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걸까? 무엇을 성공이라고 하는 걸까? 하고 싶은 일을 좋아하는 정도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고,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겨우 성공할까 말까 한다는데, 나는 과연 무엇을 사랑하는 걸까. 남편과 아이를 사랑하니까 결혼 생활은 성공인 걸까? 중요한 건 내 마음뿐일까? 남편과 아이의 행복이 거짓은 아닐까? 나의 사랑은 진실일까?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 어느 정도의 마음이어야 하는 걸까? 열일을 제쳐두고 좋아하는 것을 향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지 않을까. 다른 디저트들을 모두 제쳐두고 아이스크림을 고를 테지만 아이스크림을 사랑한다고 할 순 없는데 그 정도로 마음을 쏟아도 겨우 좋아하는 거라면 대체 사랑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나는 글 쓰는 일을, 사랑이 뭐람, 좋아하지도 않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에 설거지를 마치고 글을 쓰기 시작하려고 했는데, 영어 공부를 하고 나서 쓰기로 하고, 밥을 먹고 나서 쓰기로 하고, 커피를 마시며 드라마를 딱 한 편만 보고 쓰기로 하고는 두 편을 보고, 아이 학원 픽업을 다녀와서 쓰기로 하고, 저녁을 만들고 쓰기로 하고, 저녁을 먹고 난 후에 쓰기로 하고 마침내 노트북을 열었다. 문서 파일을 여는데 컴퓨터 저장공간이 모자라다고 여유공간을 확보하라고 해서 사진앨범을 보며 삭제할 사진을 찾다가 추억에 잠기고, 뉴스를 보고, 연휴를 버틸 장을 보고, 이 몇 줄을 쓰는데 하루가 걸렸다. 자꾸만 글 쓰기를 미루게 된다. 백지를 보면 뭐든 고백해야 할 거 같은데 진실하고 싶지 않다. 내 안을 들여다보고 솔직해지고 싶지 않다. 그러다 보니 점점 할 말이 없어진다. 솔직한 얘기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내 얘기는 어떤 것도 꺼내놓고 싶지 않아서. 진실하지 않은 고백은 아무 의미가 없는데 나는 진실하고 싶지 않다. 진실 타령이 시대에 뒤떨어지는지도 모르겠다. 공모전 스터디 합평 중에 ‘이 캐릭터에서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가 비웃음을 산 게 벌써 십 년도 더 전이다. 물론 즉시 진실된(진실 너무 좋아하네) 사과를 받아냈다. 얼마나 더 잘 꾸며내는지, 얼마나 추한 모습을 잘 감추는지가 중요한 세상이다. 소셜미디어의 인테리어 잡지 속 사진 같은 게시물의 프레임 밖은 전쟁통인 것처럼. 거짓말에는 별로 소질이 없는 편이다. 별 것도 아닌 거짓말은 아무렇지도 않게 할 때가 있는데 정작 거짓말이 필요한 순간에는 진실을 토하는 약이라도 먹은 듯 내 의사와 상관없이 사실이 튀어나온다.
요즘은 즐거운 일이 하나도 없다. 길을 걷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 길에 서있는 사람 중에 내가 제일 가난한 거 같고 내가 제일 늙고 초라한 것 같다. 우연히 엄마의 거짓말을 알게 되었는데 그 거짓말을 모르는 척하고 엄마를 보기가 힘들어서 피하고 있다. 엄마의 거짓말이 쌓이고 쌓여서 내 인생을 붕괴시킬 거 같아 무섭다. 겉보기에 너무나 만점짜리 같은 우리 아이는 사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생활비를 열심히 줄이는데도 몇 달째 매달 마이너스다. 오늘 마트에 갔다가 장애가 있는 아이를 데리고 온 아이엄마를 보며 나의 불행에 대한 위안을 얻었다.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한 내가 너무 싫어서 속으로 저주를 퍼붓다가 그 정도의 저주는 안 되겠다고 취소하는 내가 지겨워서 울고 싶었다. 어쩌면 내가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내 안의 어린이와 화해하고 어쩌고 내 안의 어린이를 안아주고 어쩌고 그런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 말고 그냥 진실하지 않고도 성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