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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Aug 09. 2020

복숭아도, 복숭아 엉덩이 만드는 108배도 여름이 제철

아...... 참 좋은데...... 설명할 수도 없고.....

진부하다. 108배라니.


할머니는 원하는 게 있을 때마다 지게 쟁이에게 돈을 주고 쌀포대를 바리바리 싣고는 유명하다는 깊은 산속의 암자를 찾았다. 몇 년이 걸렸던 삼촌의  변호사 시험 준비. 시험 날짜가 다가올 때마다 할머니는 며칠씩 집을 비웠다. 집에는 구석구석마다 "이 년"이니 "저 년"이니 곰팡이 포자 같은 욕지거리의 씨앗들을 뿌려놓고, 산에 가서는 낮이고 밤이고 절을 했다. 

할머니의 바싹 마른 몸, 끝없는 무릎 굴신으로 쌓은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삼촌은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지금은 할머니도 삼촌도 세상에 없다. 

나는 한국보다 여름에는 7시간, 겨울에는 8시간 늦게 해가 뜨고 지는 타국에서 홀로 살고 있다. 

사는 것이 무엇일까?



코로나 출입 봉쇄 2달 반 동안  나는 정말로 '끈 떨어진 뒤웅박' 이 되어 깊고 어두운 우물 속에서 느낄 법 한 고립감에 괴로워했다.



'그래, 외국 사는 애들이 다들 좀 그렇더라.' 내가 외로움과 고립감에 대해 입을 땠을 때,  누군가는 나를 '어떤 어떤 다 좀 그런 애들' 중 하나로 두고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후 그 사람에게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세상이 나를 버렸다.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가사도 어쩌다 내 이야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매일 셰프 욕이나 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얼마 동안  나를 지독히 괴롭히던 불면증도 사라졌다.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쉽게......



시간이 약이라면, 108배는 명약이다.



나는 힘들 때 108배를 한다. 

피곤할 때도 108배를 한다. 


기분이 좋을 때는 물론이다. 

분명히 108배가 끝나면 기분이 더 좋아질 테니까.



겨우 점심 서비스를 끝냈을 뿐이고 아직 저녁 서비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다리가 퉁퉁 부었을 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플 때, 이유 없이 우울할 때, 갑자기 미래가 두려워질 때, 방을 깨끗하게 치우고 매트를 깐 뒤 108배를 한다. 



이번 여름은 유난히 덥다. 한밤중에 창문을 열어도 서늘하지가 않아 잠들기 어려울 정도다. 이렇게 더운 여름은 아침 108배가 딱이다. 아침 운동은 위험하다. 아주 천천히 몸을 깨워야 부상이 없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덥다 보니 자고 일어나도 몸이 너무 차지 않고, 차지 않으니 아침에도 관절이 딱딱한 나무토막 같은 느낌이 덜하다. 그러니 아침 108배도 별 무리가 되지 않는다. 



108배를 하고 나면 땡땡하게 부어 오른 종아리는 부드러워지고, 덜거덕덜거덕 소리를 내던 손목은 통증이 덜해진다. 손을 바닥에 짚을 때, 무게 중심을 손목보다 어깨에 집중해서 하다 보면 손목에 무리도 덜 간다. 몸을 바닥에 붙이고 숙였다 일어날 때 의식을 배에 집중을 하면 한결 일어나기가 쉬우니, 무릎에 부담도 덜 가고 자연스럽게 복근도 길러진다. 회수가 더해질수록 뻑뻑하던 발가락도, 발목도, 종아리도, 허벅지도, 허리도, 어깨도, 팔도, 목도 모두 부드럽게 풀린다. 


뿌리 없는 부유물처럼 둥둥거리던 고통스러운 마음도 두 발로 곧게 서는 순간 지상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는 나무가 된다. 정처 없이 울부짖던 고아 같던 마음은 단단하고 담담해진다.


108배는 매일 해도 매일이 도전이다. 

하나, 둘...... 열 번도 하기 전에 벌써 힘이 들고, 지겹고, 오늘은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도무지 자신 없는 날도 있다. 잡생각이 들고,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몸은 대견하게 알아서 부지런히 꾸준히 움직인다. 단 한 가지 단순한 동작이 주는 반복의 힘이다. 

어느덧 50회가 넘어가면, '어라? 벌써 반 정도 해냈네.' 스스로 대견한 마음이 든다. 

그러다  '어?' 하는 순간 나는 '108'을 크게 외치고 그렇게 108배는 싱겁게 끝난다. 고작 20여분이 걸릴 뿐이다. 간사하기는, 108배를 외칠 때가 되면 오히려 아쉬운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온몸은 기분 좋게 땀에 젖고, 마치 시원하게 사우나를 막 하고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몸도 마음도 시원하고 개운해지는 20분 사우나.



108배를 마치고 나면 땡 하고 끝내는 게 아니다. 마지막으로 크게 합장을 하고 허리를 굽혀 우주에 인사를 한다. 내게 108배를 허락해준 고마운 나의 몸상태와, 내게 주어진 시간, 공간. 당연하고 불만 투성이던 모든 것이 감사해진다. 



힘들고, 지겹고, 잡생각이 들고, 도무지 확신이 생기지 않을 때가 많다. 만 갈래 마음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계속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도달하리라는 확신을 108배가 심어준다. 

거짓말처럼. 내 안에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싹이 튼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나이가 어떻든. 당신의 속도에 맞추어 108배를 할 수 있는 팔다리가 있다면 당신은 이미 행운아다. 팔다리가 있고, 무릎 연골이 성하고, 발가락에 체중을 실어 구부릴 수 있고, 심한 과체중이 아니고 어지러움증이 없어서 두려움 없이 팔로 땅을 짚고 이마를 바닥에 댈 수 있고 다시 중심을 잡아 일어설 수 있다면 말이다. 몸을 굽히고 펴고, 곧게 섰다가 손으로 땅을 짚고 머리를 숙여 땅에 대고 다시 일어서는 동작을 반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행운아다.  



당신이 좁고 어두운 감옥의 독방에 갇혀 있거나, 당신 스스로 마음의 독방을 만들어 그 속에 혼자 스스로를 가두었더라도. 108배를 할 수 있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어떤 작은 희망이든 생각이든, 당신이 만든 그 마음속의 작은 씨앗이 단단하게 여물고 싹을 틔울 테니까.


여름이다, 참 덥다. 108배는 어떠실지? 

복숭아도, 동그랗고 탐스런 봉긋한 복숭아 엉덩이도 덤으로 얻어가는 108배도 여름이 제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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