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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May 15. 2020

무기한 휴업 중입니다.

2020. 03. 10. 화,  레스토랑이 문을 닫았다.

2020년 3월 8일 일요일


   레스토랑 손님이 적어도 너무 적다. 주방장은 그야말로 프랑스 사람답게 순간의 예술과 신선함을 더욱 강조하기 시작했다. 서비스를 위한 밑준비와 라인 준비를 못 하게 됐다는 말이다. 미쟝이 전혀 되어 있지 않으니 예약하지 않은 손님이 불쑥 나타나면 주방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예약 손님은 없었다. 손님이 없어도 주방에는 언제나 일거리가 넘친다. 정신없이 청소를 하던 차, 레스토랑 총 매니저 에이미의 경쾌한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네 명." "Sì~~!" '미'음에서 '파'음으로 슬라이딩해서 올라가는 셰프의 대답 소리. 순간 0.1초의 정적. 우리는 모두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는데, 젠장! 대청소 모드에서 서비스 모드로 뛰다시피 움직였다. 뭐지? 아무리 기다려도 주문서가 들어오지 않는다. 나중에 알게 됐다. 예약도 없이 들이닥친 4명의 젊은 손님들이 메뉴판 가격을 보고 줄행랑을 쳐 버렸다는 걸. 언제나 손님으로 북적거리던 일요일 점심 서비스는 그렇게 싱거운 쇼로 막을 내렸다.      

   저녁 서비스는 과연 손님이 들까? 일요일 저녁인데 하루 종일 예약이 없다니. 어쨌든 저녁 서비스를 하러 고성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이었다. "어? 뭐야? 벌써 집에 가?" 레스토랑 1층 박물관 매표소와 와인 판매 직원들이 6시도 되기 전에 터덜터덜 비탈길을 내려온다. "응, 문 닫았어." "뭐라고? 문을 닫았다고? 언제까지?" 둘 다 한숨을 쉬며 누가 알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기약이 없는 박물관과 에노테카 영업 중단이다. 

   주방 식구들만을 위한 단출한 직원 식사를 준비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저녁을 먹었다. 전에 없던 일이다. 예약 장부를 살펴보았다. 달라진 건 없다. 이번 주는 그나마 이 빠진 듯 드문드문 예약이 있었다. 남는 시간엔 모든 주방을 뒤엎고 먼지 닦아내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은 방충망 사이사이까지 하나하나 먼지를 다 제거했다. 하지만 다음 주 예약은 완전히 사막이다. 모든 예약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다음 주엔 아예 모든 집기를 다 밀어내고 고성 벽까지 반짝반짝 광을 내야 하는 걸까?  아! 딱 한 테이블! 음...... Oh! Dio! 유일한 테이블 예약의 주인공은 주방 후식 파트 엘레오노라 부모님이었다. 



    

2020년 3월 9일 월요일


   박물관이 문을 닫은 바로 다음날, 카페떼리아도 문을 닫기로 결정해다. 파트타임으로 나오는 접시 닦이 아주머니들이 출근하지 않은 지는 이미 오래다. 요즘은 요리사가 아니라 청소부나 접시닦이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다. 바리스타 쟌니도, 소믈리에 알레산드로도, 홀 서버 안나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박물관, 에노테카, 카페테리아까지...... 주방 말고는 모두 문을 닫은 셈이다. 

   소 힘줄보다 질긴 주방장 고집으로 주방 식구들만 투덜대며 출근을 했다. 고성 밖에는 주방장이 써붙인 큰 안내문이 보였다. "홈메이드 파스타와 커피, 잠깐의 편안한 휴식을 원하시는 분은 들러주세요." 아! 주방장님! 고성 자체가 폐쇄됐는데, 레스토랑과 바만 단독 운영이라니요! 


    


2020년 3월 10일 화요일


   드디어 쉬는 날이다. 산책이나 할 겸, 아침도 먹을 겸 바롤로에 자주 가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다행이다. 아직 문을 연 바가 있다. 미소도 예쁜 금발의 바리스타는 부드러운 거품의 카푸치노를 순식간에 만들어냈다. 

  '정말 이 정도로 손님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던 차, 양반은 못 되겠다. 마치 텔레파시처럼 총괄 매니저 에이미가 단체 문자를 보내왔다. 우리 레스토랑도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고. 일단 18일까지 문을 닫고, 월급은 계약서 조건에 따라 알아보고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18일까지 라니...... 전혀 그때까지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 않은데......' 어쨌든 예약이 모두 취소된 상황이니 잘 한 결정이다.  

   단체 문자가 도착하고 곧 에이미에게서 개인적으로 문자가 왔다. 오늘 레스토랑 식료품을 정리할 생각인데 좀 나누어 주고 싶다고 했다. 내게는 그 말이 내가 주방장을 좀 도와주었으면 하는 에이미의 SOS 신호로 들렸다.  "마테오, 멀리 있니? 주방장이 도움이 필요하지 싶어." 졸업 시험 준비를 하러 돌리아니까지 장을 보러 가 있다는 실습생에게 연락을 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에이미 말로는 셰프가 성 안에 있다고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고성 앞에도 뒤에도 주차장에는 주방장의 차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차, '그럼 그렇지' 주방이 있는 창문에서 빛이 환하게 새어 나온다. 언제나처럼 화분 물받이를 디딤돌 삼아 고성 벽을 타고 정원으로 입성했다. 하지만 성의 모든 두꺼운 나무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깜짝 등장은 실패한 셈이다. ''셰프! 어디세요?'' 전화를 했다.  

   한동안 손님이 적어 구석구석 쓸고 닦고 광을 냈으니, 마감 대청소는 이미 준비된 셈이었다. 다만 냉장고들은 비워내야 했다. 냉동할 수 있는 건 급냉기에, 그렇지 않은 것은 싸 갈 수 있도록 모았지만 대부분은 버렸다. 식재료를 배워낸 용기들을 모아 여러 번 설거지를 했다. "셰프, 또 할 일 뭐 있어요?" 주방장은 이젠 됐다며 천천히 혼자 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있을 때 그냥 다 해치우면 좋으련만.' 일당을 줄 상황도 아니고, 일하러 오라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들이닥친 상황이 곤란한 모양이었다. 허탈하게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나게 생겼다. 탈의실로 가서 조리화를 챙겼다. 혹시 모르니 칼가방도 챙겼다. 주방장이 물었다. "너는 뭐 어디 아주 가니?" "주방 나서면 쉬는 동안 밥 해먹을 칼도 하나 없다구요. 굶어 죽어요." 


   지금 돌아보니 칼을 챙겨 온 건 아주 잘한 일이었다. 아직 굶어 죽진 않았으니. 3월 10일 화요일부터 시작된 레스토랑 휴업이 어느덧 2달을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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