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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structionist Aug 25. 2024

광주 아문당 연극 <거의 인간> 관람 후기(별이 다섯개

인공지능이 발전한다면 이런 사회일까? 기술, 연기, 연출 모두 인상깊었다

광주에서는 연극 공연이 올라가는 일이 몇 없는데(주로 기분좋은 극장에서 보곤 함) 대학 동기의 소개로 아문당(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줄임말)에서 진행하는 연극 <거의 인간>을 보러가게 됐다.

사실 보러가기 전까지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사전에 정보를 알게 된 기사가 연극을 영 예술적이게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거의 인간>은 수현과 재영이라는 두 여성 예술가가 기술과 과학의 발달로 변화하는 예술계에서 창작자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작가인 수현과 발레리나인 재영은 각자의 장르에서 대체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며 변화를 꾀한다. 인공지능(AI)에 의한 글쓰기, ‘인공자궁’이라는 소재로 사회윤리적,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정의되지 않은 신인류를 무대 위로 불러올 예정이다.

출처 : 더프리뷰(http://www.thep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19)


사회윤리적,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정의되지 않은 신인류를 불러온다는 기사의 내용부터 뭔가 '아,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실제로 본 연극은 웬걸, 너무 재밌는 것!


내 기준 '예술적이다' 혹은 '철학적이다'의 기준은 예술가가 말하는 바를 언뜻 이해는 하지만, 해당 예술가에 대한 공부가 없으면 작품에 대해 심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설명하면 이해하겠는데 그게 아니면 좀 어려운데...?'라고 생각하는 수준이다.

예를 들면 이동진 영화평론가님의 별 5개 영화 정도에 대한 어려움 정도랄까

별이 5개라니! 하면서 멋모르게 따라서 봤다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공부하면서 보거나 언택트톡에서 설명을 열심히 들으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이동진 영화평론가님의 별 5개 영화 중에서도 너무나 잘 이해되면서 재밌고, 생각할만한 질문도 잊지 않고 쏙쏙 던지는 영화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괴물>, <빅 피쉬>, <다크 나이트>, <박쥐>, <컨텍트>, <헤어질 결심> 등이 그러했다(이외에도 많지만 대표적으로).

미술작품 중에서도 이런 작품들이 있는데, 어려운 주제와 내용을 스토리텔링과 눈에 딱 들어오는 의도로 쉽게 전달하는 작품들이 오래 여운이 남는 것 같다. 그런 작품은 가장 최근 생각나는 건 국립현대에서 봤던 올해의 작가상 2023의 전소정 작가의 <싱코피>와 리빙레전드 정연두 작가의 현대차 시치즈 <백년 여행기> 정도인 것 같다.

왜 갑자기 예술적이지만, 청자에게 잘 전달하는 작품에 대해 열거하고 있냐면

이 작품 또한 그러했다는 부분에 대해 간접적이나마 전달하고 싶어서이다.


사실 이 연극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소재는 사실 그렇게 미래지향적이라거나 희망찬 미래에 대한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적 사고, 맞다. 처음 기사에서 본 '사회윤리적,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정의되지 않은 신인류를 불러온다'는 내용이 정확했다.

이 어려운 표현을 연극을 통해 이렇게 직관적이면서도 많은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니, 짜임새있는 대본과 대담한 연출, 긴장감 넘치는 음악, 직관적인 연기 모두가 맞아떨어져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연극이었다.


작품에 대한 총평은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작품을 보면서 느낀 나의 감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작품에서는 이야기하는 바가 크게 3가지이다.

1. 기술과 인공지능이 발전하며 그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가

2. 인공지능에 의지하여 삶을 영위할 경우, 인공지능의 주장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해질 수 있는가

3. 법과 질서는 기술을 따라오지 못하지만, 인간의 의식과 생각은 과연 그보다 앞서는가

사실 이보다 더 다양한 이야기(여성 인권과 가부장제에 대한 고찰 등)가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위의 3가지 주제 안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보았다.


먼저 이야기는 작가인 '수현'이 근무했었던 황금용 출판사에 불려가면서 시작된다.

선배이자 출판사 사장인 '복희'는 작가 '수현'에게 인공지능 소설 작가(프로그램) '지아'의 멘토를 요청한다. 탐탁지 않았던 작가 '수현'이었지만, 돈과 자신의 욕망(자신의 작품을 쓰고자 하는)으로 이를 수학하여 AI 작가 '지아'와 함께 작품을 쓴다. 하지만 출판사 사장은 작가 '수현'의 바람과는 달리, 작품을 책이 아닌 게임의 형태로 판매하게 되고, 이에 불만을 가진 작가 '수현'은 저작권 침해 및 함께 작품을 쓴 AI 작가 '지아'를 돌려달라 요청한다. 하지만 AI 작가 '지아'는 이미 자체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하여 '지아'에서 '신유'로 달라지게 된다. 

한편 발레리나이자 교수인 '재영'은 목사 남편인 '인수'의 설득으로 고민 끝에 인공자궁을 통한 임신을 결심했지만, 목사 '인수'의 바람으로 큰 상처를 입고, 발레리나 인간문화재 시험에서도 탈락한다. 이후 '재영'은 자신의 결심을 후회하며 인공자궁을 해치고, 낙태법에 의해 실형을 살게된다.

AI 작가 '신유'와 이를 이용하는 출판사 사장에게 상처받은 작가 '수현'과 인공자궁의 임신으로 인해 혼란을 겪던 '재영'이 함께 합작으로 자서전을 출간하게 되고, 이것이 대박을 치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성공사례를 방송에서 말할 기회를 갖게 되는데, 하필 해당 방송은 인공지능 MC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AI 소설가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도 많은 창작에 GPT가 쓰이고 있고, 실제 GPT를 비롯한 AI를 활용한 작품들이 양산되어 출간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배경인 2032년에는 아예 AI 소설가를 위해서 인간 작가가 소설을 잘 쓰기 위해 키워드와 내용을 제시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저작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인간 작가를 향해 AI 작가가 자신의 창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야 마는 것이다.

이 과정을 보면 흥미로운 것이, 과거 AI가 발전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과 사라지지 않을 직업을 꼽았을 때, 사라지지 않을 직업의 대표적으로 대두된 것이 바로 인간의 창작과 예술성이 포함된 직업이었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현재 가장 많이 AI 분야에서 활용되는 것이 바로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실제 방송과 편집에서 너무나 많은 AI 글쓰기가 활용되어 이를 인간이 편집하는 수준이라고 하니, 2024년에서의 AI가 이정도 수준이라면, 작품에서 말하는 '지아'는 어쩌면 지금 개발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AI의 창작성과 데이터를 모아 활용하는 능력, 적재적소에 맞춰 표현하는 것은 모두 AI가 판단했을 때 그러한 데이터가 옳다는 빅데이터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출판사 사장인 '복희'도, 인공지능을 최대한 이용하자는 '인수'도 모두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기능보다 우수하며, 이를 통해 어찌 보면 '영생'을 꿈꾼다고 말하는 것도 같다. AI를 도구로 삼은 인간의 영생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불편한 것은, 어찌보면 유한하고 한정되며 한계에 부딪히는 인간이 이를 극복하거나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유한한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간다움임을 표현한다고 이야기하는 작가 '수현'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어서일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와 맥락을 같이 하는 인공장기, 자궁 적출 등의 이야기는 인간이 본인의 삶을 조금 더 편하고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이러한 수단의 양면성으로는 수단으로서의 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인간다움을 해치고, 인간으로서의 생각과 삶을 방해하고 있었다. 일례로 '인공자궁을 통한 출산'이 너무나 상용화되면서 '낙태법'이 부활했다는 부분이다. 자신의 편의(생리를 하지 않는다는)를 위해 자궁을 적출하지만, 인공자궁을 통해 출산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부분이 얼마나 기술에 인간의 몸을 의지하고 좌지우지하게 할 수 있는 지점인지를 알게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낙태법이 이로 인해 부활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낙태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것을 오롯이 기술의 발전에 의해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 법이 부활했다는 것이고, 이를 보여주는 연극의 태도 또한 상당히 강압적인 법률 묘사로 이어진다. 

AI 검사, AI를 통한 판결 예측 등 인간이 AI에게 입력한 데이터의 기저가 어떠한 것인지를 연극을 보면 알 수 있다. '낙태는 잘못된 것'이며, '그 사유가 어떠하든간에 그것은 살해'라는 부분에서 굉장한 강압을 엿볼 수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AI를 대표하는 목사 '인수'와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며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작가 '수현'이 대립적으로 그 입장이 각각 뚜렷히 보이는 것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강의를 일선에서 듣고 있는 사람으로서, 현재 작품에서 보여주는 모든 기술적인 발전은 가능해 보인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없고, 기술적으로 불가능해보이는 부분도 없다.

그렇기에 작품에서 제시하는 이야기가 더욱 직접적으로 와닿는 것 같다.

분명 인공장기가 기술적으로 안정성에 보장이 된다면, 사람들은 이를 계속 갈아끼우면서 그 누구보다 오래살기를 도모할 것이며, 이는 여자남자 할 것 없이 장기를 빼거나 넣는 것 또한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출산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법은 원론적인 법적 테두리를 요구할 것이며, 이러한 핵심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인공지능은 원론을 뒤집을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AI는 빅데이터와 딥러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AI를 활용한 세상은 AI를 활용할 수 있고,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는 권력층에게 계속해서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며, 이와 반대로 피지배층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 종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될 수도 있다. 이로인해 사람들은 본인의 자궁에서 꺼낸 난자로 임신을 하고, 남편이 외도를 하더라도 낙태만은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며, 자신이 아이디어를 냈다 하더라도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소유를 주장할 수 없는, 혹은 자신의 의견에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끔찍하지만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또한 흥미로웠던 지점이 바로 시각적인 연출과 음악적인 연출이었다. 요즘 연극에 맞게 사방 LED와 화면으로 구성된 연극은 소수의 인원으로도 다수가 함께하는 것 같은 효과를 주었고, 극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미 녹화된 내용을 가지고 함께 연기하는 것이겠지만, 그 타이밍과 상황에 맞는 연기는 실제 통화를 하거나 상대방에 현장에 있는 것 같은 현장감을 주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깊었던 건 음악이었는데, 중간중간 화면이 트랜지션될때마다 나오던 그 사운드는 극의 긴장감을 높여주었고, 작품의 고저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장치였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인공지능과 인터뷰 후 사방의 가림막이 열리는 연출은 마치 '이제 알겠지? 다 까발려봤으니, 이제 네 차례야'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실제로 마지막에 '재영'과 '수현'이 성공하여 인터뷰를 하게 되는 장면은, 어떻게 보면 영화 시카고의 마지막 장면 같기도 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마치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는(실제로 인간이 쓴 글이 정말 히트했을까?) 연출과 AI(기술)와의 사투를 벌이며 쓴 그들의 글이 어쩜 AI와의 인터뷰로 진행된다는 지점에서 말이다. 마치 환상같기도 하였지만, 반대로 이 작가의 포부? 같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자, 이제 여기까지가 나의 해피엔드야. 라고 말이다.

인간이 인간의 생각으로서 맺을 수 있는 해피엔드.


이 작품을 통해서 기술의 발전이나 AI에 대해 조금 더 윤리학적? 철학적으로 고찰해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뒷자리에 앉은 시끄러운 학생들만 없었어도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집중에 방해되어 참 아쉬웠다는... 모두들 관람 예의를 지켜줍시다.. 집중하는 사람을 위해서요.

일단 아문당 웹진도 구독했고, 이후에 있을 좋은 공연은 꼭 보러 갈 참이다. 좋은 공연을 보면 또 리뷰를 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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