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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스카 Jun 15. 2022

#2 나는 이제 그만 열차에서 잠시 내려오기로 했다.

9월의 어느 토요일의 전화 한 통.

 2021년 9월 4일이었다. 충치가 생겨서 치과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치과에서 나와 코스트코에 장을 보러 가자는 말에 서현동 주유소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예전에 같이 일한 선배가 전화가 왔다. '뭐지? 토요일 오후 2시에 무슨 전화?' 나는 의구심을 품으면 전화를 받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 '혹시 스카웃 제안인가?'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렇지만 기대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지금의 자리에 정착하지 못했고 지금 나의 상사와 동료들은 나를 꽤나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기대감이 조금 있다는 사실을 그 선배는 간파한 것 같다. 나에게 이런저런  근황을 물어보다가 이야기의 본론을 꺼냈다. 나에게 본인의 회사에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사실 그러한 제안은 연수원에서도 여러 번 받았지만 그때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사실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또한 나에게는 오래전부터 꿈꿔온 '해외 주재원'이라는 꿈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꿈을 위해 참고 버티어온 시간이 있었기에 선뜻 결론 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내가 일하고 있는 곳에서 재미를 찾을 수 없었다. 좋은 동료, 좋은 상사가 나에게는 있었지만 무언가.. 내 욕구를 채우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건 '자율'과 '권한'이었던 것 같다. 그 2가지가 있을 때 나는 내 일속에 재미와 의미를 느꼈다. 물론 그게 없다고 의미 없는 일은 아니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그게 필요했다. 그래서 한번 환경을 바꿔보기로 했다. 그 선배에게 말했다. 오퍼 한번 넣어보라고.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 오퍼가 실제로 도착하기까지는 한 1주일이 걸렸다. 나는 그날부터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나의 상사가 오퍼에 대해 물어오면 어떻게 대답할지, 그리고 사랑하는 동료들에게는 무어라 말을 할지 고민이었다. 그 고민은 출근길 운전대를 잡고 있어도, 회사에서 숨 가쁘게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을 때도 들었다. 심지어 꿈속에서도. 어느 날 나의 상사는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그리고 다소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장님은 "관계사인 ㅇㅇㅇ 에서 너를 우수인력이라 말하고는 달라고 한다. 네 생각은 어떻니?"라고 툭 던졌다. 나는 그간 밤낮으로 생각한 나의 논리를 숨도 안 쉬고 진심을 다해 정확히 전달했다. 마치 이 논리를 들으면 누구라도 보내줄 수밖에 없고 한 직장인의 삶을 책임져주는 사람이 아니라면 보낼 수밖에 없는 그런 논리. 나는 그 합당하고 이상적인 논리를 나를 가장 사랑하는 상사, 나를 아껴주었던 상사 앞에서 떠들고 있었다. 나의 상사는 참담했을 것 같다. 그리고 누구보다 실망스러웠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배신자가 되어 그곳을 떠나기로 결정되었다.


 오래 머물지 않았지만 떠나는 나를 팀장과 부장님, 그리고 동료들은 살갑게 챙겨주었다. 선물을 두둑이 챙겨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송별회는 크게 2번을 할 정도로 술을 진탕 먹었다. 팀장님은 새로운 곳에서 잘하고 가서 아니다 싶으면 돌아오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동료들에게는 정말 미안했다. 내가 없음으로써 희망도 잃어버렸다는 오프로. 언제나 엑셀 속에 빠져 살던 김프로. 너무 힘들어하던 박 프로까지. 그들의 든든한 동료이자 선배이고 싶었지만 가는 길이 달랐다고 생각했다. 이미 나는 새로운 곳에서 몸과 마음이 가 있었다.   


                       < 회사 이동을 결심하고 가족과 떠난 제주여행, 샛별오름에서 본 일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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