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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Mar 16. 2023

이탈리아 시골집 스탠딩 파티 오실래요?

심심할 틈이 없는 이탈리아 시골살이 기록

“이탈리아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재밌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작은 것에서도 웃음 포인트를 못 찾으면 안달이 나지요.


빌 브라이슨(Bill Bryson)의 글에서 튀어나온 사람들이 가득한 나라 같다고나 할까요? 기회를 엿보다 ‘이 때다!’ 할 때를 놓치는 법이 없지요. 순식간에 방심한 틈을 타 누군가를 슬금슬금 미소 짓게 만들거나 하하하 참을 수 없이 큰 웃음을 터트리게 만드니까요.


지난주 금요일 오랜만에 햇살이 아주 밝게 내리쬐는 날이었어요. 5일 동안의 볼로냐 박람회 여행에서 막 돌아와 어깨도 가벼운데 날씨까지 좋았지요.


집을 나서려는데 작년에 이사와 아직 쿵쾅쿵쾅 셀프로 집을 고치고 있는 옆집 커플이 절 불렀어요.


 “내일 점심 먹으러 올래? 내 생일이야!”

“몇 시?”

“너 편할 때. 어차피 우린 오전부터 음식 준비하느라 계속 여기 있을 거야.”


대체 몇 명이나 초대했는지 공사 도구로 엉망인 마당 구석엔 바베큐 통이 두 개나 보입니다.


“뭐 들고 가면 돼?”

“아니야, 그냥 와.”


30명을 넘게 초대했다고 하는데, 다들 정말 그냥 온다면 이 젊은 커플의 한 달 양식은 한 끼에 바닥이 나겠는데요?


어쨌든 밝은 햇살처럼 그냥 우연히 통~하고 떨어진 기분 좋은 점심 초대였어요. 제가 그 시간에 담장 너머로 그 앞집 커플 눈에 띄지 않았다면 없었을 그저 가벼운 점심 초대.


그래요. 그러죠 뭐. 작년 여름부터 계속 이 시골에서 두둥두둥 첫새벽부터 크게 음악을 틀어댔으니, 그네들에게 와인 한 잔 얻어먹어도 될 것 같아요.


‘뭘 들고 간다?’


‘30명이나 온다고 했으니 와인도 그냥 750ml 병으론 턱도 없겠구만!’

1.5리터 매그넘 사이즈를 골라 들었어요.


‘흠... 젊은 사람들이니 많이도 먹겠지? 더구나 토리노에서 오는 젊은이들? 어허.....’

얼마 전 선물 받은 아주 길고 긴 돼지 한 마리를 잡으면 하나 만들 수 있다는 롱롱롱롱롱 살라미도 집어 들었어요.


‘공사 중이긴 하지만 그래도 첫 집들인데..... 며칠 전에 여성의 날이기도 했으니 안주인 선물로 샛노란 꽃화분도 하나?’

마당에 심으려고 샀던 샛노란 팬지 화분 하나도 나름 리본도 달아 포장을 했지요.


그런데 오후에 일이 있어, 조금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알레~ 나 일이 있어서 좀 일찍 왔어!”


부랴부랴 주섬주섬 챙긴 마음의 선물을 보고 기뻐하는 이 청년 좀 보시어요.

받은 선물을 양손에 들고 포즈를 취하는 이웃 청년 알레

시간이 이르기도 했고, 집들이도 처음이니 알레산드로(Alessandro)가 한창 공사 중인 집의 이곳저곳을 보여주었어요.


“저기가 작년 여름에 삽으로 하나하나 퍼서 구덩이를 파내고 간이 수영장을 만들었던 곳이야.”


마당 구석의 꽤 커다란 네모난 구덩이가 보였어요.

‘앗! 저기가 작년부터 들리던 시끄러운 소리의 중심지구만!’ 커다란 간이 수영장애선 언제나 음악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거든요. 그런데 그 크기가 대단해서 직사각형으로 파인 구덩이가 무슨 고대 유적의 흔적 같았어요. 더구나 한 삽 한 삽 일일이 파냈다니...... ‘이 청년, 뭘 해도 하겠구먼!’


그런데 이 집이 정말 뭔가 심상치가 않아요. 현관이 될 자리 근처의 방바닥엔 마치 고대 폼페이 유적 바닥의 모자이크처럼 멋진 모자이크가 가득 차 있었어요.

정말 웃돈을 많이 주고 만들었을 모자이크 시골집 방바닥 클라스


이건 뭐죠? 프레스코 화는 아닐지라도 천장도 그림으로 가득합니다.


“스프리츠(Spritz) 한 잔 할래?”


고맙게도 시간이 이르니 칵테일을 먼저 만들어 주겠다는군요. 엇! 그런데...... 이런 스프리츠는 처음인데요?


한꺼번에 만들어 국자로 각자 퍼서 마시는 사발 스프리츠

보통은 얼음을 가득 채운 와인 안에 프로세코(Prosecco) 먼저 넣고 아페롤(aperol) 혹은 캄파리(campari)를 더하지요.


그런데 이 청년 좀 보셔요. 이케아에서 공수한 것이 분명한 커다란 믹싱볼에 얼음, 아페롤, 프로세코를 그야말로 콸콸 다 때려 붓습니다. 그리고는 오렌지를 껍질 채 숭덩숭덩 썰어 잠수시키는군요.


“자! 여기’”

국자로 퍼서 잔에 담아 주는 아페롤 한 잔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진한 오렌지 색은 빛을 받아 영롱하니 좋군요.


내년 3월에야 공사 완료 예정이라는 알레의 셀프 공사 중인 부엌. 노란 벽에 붙은 커다란 설계도는 그들의 희망지도입니다.


언젠가 주방이 될 공간이라는 공간 벽에는 그들의 미래의 설계도가 붙여져 있습니다. 이 폐허 속에서도 청사진을 바라보며 매일 한 삽씩 퍼내고 벽을 허물고 그렇게 지내왔겠지요?


“알레! 알레!”

손님들이 천천히 도착하기 시작합니다.


전 그래도 첫 손님이라 투박하니나마 유리잔을 차지했는데, 속속들이 늦게 등장하는 친구들에겐 짤 없이 일회용 플라스틱 잔입니다.


다니엘레(Deniele)와 알레시아(Alessia)가 든 이름이 적힌 플라스틱 잔에는 사발 제조 스프리츠가 가득입니다.


네, 혹시나 잔이 바뀌지 않도록 이름도 매직으로 바로바로 써 줘야지요.


그럼 출출한데 슬슬 아페리티보를 시작해 볼까요?

‘부엌도 없는 이 집에서 어떻게 손님맞이 준비를 했지?’ 싶었는데 역시나!

피잣집에서 주문한 조각조각 작게 자른 토마토소스와 약간의 치즈가 올라간 빨간 포카챠와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양파를 올린 하얀 포카챠가 나옵니다.


공사 중인 시골집 테라스 파티에 무슨 격이 있나요? 준비 시간이 없을 땐 피잣집 주문 포카챠도 괜찮아요


친척 아저씨가 만들었다는 멧돼지 살라미도 숭덩숭덩 썰려 나오는군요.


생일 파티 의상 컨셉이 공사판이었다나요? 정말 공사 중인 집 테라스 파티이니 공간 컨셉 하나는 확실합니다. 그래서 공사장 느낌이 나게 체크무늬 셔츠 청년들이 많이 보였군요. 한 친구는 공사장 빨간 안전모까지 쓰고 와 막 시작된 탈모를 재치 있게 커버했어요.

청바지, 체크 셔츠, 안전모로 나름 컨셉은 맞춘 공사판 컨셉 파티-가 아니라- 진짜 공사판 파티

아까부터 현관 입구의 도끼가 눈을 사로잡았는데요.

“이 도끼는 어디에 써?” 했더니....


“이렇게!” 조금 뜸을 들이다 알레가 한 손엔 스푸만테 병, 다른 손엔 도끼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엥? 진짜?”


공사 도구가 얼마나 손에 익었는지 친구들 앞에서 사브라주(Sabrage)를 도끼로 하겠다는 거였죠.


“이거 싼 병이라서 하는 거야!”하고 소리를 치더니 두 번만에 사브라주 가볍게 성공! 저는 너무 웃겨서 배가 아플 지경이 되었죠.


이 시골에 이렇게 젊고 활기찬 커플이 이사를 오니 좀 시끄럽긴 해도 신나긴 하군요.


“미안,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

시간이 되어 먼저 나서는 저를 “저녁에 일 마치고 또 와~!”하고 환하게 웃으며 배웅합니다.


‘응? 이 청년들 진짜 안 되겠네. 지금부터 저녁까지?’

그랬더니 이 청년들 정말 안 되겠어요. 진짜 아무도, 그 누구도 무엇도 가지고 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전 너무나 놀라고 말았어요.


결국 알레 커플은 온 집안을 뒤져 30명이 먹고 마실 걸 찾아내야 했고, 와인&맥주 주종을 가리지 않고 60병이 넘게 희생되었다는군요. 그네들의 소중한 작은 칸티나가 이젠 텅텅 비었을 거예요.


아~ 이 사람들 다 어디서 왔나? 별에서? 싶은 알레의 친구들은 이 시골의 공사판 파티가 어찌나 마음에 들었는지 정말로 해가 지고 나서도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나요? 나중엔 알레 여친이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어서 쟤네들 보낼 식당을 예약하랏!’ 엄명을 내렸다고 해요. 다음날 네버엔딩 파티 모험담을 늘어놓는 알레 덕분에 또다시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알레, 근데 너 술창고 칸티나 이제 텅 비어서 어쩌니?”


 “다음엔 친구들이 뭐 들고 갈까 물어보면 너희 먹고 싶은 거 마시고 싶은 거 아무 거나.”할래.


토요일 하루 종일 해가 지고 나서도 온 집의 음식과 술창고를 탕진하며 손님을 치고도  “다음엔”을 외치는 알레는 참 순수하고 착한 청년이네요.

시골 이웃으로 합격!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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