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Essay

보이지 않는 패러다임의 변화

개인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by 김시바

사람들은 BTS에 대해 논의할 때, 보통 겉으로 보이는 상업적 성공이나 숫자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서 BTS의 성공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의견을 물으면 흔히 화려한 춤과 노래, 외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이때, 일본 아이돌들은 한국 아이돌들에 비해 잘생기거나 예쁘지 않은가요? 또는 K-POP이라고는 하지만 아이돌 외에 한국 가수들은 왜 글로벌하게 성공하지 못하나요?라고 물어보면 조용한 정적에 휩싸이게 된다.


BTS가 더 멋진 퍼포먼스와 외모를 가지고 있으니 더 크게 성공을 한 것이라는 설명은 얼핏 보기에는 그럴싸한 설명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는 마치 장사가 잘되는 음식점의 외관만 보고는 '저 음식점의 장사가 잘되는 이유는 외관이 멋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설명에 불과하다. BTS가 해결하는 문제 또는 BTS만 제공해 온 서비스가 무엇인지, 그들이 만들어낸 패러다임의 변화가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


BTS의 성공에는 그들이 만들어낸 현재 K-POP 아이돌 패러다임이 숨겨져 있다. 그 패러다임의 핵심에는 엄청난 규모의 콘텐츠 공급과 실시간/장기간 소통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까 화려한 퍼포먼스와 노래는 눈길을 끄는 입간판에 불과한 것이고, 사실은 콘텐츠와 소통으로 일종의 사이버 친구가 되는 것이 K-POP 아이돌의 성공 방정식인 것이다.


K-POP 아이돌들은 전 세계 그 어떤 엔터테이너들보다도 많은 콘텐츠를 공급한다. 새로운 앨범이 나올 때면 그 준비 과정부터 시작하여, 무대에 서서 공연하는 모습과 그 무대 전후 숨겨진 비하인드 모습들이 모두 공개되며, 활동을 하지 않을 때조차도 자체적으로 준비하는 예능 콘텐츠와 v-log 등이 계속해서 공급된다. 그리고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리며, 팬들과 소통한다. 이러한 콘텐츠 공급과 소통 과정에서 아이돌들의 멋진 모습뿐만 아니라 힘들고 괴로운 인간적인 모습들마저 전달되며 팬과 아이돌이 함께 성장하는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K-POP 아이돌이 글로벌하게 성공하더라도 한국인들은 그 성공 자체를 모르거나, 성공의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고, 아이돌들 중에는 잘생기고 예쁘지 않더라도 성공한 사례도 많고, K-POP이 글로벌하게 흥행한다지만 10대~30대만 좋아하는 것도, 아이돌 이외에 K-POP 아티스트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중국이나 일본 아이돌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이런 숨겨진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았을 땐 HOT와 빅뱅, BTS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K-POP 아이돌이나 중국/일본 아이돌들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은 숨겨진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결과가 크게 달라진 이유를 이해를 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아마 AI로 인해 다시 한번 패러다임의 변화가 곧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우리는 보이지 않는 패러다임이 변하는 경우 그것을 이해하고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상에서 친구로' 아이돌의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면, 이제는 기술의 발전으로 '조직에서 개인으로' 성과 증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유명 유튜버이자 공무원인 충주맨이 면직(퇴사)을 발표하자 여기저기서 예상보다 큰 반향이 발생하고 있는 듯하다. 충주시 유튜브 채널은 며칠 만에 구독자가 20만 명 이상 감소하며 뉴스에 나올 정도의 이슈가 되고 있고,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는 충주맨에 대한 옹호와 혐오성 반응들이 뒤섞여 나오고 있다.


"결국 이럴 줄 알았다." 라거나 "돈 때문에 나간다."라는 식의 혐오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반응이었으나, 내 예상과는 달리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조직에 능력 있는 사람은 필요 없다.", "조직에 튀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라는 식의 의견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물론 제2, 제3의 충주맨이 되기 위해 너도나도 본업보다 부업에 더 매달리려고 한다거나, 도가 지나치게 튀려고 한다거나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희생하는 사람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발생하는 것도 이해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단순히 "조직에 능력 있는 사람은 필요 없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점차 기술이 발전할수록 "조직 구성원들의 개별적인 퍼포먼스를 측정할 수 있도록 바뀌고 있다."라는 보이지 않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측정할 수 있는 것에는 전문 서비스가 발달할 수 있다. 보험, 광고, 운송, IT 인프라 등이 전문 서비스 영역으로 발달하게 된 것은 해당 분야들이 과거와는 달리 측정 가능한 영역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현재 대규모 조직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라고 하더라도, 측정이 가능한 영역에서는 곧 외주화/전문화가 발생한다. 단적인 예로, 방송사 아나운서들이 같은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뉴스 같은 곳에만 나올 때는 특별한 몸값을 받지 못하다가, 예능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는 특별한 몸값을 받는 것도 그때부터 그들의 능력치나 이미지가 측정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충주맨이 특별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도 그의 성과가 측정 가능하며, 다른 전문 인력들과의 비교에서 우월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술의 발달은 점점 더 많은 영역에 있어서 측정이 가능하도록 변모하고 있다.


따라서, "조직에 능력 있는 사람은 필요 없다."라고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개개인의 퍼포먼스를 측정하는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개개인의 능력을 더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특정 영역에서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도 조화롭게 품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조직이 효율화되는 만큼 생기는 잉여 자원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하는 사람도 보상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주장해야 되는 것이다.


근대 이후 인간 세계는 조직 간 효율화 경쟁,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스템 경쟁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점차 측정 가능한 영역은 넓어지고 있으며, 이는 일반 사무직을 포함한 다양한 영역에 걸쳐 발생할 것이다. 지금 당장이야 문을 걸어 잠그고 있으면 생존하는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고민을 하지 않고 있다가는 어느 순간 목까지 차오른 바닷물에 당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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