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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스카 Jun 15. 2022

#1 나는 이제 그만 열차에서 잠시 내려오기로 했다.

42살 직장인의 휴직 선언.

 알람 소리가 들린다. 시계를 보니 역시나 07시 30분이다. 오늘 아침에는 무엇을 먹이고 아이들 학교에 보낼까? 어제 사놓은 식빵이 있으니 프렌치토스트나 해야겠다. 일어나 전기레인지를 켜고 프라이팬을 달군다. 그사이 쇠 보울에 달걀을 터트리고 젓가락을 막막 휘졌는다. 한 20번 정도 휘져으며 노른자와 흰자가 섞여 식빵을 빠트릴 말한 수준이 된다. 토스트 네 조각과 우유 두 잔을 식탁에 놓는다. 휴직 50일 차 아저씨의 하루도 시작된다.  


 육아휴직. 말 그대로 자녀의 육아(育兒, 어린아이를 기름)를 위해 잠시 직을 쉰다는 의미. 나는 지하로 가속도를 붙이며 내려가는 열차에서 잠시 뛰어내리기로 결심했다. 딱 3개월만. 3개월 쉬면 이제 지하로는 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15년간 쉼 없이 달려온 삶도 정리할 수 있고 가족과도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삶이듯 내 휴직도 그랬다. 정확히 말하면 쉰다고 정리되는 건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사실 지하로 가는 열차의 시작은 작년 7월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간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리기도 했던 나의 열차는 파견조직이던 그룹의 연수원이라는 곳에서 정점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흔히 직장 생활에서의 커리어는 4C가 중요하다고 한다. Compensation(보상), Colleague(동료), Chance(성장기회), Culture(문화). 그곳에서의 나의 열차는 4C 모든 걸 갖추었고, 그중에서도 최고의 동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런 좋은 동료들 인생에 다시 만나기 힘들다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그렇게 최고의 시기에서 내려올 준비를 하고 있었고, 여기까지 내려올지는 정말 상상하지도 못했다. 


 작년 8월, 그간 정점의 삶을 누렸던 곳에서 다시 원래 있던 회사로 돌아가게 되었다. 원래 속해있던 회사도 큰 규모를 자랑하고 그곳의 인사팀의 식구들도 능력이 출중한 사람도 많았다. 오히려 내가 그곳에서 잘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정점의 삶을 살았던 나에게 많은 선배들이 손을 내밀어 주었고 나는 그 따뜻한 손을 잡으며 회사로 복귀하였다. 나에게는 정확히 정의된 일과 정확히 구성된 조직에 속해 있었다. 그곳에서의 동료들은 나를 격하게 환대하였고 옆자리의 나의 업무 파트너인 오프로는 나를 가슴으로 맞아주었다. 맡겨진 일들은 쉽지는 않았다. 오자마자 나에게는 우리 회사의 인사제도 혁신 계획을 수립하는 과제가 맡겨졌다. 요즘 흔히들 말하는 수시평가, 동료평가, 승격 세션 등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하며 점차 국내 기업으로 전파되고 있었던 혁신 제도들. 사실 그룹의 연수원에 있으면서 그러한 제도의 방향을 어깨너머로나마 볼 수는 있었고 뭔가 새로운 물결이 닥쳐올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 물결을 시작을 내가 알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의 의미, 성장한다는 느낌을 크게 받을 수 없었다. 물론 그 속에서 의미와 성장을 찾을 수도 있었을 거다. 연수원 시절 매일 6시면 출근해서 신문을 보고 책을 보고 어학공부를 했던 나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매일 기상시간 리미트에 임박해서야 몸을 일으켜 세웠고, 회사에서는 퇴근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수동적인 직장인이 된 것이다. 피지 않던 담배를 찾게 되었고 매일 아내에게 늘어놓는 푸념은 그녀의 귀를 따갑게 했다. 출근길 핸드폰 속에서 제주도를 검색하고 있었고 제주에서 'ㅇㅇ스테이'라는 숙박업소를 차려서 한가로이 사는 게 어떠냐고 매일 같이 아내에게 물었다. 지금의 삶에서 떠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배의 전화가 울린다. 


 

                   < 한창 고민속에 있을때 떠난 부산 광안리 - 나도 Suprise한 삶을 살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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