장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
저 또한 그러했습니다만, 보통 투자에 뛰어드는 많은 분들이 최대한 빠른 성공을 이루기 위해 일단 어디에 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한 가장 쉬운 답, 가장 편한 답만을 최대한 빨리 습득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투자의 세계에 가장 쉬운 답, 가장 편한 답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난 인류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투자와 같은 어려운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본질과 개념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만의 철학 또는 의사결정 방법론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투자의 길이란 조지 소로스처럼 철학자가 되기 위한 길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분은 성공적인 투자를 위해 철학자이길 자처하기보다는 철학자로서 유명해지기 위해 투자에 도전한 느낌이 강하지만;;;)
그래서 투자의 본질과 개념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해 인류 문명은 어떤 과정을 거쳐 구축이 되었고, 투자라는 개념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생명과 진화에서 배울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지구에 최초의 생명체가 등장한 것은 약 35억 년 전부터 최대 38억 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많은 과학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 생명의 탄생 과정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기초를 이루는 화합물을 만들어내는 실험이 성공한 후 고대 바다의 유기화합물들이 만들어낸 원시적 수프에서 생명이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고, 해저 깊은 곳의 열수분출공(마그마로 인해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곳)에서 에너지를 얻는 박테리아를 발견한 이후 이 열수분출공에서 생명이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외계에서 날아온 운석에 의해 생명이 지구에 도착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최초의 생명이 외계에서 왔다는 주장을 제외한 여러 가설들을 종합해보면 고대 지구에서 발생한 화학반응으로 복잡한 유기 화합물이 발생하고, 이것들이 모종의 작용을 통해 생명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생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정확한 정의가 내려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생명체에 대해 인지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명확하게 정의하라고 한다면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실 겁니다.
과학자들은 보통의 경우 ① 세포의 구성 여부, ② 효소를 이용한 물질대사 여부, ③ 번식 여부 등을 통해 생명체인지 아닌지 구분을 하고 있습니다만, 바이러스와 같이 세포로 구성되어 있지 않고, 물질대사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는 명쾌한 해답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열의 '지능의 탄생'이라는 책에서는 생명체를 유전과 진화를 거듭하는 자기복제기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지구에서야 생명의 시작이 세포였지만, 외계 생명체도 세포로 이루어졌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복제기계' 라는 명칭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저자의 설명대로 외계까지 시야(?)를 넓혀 생각한다면 이 쪽의 정의가 더 적합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박재용의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라는 책에서는 생명에 대해 7가지 정의를 내렸습니다. ① 세포로 구성될 것, ② 효소를 이용한 물질대사 여부, ③ 내부 엔트로피를 일정하게 유지할 것, ④ 생장할 것, ⑤ 번식할 것, ⑥ 다른 생명과 연결될 것, ⑦ 진화할 것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생명이 자신의 내부 엔트로피(일로 환원시킬 수 없는 에너지, 일종의 무질서도라고도 함)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외부 엔트로피를 증가시킨다는 것입니다.
생명체가 생명활동을 하는 과정에는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생명활동을 위해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면, 생명체의 내부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는 감소하고, 사용할 수 없는 에너지(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됩니다. 결국 생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생명체 내부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어디선가 흡수하여 일정하게 유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생명체 내부의 에너지와 엔트로피는 일정 범위 내에서 유지가 되겠지만, 외부의 에너지는 감소하고 엔트로피는 점차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없는 자연계에서는 이러한 메커니즘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구에는 끊임없이 일정한 에너지를 보내주고 있는 태양이라는 반영구적 에너지원이 있습니다. 인간이 없다면 지구에서는 태양이 보내주는 에너지만큼만 식물이 생장하고, 식물이 생장하는 만큼 초식 동물이 생장하고, 초식 동물이 생장하는 만큼만 육식 동물이 생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엔트로피의 과도한 증가는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 인간이 개입된다면, 아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인간의 욕망이 개입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여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깨달은 인간은 그저 주어진 환경과 자원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인간은 더 나은 그리고 타인보다 앞서는 생존과 번식 환경 만들기라는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필요 이상의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는 에너지가 쌓이는 속도보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듭니다. 이에 제레미 리프킨과 같은 학자들은 인류가 만들어내는 급격한 엔트로피의 증가를 경고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균형을 무너뜨리는 메커니즘은 경제 시스템에서도 동일하게 동작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생산성 향상과 인구의 증가에 힘입어 매년 생산해내는 전체 재화를 꾸준히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생활수준이 아주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증가하는 재화와 향상되는 생활수준을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면 사람들이 필요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는 안정되고 변동성이 크지 않은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분배 방법이란 적어도 현재까지는 발명되지 못했습니다. 아마 본능적으로 타인과 비교하려는 인류의 생물학적 특성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분배 방법이란 영영 발명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보다 더 나은 그리고 타인보다 더 앞서는 이익을 얻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이기심과 탐욕이 증가하면 할수록 더 큰 이익을 추구하게 되고, 이러한 노력은 경제의 균형을 무너뜨려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 1채를 처분하려고 한다고 가정해봅니다. 그 개인은 당연히 그 아파트 단지의 최근 매매가를 살펴보고 그 이상의 가격을 받으려 할 것입니다. 단기간 내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 예상하면 처분하려던 계획을 좀 더 나중으로 변경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아파트의 가격은 사람들의 전망이 비관적으로 변하기 전까지 가격이 꾸준히 상승하게 됩니다. 아파트 가격이 치솟는다는 이야기에 시중 유동 자금은 모두 부동산으로 향합니다. 이렇게 이른바 '전염성 탐욕'이 발생하여 가격이 상승하고 나면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던 사람들은 가격 상승에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경제/사회 전체적으로는 심한 후유증을 겪을 수 있습니다.
금융업계에서 이야기하는 헷지(Hedge)를 위한 파생상품 또한 위험을 미리 대비한다는 본래의 제기능으로만 사용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이것을 본래의 목적이 아닌 투자상품 형태로 만들어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부를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파생상품을 기반으로 한 파생상품이라는 기막힌 발명품이 나타나자 인간의 탐욕은 이것을 끝없이 복잡하고 거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한 경기 침체에 국한될 수 있었던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전 세계적인 역대급 금융위기로 증폭이 됩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사실 그 시작은 사람들이 과도하게 빚을 져가면서 투자와 소비를 감행하여 빚을 갚느라 경기가 침체되는 부채 디플레이션 현상이었습니다. 하지만 모기지(주택을 담보로한 대출을 증권화 시킨 금융상품)를 담보로 한 파생상품 거래가 금융회사 간에 아주 복잡하게 이루어지면서 어떤 금융회사가 어떤 파생상품을 가지고 얼마만큼의 손해를 보았는지 알 수 없는,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신용 위기가 발생하면서 일종의 금융회사 간 뱅크런(금융회사가 신뢰를 잃어 사람들이 돈을 빼가는 사태)이 발생하게 되면서 경기침체가 금융위기라는 핵폭탄급 충격으로 증폭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투자에 임함에 있어 현재 사람들이 탐욕에 빠진 상태인지, 공포에 빠진 상태인지에 대해 항상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렇게 최초로 태어난 생명체는 생식 활동과 유전, 변이, 자연선택이라는 과정을 통해 개체수를 늘리고 점차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하여 오늘날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탄생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여러 과학분야의 발전에 힘입어 생물의 진화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부분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앞서 모든 생명체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생물의 구성단위가 되는 세포의 수명은 생물의 수명보다 짧아서 보통 생명이 다한 세포는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내고 사라지게 됩니다. 이른바 세포분열이 바로 그것인데, 이 세포분열 과정에서 유전물질인 DNA가 완벽하게 복제되지 못하고 일부분이 변경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변이는 우리의 몸을 이루는 체세포에서 발생할 수도 있고, 생식세포(정자, 난자)에서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 중 생식세포에게 발생한 변이만이 유전되어 다음 세대로 전달되게 됩니다.
인간의 경우에는 세대가 바뀔 때마다 30억 염기쌍으로 이루어진 게놈 정보 중 40개 정도(0.000000012% 정도)가 바뀌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30억 개 정도의 특징 중에 40개 정도는 부모님에게는 없는 독특한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미한 변화는 보통의 경우 결정적인 변화도 아니고, 생존에 불리한 변화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장기간(최소 수만에서 수십만 년)에 걸쳐 누적된 변화는 매우 드문 확률로 생존에 더 유리한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존에 더 적합한 변화는 살아남아 후손들에게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진화가 더 고등한, 복잡한 생물로 변화하는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진화의 과정은 자연선택적이기 때문에 어떤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 쉽게 말해 진화는 생물 간 우열을 가리는 과정이 아닌 환경에 더 적응을 잘하는 종을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강한 놈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놈이 강한 놈이다.) 예를 들어 인간의 눈은 다른 생물들의 눈보다 우월하지 않지만 인간이 생존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최초의 단세포 생물에서 다양한 환경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해 다세포 생물이 되었고, 유성 생식을 하게 되었으며, 신경 세포(뇌)를 발달시키게 되었고, 엄지 손가락을 갖게 되었습니다. 만약 지구의 환경이 바뀐다면 그전까지 고등하고, 복잡한 생물로 알고 있던 것들이 멸종하고, 단순한 생물들만이 살아남아 다시 번식에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진화에 관한 또 한 가지 오해는 우리의 인식으로 보았을 때 더 진화한, 더 복잡하고 고등한 종이 나타난다고 해서 기존의 생물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존의 종에서 변이가 발생하여 새로운 종이 나타난다고 가정해보면, 기존의 종과 새로운 종 모두 현재 환경에서 생존하는데 적합하고 서로 간에 먹이가 겹치지 않는다면 두 가지 종은 서로 공존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환경이 변화하거나 생존을 위해 서로 경쟁을 해야만 한다면 그때는 생존에 더 유리한 적자만이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또한 어떤 생물 한 종의 진화는 다른 종의 진화를 낳게 된다는 점에서 진화는 연쇄 효과를 일으킨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을 공진화 이론, 또는 붉은 여왕 효과라고 합니다.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후속작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붉은 여왕이 지배하는 거울 왕국에는 가만히 있으면 뒤로 이동하기 때문에 제 자리에 가만히 있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죽어라 뛰어야 하는 기묘한 법칙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신만이 가만히 있으면 뒤처져버리기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해야 되는 것을 붉은 여왕 효과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들판의 치타가 수풀 속에 숨는 능력에 변이가 발생해 더 잘 숨는 능력을 갖췄다고 가정해보면, 치타의 사냥이 한층 더 수월해져서 치타의 먹이가 되는 가젤과 얼룩말은 급격히 개체수가 감소하게 될 것입니다. 이때 가젤과 얼룩말 중 유달리 눈이 발달하여 치타의 숨은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는 개체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고, 이는 자연선택적으로 초식 동물들의 전체적인 눈의 진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 치타의 개체 수가 증가하면서 가젤과 얼룩말의 개체 수가 감소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요? 예상하시는 것처럼 치타는 일시적 호황(?)을 누릴 수 있겠지만 이내 치타 사이에서도 경쟁이 발생하여 생존에 더 적합한 개체만이 살아남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먹이가 풍부할 때는 사냥 능력이 뒤처지는 개체도 생존을 할 수 있었지만, 먹이가 부족해지는 순간 냉혹한 자연선택이 생존하여 계속해서 후손을 이어나갈 개체만 남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화의 프로세스는 비즈니스와 투자의 세계에도 많은 부분을 시사합니다.
첫째로 진화는 계획적이지 않고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조류가 가진 날개는 척추동물의 앞다리가 변형된 것으로 처음에는 체온을 조절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날개를 이용해서 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개체가 나타나고, 점차 더 잘 날 수 있는 개체가 더 원활히 번식할 수 있게 되면서 현재 우리가 보는 조류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이 날개를 하늘을 나는데 활용할 필요가 없었던 펭귄은 헤엄을 치는데 훌륭히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생물 그리고 인간에게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근본 목표가 있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다시 세부적인 니즈가 있습니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주어진 기술과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여 발전해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누군가 큰 밑그림을 그리고 계획해서 가능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주어진 기술과 자원을 '굴절' 적응시켜 만들어낸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에게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해 빠른 이동을 하고 싶다는 니즈가 존재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처음에는 인류보다 빨리 달릴 수 있는 다른 동물을 이용하였고, 증기기관이라는 도구가 만들어지자 재빨리 그것을 이용하여 기차를 만들어냈으며, 증기기관을 마차에 옮겨 실어 자동차를 만들어내었고, 석유라는 재료가 주어지자 내연기관이라는 도구를 만들어 자동차를 개량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최신의 고성능 자동차를 볼 때면 외계인을 데려와서 만들었나 보다 라고 말을 합니다. 이렇듯 최종의 완성된 것만 살펴볼 때는 마치 엄청난 능력을 가진 존재가 미리 설계를 완벽하게 마친 후 만들어낸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실상은 여러 가지 니즈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에서부터 부단히 변화해온 것들이 축적되어 하나의 합을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 기업들이 소비자의 '니즈'를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고, 각 기업들이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어떤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애플의 아이폰은 기존에 완성되어있던 기술들을 재조합하여 만들어낸 것이고, 테슬라의 전기차는 기존에 있던 소형 배터리를 많은 양으로 묶는 발상의 전환으로 친환경적 패션카를 원하는 이들의 취향 저격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투자이론 또한 투자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두어야 합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초창기 미국 투자시장의 주류는 기술적 분석을 사용하는 투자자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벤저민 그레이엄과 데이비드 도드의 가치투자이론이 등장한 것은 1930년대가 되어서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까지 투자자들은 가치투자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일까요? 그 이유는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기업과 자본가들이 회사 내부의 회계 사정을 정직하게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회계 장부가 투명하지 않고 내부자 거래가 횡행하는 환경에서 회계를 기준으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그리 내키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그레이엄과 도드 또한 그리 나아지지 않은 환경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기업 평가시 실제 쌓여있는 현금성 자산에 치중하는 분석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그 당시 기술적 분석가들이나 가치투자자 모두 기업의 회계 장부를 신뢰할 수 없는 환경에서 나름 최선의 방법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 환경이 바뀌면서 투자이론 또한 진화를 거듭하여 배당주 투자, 역발상 투자, 퀀트 투자 등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에서 소개한 산타페 연구소의 도인 파머의 '시장의 힘, 생태 그리고 진화'에서는 각 시대별 지배적이었던 투자 전략들을 통해 투자 전략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① 1930년대 ~ 1940년대에는 그레이엄과 도드가 증권 분석을 통해 제시한 엄격한 장부가치 할인 전략이 지배적이었고, ② 2차 대전(1945년 종전) 이후 1930년대 대공황의 기억이 희미해지자 투자자들은 고배당 주식에 이끌리면서 배당 모형 전략이 주요 전략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③ 1960년대에는 고배당 기업보다는 이익성장률이 가파른 기업을 선호하였고, ④ 1980년대 워런 버핏은 주주이익 또는 현금흐름을 중시한 투자전략을 강조하였습니다. ⑤ 현재는 투하자본에 대한 현금수익이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흐름에 대해 박경철 씨는 저서 '주식투자란 무엇인가'에서 미국 주식시장의 역사는 '이용가치 → 교환가치 → 이용가치 → 교환가치'의 형태로 순환되고 있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경제위기나 금융위기를 겪을 때면 우리는 기업이 '실제로' 얼마나 우량하고 돈을 잘 버는 기업인가를 생각하는 '이용가치'에 중점을 둔 판단을 하게 되고, 안정되고 위기가 잊혀진 시기가 되면 '미래에' 얼마나 대단한 기업이 될 것인가를 따지는 '교환가치'가 부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현재 우리 앞에 주어진 도구와 환경, 투자자들의 마인드에 따라 적합한 투자 전략과 투자 철학은 항상 변화하고 진화한다는 점을 투자에 앞서 명심해야 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현재 사용하여 성공을 거둔 투자방법이 언제든지 적합하지 않은 시점이 올 수 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 방법을 교조적으로 따르는 것이 굉장히 위험천만한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로, 앞서 설명했듯이 진화에는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 더 고등하고 더 기능적으로 우월한 것이 반드시 더 생존에 적합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생물학적 진화의 사례가 아닌 현대의 기술 경쟁에서도 이와 같은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비디오 포맷 경쟁에서 베타와 VHS 방식이 격돌했을 때 승자는 기술적으로 더 우위에 있었던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현대의 기술 경쟁에서도 경쟁의 키 포인트가 되는 부분은 사용자가 더 편하고, 더 저렴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인가(기술이 덜 독점적일 것인가) 하는 점이지 어떤 것이 더 기술적으로 우월하고 복잡하고 더 고등한 것인가 하는 점이 아닌 것입니다.
또한 기술적으로 더 우월한 것이 나온다고 기존의 것이 무조건 다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3D 애니메이션이 넘쳐나는 시대에도 아직 종이 만화책은 건재하고, 5G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보안상의 이유로 2G 핸드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기존의 종과 새로운 종 모두 현재 환경에서 생존하는데 적합하고 서로 간에 먹이가 겹치지 않으면서 주어진 환경이 두 종에 모두 적합할 경우 두 가지 종은 서로 공존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두 기술의 자양분이 서로 같아서 제로섬 경쟁이 되는 순간, 또는 환경이 바뀌며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이 필요한 순간 두 기술 중 하나의 기술만이 살아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단순히 더 고도화된 기술이 진화상 우위를 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됩니다. 반복해서 이야기했듯 더 적합한 것이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이는 투자 전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십 가지의 팩터를 가지고 복잡한 계산을 하는 퀀트 투자가 반드시 단순한 한두 가지의 지표만을 가지고 투자하는 것보다 모든 상황에서 뛰어나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투자의 대가들은 자신들이 투자를 함에 있어서 복잡하고 어려운 수식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기준과 원칙을 세우고 이를 뚝심 있게 지켜나갈 수 있는 기질이지, 뛰어난 IQ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워런 버핏의 이야기는 항상 마음속에 새겨둘 필요가 있습니다. 박경철 씨가 '주식투자란 무엇인가'에서 묘사했듯이 워런 버핏이 현재까지 가장 크게 성공한 투자자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투자 방법이 마라톤에 적합한 것임을 깨닫고, 철저하게 마라톤에 유리한 국면에서만 투자를 감행한 것 덕분이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우리는 투자 방법에 따라 적합한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사용하려는 투자 방법이 어떤 환경에서 가장 적합한 방법인지 고민하고 연구해야만 합니다.
셋째로 모든 진화는 공진화를 일으킵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모든 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붉은 여왕의 세계에서 가만히 있는 존재는 뒤처지게 됩니다. 이것은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내가 변한다면 나로 인해 그 영향은 다른 것에도 미치게 되고, 다른 것들이 변한다면 저 또한 변해야 합니다.
앞서 투자 전략이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투자 환경과 사람들의 심리 상태가 변화한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주류가 된 투자 전략은 해당 전략이 취할 수 있는 시장 대비 추가 수익이 급격히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투자 스타일이 시장 대비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소문이 난다면, 너도나도 같은 투자 스타일을 따라 할 것이고 이것은 결국 시장 대비 추가 수익의 상실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기업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에 투자하면 수익률이 좋다는 이야기가 시장에 퍼진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너도나도 기업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을 찾아 투자에 나서게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기업지배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의 주가는 다른 종류의 기업들에 비해서 금세 고평가를 받게 될 것이고, 추가적인 상승은 제약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업의 사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업 분야가 미래가 유망하여 엄청난 이익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나고 해당 분야의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면 해당 분야에 진출하는 기업은 급격히 증가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해당 산업의 파이가 잘게 쪼개지는 결과를 낳게 되고 몇몇 기업들은 이익을 얻기는 커녕 손해를 입을 가능성마저 생길 것입니다. 따라서 투자 전략과 기업 모두 현재가 최선이라고 해서 안주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진화는 필요 이상으로 개체수를 증가시킨 후 붕괴를 통해 더 적합한 개체만 살아남게 만드는 방식으로 자기 강화를 꾀합니다. 앞서 치타와 얼룩말 사례에서 말씀드렸듯이 사냥 능력이 진화한 치타가 등장하여 초식 동물들의 개체수를 심각하게 감소시킨다면, 반대로 치타는 엄청난 번식에 성공할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숫자로 늘어난 치타들은 어떻게 될까요? 결국 생존에 적합한 개체만이 남고 다시 굶어 죽게 되어 초식 동물과의 균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놀랍게도 우리의 뇌 또한 이러한 형태로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가 불필요한 것들을 가지치기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찾습니다. 어린아이의 시냅스(뇌세포와 뇌세포 간의 신경 연결)는 태어나서 세 살까지 어른의 두배 수준으로 증가하였다가 그 이후 서서히 가지치기가 수행되어 쓸모 있는 것은 더욱 강해지고, 불필요한 것들은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어린 시절 기억에 더 뛰어난 능력을 보이다가 서서히 기억보다는 이해와 응용, 감성에 능력을 보이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모든 면에서 효율성 위주로 진화한 우리의 뇌가 이렇게 불필요한 과잉생산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러한 방법이 더 유연한 발전을 가능케 하며, 정보 보존 신뢰성이 더 뛰어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서 필요한 것만 남기는 방법이 여러 환경에 대응하기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얼핏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방법이 전체적인 진화의 측면에서는 가장 최선의 전략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진화의 프로세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비즈니스에서도 동일하게 동작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어떤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산업분야가 열리면 해당 분야에 연관이 있는 많은 기업들이 예의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기업은 성장에 목말라 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언제나 좋은 먹잇감이 없나 감시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이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성공하면 그곳에 엄청난 기회가 있을 것이라 예상해 많은 기업들이 사업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 수요보다 많은 공급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기업들은 이내 생존을 위한 경쟁에 돌입하게 됩니다. 여기서 살아남는 기업들은 결국 해당 산업의 약속된 열매를 따먹게 되지만, 경쟁에서 밀려난 기업들은 도리어 손해만을 본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약 20만 년 전 현생 인류라 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Homo sapiens sapiens)가 등장하였습니다. 현생 인류의 조상들은 다른 고인류 종들과 서로 경쟁하며 전 지구에 점차 퍼져나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생 인류는 다음의 세 가지에 기반한 거대 사회의 힘으로 타 고인류는 물론, 자연의 세계에서도 살아남아 현재에 이르렀다고 추정됩니다.
첫 번째는 뇌 발달을 통한 사회적 활동입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생 인류는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고인류인 네안데르탈인들에 비해 뇌와 근육 크기에 있어 뒤처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바로 현생 인류는 판단과 대인관계능력, 실행 능력을 좌우하는 전두엽과 측두엽이 발달한 것에 비해 네안데르탈인들은 시각 시스템 중심의 후두엽이 발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해부학적 추정은 현생 인류가 네안데르탈 인보다 협동과 사회성에 있어서 더 우위에 있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로빈 던바의 사회적 뇌 가설에 따르면 현생 인류의 공동체 규모는 다른 고인류 공동체보다 1/3 가량이 더 컸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뒤에서 언급할 언어와 신뢰에 기반한 사회적 시스템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현생 인류가 다른 고인류와 동물들을 압도하는 규모의 사회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복잡한 언어 체계의 발달입니다. 앞서 언급한 전두엽과 측두엽의 중요 기능 중 하나는 바로 언어를 다루는 영역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동물 또한 집단을 이루어 생존해나가고, 그루밍과 같은 행동을 통해 사회적 행동을 수행하곤 합니다. 하지만 현생 인류와 같은 복잡한 언어 체계를 사용하는 동물은 없습니다. 언어의 발달은 그루밍을 대신하여 집단적,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데 아주 유리한 방법입니다. 또한 언어는 복잡한 사냥과 전투를 가능하게 하며, 많은 지식을 축적하고 후대에 전해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종교와 스토리텔링이라는 문화/신뢰 활동입니다. 자기 자신을 인지하는 동물도 많고, 어린아이의 지능 수준을 가진 동물도 많습니다. 특히 반려견을 키워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반려견 수준만 되어도 인간과 오래 같이 지낸 반려견은 자신이 사람인 줄 알 정도로 똑똑한 지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종교와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동물은 현생 인류 외에는 없었습니다. 다른 고인류들 또한 하늘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원시적 종교 활동은 할 수 있었겠지만 현대 종교와 같은 복잡한 형태의 스토리텔링은 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종교 활동은 어떤 특정 인간에게 큰 권위를 부여하여 많은 인간이 따를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으며, 서로 간의 상호 작용이 없는 인간 사이에서도 종교와 민족, 국가라는 개념은 다른 동물은 상상하기 힘든 단위의 거대한 조직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근간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생 인류의 발달과정 또한 우리가 투자를 함에 있어서 많은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첫째로 신뢰는 현대 사회를 이루는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종교와 스토리텔링은 결국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또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함께 믿는다는 일종의 신뢰에 기반을 둔 행동입니다. 이와 같은 구조는 우리가 돈을 통해 재화를 사고파는 화폐 시스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 것입니다. 돈을 가지고 무언가를 살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가 그것이 교환의 매개체가 될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믿음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신뢰에 기반을 둔 계약 시스템이 완전히 무너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대혼란이 찾아올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단순히 미국 자산 시장에 거대한 거품이 발생했기 때문에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커졌던 것이 아닙니다. 거품의 이면에는 어떤 금융회사가 무너지고 어떤 금융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신뢰가 무너진 공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2007년 하반기부터 문제가 발생했지만, 주식시장 대폭락을 가져왔던 것은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시점이었습니다. 처음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기 시작하고, 투자은행들이 이러한 모기지를 이용한 파생상품 거래에서 큰 손해를 볼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도 주식시장의 붕괴가 발생하지는 않았습니다. 투자은행 역사상 다른 회사에 인수된 회사는 있어도 파산을 한 회사는 없었고, 어떤 경우에도 시장 안정화를 위해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위원회(이하 연준)가 나설 것이라는 믿음이 굳건했기 때문입니다.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연준의 중재로 JP모건에 인수되고, 페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믿음이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금융회사들에 대한 연달은 구제금융으로 정치적 반대가 거세지자 미 정부와 연준은 리먼 브라더스를 선뜻 구제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리먼 브라더스는 아무런 인수자를 찾지 못한 채 파산을 맞이했습니다. 시장 참여자들은 미 정부와 연준이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을 내버려두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나머지 금융회사들의 운명에 대해서도 확신을 하지 못했습니다. 시장 참여자들도, 금융회사들도 그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자 엄청난 공포가 밀려왔던 것입니다. 주식 시장 전체적으로 이전 고점 대비 50% 가까운 하락이 발생하였고,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형 금융회사들의 주가는 10분의 1로 추락했습니다.
이처럼 투자자들의 신뢰와 믿음이 깨지는 순간 얼마나 급격한 자산 가격 하락이 발생하는지는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투자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것입니다. 시스템에 대한, 자산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가격은 급격하게 변동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항상 예의 주시해야만 합니다.
앞서 투자를 할 때는 사람들이 탐욕에 찬 상태인지 아닌지를 예의 주시해야 된다고 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투자자들의 믿음이 얼마나 공고한 상태인지 다시 말하자면 얼마나 공포에 가깝거나 먼 상태인지 또한 항상 예의 주시해야 합니다. 탐욕과 공포에 예의 주시하고 있어야만 '공포에 사서 탐욕에 팔라'는 격언을 실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사회적 상호작용으로 인한 군중심리를 조심해야 합니다. 현생 인류가 그 어떤 동물보다 큰 조직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 조직적인 활동이나 영향에 취약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진화심리학적으로 다른 개체의 행동으로부터 배우고, 다른 개체의 행동을 통해 위험을 감지하도록 발달하였습니다. 그렇게 다른 개체로부터 배우고 행동하는 것이 학습과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철학과 중심이 없다면 결국 우리는 타인에게 휩쓸리다가 투자를 실패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이것은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투자에 실패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다음에 진화심리학/행동경제학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생물학적 기능은 20만 년 전 현생 인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20만 년 전 초기 현생 인류와 현재의 우리는 해부학적으로는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받으며 정장을 입으면 현재의 인류가 될 수 있는 것이고, 가죽 옷을 입고 구구까까 거리면 20만 년 전 초기 현생 인류처럼 자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본능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고대에 머물러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부분은 군중심리에서 언급한 진화심리학 상 우리를 투자에 적합하지 않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이 부분 또한 일단 이 정도로만 가볍게 언급하고 다음에 진화심리학/행동경제학 관련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생기면 그때 자세히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참고서적 또는 영감을 준 서적
나의 첫번째 과학 공부 / 박재용 지음
던바의 수 / 로빈 던바 지음
멸종하거나 진화하거나 / 로빈 던바 지음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 박재용 지음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지음
세포에서 문명까지 / 엔리코 코엔 지음
일상적이지만 절대적인 생물학 지식 / J.V. 샤마리 지음
이일하 교수의 생물학 산책 / 이일하 지음
주식투자란 무엇인가? / 박경철 지음
지능의 탄생 / 이대열 지음
진화론의 유혹 / 데이비드 슬론 지음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 스티븐 존슨 지음
통섭과 투자 / 마이클 모부신 지음
현명한 투자자의 인문학 / 로버트 해그스트롬 지음
행동하는 용기 / 벤 S.버냉키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