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疏通)
[명사] 1.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내가 아는 소통의 의미는 서로서로 쌍방향으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5년차가 넘어가니 소통이 순수한 의미의 대화로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사회생활뿐만이 아닌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지긋지긋한 현상이다.
'소통강요'라고 명명하고 싶은 이것은
주로 상사/손윗사람/어른/높은 직위로 보이는 사람들이 자신보다 아래라 여겨지는 사람에게 강요하는 행위이다.
"난 소통을 좋아해."로 시작하여
수많은 블라블라를 거쳐 "그러므로 너는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끝난다.
하지만 단순히 이것이 그 어른들의 취향을 선포하는 것이 아님을 많은 사람들이 알 것이다.
나는 직설적인 대화를 참 좋아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소위 꼰대라 불리는 어르신들은 왜 직설적이지 않은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앞으로도 이해할 생각은 없지만 일종의 '꼰대어'에서는 "나는 A를 원한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때문에 꼰대어 번역 능력을 키우기 위한 사회생활이 필요하다.
꼰대어로 "나는 B를 좋아하지만 A가 더 괜찮은 것 같다."라는 말은 "나는 A를 원한다."는 뜻이다.
꼰대어로 "나는 A가 별로일 것 같지만 다른 대안이 있으면 의견을 제시해보라."는 말은 "나는 A를 원하니 당장 내가 원하는 말을 해."라는 뜻이다.
꼰대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꼰대와 오랫동안 대화 or 지시를 받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꼰대가 꼰대어를 사용한 후 원하는 행동이 나오지 않는다면 내 입장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짜증과 꼬투리를 잡기 시작한다.
이같이 꼰대어는 B를 말하면서 A로 답하길 원하고, 이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감정적으로 해당 사람을 괴롭힌다.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눈치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눈치'가 필수가 된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기성세대의 잘못이 크다.
이것이 잘못일수밖에 없는 이유는
일 잘하고 눈치없는 회사원보다 일 못하고 눈치좋은 회사원을 아끼기 때문이며,
정말 눈치 좋은 사람은 적당히 눈치 없는 척 하며 일거리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함께 더 좋은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가기 위한 협력으로서의 소통이 아닌 '이 사람을 거스르면 안되니까'에서 시작된 소통은 첫단추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소통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소통 자체의 의미로서는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소통에 질린 사람들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