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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Oct 24. 2021

알레르기도 유행입니까?

알레르기     

알레르기(Allergie)  처음에 어떤 물질이 몸속에 들어갔을 때 그것에 반응하는 항체가 생긴 뒤, 다시 간은 물질이 생체에 들어가면 그 물질과 항체가 반응하는 일. 천식, 코염, 피부 발진 따위의 병적 증상이 일어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한국에 있을 때는 이 알레르기, 알러지라는 단어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 했습니다. 기껏해야 꽃가루 알레르기 정도를 들어봤을까요? 봄바람이 불고 여기저기 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날 때,  ‘에취에취’ 하며 간질간질 재채기와 콧물을 유발하는 가벼운 증상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남동생은 유독 대게를 좋아했습니다. 추운 겨울 어느 날, 다섯 식구 모두 대게를 먹어보자며 멀리 동해안까지 나들이를 나섰습니다. 뿌연 김이 서린 창문이 달린 작은 방에 둘러 앉아 아빠 다리를 하고는 대게 삼매경에 빠졌죠. 게다리를 자기만의 방법으로 쏙 빨아먹고, 뽑아먹고, 파서 먹고, 국물까지 흡흡 들이키고 있을 때, 문득 동생의 입술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멋! 뭐야? 너 괜찮아?” 동생 입술이 안젤리나 졸리처럼 볼륨있게 퉁퉁 부어올라 있었습니다.   “누나야, 몰랐나? 내 갑각류 알레르기 있다 아이가. 새우나, 랍스터나, 게나 먹으면 다 이래 된다.” 동생은 대수롭지 않은 듯 퉁퉁 부은 입술로 연신 대게살을 쏙쏙 발라 먹었죠.      

이탈리아에 와서 만난 미국 친구 지나는 심각한 글루텐 알러지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생고기는 끔찍하게 보이던 터라, 글루텐 알러지가 있다면서 빨간 생고기는 잘도 먹어대는 지나가 참 엽기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녀를 초대한 날, 당면을 넣은 불고기를 준비했죠. 고기와 채소, 더구나 글루텐이 없는 탱글한 면. 그녀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저녁에 감동했나봅니다. 지나는 두고두고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갑각류 알러지, 글루텐 알러지 정도는 양반이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미슐랭이 달린 키친에서 일을 하다보면 끝도 없이 밀고 들어오는 실습생들을 언제고 맞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주방 안에서 이탈리아는 물론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우크라이나, 필리핀, 말레이시아, 한국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온 실습생들을 만났습니다. 손님들은 물론이고, 각국에서 온 주방 동료들도 가지각색의 알러지 환자들이었죠.     

카르네를 하르네, 코자를 호자, ‘ㅋ’을 ‘ㅎ’으로 발음하던 피렌체 출신 프란체스코는 유독 염장 대구 바칼라를 만질 때만 되면 셰프를 불러댔습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바칼라 포션 나누는 건 스트레스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포션을 나누어야 할 때마다 셰프를 불러대면 도대체 언제 그 감을 익힐 수 있다는 건지...... 그 자신감 없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뼈가 있는 모든 생선에 알러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한 번은 바칼라 살이 피부에 닿았는데, 온 손등이 붉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꿈은 위대한 요리사가 되는 거라는데, 생선을 만질 수 없다니.......        

“이 쿨리 맛 좀 봐줄래? 먹을 수 없어서 그래.” “응? 딸기를 먹을 수 없다구?” 올 해 합류한 후식 파트를 맡은 엘레오노라는 딸기 알러지가 있습니다. 딸기가 담겼던 플라스틱 바구니를 맨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손은 물론 순식간에 온 얼굴과 목이 벌겋게 부어오르죠. 그렇다고 디저트 파트장이 ‘저는 딸기 타르트는 못 만듭니다.’할 수 있나요? 요즘은 딸기가 제철도 없이 계속 나오는 통에 엘레오노라 손은 언제나 벌겋게 부어 있습니다.       

밀라노 출신 또 다른 프란체스코는 굉장히 심각한 알러지를 두 개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전기 충격기. 여기 둘 게. 꼭 기억해 줘.” “응? 무슨 말이야?” “나 벌에 쏘이면 죽어.” “뭐라고? 그냥 넌 도시 한복판에 있는 레스토랑에서만 일을 해야겠다. 우리 고성은 풀밭 천지라 말벌 땡벌 다 있는데 어쩌냐?” 동료들은 얼떨결에 모두 전기 충격기 사용법을 익혀야 했습니다. “왜 저래? 왜 또 호들갑이야?” 갑자기 프란체스코가 입을 흐르는 물에 정신없이 헹궈대는 걸 보고 가브리가 한 마디 합니다. “뭐 짠 거 먹었어?” “하마터면 나 죽을 뻔 했어.” “뭘 먹었는데? 독이라도 들었다냐?” “파베콩” 커다랗고 납작한 푸른 파베콩은 맛만 좋은데 그걸 먹고 누군가가 죽게 된다니요. 농담인 줄 알았지만, 사실입니다. 실제로 시장에서 파베 콩을 판매할 경우 시장 입구에 경고 안내문을 써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파비즘 환자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벌금을 문다나요?     

남부 이태리에서 왔던 접시닦이 아우로라는 견과류 알러지와 씨앗이 있는 과일 알러지가 있었습니다. 복숭아, 자두, 살구 등 커다란 씨가 박혀있는 과일은 다 먹으면 탈이 난다나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몬드와 꿀로 속을 채운 대추야자는 맛있다며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대추야자에는 씨가 있는데 말이죠.      

이탈리아에서 처음 외식을 할 때가 기억납니다. 격식 있는 레스토랑이든, 동네 뜨라또리아든, 메뉴에는 언제나 거의 모든 재료가 적혀 있고, 접시가 나올 때마다 설명이 길었습니다. ‘왜 이사람들은 이렇게 번거롭게 일을 할까?’ 접시가 나올 때마다 설명이 붙으니 배가 고플 땐 여간 성가시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무엇과 무엇을 넣고 어떻게 조리해 어떤어떤 방식으로 준비한 요리입니다.’ 요리에 대한 이해를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행여 식사를 하고 문제가 일어날까 거듭 확인을 하는 절차이기도 하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도무지 왜 이렇게 이탈리아에는 기상천외한 알러지 환자들이 많은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외국에서 온 손님들은 알러지 환자가 극히 드뭅니다. 특히 미국에서 온 손님들은 알러지는커녕 정해진 메뉴를 바꾸는 법도 없습니다. 언제나 레스토랑 문을 나설 땐 미소가 한 가득이죠. 그러니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이탈리아 손님을 반기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겝니다.           

글루텐 알러지, 유제품 알러지, 갑각류 알러지는 양반입니다. 어떤 요리에도 소금을 절대로 넣지 말라는 손님. 그래서 저는 스캄피를 올린 호박 리조또를 소금 없이 만들어 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임산부는 어떤 날것도 먹지 않습니다. 그러니 임산부 손님이 오면 접시 위에 어떤 생것도 올릴 수 없습니다. 그것이 장식용 꽃이든 새싹이든 말이죠. 양파, 마늘, 차이브는 안 된다는 손님, 샐러리 알러지, 토마토 알러지, 후추 알러지...      

정신없이 바쁜 주말 서비스, 예고도 없이 듣도 보도 못 한 다양한 알러지 환자들이 속출하면 주방은 순식간에 패닉이 됩니다. “전 언제나 이 작은 종이를 들고 레스토랑에 가요.” ‘헤이즐넛, 양파, 마늘, 샬롯, 이탈리안 파슬리, 밀가루.’ 자신이 먹을 수 없는 식재료를 이탈리아 말로 프린트해서 가지고 온 손님은 조금 귀엽기라도 했습니다. 알러지가 있는 그대여, 예약을 할 땐, 꼭 미리 레스토랑에 알려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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