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나쌤 Mar 27. 2023

엄마의 불안은 아이에게 대물림된다

선단 공포증


"엄마, 오빠가 저걸로 자꾸 찔러요!"


딸의 외침에 달려가 보니 아들이 리코더 내부를 청소하는 가늘고 긴 막대를 손에 들고 있다. 그걸로 동생의 옆구리를 찌르는 시늉을 하며 장난을 치는 것이다.


"그러다 눈이라도 찌르면 어쩌려고 그래? 빨리 제 자리에 갖다 둬."

하지만 아들은 내 말을 듣지 않고, 깐죽거리며 계속 동생에게 장난을 걸고 있다.


사고는 한순간이라고, 난 사소해 보이는 장난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날카로운 물건이 아니라도 그것이 아들이나 딸에게 위험한 물건으로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고! 엄마 말이 말 같지 않아?"

느닷없는 호통에 무색해진 아들은 입을 삐죽 내밀고 

"갖다 놓으면 되잖아요. 엄마는 맨날 나한테만 화내고!"


아들은 긴 막대기 같은 물건을 유독 좋아한다. 그 이유를 나도 알고 있다. 해리 포터와 귀멸의 칼날을 수도 없이 읽은 아들은 가끔 책 속의 주인공이 된다. 긴 막대는 가끔은 칼이 되고, 또 가끔은 마법 지팡이가 된다. 


아들의 순수한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불필요하게 예민하다. 나의 불안과 스트레스로 인해 아들의 모든 행동에 제약을 가한다. 

조금 위험해 보인다면 옆에서 지켜보면서 안전하게 놀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지나친 예민함이 아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망치고 있지는 않는지 가끔은 걱정이 된다. 


날카로운 물건에 집착하는 것은 어쩌면 아들이 아니라 나일지도 모른다. 어릴 때 아빠가 화가 나면 집에 있는 위험해 보이는 물건들을 아빠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몰래 감추기 바빴다. 혹시나 그걸로 엄마가 위험해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부모의 불안정한 감정 상태는 어떤 방식으로든 자녀들에게 대물림된다.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자라기를 원한다면 부모의 불안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별것도 아닌 일을 확대 해석하거나 마치 큰일이 벌어질 것처럼 느끼게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아이도 불안한 감정에 자주 노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걱정인형


불필요하게 걱정이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있죠? 제가 그렇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저의 불안감 때문에 저희 가족들은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남편은 저와 결혼하고 장거리 운전을 혼자서 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가 혼자서는 못하게 하거나 반드시 제가 따라가야 안심을 하거든요.

아이들을 키울 때는 더 했죠. 

엄마와 아빠가 저희 집에 오셔서 손주들을 돌봐 주시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는 걸 제가 좋아하지 않았어요. 집 밖에서 혹시 예기치 못한 사고로 아이들이 다치거나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 때문이었죠. 태권도 학원에서 워터파크를 가거나 놀이동산을 가도, 저는 웬만해서는 보낸 적이 없어요. 


상상력이 폭발하고 매일매일이 즐거운 일 천지인 아들에게는 긴 막대기는 주문을 외울 때 쓰는 마법 지팡이가 되었다가, 악당을 물리치는 긴 칼이 되기도 하거든요.

결코 위험한 물건이 아닌데, 엄마는 그걸 자꾸 위험하다고 합니다. 


엄마와 아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 평행선을 그리며 갈등도 키워 왔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제가 가지고 있었죠. 아들이 하는 행동에는 큰 문제가 없었거든요.


어린 시절부터 제 안에 내재되어 있던 불안을 제 안에 꽁꽁 감추고 살았더니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과거의 어린 내가 느꼈던 불안은 지금의 나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불안을 마음속에서 키우고 있진 않으신가요?

매사 불안하고 마음이 불편하다면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분명 여러분을 불편하게 하는 어떤 것이 자리하고 있을 테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외할머니 장례식 상주 명단에 내 이름만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