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손자병법과 함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사전략서로 손꼽히는 <전쟁론>에서 저자인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은 정치의 연속'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전쟁이라는 것은 결국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게 자신들의 뜻을 강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자신의 의도를 상대에게 관철시키거나 또는 자신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때, 상대에게 내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A라는 변화를 일으킬 때, 상대방이 B라는 반응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서 주목해야 되는 점은 내 행동에 의해 상대방의 선택 또는 행동이 바뀐다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내 행동이 결정되면, 상대방의 행동도 바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내 행동도 그에 맞춰 다시 바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한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행위일까?
이는 다시 말하면 '예측' 또는 '전망'이라는 것은 모두 시한부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현재의 '예측'은 그 예측의 기반이 되는 전제조건이 유지되는 상황에서만 유효하다.
누군가의 '예측' 또는 '전망'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 배경이 되는 전제 조건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할 수 있다.
A라는 유명인이 어떤 말을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A라는 유명인이 그 전망을 내놓게 된 배경은 무엇이며, 그 전망이 유지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방식과 언어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설명을 남겼다.
세상을 보는 방식이나 언어의 개념이 달라지면 절대적일 것만 같았던 과학 법칙조차도 무너지고 새로운 과학 법칙이 수립되는 것이다.
지금은 잘못된 전망의 대명사처럼 표현되는 맬서스 트랩도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전의 세계에서는 비교적 올바른 전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수천 년의 인간 세상을 올바르게 설명했던 맬서스의 전망도 생산성이라는 전제조건이 흔들리자 바로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자신이 철석같이 믿고 의지하는 전망은 무엇인가? 의지하고 싶은 유명 인사의 전망은 무엇인가? 그것이 유지되기 위한 전제 조건을 이해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전망부터 의심을 하고 봐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