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과거를 돌아보다.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30대 중반에, 정확히는 36살이나 먹고 이제야 나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워커홀릭에게 남겨진 현실. 멘붕.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계획해볼까 싶어 적어본다.
대학 입학 시절 누구나 비슷하듯 뚜렷한 꿈이 있지 않아 대충 점수에 맞추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학교와 전공을 택해서 입학을 했다. 적성에 맞진 않았지만 일단 졸업을 해야 한다고 하니 꾸역꾸역 다녔다. 대신 학교를 다니면서 해보고 싶었던 것은 모두 해보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도전을 했다.
대학방송국에 들어가 라디오 PD, 아나운서, 라디오/뉴스 원고 작가부터 국장까지 참 재미나게 보냈다. 학교에서 열리는 공모전도 모두 참여했다. 에세이를 써서 상을 받기도 했고 지원금을 받아 동아리 활동도 했다.
이때 나는 방송국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다. 정확히는 PD를 원했지만 문턱이 높다는 것을 알았기에 청소부라도 그냥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게 나의 목표였다.
그러나 방송국 본사에 취업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 전공도 너무 동떨어졌고 실력도 부족했다.
내가 취업을 준비할 당시 '아바타'라는 3D입체 영화가 이슈였다. 그래서 영화후반작업을 하는 신생회사에 들어갔다. 열댓 명의 작은 회사였는데 입사하고 워너브라더스, 디즈니의 영화들을 계약하면서 600명 이상의 큰 회사가 되었다. 당연히 초고속 승진을 했다. 24살에 파트장을 하며 밤샘작업은 물론 모든 열정을 다 쏟아부었다. 그렇게 1년 넘게 다니다 문제가 생겼다. 후반작업의 기일을 맞추지 못해 영화사와 소송이 이루어진 것. 작업을 하고 컨펌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너무 깐깐한 기준을 두었다. 인도의 후반작업 업체와 비교했을 때 우리는 너무 고퀄리티였다. 영화 후반작업의 경우 프레임 하나씩 작업하다 보니 정말 많은 인원이 투입되는데 우리가 맡았던 영화들은 인도의 업체와 나눠서 작업을 했기에 그 퀄리티 또한 맞춰야 했다. 그런데 한국인의 특성, 장인정신을 발휘하여 인도보다 잘해야 한다는 욕심, 퀄리티의 자부심으로 인해 일을 그르친 것이다. 결론은 어마무시한 비용지출로 600명의 직원 월급마저 밀리기 시작했다. 월급이 나오지 않아도 몇 달을 더 다녀 거의 2년을 다녔다. 바보같이 잘 될 줄 알고 기다렸지만 3D 영화시장은 점점 사그라들어 잊혀갔다.
그렇게 나의 첫 회사와 이별을 했다.
어린 나이였기에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려 했다. 그런데 이 쫄보는 또 무서웠다. 영어도 못 하는데 가서 어떻게 먹고 자나 싶은 생각에 구직란에서 해외근무를 뒤지기 시작했다. 오? 대학교 때 다녀온 필리핀 어학연수 그 지역에 한인회사에서 사람을 뽑고 있었다. 무작정 이력서를 넣고 면접을 봤다. 실제 한국 사무실은 꽤 조촐했고 너무 불안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생활해보고 싶은 열정 때문에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합격 전화를 받고 1~2주쯤 지나고 바로 출국했는데, 그때서야 가족들에게 떠난다고 통보했다. 좋은 말로 주체적인 삶을 사는 나이고 나쁜 말로 제멋대로 사는 나였다. 처음엔 힘들었다. 필리핀 직원들 사이에서 한국인 관리자는 겨우 둘, 셋 정도이고 날 제외한 모두는 가족 또는 지인으로 구성된 회사였다. 눈물 뚝뚝 흘리며 인터넷 전화로 엄마에게 전화했는데 엄마의 한마디 때문에 휴가에도 한국에 가질 않았다. "네가 선택했으니까 끝까지 해야지" 참 잔인한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니 또 저 말로인해 오기로 더 버티며 특별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때 나의 업무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골프장, 리조트의 자금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고작 26살에 financial controller라는 타이틀에 주주회의에 참석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사실 그냥 경리업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재무제표를 볼 줄도 모르는 내가 회계사와 이야기를 해야 하다니.. 멘붕.
그래서 이때 재무제표 분석, 회계 용어, 회계 보고서 작성 등 참 다양한 공부를 혼자서 낑낑대며 했다. 그리고 매일 은행을 오가며 현지 은행을 다니고 직원들의 월급,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의 흐름을 보는 눈도 생겼다. 직원 숙소에서 아주 편하게 그리고 밤에는 골프를 배우기도 하고 마사지를 받는 아주 편한 삶을 살았다. 그렇게 근무를 하고 휴가 때는 가까운 동남아 여행을 다녔다. 지금 돌아보면 정말 편하게 살았다. 더 있을걸.
향수병이 도졌다. 친구들이 그립고 한국의 거리를 걷고 싶어 졌다. 2년의 해외생활을 마냥 즐기기엔 참 외로웠다. 그래서 필리핀에서 근무하며 이력서를 썼다. 이때 참 운이 좋았던 것은 신생 방송국에 이력서를 돌렸더니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엄마 휴대폰으로 말이다. 필리핀에 있어 당장은 어렵고 2주 뒤에 한국에 들어간다고 했다. 다행히 너그럽게 이해해 주신 상사분께서 2주 후에 면접일을 잡아주셨다. 면접을 가기 전 첫회사의 트라우마 때문에 회사의 재무제표를 확인하고 갔다. 그 회사는 대기업 그룹의 계열사였는데 적자가 아주 심각했다. 당차게 면접 때 이를 물어보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당돌한 신입..) 어쨌든 난 망하는 회사에는 절대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를 좋게 보아준 부장님 덕분에 나는 방송국에 입사하게 됐다. 그러나 처음 원했던 PD는 아니고 PD와 함께 일하는 작가로 말이다. 작가로 지원한 게 아닌데 부장님께서 작가를 제안해 주셨다. (배려를 많이 해주신 참 고마운 분이다.) 그래서 생각지도 못했던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방송작가의 종류도 꽤 여러 가지인데 내가 들어가 일하는 업무는 보통 PD, 기자들과 함께 일하는 취재작가였다. 보도국의 취재작가로 시사프로그램을 만들고, 주로 탐사취재를 했다. 보도국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위해 팀을 꾸리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중이었던 터라 정말 몸으로 부딪히며 기획회의를 하고 섭외를 하고 꽤 고난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세월호의 속보가 TV 화면을 채운 후 방송국은 거기에 올인했다. 결론은 온 국민이 방송국의 이름을 알게 됐다. 뉴스의 시청률 또한 많이 올랐고 일하는 자부심도 꽤 높아져갔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 또 나는 필리핀에서 느꼈던 부족함에 대학원에 진학했고 하루에 잠자는 시간은 겨우 4~6시간으로 버티며 바쁘게 살았다.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 할 것 같은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지방 출장도 많았고 야근, 수업참여, 시험까지 정말 내 인생에 가장 열심히 살았던 순간이다. 어쨌거나 난 20살 때 나의 꿈을 이룬 것이다.
그러나 방송국에서 아니 정확히는 보도국에서 작가로 일하며 한계를 느꼈다. 작가이지만 작가 같지 않다고 느꼈다. 무조건 기자와 팀이 되어 일해야 했기에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결혼준비를 하며 추가된 고민 한 가지. 배우자는 빨간 날, 연휴 다 쉬는 직장이었고, 나는 방송국이기에 주말도 당직이 있었고 연휴에도 당연히 출근해야 했다. 만약 결혼을 하면? 이런 상상에 사실 조금 싫었다. 그래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 방송국에서 퇴사를 결심했다.
방송국을 퇴사했지만 틈틈이 방송 알바를 했다. 자막을 써주고, 섭외를 해주는 등 그러며 몇 달은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다. 일을 쉰 적이 없다 보니 참 불안했다. 그리고 이력서는 대기업 위주로 지원했다. 여러 절차가 있는데 서류 통과가 되어도 시험에서 낙방하기를 여러 차례.. 이젠 그냥 포기하려는 찰나에 교육회사의 면접을 보고 합격 전화를 받았다. 일단 출근했다. 인수인계를 받았고 업무를 쭉 둘러보니 숨이 막혔다. 주체적이지 못 하다는 것에 한계를 느껴 퇴사한 방송국인데 일반 회사는 더 심각했다. 변화를 싫어했고 상사가 원하는 걸 맞춰 논리적으로 보고서를 아주 잘 써야 했다. 폰트, 크기, 줄 바꿈 등 모든 것 하나 다르면 안 되는 그런 회사였다. 여기도 사실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회사다. 근무를 하며 느낀 것은 내가 고객일 때와 직원일 때는 정말 하늘과 땅차이다라는 것, 직원들의 퇴사가 왜 많은지 나는 알겠는데 윗사람들은 왜 모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나는 출판기획, 쉽게 말해 책의 표지 디자인, 문구, ISBN, 홍보문구 등 출판되는 과정과 그 후에 필요한 업무들을 했다. 참 재미있는 일인데 틀에 박혀있다는 점이 아쉬웠다. 업계 1위인데 조만간 뺏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다니며 내 일을 해보고 싶다란 생각이 컸다. 이해되지도 않는 윗사람의 말대로 할 거면 로봇이 일해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에 주체적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야 내가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돈도 많이 벌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를 다니며 정말 다양한 수업을 들었다. 부동산 경매, 창업 등 퇴근 후 오프라인 강의를 들었다. 남들 모르게 퇴사 준비를 했던 것이다. 어쨌든 다양한 수업 중 실전을 포함한 온라인 위탁판매 강의를 들으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개설하게 됐다. 이때가 2019년 도라 지금보다는 경쟁이 덜 치열할 때였다. 운이 좋게 위탁이었지만 상위노출이 되면서 매출이 대박이 터졌고, 강의 들은 지 6개월 실제 업로드 3개월도 안돼서 순이익 기준으로 회사 월급을 뛰어넘었다. 이때 남편과 이자까야에서 축하주를 하는데 우리가 부자가 될 거란 상상에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하하. 처음에 세팅하고 고생한 것에 비해 결과가 넘 빨리 나와 신이 났다. 하지만 난관은 언제나 있는 법, 주문이 밀려도 재고가 없어 계속 취소연락을 돌려야만 했다. 위탁판매는 내가 상품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재고 파악이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위탁판매 스토어를 유지하면서 스토어를 하나 더 개설하여 여성잡화 판매를 시작했다. 이것도 참 운이 좋지, 동대문 사입 실습을 가서 사장님들한테 인사하고 가방을 보다가 우연히 샘플을 주신 사장님이 계셨는데 한번 올려볼까? 하고 올린 가방이 또 주문이 하나, 둘 늘어났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투자한 노력에 비해 결과가 참 좋았다. 운이 참 좋았다. 2개의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했지만 실제 업무를 하는 시간은 회사 다닐 때와 비교했을 때 정말 적었다. 얽매이지 않고 일할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이걸 하면서도 강의는 계속 들었다. 이베이셀러 양성과정을 들었는데 이 또한 매출이 빨리 나왔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져 해외배송이 어렵게 됐다. 물건을 보내도 받지 못하거나 아예 보낼 수 없게 되어 이베이는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접어야 했다. (이때 벌었던 달러로 해외여행할 때 아주 쏠쏠하게 사용했다.) 그리고 창업공모전, 지원사업 도전도 꽤 여러 차례 했고 심지어 상도 받고 지원금도 받았다. 회사를 나와서도 참 분주하고 일을 찾아 하는 스타일이라 항상 바쁘게 살았다.
그렇게 사업을 유지하던 중 갑작스러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모든 것을 멈추었다. 아기가 돌이 될 때까지도 스토어는 유지했지만 어린이집을 가지 않고 가정보육을 하면서 아이의 활동반경이 넓어지니 CS를 할 수도 없고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시간도 너무 제약이 되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결국은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스트레스 최소화 전략이라 생각하고 멈추었다. (지금은 사실 후회한다.)
그렇다. 모든 것을 멈추었더니 이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현실이다. 남편은 '예전에 해봤으니까 다시 시작하는 건 쉽지 않아?'라고 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일을 쉬었던 지난 1년은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고 트렌드를 파악해야 하는데 너무 어렵다.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감이 떨어졌고 홀로 하려는 두려움이 조금 큰 상태이다. 나에게는 정확하게 하루에 5시간의 자유시간이 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사무실에 나와 점심을 컴퓨터 앞에서 간단히 해결하는 조건으로 했을 때 말이다. 그리고 추가로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잠자는 시간에 내가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생각이 많아서인지 열정이 없어서인지 아님 정말 간절함이 부족해서인지 실행하는데 오만가지 망설임을 한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는데 참 많이 변했음을 느낀다. 막무가내로 행동 먼저 하던 나라서 다양한 경험도 하고 빠른 결과를 가져왔다고 자부했는데 이젠 아니다. 겁쟁이가 다 되어버렸다. 남편에게 나의 속마음을 말했더니 " 그냥 해! 일단 해봐! " 그런데 나는 또 안될 이유를 찾고 있는 게 아닌가... 병이다 병. 난 병에 걸린 것이다. 치료가 시급하다 생각해서 요즘은 쉼을 가지고 있다. 천천히 나를 돌아보며 앞으로 미래를 그리기 위해 말이다.
A4를 꺼내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일을 적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회사를 다시 가기는 어려운 상황이기에 1인 사업가의 길을 가야하는데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도통 감이 오질 않는다.
뭐든 일단 시작해야하는데 나는 행동하고 있지 않다. 문제를 파악했으니 이제 바꾸면 되는데 영 쉽지가 않다. 내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스트레스만 쌓이고 점점 작아진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유튜브의 긍정확언, 미라클모닝, 음악 듣기, 명언 찾아보기 등 나름 멘탈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무엇을 할지 천천히 정리하며 글로 옮겨보려 한다.
오늘도 역시 고민만 하다 끝났지만 과거를 돌아 나를 보았으니 그래도 무언가 나를 더 알아간 느낌이다.
거북이여도 한 걸음씩 앞으로 간다면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정상에 갈 수 있겠지?
나만의 속도로 한번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