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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Mar 14. 2023

터키식 요거트 비법, 온도계 없이 실패도 없이!

< 비밀 없는 요리 에세이 >

“집에서 요거트 만들어 보셨나요?”


“네? 집에서 요거트요? 번거롭게 왜 그 짓을 해요? 이 편하고 좋은 세상에. 그냥 요거트도 뻑뻑한 그릭 요거트도 다 마트 가면 파는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참 번거롭습니다. 우선 요거트를 만들려면 주재료인 유산균의 먹잇감 우유가 있어야지요. 그리고 그 씨앗이 되는 유산균이 가득한 요거트도 있어야 합니다. 또 요거트 만들 깨끗한 멸균 용기도 있어야지요. 그리고 적정한 온도도 유지해야 하지 않겠어요?


아니, 우유도 사야 하고, 요커트 만들 요거트까지 사야 하는데, 왜 굳이 만들어 먹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참 번거롭고 귀찮습니다.

한 지인이 너무나 제 요거트 맛을 보고싶어 해서 욕심 좀 부렸습니다. 500ml 들이 깨끗한 유리병 6개, 신선한 우유 3l, 요거트 플레인 요거트를 준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이유는...... 확실히 사서 먹는 요거트랑은 맛이 다르고 식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저 깨끗한 재활용 유리병에 담긴 500그람의 요거트일 뿐인데, 지인 선물로 챙겨 드리면 그렇게 감동하실 수가 없더라구요. 더구나 설탕도 밀가루도 들어가지 않으니 몸에도 좋구요.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고 하면 그 과정과 정성이 상상이 되시는지 무척이나 고마워하십니다.

몇 달이 지나 다시 만나도 그 요거트 너무나 맛있더라. 언제 다시 만드냐 (-_-;) 물어보실 정도지요. 솔직히 전 누구에게 선물했는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맛이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고, 식감이 달라야 얼마나 다르겠냐구요?


그러게요. 그 맛과 식감을 아시려면 한 번 만들어 보시는 밖에요. ^___^


저는 요거트 만드는 법을 남부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가 작은 마을 친구에게서 배웠습니다. 아마도 8-9년 전이었을 겁니다.


친구가 직접 만들었다는 요거트는 제겐 참 충격적인 첫인상으로 다가왔습니다. 우유를 데운 냄비 안에, 냄비의 둥근 모양 그대로 마치 조금 단단한 순두부 느낌의 요거트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통으로 만들어 통으로 보관...... 참으로 통이 큰 친구지요?


친구가 만든 요거트는 맛이 있어서 워낙 빨리 동이 나기도 하고, 보통은 손은 두 개지만 하루에도 백만 개의 할 일이 쌓여있는 친구라 작은 유리병에 하나하나 넣어 발효시키는 건 그야말로 사치였기 때문이지요. 믿거나 말거나 (귀찮아서) 한 번에 2 킬로그램씩 만들어내는 그 요거트는 하루나 이틀 이상 냉장고 속에 보관되는 일 없이 모조리 싹싹 긁어먹었으니까요.


왜 터키식 비법인고~ 하니 제 친구 부모님이 터키 태생이기 때문이에요. 터키 태생 부모님에게서 난 제 친구는 네델란드에서 나고 자라 현재 남부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답니다.

그리고 전 그 친구 어머님의 비법을 그 친구를 통해 전수받았죠.


“아무리 요거트가 맛있어도 모조리 다 긁어먹으면 안 돼. 다음 만들 요거트를 위해 씨를 남겨 둬야 해.”


끝까지 요거트 냄비를 사수하고 있는 절 보고 친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요거트가 너무 맛있는 통에 한 두 스푼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몇 숟가락의 요거트를 양보하면 내일 아침이면 다시 한 냄비의 요거트를 만날 수 있다니, 귀가 솔깃했지요.


“집에서 유리병에 담아 만들 때는 우선 한 냄비에는 깨끗한 물을 유리병과 함께 끓여서 소독을 해야 해. 난 냄비 채로 만들 거라 그 과정은 통과!”


저는 유리병 안에 담아 만드느라 병은 물론 병뚜껑도 팔팔 끓여 잘 소독해 준비했습니다. 씨 요거트 안의 좋은 유산균만 증식하고 잡균이 붙지 않도록 말입니다.


친구의 설명을 들으며 어떻게 그 맛있는 요거트를 집에서 만드는지 눈이 뚫어져라 바라보았죠.


우유 선택도 중요해. 이왕이면 실온으로 유통하는 멸균 우유 말고 지역에서 생산해서 신선하게 냉장 유통하는 우유로!”


어허...... 어차피 데우면 멸균이 될 터인데 어째서 멸균 우유는 피하라는 건지. 어쨌든 선생님이 설명하시는데 잠자코 들었습니다. 실은 저도 지금까지도  요거트를 만들 땐 꼭 신선한 우유를 준비해요.


“참! 저지방 우유 말고, 그냥 우유로!”


이탈리아에서는 저지방 우유는 ‘Latte Parzialmente Scremato’, 보통 우유는 ‘Latte Intero’로 표시되어 있지요.


전 꼭 latte intero를 고릅니다만, 다이어트하시는 분들은 저지방 우유로 만들어 시도해 보세요.


“자! 불은 약불로! 강불로 우유를 데우다 보면 바닥이 눌어붙을 수도 있어.”


냄비에 우유를 콸콸 쏟아부으며 친구가 말했어요.


“언제까지 데워야 해?”


“응, 그건 ‘그 순간’이 와야 알 수 있어.”

“그 순간?”

“응, 우유 표면에 막이 생기고, 밑에서 우유 파도가 잔잔하게 우유막을 밀어 올려서 확 하고 올라오려는 그 순간. 조용하다 갑자기 확 밀려 올라오니 꼭 잘 살펴봐야 해.”

“잘 살펴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

“순식간에 0.1초 만에 우유가 넘쳐 올라서 가스레인지가 엉망이 돼.”

“뭐? 그럼 비법이 뭐야?”

“확 넘치려는 그 순간에 불을 끄는 거.”


오, 이런...... 너무나 책임감이 강한 그 중요한 일을 친구는 웃으며 제게 맡겼어요. 그 긴장감이라니......


앗! 헉! ㅜㅡㅜ 잘~ 보고 있다가 갑자기 온 전화를 받느라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단 몇초 사이에 우유 넘치는 사고 발생! 여러분은 우유에서 눈을 떼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는?”


불을 정확한 시점에 끄고 나면 재빨리 찬 물을 받아놓은 싱크대에 냄비를 넣고는 우유를 빠른 시간 내에 식혀야 한댔어요. 그래야 천천히 식힐 때 붙는 잡균이 붙지 않는다고요.


“언제까지 식혀?”

“손가락을 우유에 넣었을 때 따스한 느낌이 날 때”


응? 어쩜 이리도 지침들이 어렵습니까?


“그리고는?”

“네가 아까 남겨둔 요거트 몇 숟가락 분량을 나무 숟가락으로 따스한 우유에 넣고 잘 저어 줘.”


500ml라면 요거트를 한 스푼만 넣어도 되지만 저는 더 단단한 요거트를 빨리 만들고 싶어 욕심껏 아빠 숟갈 두 숟갈 넣습니다.


“그리고는?”

“그리고는 깨끗한 천으로 잘 덮어준 후에 내일까지 기다려야지.”


저는 하루이틀 만에 다 먹을 수가 없어 천 대신 멸균한 뚜껑을 꼭 덮고 따스한 곳에 두고 하룻밤을 기다립니다.


어찌나 기쁜지 아침에 완성된 요거트를 볼 생각에 간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아침이 되자 거짓말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전체적인 냄비 모양 윤곽이 잡힌 단단한 요거트가 저를 반겼지요.


어허..... 그렇지만 말입니다. 뭐 이런 엉성한 비법이 다 있습니까?


‘우유가 부풀어 확 넘치기 바로 직전’, ‘손가락을 넣었을 때 우유가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은 따뜻한 느낌일 때’라니요.

그런 식의 엉성한 레시피가 지금까지 제게도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통하고 있다니 신기하기만 하지만요.


그러던 어느 날입니다.


젊은 요리사들이 모여 여러 요리 실험을 하고 공유하는 동영상을 우연히 보았어요. 주제는 요거트.  


눈이 파란 북유럽 남자들 답게 역시 숫자로 말하더군요. 섭씨 82도와 섭씨 43도를 꼭 기억하라구요.


‘그래! 이렇게 숫자로 정확히 전달할 수 있어야 레시피 아니겠어? 설명도 쉽고, 오해도 없고 말이지.’

경건한 마음으로 온도계를 손에 쥐고 82도를 기다렸습니다.


“어?” 그런데 말입니다......


82도가 되자 언제나 제가 불을 황급히 끄던 그 단계! 우유가 우유막을 밀어 올리며 확 볼륨을 높이는 그 모습이 포착되는 거 아니겠어요?


43에서는요? 역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따스하게 준비하던 그 온도였습니다.


제가 얼마나 감동받았을지는 여러 분의 상상에 맡깁니다.


온도계가 없을 때부터 터키 엄마에서 딸로 전달되던 그 홈메 요거트 비법!


네, 제가 배웠네요. 여러분도 배워 가세요.


네? 어떻게요?


눈으로는 ‘우유가 확 부풀어오를 때’를 놓치지 마시고, , 피부 온도로는 ‘손가락이 따스한 느낌이 들 때’ 요. ^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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