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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스카 Jun 15. 2022

#1 포동이 아들과 떠난 터키 여행

#카파도키아 #파묵칼레 #열기구 #지프차 투어 #지중해 유람선 #인생 샷

파묵칼레 위를 지나는 열기구에 나는 지금 타고 있다. 바람은 잔잔하고 동쪽에서는 강력한 해가 떠오르는 모습.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살짝, 아니 많이 무서웠다. 하지만 하늘에서 본 터키의 파묵칼레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내 인생에 소중한 한 컷이 될 것이 틀림이 없었다. 나는 터키의 하늘 위에 있다.



                                                  <터키 파묵칼레의 열기구 위에서>


 직장 생활 15년 만에 드디어 3개월간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여유란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 삶에 찾아온 선물 같은 시간. 할 일도 하지 않아도 될 일도 많았던 시기에 주변의 많은 분들이 여행을 추천한다. 사실 그간 돈이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 못 갔던 여행. 나는 그렇게 가슴에 탑승권을 하나 안은 채 여행 사이트를 뒤지기 시작한다.


 처음 찾아본 곳은 미국. 사실 요즘에 미국 한번 안 가본 사람이 어디 있으랴. 출장이든 어학연수든 여행이든 누구나 한 번은 들러봤을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 하지만 나에게는 동경의 그 자체이다. 하지만 미국 여행을 알아보니 미국은 실로 어마어마하게 크고 선택 장애처럼 어디를 가야 할지 막상 떠오르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미국 여행은 타 지역 대비 2배 이상의 비용이 드는 것도 현실. 조금은 성숙한 우리 초딩 아들이 "아빠 돈도 요즘에 안 버는데 미국은 비싸니까 가지 마!"라고 충고를 한다. 아... 아쉽다...


 그렇지만 포기할 내가 아니다. '그래 미국보다 조금 싼 데면 아들이 뭐라고 하지 않겠지?  대신 진짜 평소가 가기 어려운 나라에 가보자.' 이렇게 마음먹고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터키'라는 두 글자를 발견했다. 뭔가 마음이 두근거리고 미지의 세계인 것 같은 나라. 형제의 나라. 그리고 조금 위험한 나라. 그렇지만 죽기 전에 한번 가보라는 그곳. 육감적이며 직감적이며 오감적으로 왠지 나는 터키에 가게 될 것이라고 느꼈다. 바로 그때가 2022년 4월 15일.


 아무래도 땅 덩이가 큰 나라이고, 약간의 위험(?) 하다는 인식이 있어 패키지여행을 가는 게 어떨까라고 고민하며 여행사 홈페이지를 보니 무려 119만원에 7박 9일의 패키지가 있지 않은가?!!!! 요즘 웬만한 나라 비행 깃 값도 130만원이 넘는 다는데 119만원은 무엇? 대충 일정을 보니 내가 아는 터키 여행지는 다 돌아보는 것 같고, 119만원에 숙소도 주고 밥도 주고 버스도 태워준다!! 바로 예약 고고씽. 2시간 뒤 여행사 직원의 전화에서는 마침 그 패키지가 예약이 마감되었다는 불행한 소식을 전해주었고 대신 119만원 패키지는 두바이 경유 패키지였으나 149만원 직항노선 패키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경유하고 뭐하고 하느라 시간 소비가 많은데, 이럴 바에야 직항이 좋겠다는 판단에 이르렀고 또다시 덜컥 예약해버렸다. 그렇게 나의 터키 여행은 시작되었다.


 터키 여행 패키지를 예약하고 식사시간에 아내에게 터키를 간다고 말하니, 아내가 "진짜 가?"라고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조금 뜨끔했다. 그렇지만 '여기서 밀리면 안 되지!'라는 생각에 "자기가 가라고 했잖아~"라고 살짝 말끝을 흐렸지만 내 눈동자 속에는 이미 터키 국기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레 아내의 승낙을 받았다. 아 다행이다. 이제는 아이들 차례이다. 학교에 갔다 온 우리 첫째(아들), 둘째(딸)에게 내가 터키를 가게 되었다고 소식을 전하자 우리 첫째 아들은 갑자기 "나도 터키 가고 싶어ㅠㅠㅠ"라며 애처로운 눈빛을 보낸다. 살짝 고민이었다. 에이 저러다 말겠지... 하지만 아들은 그날 저녁에도 계속 터키 이야기를 해댄다. 학교 수업 시간에 터키 케밥을 조사한 적이 있었고 만들기 시간에는 터키 열기구 그림을 골라서 만들었단다. 예전부터 진짜 가고 싶었다고. 살짝 고민이 된다. 고민이 된다. 고민이 된다. 그래 초5 아들과 언제 터키를 가보겠냐... 그래.. 아들과 둘만의 여행을 보내야겠다. 그런데 둘째 딸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분명 곱게 보내주지 않을 터인데. 상당한 으름장과 약 오름이 분출하여 방바닥에서 대자로 누워서 분명 울어버릴 거다. 그렇지만 둘을 데리고 가기에는 이 여행의 주객이 전도됨이 분명할 터. 둘을 데리고 가면 나의 여행이 아니라 아이들의 여행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 뻔함. 그리고 알아보니 여행 중 하루에 버스를 9시간씩 타야 하는 강행군인데 10분 이상 차를 타면 멀리를 하는 우리 딸은 분명.... 첫날부터 나를 지옥에 보낼 것이 분명하다. 어쩔 수 없다. 버스를 많이 탄다는 핑계와 더불어 있지도 않은 초등학교 5학년 미만은 터키에 갈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어 딸을 설득했다. 하지만 설득당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예상대로 방바닥에 누워서 울어버리기 시작한다. 고개를 돌렸다. 계속 버스 핑계를 대니 약간은 설득당하는 눈치지만 오빠랑 아빠만 간다는 사실에 약이 바짝 올랐다. 터키에서 기념품을 꼭 사 오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렇게 우리 부자의 여행의 시작되었다.


 터키 여행을 예약하니 아들과 나는 마음이 설레었다. 사실 회사를 가지 않으면서 해야 할 박사 졸업논문이 있었는데, 논문이 잘 눈에 들어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몸은 대한민국에 있지만 마음이 이미 터키에서 열기구를 타고 있었다. 그렇게 붕 떠있는 채 여행을 기다려왔다. 아들은 매일 저녁 터키 여행과 관련된 유튜브를 보면 이미 터키 일주를 하고 있었고 터키에서 뭘 사고 뭘 먹을지를 다 정해놨다. 아들도 이미 마음은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에 가있는 모양새였다. 여행 1주 전, 슬슬 여행에 필요한 접이식 전기주전자, 햇반과 각종 반찬류를 인터넷으로 주문하였다. 사실 터키의 식문화를 몰랐던 실수로 컵라면은 여유 있게 준비하지 못하는 첫 번째 실책을 범하고 만다. 그리고 약 올라 있는 딸을 달래주기 위해 강원도로 캠핑을 가며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다.


 드디어 5월 4일, 대망의 출발일이 다가왔다. 하필 이날은 일정도 많은 날. 점심에는 처가 식구들과 식사를 했고 오후에는 지도 교수님과 논문 미팅도 순삭으로 진행했다. 교수님도 아들이 있는데 너무 부럽다는 말씀과 함께, 돈 생각하지 말고 마음껏 즐기다 오란다. 맞다. 인생은 한 번 뿐이라는 것을 교수님이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셨던 시간. 그렇게 오후를 보내고 정확히 18시에 짐이 가득 담긴 캐리어 2개를 끌고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1시간여를 달린 끝에 근 2년 만에 인천공항에 내리게 된다. 역시나 썰렁하다. 우리는 여행사 가이드와 약속한 A 데스크 앞에 찾아가 여행에 필요한 물품과 티켓을 받는다. 그리고 탑승수속을 마치니 20시경. 아직 비행기 출발시간인 23시 45분까지는 대략 3시간 반 남짓 남아있었다. 딱히 살 것은 없지만 뭔가 설렘 가득히 있을 면세구역에 들어간다. 허걱. 그런데 면세구역 절반은 소위 '셨다면'이 닫혀 있었다. 아직 코로나 시국임을 실감한다. 우리는 저녁을 먹지 않아 다소 출출하였으나 면세구역에 먹을 것이라고는 던킨 도너츠가 유일. 아들과 샌드위치 2조각을 나누어 먹었는데,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포동포동한 아들은 체하고 만다. 그게 여행의 첫 번째 소화불량. 아들은 이 이후로 여행에서 3번 정도 체하게 되는데 아마도 오래간만에 떠나는 여행에 설렘과 긴장감이 소화불량을 유도했나 보다. 드디어 탑승시각 우리는  생전 처음으로 터키 항공에 탑승해서 무려 10시간의 비행을 좁디좁은 이코노미석에서 보내게 된다. 비행기에서 비즈니스석을 지나쳐보니 와.. 내가 두 다리를 쭉 뻗어도 닿지 않을 공간이지 않던가.. 비즈니스석에서는 라면도 끓여준다던데. 아. 먹고 싶다.. 꼭 돈을 많이 벌어서 다음에는 비즈니스를 타겠다는 다짐이 든다. 그렇게 아시아 대륙을 10시간 동안 날아 우리는 터키 시각 새벽 5시에 이스탄불 신공항에 착륙을 한다. 이제 본 게임 시작인 것이다.


#1일차 #버스 #우리팀 #베이파자르


공항에 도착하고 패키지 일행 32명이 다 모였다. 우리는 전세 버스를 타고 드디어 첫 목적지인 베이파자르로 출발한다. 버스 찻장에서 바라본 이스탄불의 모습은 아직은 신비로웠다. 보스포러스 해협도. 몇 킬로마다 보이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도. 길거리의 자동차도 터키 사람도. 내가 정말 터키에 있는 건가 싶다. 오전 내내 버스는 내달렸다. 여행사 홈페이지에 버스로 4~5시간이라는 표기가 있었지만 기사님의 안전운전 탓인지 도로 사정 때문인지 실제로는 더 걸린 듯하다. 휴게소에서 맞이한 첫 식사는 고대하고 고대하던 케밥! 닭고기를 곁들인 케밥으로 나는 그다지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우리 포동이 아들은 정말 맛있다는 말과 함께 싹 비웠다. 역시 포동이. 하지만.. 이 케밥이 우리가 이후에 먹은 케밥에 비하면 제일 맛났다는 것.. 우리는 점심을 먹고 또다시 베이파자르를 향해 달린다. 2~3시간을 지나니 구불구불 시골길을 지나 목적지에 도착했다. 근데 찻장에서 바라본 터키의 풍경은 마치 윈도우 배경화면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이었다. 정말 입이 쩍벌어질 정도로..


 첫 번째 목적지인 베이파자르는 터키의 시골 읍내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고, 작은 시장에서는 터키의 특산물인 당근으로 만든 주스도 한 모금 들이켤 수 있었다.(한데 여기서 당근주스를 1개 남겨서 다음날 버스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버스에서 폭발하고 만다 ;;; 몇 시간 동안 당근 냄새가 낸 온몸을 뒤덮었던 흑역사..) 베이파자르에서 느낀 터키는 강력한 햇살, 그리고 우리를 애타게 바라보는 시장 상인들- 아마도 한국인 관광객이 오랜만이라 그런지- 그리고 아이들의 눈길을 끄는 나무칼, 나무 도끼-여기서는 사지 않았지만 이후에 결국 사고 만다- 아직은 터키 맛을 덜 본 것 같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첫째 날 숙소로 향한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는데.. 정말 먹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아직 적응이 덜 된 것인가. 직원분들과는 영어로 소통도 어려웠고, 음식 맛은 정말 로컬하다는..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우리는 저녁을 해치운다. 뭐 터키 여행에 음식이 대수겠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보낸다. 아들 포동이는 수영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지만 풀장은 깊이가 1.4미터로 포동이의 키 만하였고, 포동이는 심해 공포증이 있다고 계속 말을 하면 혼자 풀장에 들어가질 않았다. 그렇게 잠시 몸에 물만 담그고 빠져나온 포동이. 숙소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한국에서 싸간 육개장 사발면을 한 그릇 하였는데 먹자마자 우리 포동이는 체한다. 아마도 여독이 풀리지 않아 그런 모양이다. 그렇게 포동이는 첫날 강제 다이어트를 하고 만다.



< 버스 밖 차창의 풍경 >


 아참. 10일간의 대장정을 같이한 패키지 멤버들 소개가 늦었다. 이 여행의 가장 핵심인물은 바로 메흐멧 가이드님. 한국인이지만 터키 이름이 메흐멧. 나중에 알고 보니 터키 왕 이름(메흐멧 2세)이었다는.. 메흐멧은 출발 순간부터 마지막 도착 순간까지 한순간 한순간 32명의 패키지 모든 멤버를 놓치지 않는 디테일과 여행 중간중간에 터키 역사부터 고대 로마그리스 신화를 설민석보다 더 해박하고 쉽게 풀어주시는 '썰' 능력에 이래서 패키지를 오구나... 싶었다. 가이드의 고생은 눈에 안 봐도 선한데, 정말 사람 챙기는 거, 순간순간 어르신들의 드립을 받아내고, 각종 불만섞인 VoC를 스무스하게 처리하는 능력은 존경할 만하다. 사람을 다루는 인사가 직업이 나도 그 점은 정말 본받고 싶을 정도!! 다음 여행에도 패키지를 간다면 메흐멧과 같이하고 싶음. 그리고 딸네 두 가족과 같이 오신 아버님, 어머님은 정말 친철하시고 딸님분들과 사위분들과도 여행 중간중간 대화를 해봤지만 정말 배우신 분들. 특히 포동이에게 친절하게 말해주시는 한마디 한마디에 배려도 참 많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시흥에 사는 초 2 하성이는 엄마랑 단둘이 왔는데 여행 내내 우리 포동이랑 잘 지내고 있어서 포동이가 심심하지 않아 했던 것 같다. 평택에 사는 규리와 규리맘, 할머니까지 3대의 여행은 보는 내내 마음이 좋았고 한 편으로는 가슴 한구석을 파고들어 왔다. 나는 왜 사랑하는 엄마와 여행을 가본 적이 없던가. 신입사원 시절 충분히 해볼 만 한데 너무 바빠서인지 아니면 귀찮아서인지 핑계만 대었던 거 같다. 지금은 하고 싶어도 이미 하늘에 있는 엄마와 같이 할 수 없기에.. 그리고 60~70대 어르신 부부동반 가족분들도 너무 보기 좋았다. 이렇게 노년을 부부가 같이 여행하며 지낼 수 있다는 건 실로 행복 그 자체가 아닐까. 한 가지 느낀 바가 있다면 다리가 불편하거나 몸이 안 좋으신 분들이 많으시던데, 나도 두 다리 건강해서 많이 걸을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여행을 더 가야겠다고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베스트 드라이버인 기사님. 정말 이스탄불의 복잡한 길을 스무스하게 헤쳐나가시는 모습은 감탄스러웠고, 우리의 현지 가이드 '오균'님은 맨날 뒷길로 빠지시는 어르신들을 찾으랴, 입장권 사서 입장시키랴, 일행 안내해서 데리고 다니느라 고생이 정말 정말 많았다. 이런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30대 초반이지만 약간은 더 늙어 보인다는 ㅎ


#2일차 #카파도키아 #지프차 투어


 이제 2일차다. 오늘은 아 기다리고 고 기다리던 카파도키아를 향해 가는 날. 달리는 버스도 이제는 지겹지 않다. 즐겁게 룰루랄라.. 포동이는 유튜브를, 그리고 나는 쿠팡 플레이를 보며 달린다. 카파도키아전에 데린구유 같은 지하 동굴 집을 한번 들르게 되는데.. 실로 엄청나다. 예전에 군인 시절 38선 근처에 북한이 파놓은 땅굴을 보러 간 적이 있어서 이런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여기는 굴의 개념을 뛰어넘는 세계가 있었다.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이런 지하 세계로 몰아세웠을까? 햇빛을 못 받으면 비타민 D가 부족해 구루병에 걸릴 수 있다고 학교 다닐 때 배운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여기서 살아왔던 터키인들은 구루병은 물론이고 이런 습한 환경에 각종 질병에도 많이 시달렸을 것 같다. 그리고 가축들을 1층에서 키우며 외부인의 침입을 감시했다고는 하는데, 가축의 우리랑 집이 같이 있는 환경은 상상하지 않아도 그 처참함은 느껴진다. 우리는 여기서 관광이랍시고 사진을 찍고 있지만, 수많은 이들은 여기서 고통의 세월을 보내지 않았을까. 여행 중에 V 표시로 찍은 내 사진이 보기가 싫어졌다.



                                                              < 카파도키아 >


 이제는 진짜 카파도키아! 괴뢰메 마을로 향한다. 처음 카파도키아의 모습은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경이롭다. 석회성분의 돌들은 사람이 직접 손으로 팔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웠다. 이 척박한 땅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그들의 종교를 위해 숨어 살아야만 했고 수 백 년이 지나 대륙을 우측 끝자락, 대한민국의 사람들이 관광을 오게 되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나라의 단양 8 경이 유명해 몇 해 전에 관광을 간 적이 있었는데, 카파도키아에 비하면 뭐... 와....


말로 표현이 다 안될 정도이며, 카메라로 그 감동을 다 담기지도 않는다. 자연의 위대함과 그 속에서 치열하게 생존하고자 했던 인간의 위대함이 만들어낸 장관. 카파도키아에서 하루다.  


 아참 여기서 하이라이트는 바로 '지프차 투어', 한 20년도 더 된 구식 지프차를 타고 카파도키아 구석구석을 투어 하는 코스인데 지프차 기사의 운전 실력이 환상적이다. 차를 45도로 기울여 달리는 쇼를 펼치니 뒷좌석에 탄 우리 포동이는 연신 "살려주세요~"를 외친다. 한국말을 모르는 기사는 즐겁다는 소리인 줄 알고 더 심하게 쇼를 펼치는 광경. 포동이는 터키 여행 중에 이 지프차 투어가 제일 좋았단다. 지프차에서 내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흥분이 가라앉을 만큼의 즐거움. 포동이에게 좋은 경험, 엄청난 즐거움을 준 것 같다. 한국에 가면 아빠 차도 지프차로 바꾸자고 한다.


10시간의 비행, 9시간이 넘는 버스 이동은 카파도키아의 경관 앞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이상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곳이 바로 이곳. 나는 여기서 여행의 가치를 발견하고, 앞으로도 탐험할 것이 수없이 많다는 깨달음도 발견한다.


#3일차 #안탈리아


그렇게 우리는 카파도키아에서 밤을 지내고 다음날 새벽 열기구를 기다린다. 2일 차부터는 피곤이 몰려와서인지, 여행의 긴장감이 누적되어서 그런지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지기 시작한다. 8시간은 순삭이다. 3일 차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열기구를 타기 위해 호텔에서 기다렸지만 결국 하늘이 우리를 돕지 않았다. 날은 흐렸고 비는 부슬부슬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파묵칼레에서의 열기구 탑승을 기대해 보며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지중해를 품은 안탈리아로 떠난다. 여행의 일정 중 3일 차가 버스 이동이 제일 길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줄기차게 달린 것 같다.  그렇게 도착한 안탈리아! 지중해가 왜 지중해인지, 안탈리아가 왜 안탈리아인지를 깨닫게 된다. 안탈리아 해변 썬베드에 누워 제로콜라와 하루키 소설집을 읽고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정도. 9시간을 달려온 안탈리아는 천국의 도시 같았고 떠나기 싫은 도시였다. 저 풍경만 보고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날일 것 같다. 안탈리아의 바다를 한 껏 느끼며 노곤한 몸을 숙소로 옮긴다.


 안탈리아에서의 2일 차, 오전부터 메흐멧을 안내에 따라 지중해를 오가는 요트(?)를 탄다. 바람은 좋고 햇볕은 따사롭다. 파도는 잔잔하고 배는 항구에서 미끄러진다. 요트에서 뱃머리에 있는 썬베드에 누워본다. 세상에 이런 천국이 없다. "한국으로 가기 싫다... 내년 여름에 안탈리아에만 다시 와 볼까?" 아들과 대화를 한다. 세상이 평화롭다. 지중해의 요트 탑승은 돈의 가치로 환산하기 어려운 경험이다. 다시 내가 터키를 찾게 된다면 그곳은 안탈리아 일 것 같다.


                                                            < 안탈리아 해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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