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시골과 도시의 손님 초대 문화 차이
이탈리아에서 생일 파티 초대를 받은 당신,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예시>
가.
화자1: "다음 주 토요일이 내 생일인데, 우리 집에 올래?"
화자2: "응, 고마워, 뭐 가지고 갈까?"
화자1: ?
나.
화자1: "다음 주 토요일이 내 생일인데, 올래?"
화자2: "장소랑 시간을 알려 줄래?"
화자1: "저녁 8시 반까지, 레스토랑 이름은 문자로 보내줄게."
위의 예시를 보고 다음의 두 문제에 답하시오.
1. 예시 가. 에서 마지막으로 화자1이 한 말은?
가) 뭘 가지고 와? 몸만 오면 돼!
나) 단체방을 만들 건데 거기서 이야기하자.
다) 니가 먹고 싶은 거 한 접시만 가지고 와.
라) 니가 마시고 싶은 와인만 한 병 가지고 와.
2. 예시 나.에서 레스토랑에서 식사 후 당신은 식사비를 어떻게 지불해야 했을까요?
가) 0원
나) 식사비 총액의 1/n
다) 내가 선택한 음식 가격+(함께 마신 물과 와인 가격 총액의 1/n)
라) (식사비 총액-와인 가격) 총액의 1/n
마) (식사비-아페리티보 가격) 총액의 1/n
1번 문제부터 함께 볼까요?
1. 예시 가. 에서 마지막으로 화자1, 이탈리아 친구가 한 말은?
가) 뭘 가지고 와? 몸만 오면 돼!
나) 단체방을 만들 건데 거기서 이야기하자.
다) 니가 먹고 싶은 거 한 접시만 가지고 와.
라) 니가 마시고 싶은 와인만 한 병 가지고 와.
이탈리아 친구는 가)~라) 중 어떤 대답을 했을까요?
'가) 뭘 가지고 와? 몸만 오면 돼!'를 선택한 당신. 정말 몸만 오라고 했다고 정말로 몸만 가실 건가요? 그냥 파티도 아니고 '생. 일. 파. 티'인데요......? 파티 장소도 술도 음식도 모두 준비하겠다는 착한 친구에게 친구가 기뻐할 만한 작은 선물과 축하 메시지를 적은 카드를 준비하면 어떨까요? 선물에 카드는 기본, 꽃다발에 와인도 함께 가지고 가시겠다구요? 짝짝짝! 참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 좋은 날, 당신의 친구가 당신 덕분에 기분이 더 좋아지겠군요.
나), 다), 라)의 경우, 포트럭 파티의 성격이 짙습니다.
'라) 니가 마시고 싶은 와인만 한 병 가지고 와.'의 경우, 그나마 가장 간편하시겠군요. 본인이 좋아하는 와인 한 병만 가지고 가면 되니까요. 화이트 와인만 고집하거나 레드와인만 고집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초대한 사람이 준비한 음식에 어떤 와인이 더 어울릴지 물어보면 좋습니다. 혹은 식사 전 아페리티보에 어울릴 스파클링 와인을 준비하는 것도 좋겠지요. 저녁 식사에 초대되어 갈 때 들고 가는 와인은 이왕이면 와인 전문점 에노테카(enoteca)에서 고르시면 좋겠지요. 다양한 가격대의 질 좋은 와인이 준비되어 있으니 선택의 폭이 넓습니다. 모임의 성격을 이야기하고, 에노테카 주인에게 조언을 얻는 것도 좋습니다. 크게 부담되는 가격이 아니라면, 평소에 마셔보고 싶었던 와인을 선물하는 것도 좋습니다.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을 선물하라'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요.
'다) 니가 먹고 싶은 거 한 접시만 가지고 와.'의 경우, 캐주얼한 파티가 되겠군요.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면 됩니다.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자리에서 각자의 요리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요. 특히, 본인이 알레르기가 있거나 특정 음식을 가리는 경우, 좋은 방법입니다. 육류를 먹지 않는 베지테리언, 혹은 계란과 유제품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비건이라면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서 가는 방법이 센스 있겠지요. 시간이 없다면 너무 곤란해하지 마세요. 꼭 본인이 요리하지 않은 음식이라도 됩니다. 한국에 반찬 가게가 있듯이 이탈리아에도 '가스트로노미아(gastronomia)'가 있으니까요.
'나) 단체방을 만들 건데 거기서 이야기하자.'의 경우, 단체방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울며 겨자 먹기로 마지막으로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음식을 준비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원하는 음식을 준비하되 함께 이야기하자'라고 한다면, 각자 음식을 준비해 가지만 전체 코스의 균형을 두자는 말이니, 함께 의논하시면 좋습니다.
보통 이탈리아 저녁 식사는 '아페리티보-안티 파스토-쁘리모-세콘도-돌체-카페'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아페리티보는 본격적인 식사 전, 작은 핑거 푸드와 달지 않은 스파클링 와인 혹은 화이트 와인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티파스토는 전식이지요. 배를 채우기 전에 입맛을 돋울 음식을 먹습니다. 보통 육류, 어류나 해산물, 채소 중 하나를 차갑거나 뜨겁게 먹는 요리입니다. 예를 들면 '문어 감자 레몬 올리브 오일 샐러드'는 해산물을 이용한 차가운 안티파스토에 해당되는 거지요. 이탈리아식 육회는 육류를 이용한 차가운 안티파스토입니다. '아스파라거스 크림과 수란'이라면 채소를 이용한 뜨거운 안티파스토가 됩니다.
쁘리모는 탄수화물 요리, 세콘도는 단백질 요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파스타, 리조또, 수프, 죽 등이 쁘리모에 해당된다면, 익힌 육류나 생선이 세콘도입니다. 보통 쁘리모나 세콘도는 파티를 여는 집주인이 준비하면 좋습니다. 어쩔 수 없이 부엌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초대된 집에 가서 부엌을 써야 한다면 난감한 경우가 생길 수 있겠지요.
돌치는 후식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식사 후 꼭 달콤한 디저트를 챙겨 먹습니다. 손님으로 초대되어 갈 때 들고 갈, 사시사철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 디저트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이탈리아 하면 000의 나라 아니겠습니까? 네, 맞습니다. 바로 젤라또입니다. 그 지역에서 유명한 젤라또 가게에서 맛있는 젤라또를 고르는 재미도 쏠쏠할 겁니다. 이걸 고를까 저걸 고를까 망설여질 때는, 이탈리아에도 맛보기 스푼 찬스가 있으니 걱정 마세요. 궁금한 맛인데 결정을 못 했다면 한 스푼 맛볼 수 있는지 물어보시면 됩니다.
젤라또는 이미 다른 친구가 가지고 가기로 했다구요? 너무 섭섭해하지 마세요. 젤라또 후 커피와 함께 대미를 장식할 미뇽(mignon), 삐꼴라 파스티체리아(piccola pasticceria)가 있습니다. 그 지역 유명한 파스티체리아에 가면 사이즈가 엄지 손가락 첫마디만 한 작은 돌치들이 종류별로 색색별로 진열대를 채운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보통은 개수로 계산하지 않고, 무게대로 가격을 지불합니다. 인원수에 적당할 포장 접시 크기를 먼저 선택해 주세요. 그리고 원하시는 미뇽을 선택하시면 됩니다. 선택하기 곤란하시면 종류별로 모두 담아달라고 해 보세요. 마지막 커피 타임까지 원하는 미뇽을 골라 드시는 재미가 또 있을 겁니다.
이제 슬슬 2번 문제, '레스토랑에서 생일 파티를 하는 경우'를 볼까요?
2. 예시 나. 에서 레스토랑에서 식사 후 당신은 식사비를 어떻게 지불해야 했을까요?
가) 0원
나) 식사비 총액의 1/n
다) 내가 선택한 음식 가격+(함께 마신 물과 와인 가격 총액의 1/n)
라) (식사비 총액-와인 가격) 총액의 1/n
마) (식사비-아페리티보 가격) 총액의 1/n
'가) 0원'의 경우, 초대받는 입장에서는 가장 이상적이지요. '초대'는 그야말로 '초대'아니겠습니까?
나), 다), 라), 마)의 경우 어떤 형태로든 저녁 식사비 지불에 기여하는 경우입니다. 생일파티 주인공의 집이 좁거나, 음식을 준비할 여력이 안 되거나, 시간이 없거나, 그런데도 식사비 총액을 지불할 경제적 혹은 심리적 여유가 없을 때라고 보시면 됩니다. 하지만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생일 파티처럼 특별한 초대를 해 놓고, 비용은 분배하는 경우라면, 파티 주최자는 저녁 식사비를 어떻게 낼 것인가에 대해 미리 안내를 해서 기쁜 날 나중에 마음 상하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쓰는 게 좋습니다.
'나) 식사비 총액의 1/n'은 본인이 시킨 접시의 수와 가격, 본인이 와인을 얼마나 마셨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인원수대로 나누어 계산하는 경우입니다. '소식좌'들 혹은 금주자들에게는 다소 속상한 일이 되겠는데요?
'다) 내가 선택한 음식 가격+(함께 마신 물과 와인 가격 총액의 1/n)'은 본인이 주문한 접시의 수와 가격을 본인이 내는 방식이지요. 함께 테이블에 앉아 마신 물과 와인은 본인이 얼마를 마셨는지 일일이 계산할 수도 없고 하니 공동으로 내는 방식입니다.
'라) (식사비 총액-와인 가격) 총액의 1/n'과 '마) (식사비-아페리티보 가격) 총액의 1/n'의 경우는 생일 파티 주인공이 적어도 와인이나 아페리티보는 쏘는 개념입니다. 나), 다)에 비해 파티에 초대받은 손님이 기분이 상할 확률이 낮습니다.
그냥 저녁 초대받았을 뿐인데 왜 이렇게 복잡합니까? 아니, 사람을 초대해 놓고 "이것 들고 와라 저것 들고 와라", 심지어 "니 밥값은 니가 내라."라니요?
여기서 이탈리아 시골 파티 문화와 도시 파티 문화가 극명하게 나뉩니다.
'역시 어딜 가든 도시는 각박해! 시골이 인심이 좋지!'라고 생각하셨나요?
시골에 사는 이탈리아 인들은 대부분 대대손손 가족에게 내려온 전답과 집이 있기 때문에 시골에 산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시골은 도시에 비해 땅값이 저렴하지요. 그러니 집도 넓은 것이고, 주변엔 도움을 줄 가족들도 있고, 자연히 물질적으로 심리적으로 모두 여유가 있습니다. 집에서든 레스토랑에서든 파티를 하면 주최자가 모두 부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도시에 사는 이탈리아 인들은 대대로 도시에 산 사람, 일 때문에 고향을 떠나온 사람이 섞여 있습니다. 도시에서 시골처럼 넓은 집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그만큼 많은 비용을 지불합니다. 집이 넓고 아름다운 경우, 특히 넓은 테라스나 정원 등 야외 공간이 있어서 집에서 파티를 즐겁게 하고 싶은 집은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도시 사람들의 생활 리듬도 빠르니 음식을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겠지요. 그러니 자연스레 생일 파티도 밖에서 하는 경우가 많지요. 더구나 가족들과 떨어져 렌트비를 내야 하는 젊은 직장인이라면 친구들과 파티는 하고 싶지만 전체 식비를 부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집에서 파티를 하더라도 포트럭 파티를 하거나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더라도 부담을 나누어 가지는 셈이지요.
제가 도시에 살 때는, 아니 지금도 도시에 사는 친구들과 파티를 하면 집에서 하면 으레 포트럭 파티, 외식을 하면 어떤 식으로든 더치페이를 하는 게 자연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 시골로 이사를 와 보니, 시골 친구들은 정서가 다르더군요. 한국처럼 쏘는 문화가 있어요. "오늘은 000이니까, 내가 쏠 게."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심지어 한국처럼 서로 돈을 내겠다고 다투는 경우도 있지요.
이탈리아 시골의 1유로와 도시의 1유로는 어쨌든 같은 1유로일 텐데, 도시에서는 칼같은 더치페이, 시골에서는 너도 나도 “내가 쏜다!”하니 참 신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