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로 본 서브스턴스와 이를 보고 떠오른 프랜시스 베이컨의 연결고리
최근 몹시 재밌는 영화를 봤다.
제목은 서브스턴스(The Substance)
'바디호러'라고 하는 색다른 장르를 보여준 영화로, 최근 입소문을 타서 개봉이 한참 전에 되었는데도(24.12.11 개봉) 아직까지도 영화가 내리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 오르내리며 25.1.31 기준 33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독립예술영화로는 흔치 않은 성적임에는 분명하고, 손익분기점 또한 넘긴 SNS 입소문의 선순환의 좋은 예로 회자될 영화로 보인다.
이 영화는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페미니즘과 고어적인 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잘 얘기하고 전달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개인적으로 느꼈던 영화의 형태적인 부분에서 닿았던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과 실존주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먼저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한 부분도 물론 생각이 났지만, 가장 강렬하게 떠오르는 것은 바로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이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바로 위와 같은 작품을 그리는 작가인데, 내가 약 십 몇년 전 공부한 바로는 그림과 같이 해체되고 학살당한듯한 잔혹한 인체 표현과 인간의 비명과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전달하는 작가로 기억하고 있었다.
위 작품 중에서도 가운데에 있는 인간의 형상처럼 보이는 핏덩이가 마치 서브스턴스에서 묘사하는 '더 나은 나'로 형상화 되는 것과 묘사 방법이 유사하다고 여겨졌었고, 이 글을 쓰기 위해 프랜시스 베이컨에 대해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프랜시스 베이컨에 대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애초에 이렇게 인간군상의 모습을 처절하고도 참혹하게 묘사할 필요가 있는가ㅡ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그가 등장했던 20세기 미술의 사조 자체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참혹했던 인간의 폭력성과 질병, 굶주림 등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려내는 부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작품이라거나,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게르니카(Guernica) 등에서 만날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출처: Tel Aviv Museum f Art(https://tamuseum.org.il/en/exhibition/alberto-giacometti-beginning-again/), 위키피디아(https://en.wikipedia.org/wiki/Guernica_(Picasso))
그리고 다시 알아본 프랜시스 베이컨은 역시도 인간의 고통과 희생, 불안과 공포를 전달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왜 내가 서브스턴스 영화를 보고 난 후 그가 떠올랐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서브스턴스에서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서브스턴스'라는 약을 복용하여 더 젊고, 더 아름답고, 더 완벽한 자신인 '수'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스파클은 수에게 점점 잡아먹히게 되고, 수를 멈출 수 없었던 스파클은 서브스턴스 진행을 멈추기로 하지만, 오늘 밤에 있을 새해 특별 방송을 마지막으로 끝내자고 생각하며 수를 다시 살려내자, 수는 스파클과 별개로 깨어나게 되고, 수는 스파클을 죽이게 된다.
스파클(원본)이 죽게 된 수는 이가 빠지고, 코피가 계속 나고, 몸을 유지할 수 없게된 상태에서 '수'에서 더 젊고, 더 아름답고, 더 완벽한 자신인 '몬스트로 엘리자수'를 만들어내고, 기괴한 그녀의 모습에 모두들 혼돈에 빠진다.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수가 자기자신을 갉아먹을까 두려웠지만, 수의 젊음과 자신감넘치는 수의 모습을 부러워했다. 하지만 수는 원본인 스파클을 그저 안정화 용액을 주는 개체로 전락시키고 만다.
분명히 스파클과 수는 하나인데, 서로를 타자와하며 서로를 혐오하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게 된다. 그리고 그 갈등은 결국 살인을 낳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탄생한 몬스트로 엘리자수는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일으키며, 비난의 손가락질을 받다가 그녀 또한 폭주하며 피를 내뿜고 쓰러진다.
엘리자베스 스파클과 수의 갈등과 혐오(둘만의 갈등이 아닌 사람과 성별까지 포함된)로 인해 시작된 고통과 희생, 불안과 공포는 결국 몬스트로 엘리자수를 낳았다.
젊어지고자 했던 엘리자베스 스파클, 스파클을 단지 안정화 용액을 뽑아내는 개체로 치환시켜버린 수, 그런 수를 자기자신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이 망가진 것은 모두 수 때문이라며 원망을 쏟아냈던 스파클, 이 악순환의 고리가 결국 서로를 원망하는 전쟁이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서로를 타자화하며 원래는 하나였던 자기자신을 향해 원망을 쏟아내고,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었던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자신이 기존에 손에 쥐었던 과거의 권위와 영광을 그리워한다. 마치 반짝거리는 스노우볼을 돌리면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던 것처럼
하지만 서브스턴스로 인해 스스로 타자를 만들어낸 엘리자베스 스파클은 수라는 존재를 만들어 자기혐오를 하게 된 것이다. 결국 자신을 죽이게 되면 자살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조차 잊은 채로.
"기억하라, 당신은 하나다"
엘리자베스 스파클도, 수도 자기자신을 혐오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를 타자의 시선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즉 자기자신또한 타자처럼 바라보게 되어 스스로를 혐오하게 되었다고 본 것이다.
영화 내용을 비롯하여 우리의 현실에서도 타자의 시선은 항상 있어왔고, 이를 바탕에 두고 살아간다. 혹자는 이를 사회생활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이 사회생활이 자기자신을 이루는 근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마치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제대로된 인간 구실을 하지 못하는 인간이라고 치부되는 '~을 해야만 하는 인간'의 상에 자신을 끼워맞추게 된다면, 제작자 하비의 시선에 맞춰 모든걸 준비하고 끼워맞추다 결국 몬스트라 엘리자수가 될 수 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본질(Essence)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존재를 만들어간다고 이야기한다. 이를 그의 가장 유명한 명제인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라고 표현했다.
즉, 인간은 그저 존재해서 인간이 아닌, 인간으로서 선택과 행동을 통해서 인간임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회피하게 된다면 자기 기만(mauvaise foi, bad faith)에 빠지게 된다.
나 자신에 대해 표현하고자하는 부분을 온전히 완성하지 못하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과 행동을 하지 못한 경우, 마치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 속 인물들처럼 왜곡된 얼굴, 고통스러운 표정, 닫힌 공간 속의 인물이 되어버리거나, 자유를 갈망하며 실존적 불안(existential anguish)을 느끼게 된다.
엘리자베스 스파클이 집 안에 틀어박혀 수의 아름다운 모습에 스스로 좌절에 빠져 자유를 회피했다면, 동시에 수는 스파클의 안정화 용액을 무기 삼아 자신의 아름다움과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이에 대해 불안을 가지고 있다.
자기자신의 원본인 엘리자베스 스파클도, 더 나은 자신이라고 여겼던 수도, 모두 인간으로서 실존에 다가서기 어려워했다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스파클과 수 모두 제작자인 하비의 뜻에 좌지우지되며, 더 크게는 그들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과 타자의 판단에 의해 스스로를 섣부르게 단정짓고, 스파클은 스스로를 방 안에 더욱 어둡게 가두고, 폭식을 하게 된다. 수 또한도 불안으로 인해 스파클을 죽이게 되고, 실존이 아닌 본질의 존재부터 흔들리게되어 결국 몬스트라 엘리자수를 잉태하게 된다.
영화 서브스턴스의 특수 분장 아티스트 피에르-올리비에 페르신은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에서 몬스트라 엘리자수의 디자인에 니키 드 생 팔을 떠올렸다고 말한 바 있다.
MC: What was the process like designing the monster that Sue creates after using the remaining “activation” of The Substance in the final sequence?
POP: That was the hardest, and it took months. We designed completely from scratch. We did tons of maquettes in every way possible. We did old-school, plastic maquettes, hand-sculpted, state-of-the-art computer-generated maquettes, Photoshop—everything in between. In the end, it's an old-fashioned plastic maquette. I looked a little bit [to] Niki de Saint Phalle. She was a French sculptor from the ‘60s who had done female dancers with a fat body on tip-toes. [Coralie] wanted the feeling like the elephant with a dancer and with tons of breasts. So that was tricky.
- 출처: marie claire(https://www.marieclaire.com/culture/movies/the-substance-makeup-effects-artist-interivew/)
몬스트로 엘리자수의 형태만 놓고 보았을 때에는 니키 드 생 팔의 거대한 여성상, 변형되고 과장된 신체가 디자인에 참고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나는 묘하게도 보면 볼 수록 그 과장된 형태가 아닌 공격적고 표현적인 형태로서 베이컨이 더 생각났다.
출처: TATE(© Estate of Francis Bacon. All Rights Reserved, DACS 2025, https://www.tate.org.uk/art/artworks/bacon-three-studies-for-figures-at-the-base-of-a-crucifixion-n06171)
위 작품에서 베이컨의 작품은 더욱 신체가 해체되었으며, 파편화되어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겨우 짐승의 이빨처럼 보이는 형태와, 귀 정도이다.
실존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렇듯 파편화된 신체는 인간이 가진 자아의 부조리함과 비합리적인 고통을 표현한다고 보고 있으며, 특히 인간 존재의 혼란과 의미 없는 고통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고 보고 있다.
나는 이 작품이 영화 서브스턴스 마지막에 해체되는 몬스트라 엘리자수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여겨졌다.
특히 몬스트라 엘리자수의 유방과 눈이 결합한 핏덩어리가 마치 눈물처럼 똑 떨어지는 장면과 '신체의 온 부분이 제 자리에 있잖아'라고 말하는 스텝의 멘트와 교차로 편집된 부분에서 더욱 그러했다.
엘리자베스 스파클과 수일 때에는 타인의 입과 눈에 의하여 자신의 신체이지만 자신의 신체가 아닌것마냥 항상 품평당하고, '모든 신체 부위가 제자리에 있는 몸'을 가졌었지만,
자신의 몸이 해체되어 파편화되고, 신체가 변형되게 되자 그제서야 그녀를 바라보는 인간군상은 혼돈 속에서 비로소 그녀의 신체 자체를 바라보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과거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별 위에서 죽음을 맞게 된 후, 영화를 보는 우리는 그녀의 원본(엘리자베스 스파클)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내가 바라본 이 영화는 엘리자베스 스파클의 욕심이나, 여성의 신체를 이용한 바디호러 등의 형태적인 것이나 사회적인 메시지 등으로 바라볼 수도 있으나,
'엘리자베스 스파클'과 '수', 그리고 '몬스트라 엘리자수' 모두가 겪은 인간 존재의 불안과 고립, 그리고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 자신의 신체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투쟁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신체가 변형되거나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며 그 실존적 형태 모두가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고 정립하는 과정으로도 보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다시 생각해보자면, 우리는 모두 엘리자베스 스파클처럼 최선을 다해 과정을 거쳐가며 성장해나가고, 늙어가지만, 수의 모습을 꿈꾸기도 하다가도, 어느새 몬스트로 엘리자수가 되어가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스스로 무너져간다 할지라도, 스스로 자신의 원본을 지키며 열심히 고치던 그 립스틱을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그 의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각설하고더라도, 영화는 무척 재미있으니 고어물이 괜찮은 사람이라면 꼭 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