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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금호 Aug 03. 2023

북유럽 4개국 크루즈 여행기

9박 10일간 덴마크, 핀란드, 에스토니아, 스웨덴을 다녀왔습니다

크루즈 여행을 처음 생각하게 된 것은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하면서 보게 된 독일TV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크루즈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젊은이가 주인공이었고, 거대한 배를 타고 세계 전역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때부터 크루즈 여행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Cunard라는 영국 크루즈 회사를 구글에서 찾게 되었다. 3~4일짜리 단거리 크루즈 여행은 물론 몇달이 걸리는 세계여행까지 취급하는 회사였고, 설립된지 100년이 된 나름 오랜 역사를 가진 회사이기도 했다. 크루즈 여행을 검색해서 살펴보니 비용도 비용지만 일정이 꽤나 맞추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일의 연휴나 방학 시즌에 딱 맞는 크루즈 여행을 찾는것이 쉽지 않고, 주중 출발 및 주중 도착의 일정이라 사용해야하는 휴가 일수 또한 원하는대로 컨트롤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즐겨찾기에 등록을 해놓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드디어 2022년 12월에 7~8개월후에 떠나는 9박 10일짜리 북유럽 여행을 예약하게 되었다. 2023년 여름방학 시즌과 시기가 맞아서 온가족이 함께 떠나기에 좋았고, 왠일로 애들도 순순히 따라가겠다고 해서 예약한 것이다. 


문제는 출발 8개월전에 예약하는 것인데도, 좋은 방은 이미 모두 예약이 끝났고 4인 가족으로 2개의 방을 예약을 할수 있는 방은 창이 없는 안쪽 딜럭스룸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와서 보니 굳이 4인으로 방두개를 같이 찾기보다는 2인씩 나눠서 예약을 했으면 창과 발코니가 있는 좀더 좋은 방을 예약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에는 생전 처음 이용하는 것이라 실제로 어떤 방인지 감이 안오기도 했고 여차하면 이마저 예약못하겠구나 싶어서 일단 같은 스타일의 2개 방을 쓰는 것으로 예약을 마쳤다. 만일 다음번에 크루즈 여행을 예약하게 된다면, 최소 1년 전에는 예약을 하고 당연히 발코니가 있는 좋은 방으로 예약을 하고야말 것이다. ㅎㅎ 아무튼 이로써 함부르크 출발 - 덴마크 오르후스, 보른홀름 - 핀란드 헬싱키 - 에스토니아 탈린 - 스웨덴 비스뷔 - 키엘 도착으로 이어지는 9박 10일간 5개 도시에 정박하는 크루즈 여행이 확정된 것이다.


무려 반년도 넘게 남은 여행이라 한동안은 신경 쓸일이 없었다. 헬싱키와 탈린의 경우, 마이리얼트립으로 6개월전쯤 미리 예약 문의를 했었으나 모든 가이드들이 한달전에 예약이 가능하다고 해서 한동안 잊고 있어야 했다. 크루즈 여행은 예약 당시 좌석과 모든 스케쥴이 확정되는 비행기 여행과 달리, 출항일이 거의 다되서야 최종적으로 룸이 확정되고 체크인 시간이 확정되는 것이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미리 베를린-함부르크, 키엘-함부르크-베를린의 ICE 일등석 예약을 할때에도 크루즈의 체크인/체크아웃 시간을 몰라 일단 꼭두새벽에 출발해서 아침 일찍 함부르크에 도착하는 기차와, 키엘에서 오후 늦게 출발해서 저녁에 베를린에 도착하는 기차로 예약을 해놓을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딸내미와 아들내미의 방은 더 좋은 방(!?)으로 변경해준다고 해서, 새로운 예약번호로 별도의 예약처리가 진행되어 뭔가 복잡해지기도 했다. 그나마 크루즈 회사와의 전화 통화가 어렵지 않고 상당히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다보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여행 첫날 : 함부르크


독일에 와서 살면서 처음으로 타는 기차 여행에, 난생 처음 경험하게 되는 크루즈 여행이다보니 여행 첫날부터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온라인 티켓에 적혀있는 열차 정보를 잘못 봐서 기차 맨앞으로 탔는데 알고보니 우리 객차는 맨뒤라서 온가족이 비좁은 통로로 캐리어를 끌고 앞에서부터 맨뒤까지 가야했다. 원래 예약해놓은 자리가 꽤나 좋은 자리였는데 쓸데없는 고생을 하게 만들어 가족들의 원성을 사야했다. ㅎㅎ 하도 독일 기차 여행의 문제점에 대해서 들어왔던터라 꽤나 걱정을 했었는데, 최소한 우리가 이용한 ICE 일등석은 아주 훌륭했다. 충분한 전원코드에 무료 와이파이, 직원이 직접와서 주문을 받아서 가져다 주는 것 등 한시간반의 짧은 여행 시간이 아쉬울 정도로 좋은 경험이었다. 문제는 함부르크에 도착한것은 오전 9시 이전이었고, 체크인 시간은 오후 1시 30분이었다는 것. 함부르크역이나 크루즈 센터에서 3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 차라리 크루즈 터미널에 가서 기다리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택시 타고 갔더니 오후 12시부터 입장 가능하기 때문에 크루즈 터미널에서도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보니 한쪽 구석에 의자 몇개가 놓여있는 간이 대기실이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뭔가 그럴듯한 라운지 같은 것을 기대했었기에 실망스러울수 밖에 없었다.


오전 9시부터 연 카페나 식당이 주변에 없어서 방황을 하다가, 아들내미가 우연히 찾은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카페를 찾아서 들어갔다. 아침부터 찬바람을 쐬었으니 따뜻한 음료와 달달한 디저트들을 시켜서 먹으며 체크인 시간까지 시간을 죽여야 했다. 오후 12시가 되어가서 출발하려니 갑자기 뜬금없이 비가 쏟아진다. 경험상 조금 기다리면 금방 날씨가 개기 때문에 좀더 기다려 비가 잠잠해질때까지 기다렸다가 서둘러 크루즈 터미널로 이동을 했다. 배에서 내려서 다시 타는 곳이 입구인줄 알았는데, 저만치 떨어진 곳에 짐만 부치는 장소가 따로 있었고 부랴부랴 줄을 서서 짐을 부쳤다. 그리고 체크인할때까지 잠시 대기했다가 체크인이 시작되어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크루즈 여행도 비행기 처럼 비즈니스/이코노미 클래스 같은 차이가 있는 듯 일반 체크인과 우선 체크인이 따로 운영되는 것 같았다. 나이가 많은 고객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큰 난관 없이 체크인이 이루어졌고,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우리도 온라인으로 사전 체크인을 했지만, 웹사이트에서 업로드한 (포토샵 처리된) 사진 대신 현장에서 직원이 직접 사진을 찍어서 다시 등록을 한다. 체크인시에 발급해주는 크루즈 ID 카드는 단순히 방키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배에 타거나 내릴때마다 본인 확인용은 물론 연결되어 있는 카드로 유람선 내에서 결제를 할때에도 쓰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여권이나 독일 거주증 등은 이번 여행에서 어느 항구에 정박을 하던지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비행기 탈때보다는 간단한 소지품 검사를 마치고 드디어 배에 탑승을 하게 되었고, 역시나 탑승시에 발급받은 ID 카드로 본인 확인을 한 다음 배 안으로 들어설수 있었다. 9번 데크의 Lido 레스토랑에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다고 안내를 해서, 일단 우리에게 배정된 방으로 가서 상태를 확인하고 미리 부친 수화물을 받아 놓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9번 데크로 올라갔다. 커피, 차 및 음료와 피자, 스파게티 등의 음식을 정박되어 있는 함부르크 크루즈 센터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좋은 자리에 앉아서 먹으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유람선 내에는 몇군데의 식당이 있는데 아침, 점심, 저녁 식사가 모두 무료로 제공되는데, 생각보다 음식의 퀄리티도 좋은 편이라 어설픈 4~5성 호텔의 조식보다도 훌륭하다. 또한 점심이나 저녁 식사의 경우에는 매일 같은 메뉴가 아니라 계속 바뀌기 때문에 질리지 않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오히려 식사가 너무 잘나와서 과식을 조심해야할 정도다.


저녁식사는 브리타니아 레스토랑에서 파인 다이닝을 즐겼는데 역시 음식은 무료이지만 별도로 주문하는 음료나 주류는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방식이었다. 때마침 출항을 하는 모습을 창문으로 지켜보며 직원이 추천하는 와인 한병을 주문해서 마시며 축하를 했다.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고급 레스토랑 수준은 아니더라도 일정한 퀄리티를 보장하는 수준의 음식과 서비스, 분위기를 제공하기 때문에 가끔 이런 분위기를 즐기고 싶을때 들르면 좋을 듯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9번 데크에 올라가서 배 앞쪽과 뒤쪽을 돌아다니며 노을지는 해와 함부르크 해변가 집들을 구경을 하며 첫 크루즈 여행의 시작을 마음껏 즐겼다.


여행 둘째날 : 덴마크 오르후스(Aarhus)로 가는 바닷길


이번 크루즈 여행 9박 10일 중에 3일간은 바다 위에 머무는 날이었고 둘째날이 처음으로 바다에만 머무르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파도 때문에 배에 흔들림이 있었고, 아침 식사후 아들내미와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하는데 배의 흔들림 때문에 제대로 러닝머신에 서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러닝머신 좌우의 바를 잡고 겨우 한시간 운동을 마치려고 하는 순간, “퍽” 하더니 전원이 일시에 나간다. 덕분에 강제로 운동을 마치고 객실에 내려와 샤워를 하고 나니 예비 전원까지 완전히 나간듯하더니, 얼마후에 모든 전원이 다시 들어왔다. 점심 식사를 할때에는 파도가 더 심해져서 와이프는 주문한 음식도 못먹고 객실로 돌아가야 했고, 나는 배멀미 때문에 나온 음식들을 거의 먹지 못하고 디저트인 아이스크림만 겨우 먹을 수 있었다. 온가족이 배멀미로 고생하는데도 아들내미만은 배멀미 없이 주문한 BLT 샌드위치는 물론 메인 생선 요리까지 싹싹 먹었다. 저녁 식사 전까지 다들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못했는데, 다행히 저녁 때는 다들 많이 좋아져서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배가 커서 왠만한 파도에는 큰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 짐작을 했던터라 멀미약만 챙기지 않았는데, 결국 배멀미로 고생을 하고 말았다. 


여행 세째날 : 덴마크 오르후스(Aarhus)


9시쯤 내릴 수 있었지만 쇼핑몰 여는 시간에 맞춰 10시에 하선을 해서 번화가까지 걸어갔다. 중간중간에 크루즈에서 내린 관광객들을 위해 관광 안내를 해주는 자원봉사자들이 눈에 띄었다. 생각해보면, 2000명 정도의 관광객이 한번에 내리기 때문에 정박지인 도시 입장에서는 관광 수익을 위해 나름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생각보다 쇼핑하기에 좋은 도시라 가족들은 신나게 쇼핑을 하느라 난리였고, 둘째날부터 “김치”를 외치던 와이프를 위해 점심식사는 푸드코트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먹었다. 그리고, 전날 배멀미로 고생한 터라 약국에 들러서 멀미약 2박스 (20정)을 구입했다. (아쉽게도 이후엔 배멀미를 할 기회가 없었음) 덴마크에는 세븐일레븐이 있는데, 1년반 전에 왔을때부터 우리는 세븐일레븐을 발견하면 무조건 들어가서 진열되어있는 닭꼬치를 싹쓸이해버는 것이 취미였다. 안타깝게도 이번에 찾은 세븐일레븐에는 닭꼬치가 겨우 하나 남아있어서 나눠먹어야했다.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쇼핑을 최대한 즐기다가 다시 배로 돌아왔다.

https://goo.gl/maps/Gt5xxR53wJJYypJ3A


여행 네째날 : 덴마크 보른홀름(Bornholm)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작은 관광지였다. 항구에서 뢰네 관광안내센터까지 셔틀버스를 제공해주어서 편하게 마을 입구까지 갈수 있었지만, 우리 가족들이 기대하는 쇼핑센터는 찾아보기 힘든 작은 마을이었다. 건물이 특이하고 예뻐서 둘러보는 맛은 있었지만, 대부분의 식당은 오후 5시부터 여는 바람에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고 다시 배로 돌아와서 점심 식사를 해야 했다. 아마 따로 예약을 받는 투어의 경우에는 유적지 관광이 있는 것 같지만, 그 정도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여행 다섯째날 : 핀란드 헬싱키로 가는 바닷길


둘째날처럼 파도가 심하지 않아서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순조롭게 항해를 했고, 이번 여행 중에 가장 날씨가 좋은 날이었다. 오전에는 아들내미와 함께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을 했고, 오후에는 뒤쪽 수영장 근처 선베드에서 우리도 일광욕을 즐겼다. 우리는 선크림을 바르고 가능한한 덜태울려고 난리를 쳤는데, 백인들은 오일을 온몸에 바르고 장시간 노출을 하는데도 거의 타지 않는 것을 보고 경악을 했다. 날씨가 좋고 태양볕이 좋아 선베드의 경쟁은 심했고, 나는 한시간 반 밖에 누워있지 않았음에도 시커멓게 탔다. ㅎㅎㅎ 크루즈 여행이라는게 단순히 돈과 시간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제대로 즐기기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된 하루였다.


여행 여섯째날 : 핀란드 헬싱키


마이리얼트립을 통해 헬싱키 투어와 에스토니아 탈린 투어를 한달 전에 예약해놓았었다. 원래 프라이빗 투어만 이용해왔는데, 예약할때 내가 착각을 했었는지 헬싱키 투어는 일반 가이드 투어를 예약해서 핀란드에 MBA 과정 때문에 와있는 다른 한국인 2명과 함께 투어를 해야했다. 간만에 본의아니게 한국인스러운 헛소리를 떠들어대는 한국인들을 만나게 되어, 이들과 같이 세시간반짜리 투어를 해야하게 된것이다. 헬싱키는 관광객이 투어를 하기에 적합한 도시는 아니었는데, 그래도 대중교통 1일권을 사서 트램이나 지하철,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주요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가이드를 통해서 인구 550만의 핀란드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것인지에 대해 알수 있어서 좋았고. 투어를 마치고 늦은 점심을 쇼핑몰 지하 푸드코트에 있는 싱가포르 음식점에서 먹은 다음, 몇몇 쇼핑몰을 둘러보았다. 코로나 이후 한국인들의 해외여행이 활성화되었다더니, 헬싱키 관광지에서 패키지 투어를 하는 한국인들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핀란드를 다시 찾을 일은 없을 듯.

https://goo.gl/maps/DE1vGLED3yTMFqRh9


여행 일곱번째날 : 에스토니아 탈린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단편적인 지식만 가졌던 에스토니아에 대해 가이드분의 도움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역사적으로 600년 이상 발트 (독일) 귀족에게 지배를 받았던 지역이라 탈린의 올드 타운은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의 장소였다. 몇백년된 성벽과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정말 흥미롭게 2시간반짜리 투어를 진행할 수 있었다. 독일인들이 왜 많이 찾아오는지도 알것 같았다. 점심은 가이드분께서 추천해주신 한국 식당에서 먹었는데, 주방에서 일하는 분은 한국분인지 모르겠지만 주문 받는 직원과 꽉찬 손님들은 모두 에스토니아 사람들이라 인상적이었다. 물론 약간 달기는 했지만 맛도 괜찮아서 마음에 들었다. 어제 오늘 많이 걸어다닌 탓에 우버를 이용하여 이동을 했는데, 가격이 독일보다 싸지만 한국 택시를 보는 것처럼 험하게 운전을 하는 편이였다. 개인적으로는 에스토니아라는 나라에 새로운 기회가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크게 기대할만한 나라는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https://goo.gl/maps/gdKwpkanrn7CoSHL9


여행 여덟번째날 : 스웨덴 비스뷔 (Visby)


이전에 정박했던 보른홀름처럼 별볼일 없는 곳일까 걱정을 했었고, 셔틀버스가 내려준 장소 역시 실망스러웠는데 막상 둘러보니 꽤나 인상적인 도시였다. 역시 중세 시대부터 만들어진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쌓인 해안도시였는데 유적지와 얽혀있는 옛날 건물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은 물론 비좁은 옛도로를 최신 전기차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탈린의 올드 타운보다 큰 규모였고 성밖 섬의 나머지 지역은 일반적인 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성벽을 따라 한참을 걸어보다가 쇼핑몰에서 간단하게 쇼핑도 하고 한국 퓨전 레스토랑에 들러서 희안한 맛의 음식을 먹었다. 식당 안팎으로 꽉찼을 뿐만 아니라 줄까지 서있는 손님들에게 “이건 한국 음식이 아니야”라고 외쳐주고 싶었다. ㅎㅎ 


여행 아홉번째날 : 독일 키엘로 가는 바닷길


3일간 연달아 정박해서 온종일 돌아다녔던 덕분에 다들 지키기도 했고 해가 뜨긴했어도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라 외부에 오래 앉아있기는 힘들었다. 아침 운동은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방에서 미리 준비해간 전자책이나 종이책을 읽는데 사용했다. 이번 크루즈 여행에서는 거의 10일간 스트리밍 서비스는 이용을 못하고 간간이 각 국가의 이통사가 잡혀서 잠깐 인터넷을 이용하는 정도였기에, 의도치않게 책을 많이 읽게 된 것은 좋았다. 다만, 인터넷 없이 못사는 딸내미의 경우에는 24시간에 24달러 또는 36달러를 지불하는 선내 인터넷 서비스를 사용해서, 자기 용돈으로 총 250달러를 인터넷 사용료로 지불했다. ㅎㅎㅎ 설마 유료 인터넷을 돈내고 사용할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다. 내리기 전날 저녁에 미리 지급된 태그를 붙여서 수화물을 복도에 내놓으면 체크아웃시에 옮겨주는 서비스가 있었는데, 우리 경우에는 마지막까지 짐을 싸야해서 그냥 들고 내리기로 했다.


여행 열번째날 : 키엘 도착


드디어 우리 여행의 마지막 정박지인 키엘에 도착했다. 키엘의 크루즈 터미널은 함부르크는 물론 이번 여행 중에 접한 그 어떤 항구의 크루즈 터미널에 비해 터미널 답게 생겼다. 열흘 가까이 영국 유람선 내에서 영어만 듣다가 다시 독일어가 일상인 동네로 돌아오니 기분이 묘하다. 가족들은 가격이 유로로 표기된 것만 봐도 마음이 편해진다고. ㅎㅎㅎ 체크아웃은 오전 9시부터 10시 사이에 진행이 되기 때문에, 오후 5시 키엘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려면 무려 7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다행히 항구와 중앙역 사이에 스타벅스가 있었고, 아침 일찍 가서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기에 여기서 계속 음료와 케익을 시키면서 버티기로 했다. 


이번 크루즈의 목적 중에 한가지는 나중에 한국에 계신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크루즈 여행을 하는 것이 어떨지 미리 한번 경험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영국에서 출발하는 북유럽 크루즈 여행은 한국인 부모님이 제대로 즐기기는 어렵다고 판단되었다. 외국 유람선을 임대해서 한국 여행사가 운영하는 일본, 대만 크루즈 여행이라면 모를까. 크루즈 여행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타고 좋은 관광지를 다닌다는 1차원적인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배 안에서도 다양한 파티와 행사에 참석하면서 일상에서는 만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사귀는 목적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초에 언어와 문화가 다른 상황에서 어르신들께서 제대로된 크루즈 여행을 즐기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크루즈 여행을 직접 경험 하면서 꽤나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두가지만 이야기 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크루즈 여행에 참여하는 영국인, 독일인 어르신들은 진심으로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부터 머리 단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조식을 먹는다. 한국 어르신들이 즐겨입는 등산복과 같이 촌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은 당연히 아무도 없다. 매일 이어지는 파티에 턱시도와 드레스를 쫙 빼입고 한껏 멋을 부리는데, 이건 정말 한두번 해본 솜씨들이 아니다. 매일 이렇게 화려한 옷들을 입으려면 이분들의 캐리어에는 이런 옷만 한가득이어야 한다. 댄스 플로어에 일찌감치부터 대기하고 있던 노신사의 춤솜씨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 평소에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해왔는지를 금방 알수 있다. 좋은 날씨에 유람선 앞뒤에 주욱 늘어있는 선베드에 오일을 잔뜩 바르고 누워 능숙하게 선탠을 즐기는 모습들 또한 꽤나 자연스럽다. 매일 이어지는 강행군에도 연세가 많으신 분들의 놀라운 체력에 매번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우리 가족은 저녁 식사 이후에는 대게 침대에 뻗어 있었다) 독일에 5년 넘게 살면서 전혀 느껴보지 못한 "문화적인 차이"를 크루즈 여행 내내 매순간 실감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들과 우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꽤나 다른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다.


두번째, 유람선 내에서 일하는 직원들 중 매니저 미만의 노동자들은 모두 유색 인종이고, 이들의 업무량은 장난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방 청소의 경우 일반 호텔과 달리 아침 식사 시간과 저녁 식사 시간에 두번씩 매일 꼬박꼬박하는데, 하우스키퍼분들이 하루종일 청소만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매일 아침 청소 시간에 쪽지에 간단한 인사를 남기고 팁을 드렸는데 (예전에 보덴제 호텔에 숙박할 때 배운 방법) 너무 고마워하시는게 안스러웠다. 아니 그럼 다른 승객들은 이 정도 팁도 안드린다는 말인가? 유람선의 거의 대부분의 승객이 백인들인 상황에서 그들의 온갖 수발을 드는 선내 노동자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결코 기분이 좋을수가 없었다. 우리가 탔던 유람선은 최대 2000명의 승객이 탑승 가능하고, 이를 위해 약 900명의 승무원들이 탑승하게 된다. 그야말로 노동 집약적인 노동 환경인 셈이다. 연세가 많은 신 분들이 주이고 휠체어나 목발 등을 이용하시는 분들도 많아서 유람선 내부는 절대로 자동화가 될수 없어서 많은 사람의 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9박 10일간 멋진 크루즈 여행을 즐길수 있었던 멋진 여름 휴가였지만, 그 여행을 위해 유색 인종에 대한 노동 착취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이중적인 상황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아마도 다시 크루즈 여행을 하는 것은 다른 이유보다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감정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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