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사람들은 정말 매일 와인을 마시나요?

10년 가까이 매 끼마다 이탈리아 와인을 마셨더니......

by 이지윤

“어허..... 이상하네요.”

“네? 무슨 이상이 있나요?”

“매일 술을 드신다고 했는데 보세요! 위와 장이 모두 아주 깨끗한 선홍색입니다. 아무 이상이 없어요. 이럴 리가 없는데요."


지난 6월, 한국에 들어갔을 때 위와 대장 내시경을 받았더랬습니다. 검사 후 선생님과 문진을 하며 나눈 대화입니다.


식사 때 와인을 한두 잔 하는 편이라고 했더니, 선생님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셨어요.

"술은 꼭 줄이셔야 합니다."

"아..... 그렇군요......"라고 대답은 했지만, 병원을 나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정말 와인이 몸에 그렇게 나쁜가? 그도 그럴 것이, 이탈리아 의사들과 상담을 할 때, "제가 식사 때마다 와인을 한두 잔 정도 마시는데요, 괜찮을까요?"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을 짓습니다. "식사 때 와인 한두 잔이요? 오히려 그건 약이에요."


여러분은 술을 얼마나 드시나요?

매일 마신다고 제가 솔직하게 대답하면 많은 분들이 "매일? 뭐야? 알코올 중독이야" 하실 겁니다. 어디선가 많은 양의 술을 마시는 것보다 매일 조금씩 마시는 게 더 위험하다는 기사를 읽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라는 정의를 적용하면, 이탈리아에 거주하고 있는 저는 물론, 이탈리아 사람들의 대다수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셈입니다.


논란이 될 만한 화두가 될 수도 있겠군요. 과음은 분명히 나쁩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와인은 술이 아니라면요? 그도 그럴 것이 이탈리아 인들에게 와인은 식사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매일 밥을 먹듯이, 이탈리아 사람들도 매일 밥을 먹으니 식사의 일부분인 와인도 매일 마시게 되는 셈입니다.


와이너리를 방문하면 와인 메이커들에게 꼭 듣는 말이 있습니다. 와인은 술이 아니라 생명이라구요. 생명을 지탱할 수 있게 도와주는 그 무엇이라는 겁니다. 물, 빵, 올리브 오일, 소금과 더불어 와인은 이탈리아 인들에게 삶을 지속하고 생명을 주는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집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께 여쭤봅니다. "Cosa sarebbe il vino per Lei? (와인은 당신에게 무엇인가요?)"라고 물으면, 약속이라도 하신 듯, "Il vino è la vita.(와인은 삶이에요.)"라고 대답하십니다.


피에몬테 지역이 와인으로 이렇게 유명해지기 전, 랑게와 로에로 지역의 농부들은 아주 가난했다고 합니다. "내 어릴 적을 생각해 보면, 정말 먹을 게 없었어요. 할아버지는 아침에 밭에 나가서 해가 지면 집에 돌아오곤 했었죠. 하루 종일 뜨거운 볕 아래서 일하시면서 점심으로 챙겨간 게 뭔 줄 아세요? 말라비틀어진 빵이랑 와인이었어요. 살라미 한 조각, 치즈 한 조각이라도 챙겨 가시는 날은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어요. 딱딱한 빵을 와인에 적셔 드시고, 물 대신 와인을 마시고는 황소처럼 하루 종일 밭에서 일을 하셨죠. 와인은 힘을 주지요. 와인은 우리에겐 삶을 지탱할 수 있게 도와준 생명수예요."


이탈리아에서는 와인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더 특이한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그러니 ‘와인을 마시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도 따로 있지요. 와인을 마시지 않는 남성을 아스테미오(Astemio), 여성은 아스테미아(Astemia)라고 불립니다. 바롤로로 올라가는 언덕에는 '후회한 여성 금주자(L"Astemia Pentita)'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와이너리도 있답니다. 바롤로 지역의 와인이 훌륭하다 보니 한 번만 맛을 보면 술을 안 먹는 사람도 그동안 그 와인 맛을 안 보고 살아온 지난 세월이 후회되기도 하겠지요.


혹시, 역사 학자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이탈리아 토리노 출신의 역사학자 알레산드로 바르베로(Alessandro Barbero)를 참 좋아합니다. 하얀 머리칼에 동그란 배, 배만큼이나 동그란 안경 너머로 반짝반짝 호기심 어린 눈빛, 쨍쨍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이 역사 학자는 제게는 어렵기만 했던 유럽과 이탈리아의 역사 강의를 참 쉽고 재미있게 해 주시거든요.


한 번은 그가 티브이쇼에 나왔을 때, 티브이쇼 진행자는 쇼의 시청률과 재미를 위해 그에게 조금 민감한 질문을 합니다.


"교수님은 술 마시는 걸 좋아하십니까?"

"매 끼마다 와인을 두 잔 정도 마십니다."

"그럼 하루에 거의 1리터를 마시는 건가요?"

"아니요. 식사마다 두 잔 정도를 마시니 와인 한 병이 있으면 세 끼의 식사를 하는 셈이죠. 정확하게 세면서 마시진 않습니다. 전 식사 때만 반주로 와인을 마십니다. 도수가 높은 술은 입에도 대지 않지요."

"보통 화이트 와인을 드세요, 레드 와인을 드세요?"

"여름엔 화이트, 겨울엔 레드 와인을 마십니다."

"말씀 중에 교수님께는 와인이 '필요'하다는 표현을 하셨는데요? 와인이 '필요'하신가요?"

"없으면 아쉬운 걸 '필요'라고 본다면 필요라고 볼 수 있겠죠. 언젠가 의사가 술을 줄이라고 말하고, 꼭 그래야 한다면 아주 유감일 겁니다."


티브이쇼 진행자는 그에게 '당신은 알코올이 필요한 사람, 다시 말해 알코올에 의존하는 사람이냐?'라고 묻고 싶었던 겁니다. 역사 학자는 침착하게 당연히 필요한 거 아니냐,라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죠. 마치 우리가 매일 식사를 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요.


곧 사회자는 "그렇죠, 물이 몸에 좋지 않지, 와인은 몸에 좋은 거잖아요."라고 웃으며 화제를 전환하니다. "그럼요, 중세 시대에 물은 믿을 수 없는 아주 위험한 음료였죠. 그에 반해 와인은 믿을 수 있는 음료수였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식사 자리에서 물은 손도 안 대는 사람을 보면 "L'acqua fa male, ne? (물은 몸에 안 좋지, 그렇지?)"라고 농담을 합니다. 그 농담 안에 중세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에 들어갔을 때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점심으로 돌솥 비빔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친구가 주최한 북 토크 뒤풀이 겸이었어요. 저는 시원하게 맥주를 한 잔 했으면 했지만, 아주 편한 자리는 아니라 그저 숭늉만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여기요, 아주머니, 사이다 한 병 주세요." 하는 겁니다. "사이다????" 사이다를 꿀꺽꿀꺽 들이키는 친구를 보며 걱정이 되더군요. "친구야, 사이다는 마시면 안 돼. 차라리 맥주를 마셔." 저도 모르게 제 이상한 소신이 튀어나오고 말았어요. 그런데, 제 옆에 앉아 계시던 동화 번역가 황진희 선생님도 바로 제 말에 맞장구를 치는 겁니다. "그래, 선생님, 사이다는 정말 몸에 나빠, 안 돼. 차라리 술을 한 잔 해."

둘 다 동시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사이다 마시는 친구를 말리자 친구는 놀란 듯, "엥? 맥주는 되는데 왜 사이다는 안 돼?"라고 물었죠. "사이다나 콜라엔 엄청난 당이 들어 있어. 향을 내는 화학물도 들어 있고." "그럼 맥주는?" "맥주는 발효주잖아. 효모가 살아 있다구. 혈액 순환도 도와주고. 그러니 와인이나 맥주를 마셔.” 말도 안 되는 논리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도 콜라나 사이다보다는 오랜 세월 안전한 음료로 인정받은 와인이 몸에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치 중세 시대의 믿을 수 없는 위험한 음료였던 물처럼, 이 시대의 콜라나 사이다 스프라이트 같은 탄산음료들은 정확한 레시피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저는 탄산음료를 물처럼 마시는 습관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걱정이 됩니다.


적어도 이탈리아에 오시면 맛있는 식사 하시면서 착향 탄산음료 대신 그 지역에서 빚은 향기로운 와인 한 잔 해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