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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솔 Jan 29. 2022

책장 정리

그간 책장을 정리하는 것이 어려웠다. 어떤 원리로 정리하면 좋을지 정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어떤 책은 보관할지, 어떤 책은 처분할지 결정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며 그대로 두었다.


최근 일이 많아서 그런가 스트레스를 받을 요인이 있어서 그런가 감정적으로 힘들다고 생각했다. 일이  많다고 스트레스를 잘 받지는 않는데, 분명 내가 괴로워하는 요소들이 있었다. 생각할 일도 많고 챙길 것도 많은데, 감정적인 것까지 섞이니,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일이 많다고 스트레스 받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류의 일을 많이 하고 있어서 꽤 운이 좋다는 생각도 하는데, 감정적으로 힘든 것이 왜 그럴까 의문스러웠다.


보통은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병행해서 진행하기 때문에, 할 일들이 복잡하다. 그래서 할 일의 목록을 만드는 일을 많이 하곤 한다. 큰 꼭지들을 적고, 각 꼭지 별로 세부요소들을 적고, 마감일이 있는 실제 투두를 별도로 작성한다.


감정이 복잡한 것은 어떻게 다루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감정 포착 리스트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주요 생각의 꼭지를 주르르 적은 후(모두 적으니 40개 였다. 일도 있고 화두도 있다) 각 꼭지 별로, 그것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이 긍정적이면 +, 부정적이면 -, 중립적이면 0, 잘 모르겠거나, 긍정 부정이 섞여 있으면 세모라고 적었다. 모두 표시하고 나니 40개 중에서 부정적인 것은 4개 밖에 없다는 것에 무척 놀랐다. 각 꼭지별로, 긍정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어떤 감정인지 세부적으로 써보았다. 기대감, 의욕, 안정감, 만족감, 뿌듯함, 대견함 등등. 부정적인 감정의경우에는 압박감, 좌절감, 걱정, 두려움, 압도당함, 거부감, 실망감, 불안함 등등. 결국 나는 약 스무개 남짓한 감정의 유형 안에서 두더쥐 잡기처럼 이 감정과 저 감정을 오가며, 돌아가며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쭉 늘어놓은 것을 보다보니 뭐랄까, 부정적인 감정도, 긍정적인 감정도 조금 스르르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의 작용일까. 나는 명상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명상을 한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으려나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런 방식을 “기록 명상” 또는 “적는 명상”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오늘은 기록 명상을 해야 겠다.”처럼 사용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이름 붙인 예로는 “아젠다 드라이빙”이 있다.


감정의 여파가 누그러지고 나니 편안해졌다. 그런데  방법,  늘어놓고, 그룹화하고, 바라보는 방법이 상당히 마음에 들어서 뭔가에  적용해 보고 싶어졌다. 오랫동안 손대지 못한, 책장 정리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우선은 책장에 꽂힌 책들 전체를 보면서 키워드나 키워드는 주제에 한정하지 않았다. 책들을 바라보니 과거에 사용하지 않았던 키워드가 보였다. 바로 “사람이었다. 책의 내용이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을 알기 때문에, 갖고 있는 책이  많았다.  사람이  ,  사람이 선물해준 ,  사람이 추천해준 ,  사람이 작업한  . 다른 것은 주제가 키워드였다. 카테고리를 설정할 만한 키워드를 꼽으니 열개 정도 였다. 하나씩 채워나갔다. 모두 채워 넣으니, 가장 많은 책을 포함한 카테고리가 “사람이었다. 책장에는 “지인”이라고 카테고리를 넣었다. .. 그래서 과거에 책장 정리가 어려웠었구나. 사람 때문에 보관하는 책을 주제로 구분하려고 했으니 힘들었던 거구나.


예전에는 책장이 정리가 안 되어 있으니 책장을 보아도 눈에 들어오지를 않고, 책 무더기로 보여서 별로 책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특정 책을 찾으려고 해도 찾기가 어려웠다. 이제는 책장의 카테고리를 머릿속으로 읊을 수도 있다. 책장에 카테고리를 적어놓기도 했다. 각 카테고리 좌측 하단에는 카테고리 명도 적어서 붙여 두었다.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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