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플래시 크래시가 일어나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최근 주식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코로나19 판데믹에도 불구하고 거침없이 상승하던 세계 주식시장은 제가 지난번 글을 썼던 9월 초를 정점으로 몇 주간 조정을 받으며 세계 대다수의 주식시장이 10% 내외의 하락을 보였습니다.
그 때문인지 9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수익률 자랑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지만, 이제는 그런 분들은 사라지고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묻는 사람들만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한동안 시장의 무서움을 느끼지 못했던 개인투자자들이 이제야 주식투자라는 것이 만만치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중이랄까요? 그동안 아무런 준비 없이 주식을 매수하여 재미를 보던 분들이 지금부터는 드디어(!) 공부를 하고 투자를 하겠다고 고백하시는 웃지 못할 풍경을 요 며칠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9월 한 달간 조정이 많은 분들에게 공포를 주었던 이유는 아마도 특별한 원인이 없음에도 하락을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경제 셧다운이라던가, 미국과 중국 간 갈등 심화라던가, 이렇게 뚜렷한 원인이 보일 때는 그나마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해보기 쉬웠겠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힘없이 흘러내리는 조정은 손실에 대한 아픔과 함께 원인을 모르겠다는 공포가 더해져 투자자들을 한층 더 힘겹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9월 한 달간 세계 증시 조정에는 정말 아무런 원인이 없었던 것일까요? 여러 시장 상황을 종합해본 결과 제가 내린 결론은 시장에서 '느린 플래시 크래시'가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플래시 크래시란 자산 시장에서 갑작스러운 매수 또는 매도 주문이 일방적으로 몰리면서 자산 가격이 비상식적으로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1987년에 있었던 블랙 먼데이나 2010년에 있었던 다우지수 폭락 사건이 대표적인 플래시 크래시 현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꼭 위와 같은 대규모 시장 붕괴 사건이 아니더라도, 개별 종목의 분봉 차트를 유심히 보시면 흔히 특정 가격대가 무너지면서 가격이 갑자기 급락을 하다가 금세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가격이 다시 회복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갑자기 매도 주문이 몰리면, 그것이 개인과 기관의 자동 매도 주문을 한 번에 발동시키고, 이렇게 가격이 붕괴되기 시작하면 초단기 투자자들까지 매도 행렬에 동참하여 눈 깜짝할 사이에 가격은 아주 큰 폭으로 하락하곤 합니다.
사실 ‘느린 플래시 크래시'라는 것은 좀 있어 보이게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이고(...), 간단히 설명하자면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특정 상황에서 매수를 하려고 하는 물량은 한정된 반면, 기계적으로 매도를 해야 할 물량은 갑자기 많아졌던 것이 9월 한 달간 하락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왜 매도해야 할 물량은 많았고, 매수를 하려는 물량은 적었는지 한번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거래가 일어나는 모든 시장에서 (인위적인 조작이 없다면) 가격은 단 한 가지 법칙으로 정해집니다. 경제학의 유일무이한 절대 법칙이라 할 수 있는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 결정이 바로 그것입니다.
주식 시장 또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가격을 결정합니다. 기업이 발행한 주식의 수는 일정하지만, 이를 매수 후 보유하고 있는 주체들의 결정에 따라 주식 시장에선 일시적으로 주식을 팔려는 물량이 많아질 수도 있고, 살려는 물량이 많아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두고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주식의 가격은 사고자 하는 사람이 없을 때 하락하고, 팔고자 하는 사람이 없을 때 상승한다"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눈 앞으로 다가오고, 경제가 회복이 더 뚜렷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주식을 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1) 주식 비중을 줄여야만 하는 대형 연기금 및 보험
국내 증시가 조정을 받던 중 제 눈길을 끈 것은 단순히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게 "이 종목에 물렸는데 계속 보유하고 있어도 되느냐?"라고 물어온 사람들이 말하는 종목들마다 기관과 연기금의 매도 물량이 상당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보통 국내 증시가 조정을 받으면 국민연금이 나서서 주식을 매수하여 지수를 방어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증시 조정에서는 단 한 번도 국민연금이 출동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조정장에서 적극적으로 주식을 팔았던 주체가 바로 국민연금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식비중 꽉 찬 글로벌 연기금…2000억달러 '매도 폭탄' 경고 (2020.09.17)
연기금 한달새 1조 매도…지분 높은 종목 추가 하락 우려 (2020.09.23)
코스피 급락 유발한 기관…연말까지 더 팔듯 (2020.09.25)
https://www.mk.co.kr/news/stock/view/2020/09/994658/
"한 달에 1.5조"…보험·연기금, 국고 10년 지표물 싹쓸이 (2020.09.23)
https://news.einfomax.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09045
위 기사를 살펴보면 최근 들어 연기금과 보험사 등에서 상당한 규모로 주식을 매도하는 한편, 반대로 그만큼 채권을 많이 사들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핏 생각해보면 이제 경기회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주식 시장은 탄력을 얻는 반면, 채권 시장은 금리 상승 사이클이 시작됨에 따라 가격이 하락할 일만 남았는데 왜 주식 비중을 낮추려 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안정적인 자금 운용을 위한 연기금과 보험사들의 자산 배분 메커니즘 때문입니다.
연기금과 보험사들에겐 수익률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자산에 자금을 배분함으로써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낮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개인투자자들이나 펀드와는 달리 전체 자본을 특정 종류의 자산에만 투입하지 않고, 여러 가지 자산으로 나누어 자본을 배분합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경우 다음의 그림과 같이 국내 주식에는 전체 자금 중 17.3%, 해외 주식에는 22.3%만을 투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비중이라는 것은 고정이 되어있는데, 자산들 마다 가격은 들쑥날쑥하게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지난 1분기를 되돌아보면 주식의 가격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한편, 채권과 달러의 가치는 엄청난 속도로 치솟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연기금들이 보유한 자산에서 채권의 비중은 엄청나게 커진 반면 주식의 비중은 자연스럽게 낮아집니다. 이때는 연기금들이 기계적으로 채권을 매도하는 한편, 주식을 매수했습니다.
하지만, 2분기와 3분기가 되면서 상황은 반전되었습니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들이 전례 없는 통화/재정 정책 융단 폭격을 퍼부으면서 주식의 가격은 회복을 넘어서 호황에 접어든 반면, 중앙은행의 기준 금리가 하락을 멈춤에 따라 채권 가격은 상승을 멈추고 하락 반전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채권 금리가 상승하면 가격은 하락함)
코스피지수를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단 5개월 만에 주식시장은 1400선에서 2400선까지 약 70%가 넘게 치솟았습니다. 이로 인해 연기금들이 3월 저점에 매수했던 주식의 가치는 9월까지 상당한 수준으로 치솟았을 것이라 예상해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기금과 보험들은 9월이 끝나기 전에 보유 자산 중에 주식을 기계적으로 매도하고, 채권을 기계적으로 매수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만약 국내 주식시장이 예년처럼 코스피 상하단 1800 ~ 2200 사이 박스권에서 움직였다면 연기금들이 보유한 국내 주식의 가치가 그리 큰 폭으로 바뀌지 않았을 것이고, 분기 말을 맞이하여 비중을 조절해야 하는 물량이 그리 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시장 참여자들 어느 누구도 연기금들의 이런 움직임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동안 큰 영향이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주식시장의 변동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치솟았고, 올해 있었던 많은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투자자들이 자주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을 겪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앞선 글에서 설명했듯이 긍정적인 경제지표, 평균 인플레이션 목표제, 미국 재무부의 장기국채 위주의 운용 등 미국의 장기 금리가 급등하기 쉬운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주저앉은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나 미국의 5차 경기부양책 불확실성 때문에 주식시장이 주저앉고, 안전자산인 미국채로 몰린 것이 아니냐?라는 추측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 증시가 코로나19 재확산에 신음할 때도 미국 증시는 반등할 때가 있었다는 점, 주식시장이 반등할 때도 국채 금리가 하락했던 점, 코로나19 재확산이나 경기부양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원유, 금, 하이일드 채권 가격이 주식시장 움직임과 매칭 되지 않았던 점 등을 보았을 때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의 9월 움직임은 연기금 및 보험의 자산 배분 변동으로 인한 영향이 더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번 조정이 단기간에 급상승을 이루었던 코로나19 관련 테마주, 뉴딜 펀드 테마주, 미국에서는 대형 기술주 위주로 일어났던 것도 연기금 및 보험 자금의 움직임이 한몫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연기금들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주식 비중 축소를 하여 안정적인 기금 운용을 하기 위해서는 코로나19 때문에 현재 가격이 지지부진한 기업의 주식을 파는 것보다 코로나19 종식 이후 가격이 하락할 수도 있는 단기 급등 종목들을 파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저만의 확대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지난주까지 9월 한 달간 주식시장이 조정받자 연기금들이 매도를 해야 할 주식의 규모도 자연스럽게 감소하여 기관의 매도 행렬이 거의 다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지난주 후반부터 기관 매도 물량이 감소하자 우리나라와 미국 증시 모두 하락을 멈추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주에 쓰기 시작한 글이라 오늘 이미 반등을 하고 나니 조금 민망한 이야기가 되었네요;;)
(2)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는 펀드 등 기관 투자자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증시 급락 사태를 맞이하여 가장 상황이 웃프게 된 것은 바로 주식형 펀드들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요 몇 년간 ETF와의 싸움에서 크게 밀리고 있던 상황에서, 코로나19가 터지자 적극적인 자산운용을 하기도 어려웠고, 개인들이 테마주를 먼저 선점하여 큰 이득을 보자 개인들보다도 못한 펀드에 대한 회의론이 한층 더 강해졌기 때문입니다.
주식시장으로 거대한 돈이 유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월부터 9월까지 간접투자상품(펀드)에 유입된 자금은 전체적으로 -7조 원 정도로 간접투자상품(펀드)들은 오히려 역성장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3월 2일 - 9월 24일 기준)
자세한 기간별 펀드 자금 증감을 살펴보면 3월 한 달간 간접투자상품에서 -26조 원이 빠져나간 후 4월~5월에는 33조 원이 다시 유입되었으며, 6월에는 다시 -20조 원이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7월에는 다시 11조 원이 유입된 후, 최근 8월~9월 사이에는 -5조 원 정도의 자금이 빠져나갔습니다. 최근 2개월 동안 펀드 자금이 적극적인 매수를 하기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문투자자들의 관심은 이미 코로나19 관련 테마주에서 3분기 실적 관련 종목으로 바뀐 것으로 보입니다.
근래 들어 각종 언론을 통해 대형 금융회사에 속한 속칭 시장 전문가, 투자전략가라는 사람들은 이제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정말 투자자들을 위한 조언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대형 금융회사들이 이미 해당 분야를 선점하고 있으니 그쪽으로 관심을 돌려달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전문투자자들은 개인투자자들이 이미 잔뜩 몰려있고, 가격이 치솟을 대로 치솟은 종목에 들어가서 더 가격을 올려주거나 개인투자자들이 매도하는 물량을 받아주는 행동을 하진 않습니다. 만약 코로나19가 지금처럼 1년 더 지속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전문투자자들이 이미 코로나19 덕에 오른 종목들을 매수할 일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보통 주식시장은 현실 경제를 6개월 선행하여 반영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6개월 후 세계는 어떻게 변해있을까요? 지금부터는 이제까지 오른 기업들이 계속 오른다고 가정하고 투자를 하는 것보다는 6개월 뒤에 시장이 어떻게 변해있을까를 생각해보고 투자를 해야 되는 상황입니다. 개인투자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이지만 자신이 지금까지 투자하여 수익을 보았던 종목이 앞으로도 계속 수익을 낼 수 있는 종목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사람들은 높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할 수 있는 증거를 필요로 한다.
자산의 가격은 통상적으로 다음의 3단계 과정을 거쳐 상승합니다. 1단계는 최악은 지났다는 심리 또는 앞으로는 좋아질 일만 남았다는 일종의 '기대심리'가 상승을 이끄는 단계입니다. 2단계는 기대심리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실제로 좋아지고 있다는 것에 확신을 갖고 상승하는 단계입니다. 3단계는 지금처럼 좋은 상황이 계속되면서 더 좋은 일이 많아질 것이라고 미래의 이익까지 가져다가 현실처럼 반영하는 단계입니다.
이렇게 3단계에 걸쳐 상승하는 중간에도 가격은 중간중간 조정을 받습니다. 1단계에서 2단계로 넘어가는 국면에서 기대심리가 한계에 다다랐지만 그 기대가 아직 현실화되진 않았을 때 하락을 하고, 또한 2단계에서 3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성장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때 하락을 할 수 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 드신다고요? 맞습니다. 저는 이것을 엘리어트 파동에 대입하여 활용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시장은 어느 단계를 거치고 있는 중일까요? 읽으시면서 느끼셨다시피 저는 지금 시장이 1단계에서 2단계로 넘어가는 과정 중 일어나는 조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난여름, 시장이 끝없이 상승할 것처럼 보일 때는 어느 누구도 증거를 요구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순전히 유동성과 정책, 백신에 대한 기대심리만으로 상승하는 1단계 국면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기대심리만으로 상승하기에는 주식들의 가격이 너무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습니다. 주식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돈은 이미 시장에 다 들어와 있었고, 뒤늦게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높은 가격에 주식을 사도 되는 것인지 걱정을 하며 시장에 진입하길 망설였습니다. 흔히 말하는 상승 동력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지요.
이처럼 이제는 단지 기대심리만으로 상승할 수 있는 국면은 이제 끝난 것으로 보입니다. 상승 동력이 떨어지고, 흥분 상태가 가라앉자 이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진짜 코로나19가 종식되는 것이 맞는지, 진짜 경제가 회복되는 것이 맞는지, 코로나19 이후 수혜를 받는 기업은 어떤 기업인지 확인을 하고 투자하고 싶은 심리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기계적으로 매도를 해야 되는 물량이 많았다고 하더라도 밸류에이션이 낮은 상황이거나, 성장이 가시적으로 보이는 상황이었다면 매수를 하려는 힘이 충분하여 가격은 큰 조정을 받지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시장이 조정을 버티는 모습을 본 많은 투자자들이 시장의 힘을 믿고 더 많은 돈을 투자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4 - 8월에 보았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실체 없는 기대심리만으로는 높은 밸류에이션을 감당하려는 매수세가 한계에 다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기업의 실적 회복이 눈에 보이기 전에 그동안 잔뜩 취해있던 정책에 다시 한번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지만, 이미 전례 없이 자극적인 정책을 빠르게 사용한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 입장에서는 시장이 기대하는 것 이상의 정책을 펼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실물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 자극적인 정책도 고려를 해보겠지만, 이미 시행한 정책들이 동작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식시장의 단기 조정 때문에 더 큰 정책을 내기엔 너무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정책 부작용에 대한 책임론도 의식되고, 무분별한 정책 남발에 대해 혈세를 낭비하고 위기를 키운다는 정치인들과 국민들의 비난도 염려되며, 비상시를 대비한 비장의 무기 한방을 남기고 싶은 심리도 있습니다.
물론 주식시장이 사람들이 놀랄 만큼 큰 폭으로 하락하고, 부동산 등 자산 시장이 심각한 가격 조정을 겪는다면 이로 인한 역의 부의 효과(소비 위축)를 염려한 중앙은행의 조치가 있을 수도 있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일단 가시적인 시점에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몇몇 지뢰들이 보이긴 합니다만...)
(2) 상승장을 이끌었던 주도 종목과 테마가 힘을 잃었다.
또한, 이번 조정장의 중심에는 지난 3월 주식시장을 자극하던 돌격대장(테슬라, 애플 등)의 침몰이 있었습니다. 제가 썼던 과거 글에서도 알 수 있지만 지난 3월 코로나19로 인해 침체되던 증시를 상승 쪽으로 크게 자극했던 것은 다름 아닌 테슬라였습니다.
주식시장에 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큰돈을 벌고 싶다는 심리가 있습니다.(이걸 투기심리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다면 모든 생명체에는 다 투기심리가 있다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이러한 심리는 누군가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에 쉽게 자극을 받습니다. 그래서 매번 발생하는 거품과 테마의 중심에는 이를 대표하고, 사람들을 자극하는 기업이 있기 마련입니다. 현대적 증권거래소가 나타난 18세기 남해주식회사와 미시시피 주식회사 거품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식시장에는 늘 이렇게 사람들을 자극하며 상승을 이끄는 대표 기업들이 존재해왔습니다.
하지만 테슬라 또한 이번 상승장을 맞아 가격이 너무 빠르게, 너무 높이 올랐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 회사라는 타이틀은 그 기업과 사랑에 빠진 투자자 입장에서는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냉정한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가격이 오르기 위해 어마어마한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테슬라를 통해 처음 투자에 입문한 사람들에게는 주식의 가격이 하루에 5%, 10%씩 오르고 내리는 것이 평범해 보이겠지만, 이미 한 국가를 대표할만한 규모로 성장한 기업은 2~3% 상승하는 것에도 큰 자극과 힘을 필요로 하는 법입니다. 가격이 한 틱(호가)을 상승하는데만 해도 어마어마한 수준의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테슬라는 분명 현재까지 성공적인 기업이지만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이제 막 중고등학생 정도쯤 되는 기업입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임에도 단지 천재라는 이유만으로, 전도유망하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이미 일국의 대통령이 된 것과 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린 시절 천재였던 인재가 마지막 목표까지 성공적으로 도달하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테슬라 또한 지금보다 더 높은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칫 조금만 삐끗해도 지금까지 받았던 밸류에이션은 허물어지기 쉬운 상황입니다.
테슬라는 이제 겨우 연간 50만 대도 안 되는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벤츠나 BMW 같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가 연간 200~300만 대 정도 판매를 하고 있고, 도요타나 폭스바겐은 1000만 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는 기업들입니다. 테슬라에 투자할 때는 일런 머스크가 모델3를 일주일간 1500대 생산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사활을 걸던 시점부터 "제조업은 지긋지긋하다"라는 말을 했던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만큼 전 세계적인 생산체계를 구축하여 연간 수백만 대를 만들어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분기 실적 시즌이 끝나고,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고,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따라 그동안 증시를 이끌었던 종목들이 재차 증시를 이끌 수 있을지 아니면 시장을 주도하는 종목들이 바뀔지 판가름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부터는 투자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으면서, 실질적으로 성장이 일어나고, 아직 밸류에이션이 지나치게 높지 않은 기업과 섹터가 시장을 주도하는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투자의 기회는 아직 남아있다
① 9월 말을 끝으로 조정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고 어닝시즌까지 횡보한 후 각 기업들의 실적이 구체화되면서 서서히 매수 심리가 살아날 것으로 보입니다.
② 한국과 중국 등의 수출 지표, 미국 경제지표 등으로 살펴보았을 때 세계 경기는 회복 중이며, 특히 미국 주택 시장은 역대급 호황 중입니다.
미국 주요 도심에 주택 임대비용은 하락하고 있지만 도시 외곽의 주택 시장은 재고가 부족할 정도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도시 외곽에 주택을 사서 이사를 하면 무엇을 사야 될지 생각해보시면 좋은 투자 아이디어가 떠오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③ 포스트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줄만한 산업과 기업이 어떤 곳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은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번 증시 상승장에서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될 부분은 에너지 분야로 보입니다. 어찌 되었건 지금은 석탄에서 석유로 에너지 패러다임이 바뀐 이후 100년 만에 맞는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기입니다. 미국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던 테슬라와 니콜라 모두 자동차 회사였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다기보다는 에너지 패러다임을 이끄는 선두주자로써 관심을 받았다고 보아야 될 것입니다.
테슬라의 자율주행, 인공지능, 생산기술은 모두 다른 경쟁 회사들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나지 않습니다. 자율주행 분야는 오히려 다른 기업들에 비해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결국 지금의 테슬라를 만든 원동력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노트북 배터리를 이용해 전기차를 만든다는 발상의 전환이었고, 전기차도 섹시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마케팅 능력으로 전기차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테슬라가 '전기'차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됩니다.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차 시대의 아이콘이 아닙니다.(물론 일런 머스크는 더 이상 전기 차로는 다른 회사들과 차별화하기 어렵다 보니 자율주행으로 관심을 돌리는 것 같지만...(이쯤되면 주가 부양의 천재인 듯))
(2) 하지만 아직 지뢰밭도 있다
① 회색 코뿔소로 평가받는 요소이지만, 중국의 부동산 거품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시그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부동산 개발 업종 1위 기업인 헝다 그룹이 조그마한 루머에도 주가가 휘청였던 것을 보면, 그만큼 시장 센티멘털이 취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경제가 다른 국가들보다 더 빠르게 회복하고 있음에도 증시 상승이 뒤처지고 있다는 점은 아주 안 좋은 신호로 보입니다.
② 코로나19 백신 개발 실패에 대한 가능성도 염두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단 아스트라제네카의 임상 중단 소식이 아니더라도 출시가 임박한 백신 후보 4종(모더나,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중국 시노백 등) 중 처음 1~2개 정도만 실패하더라도 증시는 큰 폭의 조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③ 미국 정치 불안정성에 대한 리스크도 아직 상존합니다. 미국 정가에서는 부양책 합의는커녕 내년도 예산안 합의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만약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 사태가 발생하거나, 예산안 합의 실패로 인한 정부 셧다운이 발생하거나, 중국과 갈등 심화가 발생할 경우에도 증시가 큰 폭의 조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주부터 올리려고 준비하고 있었던 글인데 작성이 너무 늦어지다 보니, 마지막 부분은 부실하게 날림으로 쓴 것 같아서 아쉽네요.
아무쪼록 이 글이 읽으시는 분들의 투자 성공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즐겁고 행복한 명절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