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턍 Apr 25. 2024

괜찮아, 잘될 거야

바닷바람을 타고 커피향이 말을 건넨다

‘아, 이쯤에서 모든 걸 멈추고 싶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때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내 삶에 가장 큰 파도를 만나 바다 깊숙한 곳까지 빨려 들어갔었다. 영영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스물다섯 어린 나이 결혼을 했다. 진정한 어른은 내 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겁 없이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거의 전액 대출이었다. 어른이 된 듯 행복하고 뿌듯했다. 입주하고 몇 달이 지나지 않아 IMF가 터졌다. 대출이자는 연 30%대까지 올라 월급을 모두 가져갔다. 숨만 쉬고 있어도 빚이 점점 더 늘어갔다. 지인 밭의 자투리를 얻어 채소를 키우고, 과일가게에서 버리는 과일을 얻어 손질해 먹었다. 아이들 옷은 물려 입혔고, 새벽이나 퇴근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닥치는 대로 했다. 그렇게 버티고 버텼다. 

     

형부의 실직으로 어려운 언니가 도움을 청했다. 돕겠다고 빌려준 신용카드가 폭탄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집안은 늘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고, 아이들의 얼굴이 하루하루 어두워졌다. 사무실 전화벨이 울리면 깜짝깜짝 놀랐으며 목소리는 작아지고 업무 실수가 잦았다. 부서장님의 도움으로 ‘개인회생 신용회복’을 신청했다. 어디든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강릉으로 전속을 왔다. 집은 답답하고 사무실은 불편했다. 친구 한 명 없는 강릉에서 위안이 되는 유일한 곳은 바다였다. 자다가 문득 깨면 늦은 밤이든 새벽이든 안목해변에 갔다. 카페 앞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보았다. 파도 소리가 큰 날은 목놓아 울었고, 잔잔한 날에는 울음소리를 속으로 삼키며 울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 이쯤에서 모든 걸 멈추고 싶다!. 그러면 이 힘든 게 다 끝이 날 텐데……’    

  

카페에서 향긋한 커피 향이 났다. 건물은 초라하지만 직접 로스팅하는 장인이 운영하는 커피숍이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본다. 그 커피를 마실 수 없다. 자판기 앞에 섰다. 동전 세 개를 손에 들고 만지작거린다. 볼품없는 모습에 초점을 잃은 눈을 한 삼십 대 여성이 자판기에 비친다. 혼자 앉아 있는 사람들을 피해 멀찍이 떨어져 커피를 마신다.      


초겨울 바닷바람에 실려 온 커피 향이 나를 감쌌다. 따뜻함이 손과 목을 통해 온몸으로 전해진다. 잔뜩 움츠려 있던 어깨가 펴지고 허리가 세워진다. 바다가 보이고 카페 안의 다정한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은은한 불빛과 향긋한 커피 향이 새어 나오는 카페로 갔다. 다음엔 꼭 여기서 커피를 마시리라. 문 유리에 비친 또렷한 눈의 삼십 대 여성과 함께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날짜가 지난 「제1회 2009 강릉커피축제」 포스터였다. 커피축제가 궁금해졌다. 얼마간 퇴근 후 커피를 배웠다. 로스팅부터 커피와 관련된 모든 것을 공부했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2회 커피축제를 구경 갔다. 3회 커피축제부터 봉사를 했다. 그 후 핸드드립어워드 심사위원이 되었다. 홈로스팅대회 심사위원장을 했다.  

   

IMF 당시 기업이 파산이나 부도, 대량 실직이 일어나 양극화, 고용불안, 청년실업 등의 문제가 현실로 나타났고 자살률이 급증했다. 사람들은 생을 마감하려 안목해변처럼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았다. 그들은 언젠가의 나처럼 마지막 순간 자판기 커피 한잔을 마시며 위안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고 다시 안목해변으로 와 그때를 회상하며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안목해변은 커피거리로 유명해졌다.   

   

영국 매체 대일리 메일의 보도에 따르면 스트레스 원인의 58%는 돈, 37%는 일, 34%는 가족, 25%는 건강이라고 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49%는 커피나 차를 만들고, 31%는 식물에 물을 주고, 28%는 빨래를 너는 등 일상생활에서 긴장을 푼다고 한다. 우리 삶에 있어 스트레스를 해소할 무언가가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가?      


나는 아침마다 커피를 내린다. 그라인더에 넣을 때 ‘또르르’ 구르는 소리, 갈릴 때 퍼지는 향기, 물을 머금은 가루가 봉긋이 올라오는 커피 빵, 드리퍼에서 서버로 떨어지는 물줄기에서 만들어지는 동글동글한 추출물의 알갱이들이 몸속 세포에 행복한 인사를 한다. 주말 아침 안목해변의 카페에 앉으면 바닷바람과 함께 오는 커피 향은 나를 보듬고 평온한 미소로 말을 건넨다. “잘될 거야!”


작가의 이전글 "다 소중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