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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May 18. 2020

"친구야, 나 알바 다녀왔어." "무슨 알바?"

하하하, 도시 이름이 알바 Alba야

띠링!    

“나 마테오야. 내 물건들 가지러 내일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어. 아침 9시쯤 도착할 텐데 너 시간 있니?”     

어제 도착한 보이스 메시지를 아침에 확인했다.  


아! 그렇지! 오늘이 대망의 5월 18일! 오늘부터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통행 허가증도 필요 없다. 다시 자유의 몸이 되다니!     


오랜만에 본 마테오는 좋아 보였다. 머리를 기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머리 꼭대기에 토끼 꼬리만 한 꽁지머리를 달고 있었다. 팔뚝 근육은 두 배로 키웠다. 얼굴엔 다시 생기와 미소가 가득했다.      

“나 다시 조깅 시작했어. 잘 지냈니?”

“계속 혼자 있는 거, 정말 쉽지 않더라.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해봤어. 독서, 글쓰기, 공부, 걷기...... 3주쯤 됐을까? 걷고 있는데 내가 울고 있지 뭐야? 걸으면서 진짜 엉엉 소리 내서 울었어. 웃기지? 영화 캐스트 어웨이 Cast Away처럼 공이 있었으면 얼굴 그려서 윌슨 만들 뻔했어.”

“오, 이런, 진짜? 눈물이 날 정도면 정말 힘들었겠다. 

“지금은 웃지, 뭐. 넌 60살 다 된 삼촌이 여자 친구랑 매일 전화로 싸우는 소리가 지겹다고 했지? 삼촌한테 가서 오늘 고맙다고 해라.”     


요리 학교 알마에는 아무리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해도 답변이 없다고 했다. 우리 레스토랑에서 예정된 실습 기간을 채우지는 못 했지만, 경제적 이유로 예전에 면접을 보았던 곳에 일을 하러 간단다.      

“언제부터 일하니?”

“수요일에 주방 정리하러 갈 거야. 이틀 뒤 출근인데 조리복이며 칼이며 모두 다 여기 레스토랑에 두고 온 거 있지? 이렇게 상황이 길어질 줄 몰랐지.”

각 주마다 코로나 상황이 다르니 이탈리아 정부에서는 각 주의 장에게 결정권을 넘겼다. 초반에 더 심각한 레드존이었던 에밀리아 로마냐 Emilia Romagna도 이제는 상황이 나아졌는지 오늘부터 모든 가게는 물론 레스토랑도 문을 열 수 있다고 했다.      


“너희는 언제부터 여니?”

“부활절에 주방장이랑 에이미만 배달 서비스 시작한 거 알지? 그 후 쭉 배달 서비스는 하고 있어. 정상적인 재오픈은 아직 알 수 없어. 내일 회의가 끝나야 윤곽이 보이겠다. 우선 오픈 날짜부터 정하고 광고를 해야 예약이 들어올 텐데. 이 근처 한 레스토랑은 피에몬테 주 발표 듣자마자 예약 날짜를 확정하고 고객들에게 알렸더니 벌써 첫날 예약이 꽉 찼대. 이스라엘  손님이 7월 예약을 벌써 했대. 6월 초에 국경을 연다더니 여름쯤에는 외국인 손님들도 얼마간은 돌아올 모양인 가봐.”      


“그렇구나. 나 알바에 간다고 했더니, 소믈리에 하는 친구가 와인 사 오라고 부탁했거든. 근처 아는 에노테카 있니? 와인 사러 같이 갈래?”

“그래? 알바 쪽으로 가 볼까? 정말 가게들이 다 열었을까?.”     

2달 만에 알바 행. 10시가 조금 늦은 시간, 알바에 도착했다. 바람을 타고 코를 간지럽히는 초콜릿 냄새. 아! 알바다! 페레로 Ferrero초콜릿 공장에서 날아오는 헤이즐넛 초콜릿 향이다. 

알바는 이제야 천천히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커피숍 앞에는 테이크 아웃 잔을 든 손님들이 여럿 눈에 보였다. 여기저기 가게 문을 열고 쇼윈도를 청소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두 달 동안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는라 분주해 보였다. 두 달 동안 어디서도 느끼지 못 한 활기다.     


비아 마에스트라 Via Maestra에 있는 단골 칼 가게부터 들렀다. 

“하하, 오랜만이에요, 아저씨. 마스크 진짜 멋지네요.”

아저씨는 어디서 구했는지 공상 영화 소품 같은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하면 쓸 만한 마스크 같았다. 

“아시죠? 왼손잡이 용으로 갈아주세요.”

가장 만만하게 자주 사용하는 빅토리녹스 셰프 나이프를 건넸다. 

“그래, 커피 한 잔 마시고 오라고. 내가 멋지게 갈아줄 테니.”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를 한다던 마테오 친구의 와인 리스트 덕분에 오랜만에 정말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응? 라크리마 디 모로 디 알바 Lacrima di Morro d’Alba? 하하하”

“왜 웃어?”

“이 와인은 이름만 이렇지 여기 알바랑 아무 상관없거든. 마르케 Marche 주 앙코나 Ancona 쪽에서 만드는 와인일 걸? 나도 처음 이 와인 마셨을 때 깜빡 속아 이름만 보고 이렇게 생각했었거든.” 

두 번째로 들른 에노테카에서 나올 땐 각자 두 병의 와인이 손에 들려 있었다. 손은 무거워졌는데, 마음은 가벼웠다.     


“야, 마테오. 쉬는 시간 되면 샤워하고 해변에 누워서 일광욕에, 수영에, 비키니 입은 여자들 보고, 대박이겠다! 행운을 빈다.”

“하하, 고마워, 가을에 다시 돌아와서 실습을 마저 끝내고 싶어. 다시 보자.”     


칼도 갈았고, 내일 레스토랑 회의도 있다. 뭔가 정말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다. 레스토랑이 어떤 모습도 바뀔지 알 수 없다. 그래도, 다시, 시작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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