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나쌤 Feb 22. 2023

엄마는 그날 바닷가에서 4살 아들을 잃어버렸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우리 엄마


그날 4살 아들이 사라졌다.

사람이 데려갔는지 바다가 데려갔는지 엄마는 알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다.

아빠의 폭력으로 바람 잘 날 없는 우리 집에 불만이 가득했던 나.

"엄마는 왜 나를 하나만 낳았어?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지금이라도 오빠나 언니나 단 한 명이라도 낳아 달란 말이야! 난 너무 외롭고 힘들어."


말도 안 되게 언니나 오빠를 낳아 달라고 엄마에게 악을 썼다. 폭력적인 아빠, 무력한 엄마 그리고 힘이 없는 나만 있는 집이 너무 싫다고 왜 나를 혼자만 낳아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고 따졌다.




엄마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엄마는 아빠한테 평생 죄인이야. 니 오빠를 4살 때 엄마가 잃어버렸거든."

난 중학생이었다. 언니나 오빠를 낳아달라고 엄마에게 말도 안 되는 생떼를 쓰는 나에게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나에게도 오빠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 아이를 엄마의 실수로 잃어버렸다고. 아빠에게 평생 죄인처럼 살고 있노라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 부모님은 목포에서 배로 30분 들어가는 섬에 살았다. 그날도 엄마는 여느 때처럼 동네 근처 바닷가 갯벌에서 작업 중이었다고 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4살 아들이 잘 놀고 있는지 가끔씩 눈으로 확인을 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났고, 엄마는 뻐근해진 허리를 펴고 아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모래사장에 놀고 있던 아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갯벌에서 정신없이 뛰쳐나가 바닷가를 샅샅이 뒤졌지만 아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동네 사람들이 밤새 온 동네를 이 잡듯이 수색해도 아들은 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데려간 건지 파도에 휩쓸린 건지 엄마는 모른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는 4살 아들을 잃었다.




떼를 쓰며 눈물 범벅이 돼서 울던 나는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울고 있었다. 아빠의 어떤 폭력에도 눈물 한 번 보이지 않던 엄마가 울고 있었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우리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살았을까? 그리고 몇 번의 유산을 거듭하고 얻은 자식이 바로 나다. 그런 딸이 울면서 오빠를 낳아 달라고 했을 때 우리 엄마의 가슴은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까?



하나뿐인 아들을 잃고 세상을 다 잃은 엄마가 아빠에게는 평생 죄인으로 살았다. 그때는 엄마를 전부 이해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가슴이 미어진다. 나도 아들을 낳았고 어쩌면 내 아들이 엄마의 아들을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시체도 찾지 못한 엄마의 아들. 엄마는 손주를 보며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아들 생각을 참 많이도 했을 것 같다.















시골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빠가 아시는 분께 사기를 당하고 저희 가족은 목포로 이사를 왔어요. 갑작스럽게 환경이 바뀌면서 저는 외로움을 참 많이 탔어요. 형제자매 한 명 없는 무남독녀라 언니나 오빠가 있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거든요.




저에게도 오빠가 있었다는 얘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중학교 때 한 번 들었어요. 엄마는 그 후로 제가 물어도 잃어버린 아들의 얘기는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어요.




저희 엄마는 어지간한 일에는 잘 울지 않으십니다. 저는 엄마가 참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울 수 없었을지도 몰라요. 엄마의 삶이 무너져 내릴까 봐.




그 바닷가는 저도 어릴 때 친구들과 고동을 주우러 많이 갔던 곳인데, 길게 펼쳐진 모래사장 끝에 바가지 모양의 큰 바위 산이 있는 곳이에요. 동네 어른들과 갯벌에서 작업을 하던 엄마의 눈에서 아들이 사라진 건 정말 짧은 순간이었어요.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서 누군가의 손을 잡고 사라지기에는 지리적으로 사방이 다 개방되어 있는 구조인 그 바닷가에서 엄마의 4살 아들... 저의 오빠는 실종되었습니다. 그때 당시 시체도 없었으니 영원한 미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엄마도 아들을 가슴에서 영원히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겠지요.




저는 엄마의 얘기를 듣고 난 후, 가끔 꿈속에서 그 바닷가 그 장소에 갑니다.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고 바람이 사납게 몰아치기 시작합니다. 갑자기 주변에 물이 가득 차버려서 저는 고립됩니다. 물이 들어찬 바닷가에 절벽에 저는 위태롭게 매달려 있습니다.




꿈속에서 또다시 저는 그 바닷가로 갑니다. 갑자기 바다 끝에서 다른 섬으로 길이 생깁니다. 저는 그 길을 생각 없이 건너갑니다. 뒤를 돌아보니 제가 건너온 길은 바닷물에 덮여 사라졌습니다. 돌아갈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죠.




미스터리하게 사라져버린 나의 오빠를 찾고 싶은 간절함이 잠재의식에 남아서 이런 꿈을 자꾸 꾸는지 모르겠습니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는 오빠를 꿈에서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저희 엄마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겠죠? 저도 엄마가 되고 자식을 낳아보니 걱정도 많고, 두려움도 많아집니다. 지킬 것이 많아지면 두려운 것도 많아지나 봅니다.




저의 얘기가 누군가의 아픈 상처를 또다시 끄집어내는 일이 될까 봐 그게 가장 걱정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얘기를 꺼낸 이유는 우리 안에 깊이 박혀 있는 쓴 뿌리는 제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꺼낼 수 없는 아픈 상처가 있겠지요?


여러분의 쓴 뿌리는 무엇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