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오이와 적정IT기술
워드프레스로 홈페이지 만드는 것을 배우고 이걸 가장 잘 활용했던 건 아마도 제주컬쳐프락시스라는 활동,시민에 의한 문화행사 모니터링 진행을 위한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때였던 것 같다.
그 전에는 직접 만들고, 내용을 넣고, 다분히 정적인 상태로 유지했고, 정보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는 구글 설문지를 사용해서 받는 정도였다. 그런데, 제주컬쳐프락시스 홈피의 경우, 문화행사 모니터링을 하는 요원들에게 직접 홈페이지에 글을 쓸 수 있도록 안내해야 했다. 우선은 문화행사를 쭉 홈페이지에 올려두고, 모니터링 요원들이 모니터링하고 싶은 행사를 골라서 구글 설문지로 신청하게 하고, 그 행사를 다녀온 후에 모니터링 레포트를 작성하게 하고.. 뒷작업은 사무국에서 수동으로 뭔가를 하고 발행하고.. 여튼 그렇게 이루어졌다. 나는 이 때 홈페이지가 참 유용하게 쓰였다고 생각했다. 홈페이지가 없다면 대체 이 작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각자 작성하고 누군가 취합해서 출력하고 배포하는 지난한 과정을 지원할 돈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 워드프레스 만세! (뭐 기능만 보면 팀블로그나 카페로도 충분히 가능하긴 하겠지만 그냥 나는 공식 무언가는 홈페이지 모양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여튼 이날 인상적인 일이 있었다. 홈페이지와 매뉴얼을 띄워놓고 이러이러하게 홈페이지에서 진행되도록 하겠다..라고 발표를 하는 자리에서였다. 나는 뒤에서 영상을 찍으면서 보고 있었는데, 참석하셨던 운영위원 중 한 분이 나에게 물었다.
“나솔씨, 근데 여기 IT 회사에요?”
“아하하, 아니에요... “
(갸우뚱해 하시며)
“음.. 그럼 저 홈페이지에서 사진에 갖다대면 사진이 커지는 거 어떻게 만든 거에요?”
“아.. 저거는 워드프레스에서 제가 잘 쓰는 테마가 있는데, 거기서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거를 쓴 거에요.” (했더니)
“아.. IT 회사 맞구나..”
“;;;;”
그분은 극단 오이라는 연극 극단을 7년간 운영해온 분이었다. 나는 인터넷에서 오이라고 검색해봤다. 웹페이지가 나오기는 했다. 다음번에 할 공연 정보와 공연 예약 방법. 하지만 오이는 7년 동안 연극을 해온 극단이었다. 너무나 이야기가 많을텐데, 그것들이 홈페이지에 모아져 있지 않다는 게 의아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사진과 영상이 있었지만, 공식 홈페이지가 없다는게 아쉬웠다.
왜지? 1번, 할 수 없었다. 2번,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2번을 굳이 택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친 나는 그 대표님한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혹시 홈페이지가 필요하시면 저한테 편하게 연락주세요~”
그냥 혹시나 해서 보냈다. 내가 먼저 보내지 않으면, 나에게 먼저 연락해서 부탁하시지는 않을 것 같아서. 고맙다는 답문이 왔지만, 만나자고 하시지는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2번이었나?
몇 일 후에 전화가 왔다. 만나자는... 대표님은 고기를 사주시면서 극단의 얘기를 풀어내셨다. 추구하는 연극, 지켜온 것들, 답답한 것들 등등.. 오이에 연극을 보러는 갔어도, 이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듣자 더더욱 오이를 위한 공식 홈페이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이 + 공연 새로 출시할 때 홍보 방법 같은 것도 같이..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라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그 안에 내용을 채우는 것은 오이 멤버 중에 홈페이지의 필요성을 느끼는 분, SNS에서 컨텐츠 작업을 하고 있는 분에게 알려 드리기로 했다. 이 작업은 천천히 진행중이다. 극단 오이는 7년간 자리했던 공간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 오픈식은 12월 말.. 우리는 그 오픈식을 홍보하는 날짜에 맞추어 홈페이지를 오픈하기로 했다.
한번은 그 대표님이 나에게 그랬다.
“나솔님은 딱 저를 위한 IT인인 것 같아요.”
나는 속으로 “저는 IT인이 아닌 걸요”라고 중얼거렸지만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IT인이고 아니고가 아니라, 이 분에게 어떤 게 필요한지를 아는 게 중요해...
나는 IT업에 종사했던 사람은 아니다. 다만 대학 때 조금 관심을 가졌었고, 이후에 IT인을 위한 영어를 나름 오래 고민하면서, IT인을 엿보면서 동경하는 마음을 품어왔다. IT를 잘 알고 활용할 수 있으면 할 수 있는게 참 많은 것 같다는 생각... 나는 잘 모르는 세계지만 멋진 것 같다는 마음 정도.. 나도 IT인이 되고 싶지만 나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극단 오이의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생각했다. 약간의 기술을 활용하는 정도로도 누군가에게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 아닐까?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이 엄청난가?가 아니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를 필요로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