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침묵을 만드는 법
우리 집 거실에는 늘 긴장이 감돌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침묵.
그 침묵은 금세 고성으로 바뀌곤 했다.
어린 나는 그 소리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발견했다.
내가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집이 조용해진다는 것을.
부모님이 싸우시다가도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시면 싸움을 멈추시거나, 적어도 밖으로 나가서 하셨다.
공부하는 아이 앞에서는 차마 싸울 수 없으셨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미적분을 좋아해서도, 세포 분열이 궁금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침묵이 필요했다. 나만의 평화가 필요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슬픈 시작이다.
하지만 시작이 슬프다고 해서 결말도 슬픈 건 아니었다.
공부는 도피처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정말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책 속에는 우리 집보다 훨씬 넓은 세계가 있었다.
가난하지 않은 세계, 싸우지 않는 세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세계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힘든 와중에도 늘 책을 읽으셨다.
새벽에 혼자 부엌 식탁에 앉아 낡은 문고판을 펼치고 계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부모님이 싸우고 난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항상 책을 읽고 계셨다.
그게 어머니만의 도피처였을까.
나는 어머니를 따라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다.
그냥 따라 했다.
그렇게 나도 책을 읽는 사람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나는 한 달에 최대 100권을 읽었다.
선생님이 믿지 못하셔서 독후감을 몇 개 더 써오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그저 읽고 싶었을 뿐이다.
집에 있기 싫었고, 도서관이 좋았다.
도서관은 조용했고, 아무도 싸우지 않았다.
그때 읽은 책들이 나를 만들었다.
위인전, 역사책, 과학책, 철학서, 고전들...
당시에는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단어들이, 그 문장들이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나중에 중고등학교에서 공부할 때, 그 쌓인 것들이 토양이 되어주었다.
공부는 건물이다.
아무리 좋은 건물을 지으려 해도, 토양이 약하면 무너진다.
독서는 그 토양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많은 것을 한다.
학원을 세 개씩 다니고, 과외를 받고, 인강을 듣는다.
부모님들은 불안하다.
'우리 아이만 뒤처지면 어떡하지.'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시킨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한다. 정말로.
하지만 동시에 묻고 싶다.
아이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물어본 적이 있는지.
의대가, SKY가, 그게 정말 아이의 꿈인지.
나는 운 좋게 의사가 되었다.
하지만 의대가 인생의 끝은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이었다.
그리고 의대에 가지 못한 내 친구들 중에도 행복한 사람이 많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친구들이.
반대로 억지로 의대에 와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봤다.
부모님이 원해서, 주변의 기대 때문에, 남들이 부러워해서...
그런 이유로 온 사람들은 결국 견디지 못했다.
고2 어느 날, 시험을 망쳤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수학 점수가 형편없었다.
그날 밤 책상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이렇게 해도 안 되는구나.' 좌절했다.
하지만 다음 날, 나는 그 시험지를 다시 펼쳤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붓고, 머리는 지끈거렸지만, 틀린 문제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왜 틀렸는지, 어디서 실수했는지, 개념이 부족한 건지 단순 실수인 건지.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정보라는 것을.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알려주는 신호라는 것을.
그날 이후로 나는 시험을 보는 방식이 바뀌었다.
점수에 일희일비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파악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그렇게 하나씩 채워나갔다.
지금도 나는 공부한다.
의사가 되었지만 배움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끝날 수가 없다.
의학은 계속 발전하고, 나는 계속 따라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공부는 다르다.
어릴 때는 도망치기 위해 공부했다면, 지금은 성장하기 위해 공부한다.
더 나은 의사가 되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을 돕기 위해.
동기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공부의 이유는 변할 수 있고, 변해야 한다.
중요한 건 '지금 왜 하는가'를 아는 것이다.
가끔 생각한다.
만약 우리 집이 화목했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만약 부모님이 싸우지 않으셨다면, 나는 의사가 되었을까.
답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 힘든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슬픈 시작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래서 나는 감사한다.
책을 읽으시던 어머니께.
조용히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셨던 그 침묵들에.
그리고 도망치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견뎌낸 어린 시절의 나 자신에게.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왜 공부하는가.
혹은 왜 아이에게 공부를 시키는가.
남들이 하니까?
좋은 대학에 가야 하니까?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그것도 이유일 수 있다.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짜 동력이 되지 못한다.
나는 도망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그게 내 이유였다.
창피하지만 솔직한 이유였다.
그리고 그 솔직한 이유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당신의 이유는 무엇인가.
정답은 없다.
각자의 이유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이유만큼은 진짜여야 한다.
거짓 이유로는 멀리 갈 수 없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를 밀어붙이는 게 아니다.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머니는 나에게 '책 읽어라'라고 한 적이 없다.
그냥 당신이 읽으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따라 했을 뿐이다.
그게 최고의 교육이었다.
아이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그것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면 어떨까.
책을 읽으라고 하면서 정작 부모는 스마트폰만 보고 있지는 않은지.
공부하라고 하면서 정작 부모는 배움을 멈춘 건 아닌지.
아이는 부모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배운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책상 앞에 앉아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좋아서, 혹은 싫지만 해야 해서, 혹은 나처럼 도망치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이유가 무엇이든 괜찮다고.
창피한 이유여도 괜찮다고.
시작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계속 가는 게 중요하다고.
그리고 힘들 때는 쉬어도 된다고.
멈추는 것도 가는 것의 일부라고.
숨을 고르지 않고는 멀리 갈 수 없다고.
나는 지금도 배우고 있다.
의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그리고 그게 좋다.
모르는 게 있다는 건, 아직 배울 게 있다는 뜻이니까.
어머니는 지금도 책을 읽으신다.
요즘은 돋보기를 쓰고 읽으신다.
가끔 집에 가면,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다.
말없이, 그저 각자의 책을 펼치고 앉아 있다.
그 침묵이 좋다.
예전의 그 무서운 침묵이 아니다.
평화로운 침묵이다.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하지만 함께 있는 침묵이다.
나는 그 침묵을 만들기 위해 공부했는지도 모른다.
돌고 돌아, 결국 원하던 그곳에 도착한 것 같다.
공부는 도구였다.
하지만 그 도구로 만든 것은 단순한 성공이 아니었다.
평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