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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May 18. 2020

전망 없이 흐린 이태리 전망대

두 달 동안 생통장만 파서 먹고살았더니 배가 아파왔습니다.

'이 셰프, 잘 지내시는가?' 

'네, 아직 살아 있습니다.'

'난 나라에서 준 재난 지원금으로 위스키 사서 마신다네. 지방 정부에서 15만 원, 중앙 정부에서 40만 원.'

'아, 한국이 참 좋은 나라가 되었군요. 부럽습니다.'

'이탈리아는 그런 거 없나?'

'9주 동안 월급의  80프로를 약속했지만, 아직 보지 못 했습니다.'

'엉망이구먼!'

'올해 안에 그 돈 받으면 행운이겠구나 싶습니다.'

'비자금은 있는가?'

'생통장 파먹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 생통장을 파먹느라 배가 아파서였나? 어젯밤 도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 2시가 넘어 잠이 들었나 보다. 누워서 눈을 감고도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며칠 전 새로운 뉴스를 들었다. 피에몬테 주와 토스카나 주에서는 5월 25일부터 레스토랑, 커피숍, 헤어숍의 영업을 허용하겠단다. 6월 1일로 예정되었던 날짜보다 일주일이 빠른 시점이다.


'감염자가 늘더라도 셧다운은 푼다'는 말에 또 놀랐다. 코로나보다 경제 붕괴가 더 무서운 것일까? 국민들의 원망을 피해 책임질 수 없는 규제는 그만 하겠다는 것인가? 하지만 그 또한 책임감 없는 처사이다. 상황은 아직 셧다운을 풀 때는 아니고, 대책도 없지만,  이제는 더 규제하지 않는다?  


3월 첫째 주에서 둘째 주 사이, 이탈리아 전역 대부분의 업장이 문을 닫고, 문을 닫은 9주의 기간 동안 사장은 임금 지불의 의무가 없어졌다. 9주 사이 직원을 잃을 염려도. 하지만 정부가 약속한 고용보험공단 INPS의 보조금은 누구도 보지도 받지도 못 했다. 

매달 벌어 월세를 내온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나? 집주인이 월세를 낮춰줄 경우, 정부에서 세금 감면 혜택을 준다고 했다. 하지만 월세를 낮춰 주었다는 사례는 아직 듣지는 못 했다. 다만, 월세 같은 매달 고정 지출이 있고, 은행에 저금해 둔 돈도 없으며, 부양할 가족은 많아서 정말로 상황이 긴박한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의 제도가 생기기는 했다. 아주 복잡한 여러 서류를 작성하고, 사장의 동의서와 싸인을 얻어 자신이 거래하는 주거래 은행에 가서 언젠가는 INPS에서 받을 보조금을 담보로 최대 1400유로의 돈을 빌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거의 모든 은행은 일반 업무를 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인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니, 대다수는 그런 제도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긴급 대출과는 상황이 아주 먼, 명품을 치렁치렁 온몸에 두르고 다니는 러시아 여자 안나만 사장에게 그 공문을 건네받자마자 은행에 알아보았다 한다. 하지만 은행조차 알지 못하는 일이었고, 매뉴얼도 없었다.


'가브리, 5월 18일부터 통행 규제가 풀린대. 다시 함께 산에 등산을 갈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밀라노에서 일을 하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돌아온 가브리의 문자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자택 규제가 풀리더라도 앞으로 많은 규제가 있을 거야. 난 아무래도 내년까지 자택 근무를 할 거야.' 뭐? 내년까지?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그들은 사무실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어쩌면 한 나라의 대통령보다 한 회사의 대표가 더 현명한 선택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코로나의 집단 감염을 피하기 위해 직원들을 자택 근무로 돌리고, 임금도 꼬박꼬박 지불한다. 나라님도 가난은 어쩔 수 없다고 했던가? 사장님은 개인의 임금을 책임진다.

 

반면 독일에서 여행과 운송 관련 업체에서 일하는 한 친구는 임금의 60퍼센트를 이미 받았다고 했다. 앞으로 몇 달 더 그 정부 보조금에 의지해야 할 상황이라고. 회사가 워낙 큰 데다 여행 및 운송업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을 하는 친구다 보니, 새로운 직장을 찾기 위해 요즘 화상 인터뷰를 본다고 했다. 지원 결과는 좋지 않았고, 친구는 잠깐 낙담해 있었다. 하지만 내게 친구의 상황은 희망적으로 보였다. 이탈리아와는 달리 정부 지원금이 실제로 지급되고 있는 상황이니 당분간 생계에 대한 문제는 없다. 지금 인터뷰에 성공하지 못 한 이유는 코로나 사태로 고용 시장 자체가 유래 없는 레드오션이 되었기 때문이 크다. 친구는 우울하다고 말했지만, 정부 보조금에만 기대지 않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회사에 인터뷰를 보는 친구의 당찬 대처 자세가 굉장히 긍정적이고 도전적으로 보였다. 현명한 선택이다. 

많은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던 커다랗고 맑은 샘물이 지금은 막혀버렸다. 샘물이 다시 복구되기까지의 시간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다시 복구되더라도 그 샘물이 다시 깨끗하게 퐁퐁 솟아 이전처럼 많은 사람이 다 함께 마실 수 있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샘물 앞에서 기다릴 게 아니라, 정부에서 지원받은 물을 물통에 담아 새로운 샘물을 찾아 나서는 도전을 하는 건 어떤가? 


자택 근무가 가능한 업계의 상황은 다른 직종보다 상황이 나아 보인다. 그렇다면 물리적으로 고정된 공간에서 노동을 해야 하는 레스토랑의 경우는 어떠한가? 롬바르디아 주 다음으로 상황이 심각해진 피에몬테 주에서는 5월 25일 이후에 레스토랑, 커피숍, 헤어숍의 영업을 허락하기로 했다. '모든 손님들 사이 1미터 간격을 유지, 홀 서버들 장갑 마스크 착용 의무.' 두 가지 지침 말고는 레스토랑 재오픈 가능 일주일 전인 오늘까지도 어떤 지침도 들은 바가 없다. 화요일 오후에는 그린자네 카불 고성 안뜰에서 레스토랑 회의가 열린다. 과연 어떤 결정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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