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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다임 May 15. 2023

갑자기 와버린 겨울

수술만이 답일까요?

차갑다.
하나같이 차갑기만 하다.
의사의 얼굴, 표정, 말투까지 창 밖에 내리는 눈처럼 하염없이 차갑기만 하다.





우리는 정말 지독스럽게도 평범한 세 식구였다. 대기업을 다니는 남편, 이제 고작 20개월에 접어든 딸 그리고 육아 지쳐 간당간강한 나까지 매일 반복되는 그런 하루를 버티며 살았다.

아이를 낳고 마치 전쟁터의 적군인 양 우리는 서로 티격태격 많이도 싸웠다. 

그래도 1년쯤까진 버틸만했다. 조금 지나 점점 지친 나는 한없이 우울하기만 했다. 

이 세상에 내편은 없는 것 같다며 펑펑 울며 남편에게 토로하던 날들이 많았다. 이것 때문일까. 

나의 힘듦을 그에게 전한 건 아닐지 그 시간들이 후회된다.





2023년 시작
새해가 되어 우리는 더 잘살아보자며 의지를 불태워 미라클 모닝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 서로 깨워주며 책을 읽었고 딸아이가 잠든 그 시간이 유일한 부부의 대화 시간이었다. 비가 온 뒤 굳은 땅처럼 우리는 농담을 주고받는 여느 부부들과 같았다. 마치 싸운 적 없던 것처럼..




지난해 연말 함께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지가 메일로 도착했다. 

우리 둘 결과지를 나란히 놓고 하나씩 살폈다. 

부끄러워 감추던 몸무게도 터놓는 그런 사이가 되고 보니 우리는 정말 가족이 되었구나 싶었다.
나의 위내시경 조직검사 결과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헬리코박터균이라는 것 때문에 약만 며칠 먹으면 될 뿐. 그의 결과지는 온통 빨간 숫자였다.





심상치 않았다.

1년 전 검사와는 정말 다르게 많은 부분이 '기준 이상'이었다. 

허나 아직 젊은 나이에 무슨 일 있겠나 싶은 마음이 컸다. 이제 40대 초반인데 관리 잘하면 저쯤 수치는 그냥 내려오겠지라는 생각이기도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직접 의사와 면담하길 권했다. 그리고 추가 검사까지.
그 많은 수치 중 문제는 심장이었다.
좌심실이 비대하단다. 심장이 커졌기에 심장초음파를 통해 확인해 보자 했다.

불안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 주변엔 심장병 환자가 없었다. 

그저 드라마에 나오는 심각한 병으로 생각하고 살았는데 이때까지도 설마 싶었다.
심장초음파 결과 심장의 기능이 많이 약해졌단다.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의사 말에 그는 연차까지 써가며 옆동네 큰 병원으로 향했다.
홀로 검사받고 의사에게 이야기를 듣는 그 시간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큰 병원은 달랐다. 서울대병원에서 영입한 유명한 심장 전문의가 있는 심장센터가 있었다. 무서웠다. 설마라는 마음에 이미 슬픔이 얹어있는 느낌이지만 표현할 수 없었다.
그는 화를 냈다. 

감추려는 나의 태도에 그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예민함을 한껏 들추며 장난 아니라고 소리쳤다. 

무서웠던 거다. 항상 덤덤하며 남자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그가 이번엔 달랐다.


대단하신 의사도 역시 심장 수술을 권했다.
진단명은 대동맥판막협착증, 심장으로 연결된 대동맥 판막에 석회가 껴서 고장이 났단다.
서울대에서 이름 꽤나 알린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라 정석을 고집하며 이 상태면 더 심각해진다며 겁을 주는데 어느 누가 평온하겠는가. 의사는 시술도 있고 간단한 수술도 있을 텐데 개흉 수술밖에 답이 없단다. 


"심장 기능이 이 정도면 바로 수술해야 해요"


당시 검사에서 그의 심장기능은 30% 정도, 보통 일반인들은 5~60%의 절반 수준이었다.

개흉수술이라 함은 해부할 때나 볼법한 가슴 전체를 잘라 열어야 하는 그런 무서운 수술이다. 

요즘은 절개 부위를 최소화하는 그런 시술, 수술도 많은데 꼭 이것만이 답일까 안절부절 그때부터 눈물이 났다. 이젠 막다른 길에 몰려 소리쳐도 어쩔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치 당장 여기서 심정지와도 이상하지 않다는 의사의 겁주는 말들 때문에..


더 큰 병원으로 갈 것인가, 아님 여기서 끔찍한 흉터를 남기는 수술을 진행할 것인가 계속 되묻고 또 물었다. 그는 수술을 고집했다.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무서움의 반증인 듯 괜히 더 서두르는 그를 설득하려 했지만 가슴 한가운데 20cm가 넘는 수술자국이 신경 쓰이지도 않는지 한번 더 검사를 하자는 나의 제안에도 끝끝내 거부하기만 했다.



설 연휴를 앞둔 날, 

이 결과를 듣고 우리는 끔찍한 설연휴를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엔 온통 이 생각뿐일 테니까.




다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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