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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다임 May 15. 2023

차가운 그날, 뜨거운 눈물

수술날, 보호자의 하루

상상하지 못했던 일은
언제나 갑작스레 일어나는 법



설연휴는 아주 즐거웠다.

이제 막 말을 시작하는 딸아이의 재롱 덕분에 어른들은 하하 호호 웃음이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가벼운 분위기에 무거운 이야기를 하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그는 처음부터 부모님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심장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트라우마로 아버지는 줄곧 그에게 숨이 차진 않냐며 두근거림은 없냐며 질문하며 확인하는 통에 이런 말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흔둘 나이에 벌써 심장이 고장 나다니 아버지가 이 사실을 들으면 아마 30년 전 충격을 배로 받으실게 뻔했다.



우리는 입원예약을 하고 수술날짜를 잡았다. 

설연휴 끝자락에 입원을 하고 연휴 끝나면 바로 수술이었다. 수술 전날 담당의사와 면담을 해야 했다. 

보호자를 꼭 동반하라고 했기에 나는 1시간 40분에 걸쳐 버스를 타고 병원에 향했다. 올 겨울 가장 추운 영하 18도라는 날씨는 내 평생 느껴본 추위 중 가장 추운 날이었다. 장갑 없이 나갔던 탓에 손가락에 동상이 걸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매서운 바람과 차가운 기온이 나를 더 떨게 만들었다. 


나의 눈물샘은 이날부터 고장이 났다.  


의사는 정말 차가웠다. 

웃으며 농담을 건네며 첫인사를 했지만 정말 차가웠다. 면담 전 심혈관 카페에서 주워 담은 짧은 지식을 총 동원해 질문을 했다. 사실 질문을 다 할 수도 없었다. 이미 수술이 결정된 상황에서 보호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질문은 수술에 관련된 것뿐이라는 의사의 따가운 말투에 나는 주눅이 들어 더 눈물이 흘렀다. 울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건만 고장 난 눈물샘은 나조차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몇 안 되는 질문에 나는 그래도 꿋꿋하게 수명이 길고 최근에 나온 새로운 판막으로 수술할 수 있는지 물었다. 의사가 당황했다. 

내가 찾은 기사를 보여주며 이걸로 할 수 있느냐 재차 묻자 이걸로 수술해 주겠다며 인심 쓰듯 대답했다. 

조금 화가 났지만 티를 낼 순 없었다. 만약을 위해 잘 보여야 했으니까. 

계속 흐르는 눈물에 남편이 토닥거리며 울지 마라고 위로했다. 

내가 힘을 줘야 하는데 오히려 위로를 받고 있으니 정말 미안함에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도 무섭고 두려울 텐데 나 때문에 티를 내지 못하는 게 눈에 보였다.



여전히 미안하다. 
그의 두려움을 감추게 만든 것 같아서



2023년 1월 26일

수술날 새벽부터 눈이 펑펑 쏟아졌다.

'하필 오늘 대설주의보라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가 사는 지역에 이렇게 눈이 많이 온건 올 겨울 처음이었다. 

발이 푹 들어갈 정도로 많은 눈 때문에 더 서둘러야 했다. 

수술실 입장은 7시 30분

밤새 쌓여버린 눈 때문에 빙빙 돌아가는 버스 대신 택시를 선택했다. 택시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기사님이 길을 헤매는 탓에 택시를 타기까지 30분이 소요됐다. 한 시간 남짓 남은 시간 빨리 도착해야 한다며 불안한 마음에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집에서 나오기 전 입에 넣은 빵쪼가리 때문인지 울렁거림과 긴장이 한 번에 몰려왔다. 택시 타고 가던 중 우연히 교통사고 현장을 봤다. 새벽 6시 반쯤 역주행 차와 부딪힌 사고차량엔 아직 사람이 있었다. 고요한 새벽 울려 퍼지는 가느다란 클랙슨(크락션) 소리는 매우 간절해 보였다. 신고를 해야겠단 생각에 기사님께 말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조심해야 한다 말뿐이었다. 


차갑다. 정말 차가웠다.





119 전화 한 통이면 될 것을 왜 그리 무심히 지나쳐버린 건지 모르겠다. 

마음이 불편했다.

오늘의 결과가 날씨와 같다면 수술 후 하늘은 맑음이길 기도한다. 

이렇게 중요한 날 찝찝함이 가득한 채 병원에 도착했다.


3층 수술실 앞에서 덩그러니 기다리면서 출근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보았다. 폰을 만지며 커피를 들고 가는 그들의 가벼운 발걸음이 나는 매우 슬펐다. 저들 중 그의 수술을 함께 할 이들이 있을 것인데 가벼운 발걸음이 괜스레 불안해 보였다. 

하나둘 보호자들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부모의 수술, 자식의 수술을 기다리는 이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없었다. 그중에 제일 많은 표정이 나인 것 같다. 눈물이 마르면 또 흐르고 또 흐르는 게 다들 나를 흠칫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보호자 대기실은 공기가 다르다. 전화기 너머로 환자의 심각한 상태를 전달하며 위급한 대화들이 절대 따뜻한 공기를 만들 수 없었다. 실내지만 마치 밖에 있듯 매섭고 차가운 공간이다. 


하나둘 보호자들이 떠났다.

비교적 간단한 시술 환자들은 한 시간 남짓 되어 나가고, 대부분 두어 시간 지나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홀로 남은 대기실, 

여기서 기다려보지 않은 자들은 느낄 수 없는 불안감과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음편)

아픈이와 함께 한다는 것 [3편] - 40분의 심정지 그리고 수술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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