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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스카 Jun 15. 2022

#3 나는 이제 그만 열차에서 잠시 내려오기로 했다.

자율과 권한. 내 삶의 필수요건.

새로운 곳으로 첫 출근하는 날. 기존 직장과 1시간 반 거리. 집과는 1시간 거리의 새로운 곳으로 첫 출근. 생긴 지 얼마 안 된 건물들과 20대에서 30대 초반의 직원들이 바쁘게 회전문을 지나친다. 역시 신사업을 하는 곳을 틀리구나. 사람도 젊고 건물도 젊고 생동감이 넘쳐 보였다. 1층에 마중으로 나온 남자 프로님은 보이그룹의 리더처럼 멋진 외모를 가졌다. 앞으로 나와 같이 일하게 될 사람이라 그런지 더 잘생겨 보이기까지 한다. 친절함은 두말하면 잔소리. 그렇게 나는 새로운 직장의 사무실로 그와 함께 발걸음을 맞추어 나아갔다. 첫날은 인사하기 정신이 없었다. 각종 서류들에 서명도 하고 팀장, 부장님들에게 인사도 나누었고 많은 동료 프로들과도 상견례를 했다. 사무실은 코로나 19 때문인지 좌우 칸막이가 있지만 공간대비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상당히 빡빡했다. 사무실을 지나칠 때면 좌우 프로님들 의자에 부딪히지 않게 옆으로 걸어 나가야 했다. 책상도 기존 회사보다 조금 작고 옷걸이가 없는 구조라 가방을 둘 때가 없어 다소 불편했지만 뭐 참을 만했다. 설레는 일이 있는데 사무실이 좀 좁으면 어떠랴. 책상이 좀 좁으면 어떠랴. 다 참을 만했다. 


 첫날 저녁은 그냥 보내지는 않았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라 그런지 대규모 환영행사는 못했지만 나를 불러주었던 상사 2,3명이서 술을 진탕 먹으며 같은 배를 탄 것을 환영하였다. 정말 진탕 먹었다. 다음날 오전까지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으로. 새로운 회사에서 만난 선배들은 다들 여기의 독특한 조직문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린 세대들이 많이 있지만 조직문화는 1990년대라고. 그만큼 딱딱하다는 이야기다. 상명하복과 철저한 보고. 그냥 보고도 아니고 실시간이다. 그렇게 철저하게 관리했다. 출근 첫날,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하지만 아직 겪어보지 않았으니 일단 선입견은 깨고자 했다.


 나는 내가 일이 재미있고 의미도 있고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가지고 자율성이 있을 때 행복을 느낀다. 보고하고 보고된 내용과 맞추기 위해 유연하지 못하고, 각종 요청과 문의사항에 권한이 없어 결정하지 못할 때 나는 크나큰 무력감을 느낀다. 이미 그러한 비자율적이고 노예 같은 일은 사원/대리 시절에 많이 해보지 않았던가. 사원 시절 IT 부품을 만드는 제조회사에 엔지니어로 일하며 교대근무를 한 적이 있다. 아니 꽤 오랫동안 해왔다. 우리 부서가 맡은 1~4호 라인의 생산설비 앞에서 그날의 생산제품/개발제품의 생산을 불량률 없이, 설비의 고장 없이 잘 해내는 것. 그것이 내가 맡은 임무였다. 설비란 걸 고정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생물과 같았다. 계속 마모되고 세팅된 공정조건은 생산량이 늘어날 때마다 바뀌고, 미세한 에러는 돌아가면서 근무시간 내내 발생한다. 하루 출근할 때 목표는 오로지 조용한 근무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온전히 먹는 것. 하필 매번 점심시간 직전에 설비들은 고장을 일으키고 검사원들은 우리가 생산한 제품의 불량을 끄집어낸다. 그래서 점심은 굶기 일쑤. 우리의 하루 일과는 모두 기록해야 하고, 각종 설비들에는 우리가 기록하지 않아도 우리의 행동이 log로 남겨진다. 그렇게 모든 순간순간을 기록하며, 기록당하며 보고되는 삶을 살아왔다. 


 그 이후 같은 회사 인사팀에서의 일도 마찬가지였다. '인사' 업무를 맡다 보니 모든 일이 '인사'사항이며 모든 순간이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루에도 많은 것들이 윗선에 보고되어져야 했다. 아직 어렸기에 경험이 없었기에 우리 부서 차장님께 하나하나 보고를 했고, 그 차장님은 수많은 경험치와 명석한 판단력으로 의사결정 내렸다. 물론 중요한 건 임원에게 올라가고 말이다. 아직은 어려서 뭘 몰랐고, 때론 차장님께 기댈 수 있어 편하기도 했다. 그렇게 살아왔다.


 하지만 세 번째 조직(제일 처음에 언급했던 파견 소속)에서는 달랐다. 물론 그곳에서도 처음에는 경험이 없다 보니 보고를 많이 할 수밖에 없지만, 조직의 특성이 담당자들의 어느 정도의 자율과 권한은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곳에서 6년을 보내며 자율적인 일이 무엇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권한 안에서 일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부단히 의사 결정했고 노력했다. 나에게 자율성이 있다 보니 내 책임이 컸고 그렇기에 누가 시키지 않았도 나는 내 모든 걸 던졌다. 모든 일이 내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일하는 모습에 나 스스로가 만족도 했고 주변도 그렇게 봐주었던 것 같다. 나는 앞으로 계속 그렇게 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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