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생 집에 얹혀살기 시작한지 벌써 3주가 지나가고 있다.
약 3주간의 서울 생활의 느낀점은 다음과 같다.
1. 어딜 가나 생각보다 사람이 훨~~~~~~씬 많다.
2. 그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남들한테 관심 없고, 무관심하면서도 개인주의적이다.
3. 일하러 갔더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만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별별 헛소문이 퍼졌다.
4. 퇴근 후, 쉬는 날 볼 거리와 놀거리는 몹시 많지만, 지방보다 1.3~2배 정도 비싼 물가 때문에 조금만 놀았을 뿐인데 지출 비용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만다.
5. 서울에서 적당한 휴식과 쉴 공간(집), 원하는 취미/여가를 보내려면 월 500은 필요할 것 같다.
사실 서울살이 잠시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가까운 곳에 미술관, 뮤지컬, 연극 등의 원하는 문화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인데,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내가 보러 간 문화 생활은 다음과 같다.
먼저는 서울 짐싸들고 올라오기 직전에는 god 콘서트를 가서 오랜만에 초중딩 때 좋아했던 god 노래를 맘껏 따라부르면서 콘서트의 즐거움에 눈을 떠버렸고, 뮤지컬 킹키부츠를 보러가서 유튜브에서 느끼지 못하는 신남을 느끼면서 마음껏 소리지르고 놀았으며,
전기자전거를 사서 한강을 달리면서 왜 서울 사람들이 그렇게 한강을 사랑하고, 한강에서 살고싶은지 대충 그 마음을 이해했으며, 식스센스에서 진짜 재밌게 보고 찐으로 가보고 싶었던 연남동 몽중식에 2번이나 찾아가 9품 페어링을 즐겼다.
그리고 어제 다녀온 우연히 웨스 앤더슨 2 와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
솔직히 웨스 앤더슨의 경우 인터파크에서 할인해서 다녀오긴 했지만, 진짜 신기한 지점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돋보기로 화면을 보면 화면 안에서 움직이는 다른 형상을 보여준다거나,
벨을 누르면 카드키를 줘서 해당 카드키를 전시회 내부 다른 장소에서 확인하게끔 해서 메시지를 확인하는 등
인터렉티브한 요소들이 많아서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고, 무엇보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소위 '인스타용 사진'을 위한 포토 스팟들이 곳곳에 존재했다.
사실 곳곳에 존재하는 '떠나라!'나 '여행지는 곳곳에서 당신에게 의미를 주어요'같은 등의 메시지도 보고, 색색의 사진과 구도 등에서 감탄하긴 했지만, 뭐랄까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전시는 아니어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그래서 아쉬운 김에!
가까운 국립현대미술관에 가자! 해서 냉큼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가는길에 가까운 교보문고에 들려서! 한강 작가님의 다른 책도 사고! (소년이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밖에 없어서)
또 띠지를 보고 냉큼! 아씨 이건 미쳤다! 언제 노벨문학상 수상 띠지 있는 책을 사겠어! 이러면서 냉큼 결제.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에 가서 25일부터 시작한!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를 보러가게된거!
세상에! 오픈한지 하루밖에 안된 따끈따끈한!
근데 들어가자마자! 도슨트가 설명을 해주고 계시는거!!
그래서 또 냉큼 들으면서 따라갔지!
첫 번째는 윤지영 작가님이었는데, 처음에 직관적으로 느끼기에는 굉장히 기괴하고 불편한 마음을 건드리는 작품으로 느껴졌다. 그도 그럴것이 내장으로 보여지는 다양한 오브제나 그물로 엮여진 형상 등이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줬으니까. 그런데 보면 볼수록 작가님이 그 불편한 감정을 더 자극해 사람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보다 더 생각하게끔 하는 지점이 있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이 <호로피다오>와 <간신히 너, 하나, 얼굴> 작품은 연결 선상에 있는 것 같다.
앞서 말한 불편한 감정이 내가 생각했을 때에는 내가 여성이라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기도 하며,
분명 작품의 처음은 '괜찮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그 괜찮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만큼 그 상대가 '괜찮지 않은 상태'에 놓여지 있는 것이 느껴져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 불편함이 더 나에게 강하게 다가오는 것은 내가 그 불편함에 대해서 말로는 저항하지만, 실제로는 저항하지 못하는 나약한 사람이라서 그 불편함이 더 다가오는 것 처럼도 보였다.
마치 '불편해도 어쩌겠어! 괜찮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해서라도 괜찮아지는게 낫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약간의 희한한 위로 같은 것을 받기도 하였는데, 뭐랄까 동질감에서 오는 '야, 그래도 너도 그만큼 힘들구나'라는 느낌의 위로를 받았다.
작품을 처음 봤을 땐 분명 불편했는데, 그 불편함이 위로까지 줘버리다니. 그런데 이 위로를 받기 위해서는 분명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호로피다오> 작품을 끝까지 다 본 후에 전시실 바깥에 있는 작가님의 인터뷰를 꼭 보기를 추천한다. 작품에서 다 말하지 못한 부분까지 전해져오니, 내가 그 인터뷰까지 다 본 후에야 사실 그 위로를 온전히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작가는 권하윤 작가님인데, 이 작품은 백문이 불여일견!
반드시! VR 작품 예약을 하고 가길 추천한다! 예약 링크는 다음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1247692
내가 도슨트 설명을 듣는 도중이라고 했잖음? 들으면서 따라가는데 권하윤 작가님 작품은 미리 사전에 예약을 해야된다는 애기를 듣자마자 미친듯이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바로 예약 들어갔고,
당일(토요일) 17시 30분 예약 1자리 남은걸 발견하고 재빠르게 예매 ㅋㅋㅋㅋㅋㅋ 나는 개빨랐다.
사실 권하윤 작가님 다른 작품도 좋긴 좋은데(특히 증거부족) 너무 월등하게 <옥산의 수호자들> 작품이 좋아서, 이 작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일단 이 VR 작품은 관람객이 직접 작품 안에 들어가서 청자로서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행하는 작품이다.
VR 기기를 착용하고 헤드셋을 끼면 나는 화자가 들려주는 스토리 안에 들어가게 되고, 내가 들고 있는 등을 가지고 그 사건 속에 들어가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는 동물들과 반딧불이, 나방(나비?)를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대만 소수민족 부족들은 언어가 없어서 소통하기 힘든 상태에서 일본의 인류학자가 찾아가 그들과 전쟁을 초월한 우정을 쌓게 되는데, 이 이야기가 마치 한일관계 같으면서도 또 다른,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다른 인류애를 느끼기도 했다.
또 다르게 생각하면 당장 우리가 보는 드라마에서도 이러한 논란이 하루이틀 있었던 것이 아니기에(당장 미스터션샤인만 생각해도 그렇다.) 그들의 이야기가 국가와 배경을 모두 지운 채 채그저 사람-사람간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하면 그저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작가님이 이야기하는 그 뒤에 이야기하는 역사성을 그저 무시할수만은 없으며,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국가와 관념과 문화 또한도 무시할 수 없기에, 그들이 소통하는 그 이야기와 사진과 배경에 있어 대만의 그 부족을 VR 자연으로 재현하여 보여준 것이 아닌가 싶다.
자연 속 동물들과 곤충들이 나에게 따라오라며, 보여줄 것이 있다고 하는 그 움직임이 오히려 사람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간접적으로 표현해보일 정도였다.
내가 이 작품을 하러 갔을 때 마침! 기계가 말썽인 거다!
그래서 한 10분?을 넘게 기다렸는데, 아니! 작가님이 오시는거!(작가님 인터뷰를 보고와서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ㅋㅋㅋㅋ)
내가 하는데 오류가 몇 번 났는데(내가 뭘 잘못누른것 같기도 하고), 목소리가! 작가님같은거!
그래서 냉큼 체험 끝나고 기다렸다가 작가님한테 사진찍어달라고 했다 ㅋㅋㅋㅋㅋㅋㅋ
솔직히 내가 겪고 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어려움에 대한 부분도 다시 생각하게끔해서 그런지, 계속 곱씹어보게 되는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 뭣보다 VR로 이런 작품 체험이라니! 개쩔잖아!
나처럼 호기심 많은 인간은 진짜 작품 보러 볼때마다 만져보고싶고, 궁금한걸 확인하고 싶은데, 이건 들려주고! 다 설명해주고! 내가 보고싶은데 다 볼수있고! 꼭 보라는데 안봐도 되고! 다각도로 확인도 되고! 진심 미래 작품이 표현된다면 이거다! 싶었을 정도
작가님께 바로 '오늘부터 팬 됐어요. 사진 한번만 같이 찍어주시면 안될까요?'라고 애걸해서 같이 사진을 찍었다 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이 전시를 총 3바퀴를 돌아서 지금 조금 헷깔릴수도 있는데, 내가 전시를 다음과 같이 보았다.
먼저는 첨 들어가자마자 도슨트 투어를 했고(이 때 예약 바로 성공), 재입장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역주행해서 처음부터 작품들을 엄청 찬찬히 살펴보았다(영상도 많이 보고).
역주행해서 2회차 볼 때 VR 작품 언제쯤 와야되는지 직원분께 여쭤보니, 시간이 좀 많이 남은 시점이라(2시간 이상 남았었음) 포스트잇으로 메시지를 하나 써주셔서 한 번 밖에 나갔다가 재입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2회차 끝나고 밖에 나가서 작가님들 인터뷰 영상을 쫙 돌려보고 난 뒤에 3번째 입장해서 인상깊었던 작품들 사진이랑 영상 찍고, VR 체험도 왕 재밌게 하고 나왔다.
총 관람시간 거의 4시간쯤 되었던 것 같다. 무척 재밌었다.
그리고 이어서 세 번째 작가는 양정욱 작가님이었는데,
내가 진짜 좋아하는 키네틱 작품, 그것도 엄청 대형 작품들이 줄지어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그 규모에 압도됐는데, 심지어 작품이 표현하는 것이 인간, 삶의 모습이라고 하니.
더 그 소박한 어마어마함에 혀를 내두를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참 좋았던 것은 친절함이었는데, 작품 곁에 항상 작품 노트가 함께 있어서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텍스트로도 함께 전달해주었다.
내가 인상깊었던 작품은 <서서 일하는 사람들 #9>였는데,
노트 텍스트에서 보는 것처럼 이 작품은 주차 안내원이 된 사람을 표현한 작품이다.
저 장난감같은 나무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주차 안내봉을 흔들며 '이쪽으로 오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무토막처럼 삐꺽대기도 하면서 기계같은(실제로 기계이지만) 움직임이 보는동안 아빠를 떠올리게 해서 약간은 콧잔등이 찡했었다.
실제 아빠가 주차 안내를 하시지는 않지만 뭐랄까 그 미디어를 통해 느껴진 보편적 가장의 표현방식 같은거랄까.
다른 작품에서 이야기하는 농사, 삶, 사업가 등의 이야기도 물론 재밌었지만 내게 엄청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래도 규모에서 오는 마주함이 굉장한 작품이었다.
보다보면 '물레방아가 있는 어느 시골의 풍경'이 떠오르는 그런 작품이었으니까.
작가가 이야기하는 바람 한 점 없고, 물 한 방울 없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신기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작가는 제인 진 카이젠!
MMCA에서 최초로 한국 국적이 아닌 덴마크 국적으로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히려 작품을 보면 가장 한국적이고, 소재나 스토리 모두 가장 한국을 잘 보여주는 작업들을 보여주었다.
모든 작품은 제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모두 영상 작업이라 그런지 사진이나 영상을 안 찍었다.
그도 그럴게, 작가님의 방에 들어가면 그 전체를 봐야하는데, 사진따위로 담길 그런 분위기가 아니긴 했다.
커다란 방 전체에 영상 작품이 동시에 재생되는데, 한 쪽에서는 커다란 소라를 확대해서 보여주고, 한 쪽에서는 장례식이, 한 쪽에서는 해녀가 나오는 등 굉장히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제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같았다.
이 공간에 오래 있으니 잠깐 바닷가 짠내가 착각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돌아다녀서 피곤해서 그랬나!) 굉장히 제주의 바다 전체를 담으려는 듯, 좀 포괄적으로 느껴지는 그런 작업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보면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가 계속 떠올랐는데, 4.3을 함께 소재로 하기도 했거니와 느껴지는 막막함과 서러움?이 비슷하게 느껴졌다.
아쉬운 점은 내가 제주말을 잘 못알아먹어서.. 영어 자막으로 뜨문뜨문 이해를 했다는 점...ㅜㅜ 한국어 자막도 넣어주세요.. 제가 넷플릭스도 한국어 자막 넣어서 본단말이에요..
네 명의 작가 모두 너무 좋았고, 국립현대에서 다른 전시도 봤는데(아시아 여성 미술가전이랑 순간이동전), 월등하게 올해의 작가상이 너무 좋았다.
사실 순간이동전은 VR 작품 체험하려면 시간 제한이 있어서 못봤는데, 기회가 되면 다시 봐야할 것 같다.
내가 게으르지만 지적 허영이 좀 많은 편인데, 이렇게 사유하게 하고, 다양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면서 역사적 지식까지 두드리게 하는 작품들을 만나 너무 만족스러웠고,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작가들을 만나서 너무 좋았다.
앞으로도 재밌는 전시들을 종종 보러가야겠다.
일단 한가람에서 하는 전시 몇 개를 예매해놓은 상태인데, 그 중에서 카라바지오가 가장 기대된다.
대학 시절부터 좋아하던 작가였기 때문에 더 잔뜩 기대하며 만날 날을 손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