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serian Aug 08. 2022

응답하라 개발자 - 첫 커리어 회고

개발자로서 첫 퇴사합니다

개발로 선한 변화와 가치를 만드는 일에 기여하고픈 개발자이자 체인지 메이커입니다.


이야기의 시작 :  체인지 메이커 웹 개발자로 변신




2022년. 어느덧 3년 차 개발자가 된 나.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 순간부터 시간이 훌렁훌렁 지나가 버린 것 같아 매 순간이 아쉽기도 하고 그간 회사에서 마주했던 이벤트, 장애 상황, 챌린지 등으로 크고 작은 언덕들을 넘어온 내가 뿌듯하기도 하다.

나를 비전공자 30대 늦깎이 커리어 방황자로 보지 않고, 성장하는 개발자로 대해주었던 첫 회사에서의 2년 4개월을 마무리 지으며 그간 내가 이곳에서 쌓은 경험을 짧게 되돌아보려 한다.


생각해보면 나를 포함해 4명이었던 프론트엔드 개발 유닛에서 구성원 13명의 프론트엔드 팀이 만들어지기까지 그 안에서 한몫 놓치지 않고 기여하기 위해 나름 많은 노력을 했다. 그 사이 나는 어떤 성장통을 겪었나.



횡으로 넓게 일한다는 것


내가 3개월 간의 수습 기간을 마친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기에 회사는 제품(Product) 운영 차원에서 목적 조직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유입/결제, 탐색/감상, 콘텐츠 오퍼레이션   가지 주제에 맞춘 스쿼드가 구성되었고 프론트엔드 개발자인 나는 탐색과 감상을 맡아 유저의 리텐션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스쿼드에 소속되었고   편으로는 직군 차원의 웹개발팀에 소속되어 일하기 시작했다.


 스쿼드는 결제면 결제, 온보딩이면 온보딩  주제에 맞는 유저 스토리와 데이터를 기반해 유저 경험을 깊이 파고 들어가 발전시키는 과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나도 비슷한 맥락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실시간으로 영상을 보고 채팅할  있는 왓치 파티(Watch Party)라는 신규 피처(feature) 개발하는 과제를 받았고, 실험적인 피처였기에 베타(Beta) 배지를 붙인  개발과 운영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개발한 피처가 유저들의 관심과 주목을 이끌었고, 본격적으로 해당 피처를 소개하고, 탐색하게 하고 사용자들이 적극 사용하도록 하게 하는 일들을 이어가야 했다.

홈에서 현재 진행 중인 파티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고, 검색 페이지에서 파티 검색이 가능하게 만들고, 플레이어에서 함께 보기가 가능하도록 만들고, 관련 푸시를 받을 수 있도록 설정 페이지를 수정하는 등 작업을 하면서 파티를 경험하는 유저의 모든 여정을 따라다니며 서비스 전반에 횡을 그리며 일할 수 있었다. 처음 유저의 감상 경험을 깊이 파면서 시작했던 일은 점점 파티라는 솔루션을 가지고 제품 전반에 걸쳐 횡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횡으로 넓게 일한다는 것은 내가 신경 써야 하는 코드의 영역이 꽤 많다는 뜻이기도 했고, 그만큼 유저를 의식하고 단계별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해결해 매끄러운 피처를 만들어 낼 기회이기도 했다.

개발자가 되기 전 직장에서는 사일로 현상(부서 내 맡은 바 역할이 너무 분리되어 있어 조직 전체 효율성이 떨어지는 현상)이 짙어서 협업하기가 힘들었는데, 오히려 이 무렵 나는 7명 남짓하는 스쿼드원들과 한 마음이 되어 최대한 공유하고 논의하며 작업을 했던 것 같다. 잠시 스쿼드 내 피처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모듈을 리드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일하면서 즐거웠고, 함께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있어서 힘이 났다.

덕분에 개발자로서 제품 전반으로 넓게 일하는 경험치를 얻을  있었고, 나는 권한과 책임이 집중적으로 주어질  일을  잘하는 개발자라는  스스로 달았다.



한 피처(feature)를 작게 시작해 크게 크게 키우기


앞서 말한 것처럼 내가 맡았던 피처는 mvp(minimum viable product)로 시작해 유명세를 타면서 제품 내에서 기능을 추가하며 대규모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규모를 키워갔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도전과 문제 뽀개기 과정이 있었는데 이 경험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엔 정말 실험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이런  원할까? 얼마나 유의미한 데이터 트래픽을 만들  있을까? 그래서 심지어 제품  개발을  필요가 있나 수준의 대화가 오갔고, 결국 크롬 익스텐션을 개발하는 방향을 정했었다. 크롬 익스텐션이라니.. 내가 그런  만들  있는 사람인지도 몰랐던 시절이었기에 절실하게 크롬 api 문서에 매달렸고 매일 구글링으로     개발을 했다. 그렇게 시작했던 피처가 제품  자리 잡게 되고, 같이 보고 떠드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같이 보고 대화하는(파티를 운영하는 호스트의 목소리를 들을  있게 만들었었다) 수준으로 발전해 나갔다.


매일 dau(daily active user), pcu(pick concurrent user) 수치를 확인하며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피처를 운영하기 위해 리팩터링을 진행하고, 프론트엔드 직군 팀에 그 구조를 들고 가 발표하고 리뷰를 받았다. 그 무렵 점점 복잡해져 가는 비즈니스 로직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내가 짠 코드를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으면 하는 생각이 매우 강했다. 내가 작성하는 코드이지만 누구든 나중에 수정할 수 있으니 사이드 이펙트가 없도록 주요 로직에 테스트도 붙였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당시엔 제품을 키운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수많은 개발자들과 협업하는 방식을 자연스럽게 배우는 시기였던 것 같다.


커리어 체인지를 준비하던 시절 개발자가 된다면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제품을 관리했던 그간의 경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만들어 내는 결과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 기대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유저 트래픽이 너무 몰려서 접속 장애가 발생했을 때도, 몇 천명 넘는 유저들이 동시간대에 파티를 하며 트위터에 타래가 끊이지 않던 그 순간도 즉각적인 반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좌충우돌하던 첫 해 피어 피드백에서는 유저 피드백에 너무 연연한다는 피드백도 받았었는데 이제는 누적된 정량적 데이터를 보면서 정성적인 유저들의 리뷰를 일부 거르는 여유(?)도 생긴 것 같다.

짧다면 짧았고 길다면 길었던 제품 키우기 과정에서 나는 어느덧 한 편으로는 유저와 맞닿은, 다른 한 편으로는 함께 개발하는 동료들과 소통하며 성장하는 개발자가 되어 있었다.




위에서 다룬 이야기 말고도 참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마음 맞는 동료들과 사내 깜짝 이벤트를 자발적으로 기획해 업무시간 끝나고 골든벨 퀴즈 페이지를 만들었던 일, BTS가 나오는 어워드를 서비스로 제공하기 위해 새벽부터 출근해 라이브 스트리밍 이벤트를 대응하던 일, 매주 월요일 시간을 내 웹 기술을 도입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서비스를 전환할 수 있을지 테스트해보던 일...


누군가 나의 첫 개발자 커리어 기간에 매 순간 열정적이었는지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치열해야 할 때 치열했고, 성장해야 할 때 뒤로 주춤하지 않았고 할 수 있는 해결 방법을 열심히 찾았다고 얘기할 순 있을 것 같다.


배울 것도 많고, 부족한 것도 아직 많지만 부딪히고 단단해지며 성장하는 3년 차 개발자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숨 한 번 크게 쉬고 다시 한번 도전.





Special Thanks to

함께 일하며 많이 응원하고 지지해준

Amy, Arthur, Bran, Dominic, Ella, Fred, Hazel, Josh, Piper, Robin and Zeze



Playpause: Photo by Claudio Schwarz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응답하라 개발자 - 살아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