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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호 Jan 09. 2023

베를린의 낭만적인 새해 이브

우리 부부는 연말연시를 리츠 칼튼 베를린에서 보냈습니다

헐리웃 영화에서 보면 새해 이브에 파티를 열다가 새해가 시작되면 다들 축하하는 장면 수도 없이 나온다. 그래서인지 새해 이브에는 왠지 특별하게 낭만적인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살때부터 막상 그런 시간을 가질만한 장소가 많지 않았고, 아무리 비싼 일식집이나 오너 쉐프 레스토랑에 예약을 하더라도 도무지 그런 분위기가 나질 않았다. 그러던 중 2021년 연말 덴마크 가족여행을 간 김에 시내 유명 호텔의 새해 이브 디너를 예약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예약 시스템 문제로 취소되는 바람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2022년 연말에는 꼭 낭만적인 새해 이브를 보내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11월쯤 아래 기사를 보게 되었고 기사에서 언급된 5개 호텔 레스토랑에 새해 이브 디너 예약 문의 메일을 보냈었다. 제일 먼저 확답이 온 곳이 바로 "리츠 칼튼 베를린"의 POTS 레스토랑이었고, 디너 예약을 확정하고 더불어서 전망 좋은 코너 룸까지 예약을 마쳤다. 뒤늦게 다른 호텔의 레스토랑에서도 회신이 왔지만, 항상 제일 먼저 회신을 주는 곳에만 기회를 주는 스타일이라 더이상 고민 없이 다음을 기약하겠다는 회신을 보냈다. 

https://traveljee.com/destination/europe/germany/berlin-new-years-eve/


전날까지 영국인, 프랑스인 동료와 6시간 넘게 먹고 마시며 떠들면서 주당들의 모임을 가진터라 12월 31일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애들 점심 먹이고 청소를 마친다음, 독일 와서는 평소 입거나 들고다닐 일 없었던 비싼 맞춤 코트와 명품 가방 등을 다꺼내서 차려입고 레기오날 익스프레스를 타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포츠다머 플라츠역 바로 앞에 위치한 리츠 칼튼 호텔에 도착하니, 오래된 호텔이라 규모가 작았지만 럭셔리 호텔 다운 분위기에서 우리처럼 뜻깊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쫙 빼입고 체크인하고 있는 손님들이 많았다. 프론트 직원의 재치있고 세련된 솜씨로 체크인을 마치자, 프론트에서 웰컴 드링크로 샴페인을 한잔 씩 줘서 마시면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예약한 방으로 갈 수 있었다. 불꽃놀이가 잘보이도록 가능한 한 높은 층으로 요청을 했는데, 가장 높은 11층 코너 방으로 잡아주었다. 그런데 예약할 때 "도심 방향"이라는 것이 호텔 전면인 포츠다머 플라츠 역 방향인 줄 알았는데, 저멀리 국회의사당과 TV타워가 보이지만 다른 건물들이 시야를 가릴 수 없는 반대 방향이어서 약간 아쉽기는 했다.



같은 5성급 호텔이라고 해도 신라호텔이나 롯데호텔 서울에 비해 숙박비가 2배나 비싼 럭셔리 호텔이다보니, 룸 상태나 디테일은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코너 룸을 선호하는 이유는 일반 룸에 비해 창이 많고 상대적으로 넓은 공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훨씬 쾌적하게 지내기에 좋기 때문이다. 침대는 지난 10월에 숙박했었던 롯데호텔 서울 이그제큐티브 타워의 침대가 좀더 낫다고 평가한다. 롯데호텔의 침대와 침구가 너무나도 편했고 침구 냄새가 너무 마음에 들었었다. 



연말이라 그런건지 원래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숙박객에게 선물로 시중에서 약 50유로 전후하는 영국산 샴페인을 선물로 주는 것도 좋았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DIPTYQUE 브랜드의 샤워젤, 샴푸, 컨디셔너, 바디 로션 등을 제공하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샘플 사이즈가 아니라 대용량으로 제공되는 것도 마음에 듦) 체크인 하고 와이프는 반신욕을 즐기고 나는 지하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러 갔다. 그다지 넓지는 않은 웰니스 공간의 반은 피트니스 센터, 나머지 반은 스파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처 수영복을 챙기지 못하는 바람에 스파는 즐겨보지 못했다. 러닝머신에서 운동하며 스파를 즐기는 손님들을 보니, 수영복 입고 남녀가 함께 입장하는 "한국식 대중목욕탕"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튼 이 동네 사람들은 진짜 스파를 좋아한다. 피트니스 센터는 지금껏 방문했던 그 어떤 호텔의 피트니스 센터 중에 가장 좋은 러닝머신을 갖추고 있었는데, 운동하는 손님에게 시원한 물과 간식, 손수건과 1회용 이어폰 등을 제공해주는 것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한국의 5성급 호텔들의 경우 피트니스 센터의 시설이나 장비 등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았는데, 규모는 작아도 디테일에선 아쉬운게 하나도 없었다.

https://goo.gl/maps/LhAky5HLqbUgdXsf8



호텔 앞 포츠다머 플라츠에 열려있는 작은 규모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며 뜨거운 글뤼바인 한잔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가, 7시에 맞춰서 옷을 갈아 입고 드디어 POTS 레스토랑에 찾아 갔다. 직원들은 새해 이브라고 특별한 코스튬을 입고 우리를 환영했고, 예약된 좌석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우리는 드레스코드 때문에 고민 고민을 하다가 무난한 의상을 선택했었는데, 이날 저녁 우리는 온갖 종류의 반짝이 드레스를 구경할 수 있었다. (와이프도 반짝이 드레스를 가져왔다가 너무 튀는게 아닌가 해서 안입었음) 다들 다양한 종류의 반짝이 드레스를 멋지게 입고 와서 서로 뽐내는 바람에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덕분에 와이프가 다음에는 어떤 드레스를 준비하면 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예약된 테이블이 적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노쇼가 많아서 디너를 마칠 때까지 빈 자리가 곳곳에 있었다. 일부 손님들이 빈자리로 자리 변경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주지 않았고, 그나마 우리는 그럭저럭 괜찮은 자리였지만 우리가 보기에도 안쓰러운 자리에 배정받은 커플들은 불만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서 받아든 메뉴판에는 특이하게도 6종 코스의 음식과 함께 6종의 와인이 같이 나온다고 되어 있다. 나중에 식사를 마치고 보니 새해 이브 디너의 메인은 음식이 아니라 와인이었던 것 같다. 주는 대로 먹고 마시다보니 슬슬 취하기 시작해서 디저트가 나왔을때는 얼른 계산하고 방에 가고 싶을 정도였다. 다른 커플들은 식사를 마치고 호텔 로비의 바에서 쿵짝거리는 파티에 가서 2차로 춤추고 노는 듯했으나, 우리 부부는 방에서 불꽃놀이를 보면서 새해를 맞이하기로 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이 동네 사람들은 체력이 너무 좋아서 우리같이 저질 체력들은 같이 놀기가 힘들다. 새해를 10분 남겨 놓고 잠시 누웠다가 일어나서 불꽃놀이를 구경하려던 우리 부부는 피곤도 하고 술에 취하기도 해서 불꽃놀이를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그대로 잠들고 말았다. ㅎㅎ



체크인할때 호텔 직원이 1월 1일 조식은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제공되니 여유있게 즐기라고 했는데, 그만큼 밤새 놀고 늦잠을 잔 손님들을 위한 배려라는 것을 다음날 깨닫게 되었다. 오전 8시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겨우 일어나서 씻고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는데, 그때까지 클럽에서 놀다가 돌아온 커플이 밤새 놀고온 티를 내며 굿이브닝이라고 인사를 한다. ㅋㅋㅋ 조식도 새해 이브 디너를 예약했던 POTS 레스토랑에서 먹었는데, 디너를 먹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멋진 인테리어에 새삼 놀라며 맛있는 아침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확실히 유럽식 조식은 유럽 호텔에서 먹는 것이 맛있는데, 연어가 기대보다 맛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전날 숙취 때문에 해장국이 간절했지만, (빵은 도저히 들어가지 않아서 못먹음) 커피와 조식으로 속을 달래고 체크아웃 전에 한번 더 피트니스 센터에 내려가서 운동하고 왔다. 다들 피곤해서 아침부터 스파에 오는 손님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 와중에도 스파에 오는 손님들이 있었다. 대단.



이런저런 모임과 만남으로 정신없이 바빴던 12월을 보낸 덕분에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다가 체력 부족으로 다른 커플들처럼 밤새 놀지 못하고 먼저 뻗어버린 점은 아쉬었지만, 아이들이 많이 큰 덕분에 이제는 우리끼리 오붓하게 연말연시를 좋은 곳에서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체크아웃한 다음 기차타고 30분도 안걸려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들내미 점심으로 짜파게티를 만들어야 했지만 모처럼 일상을 벗어난 멋지고 낭만적인 짧은 여행이었다. 그동안 꿈만 꾸어오던 새해 맞이 낭만을 즐겨봤으니, 다음 연말연시는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지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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