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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Oct 24. 2021

롤러 코스터, 전쟁, 그리고 주방

전문적인 요리사로서 주방에 서는 일은 롤러코스터에 올라타는 일과 같습니다. 중간에 내리고 싶어도 한 번 올라타면 롤러코스터가 설 때까지는 내릴 수 없지요. 엄청난 속도와 스릴 그리고 스트레스에 머리카락이 쭈뼛 섭니다. 내릴 때는 손에 땀이 흥건하며 ‘내 다시는 타나 봐라.’ 돌아보기도 싫지만, 발걸음이 놀이공원을 벗어날 때 쯤 ‘한 번 더 탈 걸 그랬나?’하고 슬며시 돌아보게 됩니다.


 주방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로마에서 온 실습생 프란체스카가 Vitello Tonnato를 얇게 저미다 슬라이서로 오른손 검지 끝을 날렸을 때, ‘악!’ 하는 소리와 함께 손목을 타고 흐르던 붉은 피를 잊을 수 없습니다. 마치 전쟁터에서 누군가 총에 맞아 ‘악!’하고 지르는 비명과 다른 바가 없었죠.

한 번은 밀라노 근교 출신 그릴 파트를 맡은 프란체스코의 눈에 뜨거운 기름방울이 튀어 들어갓습니다. 순신간에 커다란 눈이 시뻘게 지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연신 눈물을 닦으며 집게로 고기를 뒤집어댔죠. “얼음 주머니라도 대야 하는 거 아니야?” 시뻘건 눈을 보고 깜짝 놀란 저는 안전부절 못했죠. 얼음 주머니 따위는 사치였습니다. 서비스는 침묵 속에서 계속 되었습니다. ‘이 한 접시 고기가 뭐라고. 사람보다 음식이 우선이라니.......’ 

이제 제법 경력이 붙어 다치는 일이 없었던 마우리찌오도 비둘기 뼈를 제거하다 아차 하는 순간 손을 베었습니다. 깊게 패인 상처에 벌어진 살은 새빨갛게 뿜어져 나오는 피 덕분에 닫힐 줄을 몰랐습니다. 

저 또한 실습생 시절, 단단한 호박을 자르다 엄지와 검지 사이를 크게 베었습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고 장갑을 두 겹 끼고 계속 일을 했지요. 나중에는 장갑 속이 붉은 피로 흥건해지고 장갑이 피로 가득 차 팽팽해 졌지요. ‘어머, 정말 내가 미쳤나봐. 내가 뭘 위해서 이러고 있는 거지?’ 스스로에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두 번째로 손을 베었을 때는 조금 더 심각했습니다. 엄지와 검지 사이, 잘 아물지 않는 부위를 깊게 베인 거죠. 오더는 계속해서 들어오고, 주방 인력은 부족했습니다. 중간에 병원에 가면 서비스가 엉망이 되는 상황이었죠. 

‘아!’ 머릿속을 스치는 방법 하나! 우스갯소리로 다음엔 순간접착제를 사용하라던 주방장 사모 에이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순간 접착제 어디 있어?” 에이미도 직접 접착제를 짜내야하는 상황이 되자 손을 벌벌 떨었습니다. 벌어진 엄지와 검지 사이에 순간 접착제를 짜서 붙였습니다. 살이 타는 듯 고통스러웠지만, 어쨌든 벌어진 살은 엉겁결에 붙었고, 서비스는 계속 되었습니다.

“전쟁 중에도 너처럼 바보같은 짓은 아무도 안 할 거야” 나중에 상황을 알게 된 주방가 동료 하나가 독하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하지만 그대여. 눈에 뜨거운 기름이 들어가도 괜찮다고 계속 벌건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일하던 사람은 그대가 아니었던가? 프란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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