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다. 그 좁은 주방 안에서도 하루 만 보를 걸어왔다는 걸.
심상치 않다. 삽시간에 일기 예보 상황이 바뀌었다. 2시부터 흐리고 빗방울에, 5시부터는 천둥번개다. 정말 곧 빗방울이 들이칠 모양새다. 구름 색이 짙어진다. 지금 길을 나서는 게 낫지 않을까? 할 수 있을 때, 그때가 할 때다.
요리 학교를 가느냐, 구인 제안을 잡느냐의 기로에서 고민할 때가 있었다. 고민이 깊어갈 때, 친구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냥 해라. 기다리지 말고. 제일 빨리 시작할 수 있는 코스로 시작해.” 왜냐는 나의 물음에 친구는 “지금이 아니면 늦을 테니까.”라고 대답했다.
걷는 일이 그렇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계획을 다 해 놓아도, 일기예보만 믿고 나중에 걸어야지 하면, 그 사이 이미 굵은 비가 후두둑 내린다. 그래서 나는, 걸을 수 있을 때 걷는다.
이탈리아에서 지금처럼 걷는 자유가 다시 '허용'된 건 불과 열흘이 조금 넘었을 뿐이다. 5월 4일이 되어서야 운동 목적의 외출이 허용되었다. 그 전에는 개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제일 부러웠다. 개를 데리고는 합법적으로 아무 길이나 걸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3월 10일 레스토랑이 문을 닫은 그 날부터 5월 3일까지, 약 두 달 동안 나는 불법 외출을 감행한 셈이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 경찰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좁은 흙길만 골라 혼자 걸었다. 벌금과 유치장행도 불사한 걷기였다.
집에서 마트까지는 대략 500미터. 장을 보러 가던 길, 마트 바로 앞 도래터 근처에서 있는 줄도 몰랐던 흙길을 발견했다. 벽돌 공장이 있던 곳까지의 길은 온통 붉었다. 비탈길을 올라가니 순간 눈앞에 연둣빛 포도밭이 펼쳐졌다. 포도밭 언덕 꼭대기에는 푸른 옷의 마리아상과 아기 예수가 있었다. 저 멀리 건너편 언덕 꼭대기는 내가 일하는 그린쟈네 성이 보였다. 아, 이 길이 이렇게 통하는구나. 이곳에서 2년을 넘게 살면서도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이다.
검문을 피해 걸을 수 있는 산책로를 발견한 후, 비만 오지 않으면 어김없이 포도밭 산책을 나섰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과 불안이 나를 덮칠 때, 급히 등산화 신발끈을 맸다. 걷기를 시작한 후 잠을 푹 잘 수 있게 되었다. 시골에 산다는 것, 걸을 수 있는 흙길이 있다는 것이 충분히 감사할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사흘 연속 큰 비가 내린 날이 있었다. 사흘 동안 집안만 뱅뱅 돌았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포도밭 길로 급히 들어섰다. 건조했던 땅은 빗물을 한껏 머금었는지 걷는 길이 폭신폭신했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그런데 풀이 덮이지 않은 길로 들어서자 발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넘어질 뻔하다 간신히 중심을 잡기를 몇 번, 온몸에 진땀이 났다. 경사진 헤이즐넛 숲으로 들어서니 이번엔 발이 진흙탕에 푹푹 빠졌다. 등산화 위로 두꺼운 진흙 덧신을 신은 꼴이었다. 이미 너무 와 버렸다. 뒤 돌아가기도, 앞으로 전진도 힘들었다. 순간 다시 미끌. 진땀이 났다. '아무도 없다. 여기서 넘어져서 팔다리라도 부러지면 어쩌지?' ‘어쩌자고 이렇게 멀리 나온 걸까?’ 도무지 이 험한 길이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난감했다. 죽었다 싶었지만, '아! 살았다!' 어느덧 내 두 발은 단단한 자갈길을 밟고 있었다.
하루는 너무 늦게 집을 나섰다. 해가 지고 있었다. ‘언제나 다니던 길로 가면 괜찮아,’ 그런데 나도 모르게 또 새로운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 길로 한 번 가볼까? 저 큰길로 연결될 것 같은데?’ 순간의 선택으로 나는 길을 잃었다. 어둠 속에도 깊이가 다른 짙은 어둠이 또 있다는 걸 헤이즐넛 숲 속을 헤매면서 알았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멧돼지라도 만나면 어쩌지?' 바스락 풀잎 스치는 소리에도 오싹 소름이 돋았다. 한참을 정신없이 헤매고서야 아스팔트가 깔린 큰길을 찾아 나올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아는 길 아주 근처에서 길을 잃었다는 걸 알았다.
“그때 말이야. 난 생각했었다? 왜 네가 그렇게 불안해할까?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너 이탈리아 막 도착한 때였잖아.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즐겁게 시간을 보냈으면 좋을 텐데 싶고, 널 보는 내내 안타까웠어.” 돌아보니 나도 그게 나았을 텐데 싶다. 그런데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리저리 실마리를 찾아 헤매는 일뿐이었다.
문제를 풀고 나서 되돌아보면 어려운 문제도 쉽게 보인다. 그렇게 쉬운 문제를 왜 틀렸을까 싶고. 오답 속에서 헤맬 때는 답답하기만 할 뿐, 도무지 길을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정답이 아주 근처에 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표식이 되는 건물이든, 나무든, 별이든 이정표만 보이면 길을 찾을 수 있다. 아무것도 안 보일 땐? 그래도 걷는다. 언젠가는 이정표가 보일 테니까.
안 되겠다. 지금이다. 나가자. 벽을 아예 허무는 건지 엄청난 소음에 진동까지. 또다시 옆집에서 ‘드르릉드르릉’ 예고도 없이 공사를 해댄다. 오늘은 창문 서편으로 멀리 보이는 저 종탑이 있는 교회까지 가보자. ‘너무 멀지 않을까? 곧 비도 들이닥칠 텐데 괜찮겠어?'그럼, 오늘 갈 수 있는 곳까지만. 일단 나서자. 나서면 걸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