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헌날 영화 보러다니는 날 보며, "영화 좀 그만 보고, 니거나 해~ 넌 남들이 만들어놓은 작품을 왜 이렇게까지 덕질해?" 라고 잔소리하던 동료가 있었다. 나 못지않게 영화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이라 의외라고 느껴진 공격적인 발언이었으나, 생각해보니 그만큼 서로의 시각이 달랐다. 최근들어 바깥의 원리에 대해 관찰과 해부를 해보고픈 욕망이 앞서는 나와는 달리, 요즘 한창 본인만의 고유한 예술작품을 만드는창작활동, 즉 성취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있을 법한지인이었기에...
'그래... 눈앞에 할일이 꽃동산인데...'라며 바쁨의 파도가 잦아들 때까지 영화보는 걸 좀 줄이고 리뷰/덕질은 참으려 했으나 <오펜하이머> 이후로 간만에 인생영화를 만난 기분이다. 호기심이 많던 내게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만들어낸 세계관이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구경하는 건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궁합이 잘맞는 작품을 만나게 되면 나 자신을 좀더 잘 이해하게 될 뿐 아니라,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바깥 세상이나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영감을 얻곤 한다.
"지상에서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부단히 변화하는 것들 사이로
영원한 열정을 몰아가는 자는 행복하여라."
-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
[등장인물 이름의 어원과 속성 ]
영화 속에 나오는 주요 등장이름들의 어원을 찾아보며, 묘하게 내가 살면서 관찰해온 나의 부모님과 늦둥이 동생, 수많은 지인들(+옛 애인들 포함?ㅋ) 모습이 캐릭터에 조금씩(+꽤 심하게 과장시켜서) 들어있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나이 들어가며 초라해진, 한때는 공대 아름이였던 경험담에 의한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으로 어원을 풀어보았다.
(스포주의)
1. 인간이란? 완벽한 아름다움과 미래
Bella
주인공의 이름인 벨라는 이탈리어로 '아름답다'(beautiful)는 뜻의 여성적 이름이며, 라틴어로는 '전쟁'(war)을 의미한다. 아름다움 가운데에서도 '잘차려입은 아름다운 여인', 혹은 '군림하는 아름다움'이란 묘한 늬앙스가 있다. 헝가리어로 l이 하나 빠진 Bela는 '심장'을 뜻하는 남성적 이름이며, 슬라브어로는 '희다'라는 뜻을 가진다고...
만약 벨라를 이사벨라의 애칭이라 여기고 따라올라가면 그 유명한 여왕 이사벨 1세의 이름이 나온다. 스페인의 전신인 이 카스티야의 여왕은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황금을 찾아 인도로의 대항해를 꿈꾸던 콜럼버스를 적극 후원하던 이었다. 참고로 이사벨 여왕의 어머니는 똑같은 이사벨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우울증으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여왕이 된 첫째딸을 알아보지 못했다.
한편 벨라와 이사벨라는 히브리어로 '나의 신은 언약/맹세'(my God is an oath)란 뜻을 가진, 버진 퀸엘리자베스 1세의 이름과도 그 어원이 같다. 세계정세의 긴장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자신의 혼맥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자 결혼을 하지 않고 처녀로 남아 꽤 오랜기간 대영제국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어낸 여왕이었다.
벨라는 자존감이 높은 것인지 아니면 마치 A.I.처럼 오히려 자아/정체감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것인지 딱히 주변 상황의 눈치를 보지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동(動)하게 하는 것들을 쫓는다. 결핍을 채우고 성장해나가면서 열정적으로 탐닉하되,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다. 엄마와 전혀 다른 곳에 놓여진 그녀는 런던에서부터 배를 타고 리스본, 알렉산드리아, 파리 등으로 여정을 떠나며 계속 다음 단계의 자기자아를 찾아나아가게 된다. 어쩌면 그녀는 여성적인 몸에 아빠인 신(God)이 뛰게해준 남성적인 영혼을 가지고, 혹은 엄마의 심장과 그녀의 분신인 딸의 생각을 가지고 자기 밖의 환경과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지...
자신이 직접 몰고나간 환경에 처해진대로 적응해나가면서 세상의 모든 가여운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벨라는 실제 인간의알고리즘은 따라가보기 힘든 인간의 발달과정에 대한 A.I.의 실험 같아 보인다. 초반의 그 자위행위처럼 자신의 욕구(Needs)에 충실하도록 자유의지를 극대화시켜둔 인간에게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뭘까?를 묻고 끊임없이 부딪혀 경험해보도록 미래를 시뮬레이션한 것 처럼...
마치 <듄>에서 베네 게세리트 여인들이 끊임없는 교배실험을 통해 궁극의 남성 예언자인 '퀴사츠 해더락'을 만들려했던 것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 벨라와 빅토리아의 관계가 <듄: 파트2>의 폴 아트레이더스와 페이드로타 하코넨과 비슷하단 인상을 받았다.
(+벨라의 의미와 비슷한 순우리말'아름답다'는 15세기 <석보상절>의 '나(我)답다'는 뜻에서 유래했단 설이 있다. 그 밖에 안음(抱)에서 나왔다는 설과 알음(知)에서 나왔다는 설, 남녀가 아우러지는(交)성적 행위에서 나왔다는 설 등이 있다. 한편 <훈민정음 서문>에도 나오는 '어여쁘다'는 불쌍하고 가엽게 여긴다는 연민(憐)의 뜻이 담겨있다. 왠지 아름다운 벨라가 자아를 찾아떠나 사람들을 포용하며 세상을 알아가고 미친듯이 섹스하는 이 <가여운 것들>이란 작품과 묘하게 잘어울리는 우리말인듯한...)
Victoria
여주인공의 몸체이자 뇌의 어머니인 빅토리아는 영국의 가장 위대한 여성 군주를 바로 떠올리게 하는 이름으로 '승리'(Victory)를 의미한다. 어쩌면 한낱 작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시스템에 잘 맞춰서 빛나는 성취를 이루어내는 걸 우리는 승리라고 표현하지는 않을까?
그 시대에는 귀족 여성이 결혼하여 자식을 생산하는 것이 승리였겠으나, 영화 속에서 임신을 한 뒤 몸을 던진 빅토리아에겐 오히려 제도에의 구속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아이란 다른 이와의 결합/사랑을 통해 성취하게 된 새로운 생명(양쪽 유전자의 후손)이기도 하고, 나의 분신으로서 돌보아야할 나의 다음 단계인 미래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선 엄마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하녀에게 물어도 답을 주지 않는다. 그녀가 일의 성취와 같은 다른 분신을 통한 미래를 꿈꿨었는지, 아니면 아예 특별히 무언가성취해야 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그저 안락함을 누리려 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어쩌면 갑갑한 집 안의 틀에 갇혀 어디로 배를 몰고 가고픈지에 대한 삶의 욕구를 잃은채 모든 열정이나 의지가 무기력하게 사라져버린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참고로 엘리자베스 여왕은 결혼을 하지 않았으나, 빅토리아 여왕은 9명의 자녀를 통해 42명의 손주를 보았다. 예전에 난 사회적인 일과 생물학적인 자녀 양쪽 모두를 극대화해서 실현가능하다는 게 굉장히 신화적이고도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절대로 평범한 인간의 힘과 에너지만으로는 이뤄낼 수 없는 무서운 수준의 성취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는 산업혁명 후 끝없이 식민지를 넓히는 제국주의가 가속화되었는데, 거기에는 수많은 국가적 자원들이 뒷받침되고 빅토리아 여왕 또한 엄청난 성취욕과 의지력을 총동원해 미래 영국의 번성을 위한 업적과 후손들을 만들어냈을 듯한...
2. 신의 바람, 따뜻한 포용력
시스템으로부터 스스로를 무너뜨린 한 개인을 거두어, 그 사람을 재조립해 하나하나 섬세하게 관찰하며 양육에 필요한 교사를 붙이고 미래를 계획하던 갓윈은 오히려 빅토리아보다도 모성애/부성애가 강하다는 느낌이다. 벨라는 인간에 대한 탐구심을 가르쳐준 아빠와 맥스로 인해 자기 몸의 생리적 욕구에서부터 시작해 점차 빠르게 탐험을 해나간다. 확실한 위험상황을 제외하곤 아빠의 뜻대로 강하게 통제하기 보다는 자신의 계획과 어긋나더라도 불확실한 미래의 모든 가능성에서 자유의지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게 된다.
Godwin
별명조차 '하느님'(God)인 외과의사 아빠의 이름은 '신(God)의 친구(friend)'란 뜻으로, win(이기다)만 따로 떼어보면 victory(승리)와 다르게 하나하나의 판에서 쟁취해 얻어낸다는 늬앙스가 있다. 더 나아가 왠지 '신(God)의 바람/바램(wind)'을 뜻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Baxter
아빠와 벨라의 성인 박스터는 '제빵사'(baker)에서 유래하는데, 마치 흙으로 사람을 빚는다는 걸 은유한 듯 하며, 신기하게도 여성 제빵사란 접미사에서 유래한다. 갓윈이 외형은 강렬해도 오히려 속은 엄마인 빅토리아보다 훨씬 여리고 섬세하지 않았을까란 인상을 받았다. 인간의 해부학적인 실험에 탐닉하면서 세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진 그는 겉보기엔 괴팍해보이고 말은 잘 안하지만, 벨라에게는 애정을 듬뿍 가진 이었다. 어찌보면 벨라와 생물학적으로 엮이진 않았으나, 그녀의 심장과 머리를 재조립?하고 자유롭게 놓아준 뒤, 멀리서 사랑하는 자신의 창조물인 그녀의 소식을 들으며 행복하길 바라고 또 가슴아파하던 찐 아빠이자 창조주(God)이지 않았나 싶다.
Max
보조교사처럼 옆에서 묵묵히 기다려준 외과의 갓윈의 제자이자 벨라의 약혼자 이름인 맥스는 맥시멈이 바로 연상되듯이 '최대한'(greatest)을 어원으로 하는 라틴어 막시무스에서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극 중에서는 자신이 아닌 벨라의 능력 최대치의 한계를 관찰하며 묵묵히 기다려주는 사람이다. 갓윈은 제자인 그에게 평범하지만 특별하고 싶어한 남자라고 평했는데, 그를 약혼자로 받아들인 것을 보면 특별하지만 한편으론 평범해져야 하는 벨라에게 그의 속성이 꼭 필요한 것임을 알았을지도...
McCandles
맥캔들이란 성에서 Mc는 '누구의 아들'(-son)이란 관계지향적인 뜻으로, 동양 남성의 항렬자와 비슷한 개념이다.왠지작지만 환하게 온 방안을 채우며 비춰주는 촛불(candle)이란 이쁜 뜻을 담아 창작해낸 성 같기도 하다. 원작을 읽어보진 못했으나 본래 아치볼드 맥캔들리스(-less)였다니 영화화하면서 이름이 가장 달라진 케이스일듯 하다. 그는 벨라가 자라면서 남성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고 여행을 떠나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불씨를 던져주었으나, 보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하던 그녀를 결국 붙잡아두진 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여행에서 돌아와 안정이 필요해졌을 때에도 고향에 여전히 남아 그녀를 받아주었다.(이게 말이 돼?! 보살이야?)최대한의 포용력을 갖고 있던 맥스 맥캔들은 어쩌면 그녀에게 이미 특별해진 사람같기도 하다. 안정된 집에서 그녀를 환하게 밝혀주는 단촐하지만 따뜻한 촛불처럼 말이다.
3. 사랑과 자유, 여성성과 남성성
상대에게 맞춰주는 것만 신경쓰며 자신의 매력을 남에게 잘 어필할 줄 모르던 보수적인 맥캔들은 한창 불타오르는 시기인 벨라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고, 그렇게 벨라는 속이 시커먼 늑대같은 남자를 따라 집을 떠나게 된다. 그 곳에서 여우처럼 겉으로 포장하는 사회생활의 매너가 무엇인지를 배우라 요구받는데...
Duncan
남주인공?인 던컨은 '갈색의'(brown), '어두운'(dark)이란 뜻과 함께, '머리'(head) 혹은 '장'(chief)이란 뜻을 가진 스코틀랜드 게일어로 벨라와는 완전히 대비되는 이름이다. 국지적인 '전투'(battle)나 교착상태를 뜻하며 '갈색 피부의 전사'라는 뜻이 있기도... 어쩌면 하얀 순백의 상태인 벨라의 인생에 조금씩 색을 섞어 그림을 칠하게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오색찬란한 리스본의 풍경을 탐험하다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싸우는 남녀의 전투장면을 보곤 소화불량을 일으켜 구토를 한다.
Wedderburn
남주인공의 성은 카사노바인 그에게 걸맞게 '거세된 숫양'(wether, 푸흡! :D)과 '개울'(stream)의 합성어라고 한다. 자신의 남성적인 매력에 자신감을 갖고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채 마음껏 즐기며 흘러다니지만, 아름다운 여성 벨라를 만나 소유욕이 발동하게 되면서 오히려 본인이 그렇게 극혐하던 집착에 빠지게 되며 한없이 나약하고 초라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자기자신은 자유롭다 생각했었지만 그 누구보다 돈과 섹스라는 욕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가여운 인물일 수도...
Kitty
벨라가 던컨과 함께 여행을 떠나 사회적인 매너를 익히며 만났던 커플 속 까칠한 여성은 '고양이'(Kitty)란 뜻이다. 마치 사회적으로 기대하는 여성성을 얌전하고 우아하게 내숭을 떨다가도, 긁히면 바로 앙칼지게 낚아채 짖궂은 장난을 즐기는 고양이스러움에 빗댄 느낌이다. 그러나 벨라는 그녀의 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Gerald
키티와 같이 있던 남자는 장군(General)을 연상케 하는 제랄드로 '창의 힘'(power of the spear)을 뜻한다. 창이라... 뭔가 그 형상?이 떠오르는데, 겉으로는 대단히 카리스마있고 단단해보이려 과시하지만, 속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문득 남성♂의 기호는 전쟁의 신인 아레스가 창과 방패를 가진 모양이고, 여성♀의 기호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반사하는 손거울을 들고 있는 모양이란 게 떠오른다. 벨라는 남녀로 대변된 이러한 이미지의 성역할에는 큰 흥미를 보이지 않지만, 자기에게 윙크를 던지는 남자의 추파(창의 공격?ㅋ)를 그대로 모방(반사~!)하여 되돌려주면서 안과 밖, 겉과 속에 대한 다음단계로의 여정을 떠나게 된다.
4. 몸과 정신, 인류의 문명 시스템
몇번이고 던컨과의 완벽한 합치에만 탐닉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던 벨라는 자신의 몸을 관찰하다 양 허벅지의 부드러움을 비교하면서 증거/문신을 새긴 뒤, 한 귀족할머니를 만나 자위라도 하시라며 충고를 하게 되는데...
Martha von Kurtzloc
배 안에서 만나 벨라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나이든 귀족부인 마르타 폰 쿠르츠록은 실증주의학파 철학자들의 나라인 독일계 이름으로 이 나이든 여성인 할머니는 젊은 벨라로 하여금 육체적 탐닉에서 벗어나 책을 읽으며 정신적 성장에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준다. 그녀는 자신과는 의견이 다른, 세상을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까칠한 젊은 흑인 사회학자를 항상 가까이에 둔다. 던컨이 벨라가 보려는 책을 계속 던져버리다가 결국 이눔의 할머니도 던져버리겠다며 난동을 피우는 걸 마치 하찮고 귀엽다는 듯이 가볍게 무시하며, 결국 파도를 가르며 항해하는 배(ship)의 가드들 즉 시스템 관리자(manager)들의 개입으로 모든 상황이 처리될 것을 아는, 즉 세상에 대한 지혜와 여유를 가진 인물이다.
Martha
'주인'(master)의 여성형인 '여주인', '숙녀'(lady)를 의미하며 우아한 느낌의 '부인'란 뜻이다.
Kurtzloc
폰(von)은 소속을 나타내는 귀족 호칭이며, 쿠르츠는 '용감한 상담, 조언'(brave counsel)이란 뜻이라고... 와우~!
특히 록(loc)은 '놓다'와 같이 '장소'(location)를 의미하는 어근인데 대단히 현자처럼 느껴지는 이 성은 왠지 귀족출신인 전? 남편 이름과 대비되어 보인다. 공격적인 협박으로 다른 이의 행동을 제어(control)하기 보단, 문제행동에 대한 타인의 공감과 동정심(sympathy)을 일으키는 사람이다.
Harry
할머니와 같이 다니던 매너있고 지적이면서도 대단히 시니컬한 흑인 해리는 왠지 흑인과 결혼한 뒤 영국왕실에서 벗어난 둘째왕자를 연상시킨다. 참고로 해리는 헨리의 파생형으로 '가정이란 울타리의 집행자'(home ruler)를 뜻한다. 묘하게 유교의 경전 <대학>에 나오는 '수-신 / 제-가 / 치-국 / 평-천-하' 처럼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가정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평하게 한다는 순으로 흘러가는 기분이 든다.
Astley
아스틀리는 '동쪽 초원'(east meadow)이나 '동쪽의 개간지'(east clearing)를 뜻하며, '신'(god)이나 부글부글 끓는 '가마솥'(caldron)과 관련이 있다. 그가 벨라에게 처참한인간들이 들끓는 지옥도를 보여준 장소가, 지중해 동남쪽에 있는 이집트알렉산드리아란 게 꽤 의미심장하다.
세계 4대문명의 하나인 이집트 문명과 그리스에서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도시에 자기 이름을 박아넣은 쪼끄만 나라 마케도니아 출신의 정복왕 알렉산더 대왕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해리는 문명의 힘과 권력이 작동하며 만들어낸 현실 바닥의 처참함을 벨라에게 보여준다. 끊어진 길을 보여준 것처럼 어찌할 수 없는 이들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계단을 올라올 희망이 안보인다 느꼈기에, 그는 헛되고 안일한 동정심을 감추려 염세적이 된 걸지도 모르겠다. 벨라의 그 천진난만함이 짜증이 났다던 이 회의론자는 깊이 들여다보면 자신도 떨어져 같아지게 될까 두려워 회피할 수 밖에 없는 지식인의 비겁함 때문에 자기 스스로에게 짜증이 난 것일 지도...
순진하게도 선원들에게 저 사람들 좀 도와주라며 돈을 다 건네준 그녀는 다른 인간들이 가진 욕망의 체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렇게 몸뚱아리 하나만 남은 채 파리에서 그 나락으로 직접 뛰어들어가게 된다.
5. 이상과 현실, 계급사회와 공동체
파리에 도착한 벨라가 갖고있는 자산은 몸 밖에 없었고, 위아래로 요동치는 욕망과 좌절이 혼란하게 뒤덮인 그 곳에서 자신의 몸/자산을 사람들에게 나눈다. 그저 생리적인 욕구만을 취하는 사람들에게 몸 뿐 아니라 더 나은 정신적인 만족감을 나눠주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그녀.
Swiney
파리 매음굴의 마담인 스위니는 '돼지'(pig)를 뜻하는데, 최근에 개봉한 <파묘>와 감독의 전작 <검은사제들>에서 돼지가 대속물로 쓰였던 게 연상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창녀와 수녀가 한끗차이라 여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 또한 둘 다 될 수 있을 것이라 여기기에...) 가장 낮은데서 처절하게 온갖 냄새나는 타인의 욕구와 죄악과 배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을 위로하는 그녀들...
돼지가 이미지는 지저분하지만 의외로 꽤 청결하다던데, 밑바닥 지저분한 현실의 시궁창 속에서 온 몸에 팍팍한 삶의 증거/문신이 가득한 스위니는 본인 또한 이상주의자라 이야기한다. 참고로 돼지는 인간과 생리학적으로 매우 유사하기에, 얼마전 장기이식용 돼지가 탄생했단 뉴스를 보기도 했다.
Toinette
파리 매음굴의 창녀이자 절친이 된 투와네트는 앙투와네트 왕비의 이름과 같은 어원을 가지며 '꽃'(flower)을 의미한다. 프랑스 대혁명 때 시민계급의 빡침으로 인해 단두대에서 목이 댕강한 왕비의 이름을 창녀에게 준 게 참 아이러니하다. 하얀이란 뜻을 가진 백인여성 벨라와 흑인여성 투와네트.(마리 앙투와네트 왕비는 백옥같은 피부로 유명했다.) 이 둘은 사회주의를 익히는 정신적인 교류와 몸의 섹스를 모두 함께 공유한다. 참고로 앙투와네트는 로마시대 공화국의 안토니우스 장군과 지팡이와 돼지를 든 성인이라 불렸던 성 안토니 대제의 이름 Anthony의 여성형이다. 그리고 이 둘의 이름을 한데 엮으면 '아름다운 꽃'이 된다.
문득 <오펜하이머>에서 사회주의자였던 진이 "No more Flower"를 외치며 꽃다발을 계속 쓰레기통에 쳐박던 게 떠오른다. 비범하고도 아름답게 생명력을 피워내지만, 한편으론 씨를 남기면 평범하게 시들어가는 게 바로 꽃이란 존재가 아닐까... 마치 민초(民草)나 풀뿌리(grass roots)처럼 말이다.
6. 인간이란? 선과 악의 윤리, 그 경계의 해방
엄마 빅토리아가 강물 위로 스스로의 몸을 던진 자살 행위는 기독교(카톨릭/청교도) 문화에서 죄악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 종 간의 경계를 허물고 각종 비윤리적인 실험을 하던 외과의사 갓윈은 그녀를 다시 되살려냈다. 엄마의 몸에 딸의 뇌를 심었던 이 이야기는 마치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난 예수처럼 자가복제의 실험을 통한 성경 속 승리(Victory)의 신화를 비꼬는 듯 하다.
벨라의 아빠/전?남편은 자기자신을 위해 타인의 행동을 통제(contol)하려 했지만, 예상치 못한 우연한 사고로 남을 위협하던 총으로 자기 발등을 스스로 쏴버린다. 그녀의 딸이기도 한 그녀는 생물학적 아빠를 죽음에 이르게 한뒤 동물의 정신으로 부활시킨다. 마치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한 신이 타인들의 죄를 대신 씻어주기 위한 희생물, 즉 어린 양으로서 자기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뒤 신으로 부활시켰다는 신약 성경의 이야기를 뒤집는 모양새다. 벨라는 타인을 향한 공격성을 씻어주기 위해 아빠의 머리에 세상의 죄악을 상징하는 염소의 뇌를 희생제물로 바친 것일지도...
Alfie
전남편 이름인 알피는 알프레드(Alfred)에서 파생된 것으로 장난스러운 꼬마요정 '엘프의 상담'(elf counsel)을 뜻한다. 귀족 할머니와 비슷하게 '현자, 현명함'(sage, wise)이란 뜻이 있긴 하지만, 하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컨트롤하기 위해선 총으로 위협해야한다고 조언하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인물이다. 앞서 귀족부인에게 자위를 해보라고 조언하던 벨라에게 오히려 나이가 들면 몸 보단 정신적인 걸 채우는 데 더 관심이 생긴다 이야기했던 부인의 조언과 달리, 그녀를 제 정신으로 돌려놓겠다며 성기의 성감대를 제거하려는 그의 조언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고, 또 제 정신이 박힌 조언인 것일까?
결국 그는 염소의 뇌를 이식받는 신세가 되는데, 목초지의 풀을 뿌리까지 뽑아먹는 염소는 신학적으론 예수를 따르지 않는 이에 비유되면서 좌편/우편을 나누는 악의 상징이 되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선한 것을 상징하는 양이 염소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한 것일 뿐, 목초지의 환경을 황폐화시키는 집착과 번식력과 똥고집은 양과 염소 둘다 도찐개찐이라고...ㅋ
(그나저나 똘끼 가득한 매튜 본의 영화 <아가일>에서도 고양이와 사무엘 잭슨의 공통된 이름으로 알피가 언급되던데, 뭔가 심리학적인 의미가 더 있으려나...)
Blessington
성인 블레싱턴은 '축복, 은총'(Blessing)이란 단어 뒤에, 주로 워싱턴이나 보스턴처럼 지명에 써서 '울타리로 가둔다'를 의미하는 접미사 톤(-ton)을 붙였다. 폐쇄적으로 그 안에서 축복을 독식하겠다는 종교나 귀족들의 대단히 자기중심적인 문화를 꼬집기 위해 감독이 아일랜드의 이 지명을 갖고온 것 같다. 어쩌면 남편의 말로는 선과 악, 즉 옳은 것과 그른 것을 함부로 판단하려는 인간의 윤리의식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알(무정란)을 제공하는 닭의 몸체에 돼지의 머리를 붙였다는 것은 새로운 아침이 왔음을 알리는 닭의 목청과 배설을 하는 돼지의 똥구멍은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멋대로 제거했단 뜻이기도 하다. 이게 완벽한 거야라며 함부로 울타리/경계를 두르고 '판단'하는 것은 어쩌면 비인간적이고도 비윤리적일 수 있음을 꼬집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종교든 윤리적으로 남겨져야 할 말은 그저 "서로 사랑하라/자비를 베풀어라" 이것 뿐일지도...
7. 정원에서 피어난 소소한 행복
Prim
유모의 이름인 프림은 '손질하다'란 뜻으로서, 첫번째로 피어난 장미인 프림로즈나 프리뮬라와 같이 정원에서 가꾸어 피어낸 '꽃'과 관련이 깊다. 꽃(인생의 사춘기?)을 피워내는 정원사인 유모는 가시돋힌 첫번째 장미인 벨라에게는 정을 붙이지 못했으나, 아빠의 기대가 적은 그 다음 꽃인 펠릭시티에게는 역으로 물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시키며 편하게 막 대한다. 어쩌면 벨라보다 덜 괴팍?한 이 아이는 자신의 힘으로 관리(manage)가 가능하다 여겼기 때문일지도...
Felicity
벨라의 동생이라고도 할 수 있는 펠릭시티는 발달이 느리거나 다소 평범해보이고, 첫째를 떠나보낸 허탈감에 상처입은 아빠가 큰 기대와 정을 주지 않지만, 오히려 유모는 이 둘째에게 더욱 애착을 보인다. 아직까지는 이 순진무구한 존재에게 온전한 자유의지가 형성된 것 같지는 않지만 조금 더 순응하는 성향일지 모르는 이 아이도 언젠가 변화하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앞서 나아갔던 첫째 벨라와의 비교를 피할 수 없겠으나, 오히려 기대와 애정, 교육이란 부모/사회의 실험에 적절한 조정이 들어간다면, 인생의 파도가 크지않은 소소하고 평범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함께 누리며 힐링하는 안정된 삶을 이어가게 될지도...
참고로 펠릭시티란 이름은 라틴어 Felicitas에서 파생된 것으로 '행복'(happiness) 혹은 '행운을 빌어~!(good luck)란 뜻이 담겨있다. :)
(+마지막 정원에 함께 있던 felicity에는 비옥함과 풍요로움의 뜻이 내포되어 있기에궁핍함과 가여움을 의미하는 제목의 poor와 대비되는 이름이기도 하다.한편행복(happy)은 발생하다(happen)로부터 유래했으며, 행운(fortune)에는 앞으로의 미래, 자의적인 힘으로서의 우연이란 뜻이 담겨져 있다. 한자를 살펴보면 행복의 행(幸)이란 단어는 인생의 고통을 의미하는 매울 신(辛)에 한 일(一) 혹은 열 십(十)자가 더해진 형태이다. 복(福)은 가득찰 복(畐)에 보일 시(示)가 결합된 것인데, 그 안에는 입에 풀칠할 밭을 가꾼다는 뜻이 숨겨져있다. 그리고 운(運)에는 움직이다, 앞으로 옮기다란 뜻이 있다. 여러모로 서양이나 동양이나 이름 안에 담긴 의미가 서로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 이동진 평론가의 한줄평 속'주유천하'란 표현이 굉장히 와닿았는데, 공자님은 천하를 유랑하고 온 다음 <논어>에서 나이대별로 인간의 발달단계를 평하기도 했다.)
"지상에서 아무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부단히 변화하는 것들 사이로
영원한 열정을 몰아가는 자는 행복하여라."
-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
최근에 도서관 빅데이터 A.I.가 나에게 장 뤽 낭시의 <무위의 공동체>를 추천해줬다. 내가 융복합 프로젝트를 연이어 맡다가커뮤니티에 현타왔던 걸 이 녀석은 알아챈걸까? 어쩌면 기계알고리즘이 나에 대해 더 잘 이해하는 인간적인 녀석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실은 교수님께서 요청하신 빅데이터 연구 제안서를 거절하고, 이제 막 생명윤리심의위원회(IRB)에 질적연구 계획서를 넣은 참이었다. 솔직히 지금은 모든 일이 다 헛되다는 생각에 휩싸여 그저 사람을 하나하나의 개인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난 오랜 방황을 끝내고 1년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낡고 허름한 병원을 작년에 내손으로 직접 폐업시키며 이제서야 조금씩 철이 들고 있다. 아빠가 돌아가신 3개월뒤 아빠가 극진히 보살피던, 그리고 엄마가 원망하던 엄마의 아빠 즉 내 외할아버지도 뒤이어 돌아가셨다. 아빠는 (독일)철학자였던 외할아버지가 데려온 엄마의 수학 과외선생이었고, 외할아버지는 본인이 계셨던 대학의 수석 장학생인 아빠를 별볼일(교양) 없는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며 늘 무시하셨다. 너무나 평범해서 홀대 받았다던 외삼촌이 그들의 빚을 대신해 자살을 하고, 가장 특출났다던 외삼촌이 그들의 뒤를 이어 원하던 대학에 간 뒤,신부가 되어 대를 끊어버렸음에도 사람의 급을 나누던 외조부의 본성은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나 다른 두 아빠들은 모두 첫째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오형제 중 막내아들이었던 나의 아빠는 딸이 외가와 똑같은 괴물로 자라날까봐 언제나 노심초사하며 평범하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 것을 강조했다. 그래선지 난 이 <가여운 것들>이란 영화에 홀라당 빠져들어 감정이입해버렸다. 마치 영화 <추락의 해부>처럼 지병도 없이 사인 미상으로 60세를 갓넘겨 심장이 멈춘 심장내과 전문의인 아빠의 죽음 이후 난 대체 왜?를 이해하고 싶었기에...
(심지어 그동안 나는 노인 커뮤니티를 연구하고 있었건만, 본인 건강을 잘 챙기실 거라 믿어의심치 않았던 내 아빠가 만 65세도 되어보지 못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친척들로부터 극과 극이던 부모님이 정말 열렬히 사랑했었단 이야기를 들었으나 내가 경험한건 주로 격렬한 전쟁이었다.(나중에 동생이 태어나고 잠시 평화가 오고나서야 그럴 수도 있었겠단 생각을 했지만...)
그리고 나는 아빠의 죽음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엄마가 나르시시스트/소시오패스라던가, 아빠는 반대로 에코이스트(메아리)라던가, 나르시시스트 엄마는 자기의 분신인 자녀를 골든차일드(트로피)로 삼는다거나 컨트롤이 안되면 스케이프고트(희생양)로 삼는다는 등 수많은 정보의 편린들을 얻게 되었다.
어린시절 방치되어있던 나를 가엾게 여겨 부모님 대신 항상 돌봐주셨던 양가 친척들이 아빠의 장례식 후 엄마를 잘 돌보라는 이야기가 아닌 거리를 두라는 이상한 조언을 해주는 가운데, 나는 아빠의 일상을 힘겹게 만든 엄마와 은퇴하고픈 아빠의 발목을 잡았을 내가 점차 원망스러웠다. 아빠의 유품(폰)을 보니 한적한 곳에농막을 짓고 고요하게 텃밭을 가꾸는 자유로운 삶을 진심으로꿈꾸고 계셨었기에...
(어쩌면 내가 영화 <엘리멘탈>과 <오펜하이머>에 빠져든 건 실은 의대가 아닌 공대를 가고싶어했던, 그리고 물리학을 정말 좋아했다던 아빠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지도...)
지나치게 남들만 챙기며 자신을 희생한 가엾은 아빠와 달리, 모성본능이 없던 심지어 딸을 질투한 자기중심적인 엄마를 아직까지 난 잘 이해하지 못하겠으나, 내 안에 아빠 뿐 아니라 엄마의 모습도 담겨 있을테니 언젠가 그걸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면, 엄마 또한 가여워하게 될지도...
과연 나는 <가여운 것들>의 여정 가운데,
아직도 알렉산드리아에서 세상의 현실을 마주하고 충격받은 어벙한 상태일지...
아니면 파리의 욕망과 좌절이 뒤덮힌 현실의 시궁창 속에서 다시금 내 노동력을 활용해희망을 찾아보려 질척이고 있는 중일지...
아니면 아버지가 부재한 런던에 돌아와 그 다음 여정을 위해 잠시 안정을 찾고 있는 중일지...
요즘엔 종종 책을 읽으며 내 인생의 네비게이션을 다시 살펴보고있는 중이다.
주유천하(周遊天下)를 마치고 돌아온 공자님 왈, 40(不惑)이 되면 더이상 세상사에 갈팡질팡 휘둘리며 자신이 나아가는 길에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하셨건만 나는 아직 거기에 이르진 못했나보다.
(+그나저나부디나의 여리고 소중한 동생은 누나보다 더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이어가기를...)
Good Luck and Be Happy...♥
이 영화를 보고난 뒤 마치 심리상담을 받는 것 마냥 나의 이야기를 주욱 에세이처럼 써보게 되었는데,
어쩌면 영화의 적나라한 톤처럼 그리 유쾌하지 않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엿보는 불쾌한 기분이 들 수 있을 듯 하여 이걸 밖으로 드러내도 괜찮을까에 대한 고민이...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