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다시 펜을 들며
“너는 글은 틀린 것 같다.” “네?” “쓰레기도 쌓으면 정크 아트가 되는데 말이지. 너처럼 글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내 주변에서 처음이다. 어쩜 그렇게 적극적으로, 기어이 안 하는 걸로 결정할 수 있지? 참 너처럼 적극적으로 안 하기 쉽지 않은데. 글쓰기에 불성실한 사람이 받는 치욕을 한 번 느껴봐라, 이 녀석아.”
하루 13~14시간, 매일 들끓는 주방 불 앞에 설 때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었습니다. 손목이 안 좋아져 일을 쉬게 된 지 어느덧 한 달. 선배의 따끔한 조언이 그렇지 않아도 부끄럽던 마음에 불화살을 당깁니다.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정말로 글을 쓰고 싶은데, 쓰다 말고를 반복하며 창고에 처박힌 먼지 뽀얀 글들이 못마땅했습니다. ‘글을 쓰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 어느새 거짓말이 되어 가슴에 콕콕 박힙니다. 도무지 밤잠을 이루지 못 합니다. 부끄러운 글과 쓰지 않은 부끄러움. 어떤 것이 더 고통스러울까요? 둘 다 부끄럽고 화끈거리지만, 쓰고 보는 게 속이 후련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입니다.
며칠 전, 페이스북을 통해 반가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 했던 한 배우의 소식이었습니다. 10월 21일 개봉한 독립 영화 ‘휴가’의 이봉하 배우. ‘아! 봉하 오빠가......’ 경기도 백석, 미추 연극학교 4기로 봉하 오빠를 만났습니다. 배우가 되겠다고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봉하 오빠는 그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았죠. 텍스트를 이해하는 문학 수업에서도, 신체 훈련을 하는 무대 동작 수업에서도 오빠는 제일 뒤처지는 학생이었습니다. 하나 눈에 띄는 게 있다면, 단연 ‘흥’이었다고나 할까요? 동작이 틀리든 말든 신이 들린 듯 하얀 손싸개를 흔들며 탈춤 연습을 하던 그였습니다. 세 분의 연기 지도 선생님 중 한 분이 “봉하 씨, 정말 배우가 되고 싶어요?”하고 진지하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습니다. 봉하 오빠는 까만 얼굴 때문에 더 돋보이는 유난히 하얀 이를 드러내며 “네”하고 쑥스럽게 웃었죠. 저는 그 때 정말로 봉하 오빠가 걱정스러웠습니다. ‘나이도 많은데, 정말 저렇게 돈과 시간을 낭비해도 되는 걸까? 정말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데......’ 저의 기우가 교만이었다는 걸, 오늘의 봉하 오빠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정말로 봉하 오빠가 배우의 길을 가게 될 줄 몰랐습니다. 연극 학교 동기 중 가장 눈에 띄던 동료들도 다들 다른 길을 택했죠. 계산 하지 않고, 기회를 엿보지 않고 그저 꾸준히 길을 걸었군요. 놀랍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도 꾸준히 가다 보면 지나간 자리가 길이 되는 거구나. 이보다 큰 가르침이 없습니다.
쓰레기도 쌓으면 정크아트가 된다는 선배의 따끔한 조언과, 아무말 없이 자신의 길을 간 봉하 오빠의 소식에 부끄럽지만 다시 펜을 듭니다.
너무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군요. 하얀 백지처럼 얼굴도 하얗게 되는 것만 같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드릴 수 있을까요? 어느덧 이탈리아에 정착한 지 8년, 거의 3000일이 지났습니다. 한국 유행을 따르지 않아서 일까요? 아니면 강한 이탈리아 햇살에 피부가 상해서일까요? 검고 긴 생머리가 촌스러워서일까요? 한국에 가면 벌써 공항에서부터 제게 영어로 말을 겁니다. “저, 한국사람입니다만.” 제 고향 부산에서는 사람들이 저를 힐끔힐끔 쳐다봅니다. 다들 저를 어릴 때 입양된 교포 정도로 생각하시더군요. 사람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렇게나 걸친 구멍 난 티셔츠 때문이었을 겝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사람들이 제게 묻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있니?” “아니.”“어째서?” “난 그냥 이상하게 태어난 것 같아. 여기선 난 이방인이니 이상해도 되잖아. 그래서,” 혹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렇게 맛있는 와인이랑 치즈, 자연을 두고 어딜 가겠니?”
어쩌면 당신보다는 아주 조금은 더 이태리를 알고 있을, 이상한 한국인의 이탈리아 이야기를 들어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