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소매치기 만나보셨나요?

왕초보 이태리 여행자를 위한 도난 방지 가이드

by 이지윤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소매치기, 집털이 얼마나 당해 보셨나요? 한국이 '살기 좋은 나라', '치안이 좋은 나라'로 인식되고 있는 만큼 요즘 세상에 한국에서 소매치기를 당하신 분들은 많지 않으리라 짐작합니다. 저는 이탈리아에서 10년 가까이 거주하면서 세네 번의 소매치기를 당했고, 이사할 때마다 도둑들이 집 문을 땄습니다.


즐거운 이탈리아 여행에서 소매치기를 만나기 싫으시다면 몇 가지 사항에 주의해 주세요.


나폴리 지역 대중교통 소매치기 주의 포스터


<소매치기들은 혼잡한 대도시, 대중교통을 타고 움직입니다. >

제가 소매치기를 당한 곳은 토리노, 밀라노, 로마 등 대도시에서였습니다. 그중에서도 버스 승강장, 버스 안, 지하철 역, 지하철 안, 기차역, 횡단보도 앞 등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곳에서였지요.

그들을 얕잡아보지 마세요. 그들은 전문가입니다. 토리노 만원 버스 안에서 잠깐 핸드백에서 립밤을 꺼내 발랐을 뿐인데 버스에서 내려보니 감쪽같이 지갑이 사라져 있더군요. 버스나 지하철, 횡단보도 앞에서 "좀 같이 탑시다!"하고 훅 밀면서 따라붙는 사람이 있다면 소매치기 100프로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대도시에서 움직일 일이 생기게 되면 웬만하면 대중교통을 피하고 걸어 다니거나 택시를 탑니다.


<자유로운 두 손, 힘찬 발걸음은 소매치기가 싫어합니다.>

밀라노로 아웃을 하는 지인을 토리노 기차역에서 배웅할 때였습니다. "밀라노에 그렇게 좀도둑이 많나요? 제가 짐이 이렇게 많은데 괜찮을까요?" "무거운 캐리어까지 있으시니 두 손이 자유롭지는 못하겠네요. 저라면 짐을 캐리어에 모두 넣거나, 지금 등에 매려고 하시는 가방을 캐리어 위에 올려서 적어도 한 손은 자유롭게 하겠어요." "등짐을 앞으로 매도 안 될까요?" "보통 백팩은 앞으로 매시면 낫지만, 캐리어는 아래에 있고, 백팩은 가슴 앞에 있으면 시선이 분산되지 않으시겠어요? 한 손엔 캐리어를, 다른 한 손엔 휴대폰을 들고 구글 지도를 보시면서 호텔을 찾아가셔야 하는데 조금 걱정이 됩니다. 미리 길을 숙지하시고, 두리번거리지 마시고 빠른 발걸음으로 호텔까지 가시면 좋겠어요." 일행이 있다면 모를까, 짐을 많이 들고 혼자 초행길에 나설 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지요. 고민하시던 지인은 밀라노 중앙역 도착 후, 우버를 이용해 호텔까지 이동하셨다고 전해 주셨어요. 밀라노 중앙역에서 호텔까지 거리가 꽤 있는데 해진 후 걷기가 부담이 되셨다고 하더군요. 참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값나가는 물건은 소매치기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깁니다.>

로마 스페인 광장 근처에서 아버지께 선물할 살바토레 페라가모 벨트를 사고 지하철을 탔을 땝니다. 작고 빨간 쇼핑백에 새겨진 금박의 Salvatore Ferragamo라는 글자가 그렇게 많은 집시들을 벌떼처럼 모이게 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하철 안 집시들 무리가 저를 둘러싸고 있고, 제 핸드백 가방은 놀란 듯 입을 쫙 벌리고 있더군요.


<소매치기들은 맥도널드, 케이에프씨, 스타벅스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어쩜 좋아! 여기 있는 이 사람들 다 한 무리 같아. 내 가방이 몇 초만에 사라졌어!" 로마에 놀러 간 친구가 울면서 전화가 왔습니다. 한국에서처럼 습관적으로 잠깐 의자 위에 올려 뒀던 가방이 몇 초 만에 사라졌다는 겁니다. "어디서 잃어버렸어?" "맥도널드...." "......" "무슨 가방인데?" "루이뷔통 신상이야." "......" 그렇게 가지 말라고 주의를 줬던 맥도널드를 기어이 가고야 말았던 겁니다. 사고 싶으면 고이 모셔 뒀다가 한국 가서 들고 다니라고 했던 값나가는 가방도 한몫했군요.


<입구가 봉쇄된 곳에 중요품을 넣으시면 소매치기가 쉽게 작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탈리아 토리노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유럽에서 제일 큰 오픈에어 마켓 뽀르따 빨라쪼(Porta Palazzo)에 가는 걸 즐겼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 것도 모르고, 몰라서 겁도 없던 시기였습니다. 매대마다 가득 쌓인 온갖 과일과 채소가 뿜어내는 향기와 색채의 향연에 넋을 놓곤 했었죠. 아직 소매치기를 한 번도 당하지 않았던 때였어요. 제가 얼마나 우물가 어린애처럼 보였던지, 채소를 파는 행상이 저를 보고 “그 뒷주머니에 넣은 휴대폰 조심해요!”라고 몇 번이고 주의를 줬습니다. 이탈리아 말을 거의 못 할 때였지만 진심어린 주의를 주는 바디 랭귀지는 충분히 알아 들을 수 있었죠.

한국에서는 누가 휴대폰을 훔쳐 가기나 하나요? 가방도 어디에 올려 두어도 누구 하나 손을 대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소지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습관들이 이탈리아 소매치기들에겐 “이게 웬 떡이냐?”하고 쉬운 게임을 제안하는 셈이 되는 거지요.

여행 중 지갑이나 휴대폰을 도둑 맞으면 참 곤란해집니다. 중요한 소지품은 꼭 입구가 봉쇄되는 지퍼나 뚜껑으로 완벽히 닫히는 곳에 보관해 주세요. 입구가 훤하게 열리는 쇼퍼백이나 쉽게 물건을 꺼낼 수 있는 뒷주머니에는 지갑이나 휴대폰을 넣지 마세요. 품안에 속주머니가 있는 옷이라면 이탈리아 여행용으로 딱입니다.


"어째서 이탈리아에는 그렇게 도둑이 많은 거야?" 즐겁게 여행 계획을 세우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각별히 주의를 주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입니다. "이탈리아, 정말 그 정도인가요?" 지인들의 질문을 받으면 이탈리아가 제 조국은 아니지만 긴 시간 애정을 가지고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한 약간의 부끄러움이 듭니다. 마치 이탈리아 친구들이 "한국 사람들은 정말로 개고기를 먹어?"라는 질문을 받을 때와 비슷한 종류의 불편한 감정이랄까요?


이탈리아 밀라노, 로마뿐만 아니라 프랑스 파리나 스페인 바르셀로나도 소매치기로 악명이 높지요. 대도시에 소매치기와 도둑이 많은 이유, 왜 그런지 생각해보셨나요? 제가 겪은 소매치기들은 무리로 움직이는 집시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한 끼를 굶어야 하는 괴로움이냐 소매치기를 하며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냐 선택의 문제겠지요. 배고픔은 시간만 되면 매번 다가오지만, 소매치기 승률은 잘만 준비하고 타깃을 잘 고르면 높은 편이니까요. 왜 소매치기가 많은지는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남부 아말피 해안에 사는 친구들과 함께 나폴리 빈민가를 지나갈 일이 있었습니다. 폰타넬레 지하 공동묘지(Cimitero delle Fontanelle)를 찾아가는 길이었어요. 좁은 골목과 낡은 샷시나 나무 문들, 길거리에서 까만 매연을 뒤집어쓰며 말라가는 빨래들 사이에서 녹록치 않은 삶의 어려움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좁은 골목 사이사이마다 기도를 하는 작은 마리아상, 나폴리에서는 빈자들의 친구로 인식되는 턱이 긴 배우 토토의 그림, 여기저기 그려진 아름답고 커다란 벽화들을 보며 저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이 들린 듯 카메라 셔터를 찰칵찰칵 누르던 중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카메라를 가방 안에 숨기고 앞으로 메고 걷는 게 좋겠어. 당장 배가 고픈 사람들에겐 카메라 하나 훔치는 것 정도는 죄책감도 들지 않을 거야." 그도 그럴 것이 샌드위치처럼 저를 중간에 두고 친구들이 앞뒤로 저를 엄호하고 걷고 있었으니, 아무리 남부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해도 호시탐탐 바라보는 눈길들에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겁니다.


농촌을 뒤로하고 사회적 안전망 없이 도시로 이주해 도시 빈민이 급증했던 70년대에는 우리나라에도 서울이나 부산에 소매치기가 들끓었다고 하지요.

'한국 개고기'도 같은 맥락이 아니겠습니까? 일부러 저를 곤란하게 하려고 개고기 문화 질문을 하는 이탈리아 사람이 있으면 눈을 똑바로 보고 이야기합니다. 이탈리아에도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를 잡아먹지 않았었냐구요. 그럼 이탈리아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는 말이라고 수긍을 합니다.

물론 몸보신, 정력 등을 위해 아직도 개고기를 즐기는 사람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부산 구포에 개고기 시장이 있다는 건 분명히 소비자가 존재한다는 거겠지요.


저도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이탈리아에는 도둑이 많을까? 다시 생각해보니 '이탈리아에 도둑이 많다.'는 정의는 무리가 있습니다. 시골로 이사를 오고 나서는 한 번도 도둑질을 당한 적도, 도둑 대한 염려나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없었으니까요. 와인으로 유명한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 근처 시골에서 살기 시작한 2017년 2월 무렵부터는 누군가 나를 노리고 있다는 불안함으로부터 해방되어 얼마나 기쁘고 홀가분한지 모릅니다. 하지만 언제나 평화로운 시골에서만 지낼 수는 없지요. 멀리서 온 지인을 맞으러, 혹은 일 때문에 토리노나 밀라노를 가게 되면 소매치기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여전히 괴롭습니다. 매 순간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엇! 하고 일이 터지기 때문이지요. 오랜만에 도시 나들이를 하면 전시회, 음악회며 문화 산책을 한다는 기쁨도 잠시, 극도로 곤두선 신경에, 피곤함이 아직도 저를 케이오시키곤 합니다.


"소매치기? 난 그런 거 듣보잡인데? 에이...... 뭘 그렇게 겁을 주고 그러실까?" 이탈리아 여행을 하시며 한 번도 소매치기를 마주치지 않으셨다면 제 글이 이해가 되지 않으실 거예요. 당신은 충분히 운이 좋은 편이었군요. 아무 탈 없이 여행이 끝난다면 제일 좋겠지요. 하지만 잠깐 방심하는 사이 신분증이나 서류가 든 지갑이나 가방을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즐거운 여행은 순식간에 엉망이 되어 버립니다. 조심한다고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이탈리아 대도시를 여행하신다면 각별히 신경쓰셔서 소매치기들의 쉬운 먹잇감 찾기 레이더망에서 벗어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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