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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Aug 01. 2020

생선에는 꽃이다.

이탈리아 꽃요리 3

생선에는 꽃이다.

기름지고 비린 생선에 꽃은 무슨 꽃인가?


아니다, 생선에는 꽃이다.

그래도 생선에 꽃이라고? 그렇다면 무슨 꽃인가?


고개를 갸웃거릴 그대에게 힌트를 드린다.


앤쵸비, 연어, 참치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지방과 비린 맛이다. 아...... 생선을 한 점 먹고 나면 입 안에서 빙글빙글 계속 감도는 미끈거리는 기름기와 비린 맛...... 그 비린 맛을 딱! 잡아주는 꽃이 있다면? 



힌트 하나, 생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힌트 둘, 소금에 절여 사계절 내내 사용한다.

힌트 셋, 콩만 한 작은 어두운 초록색인 이것을 사용하면서도 이 놈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힌트 넷, 길쭉한 초미니 수박처럼 생긴 이것의 열매도 생선 요리에 기가 차게 어울린다.

힌트 다섯, 동글동글한 잎도 소금에 절였다 요리에 사용한다.

힌트 여섯, 생선뿐만 아니라 육회에도 올리브와 함께 다져서 넣으면 맛이 기가 막힌다.

힌트 일곱, 이탈리아 남부에서 자란다.

힌트 여덟, 절벽에 뿌리를 내리고 푸른 폭포처럼 위에서 아래를 향해 자란다.

힌트 일곱. 한국에서는 아쉽게도 소금이나 식초에 절여진 것만 볼 수 있다.


요리하는 사람이라면 이 일곱 가지 힌트로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식재료, 케이퍼. 이탈리아 말로는 카페리다. 참치, 연어, 앤쵸비 등 비린 생선에 잘 어울리는 동글동글한 케이퍼는 알고 보면 꽃봉오리다. 꽃은 꽃인데 꽃이 피어버리면 잘 안 먹는 꽃. 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나 꽃이 지고 난 자리에 열리는 열매를 주로 많이 먹는다.


힌트 셋에서 언급했듯이 케이퍼가 꽃봉오리인 줄 모르고 사용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케이퍼라는 식물을 본 적이 있어야 알 것이 아닌가? 케이퍼는 이탈리아 남부 바닷가 절벽 위에서 주로 자라니 케이퍼를 실제로 본 이탈리아 인들, 이탈리아 요리사들도 많지 않다.


바다가 멀리 있어 전통적으로 소금에 절인 생선인 앤쵸비나 익힌 병조림 참치를 많이 사용하는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요리사들은 케이퍼와 친하다. 하지만 실제로 생 케이퍼를  본 적이 없으니 케이퍼가 꽃봉오리인 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소금이나 소금물, 식초물, 오일 아래에 잠긴 케이퍼 꽃봉오리와 열매가 섞여 있으면 그것이 꽃봉오리인 지, 열매인 지 알 리가 없다. 


케이퍼는 척박한 땅을 좋아하는 여러 해 살이 식물이다. 땅 위에서 하늘을 보고도 자라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주로 흙도 별로 없는 바닷가 절벽 위에서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폭포수처럼 축 휘어져 아래로 아래로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왜 사람도 평범하고 평탄한 삶보다는 어렵고 어려운 일을 선택해서 해야 성취감을 느끼는 모험가 기질의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기름지고 평탄한 땅에서는 케이퍼가 행복하지 않다. 굳이 바위틈, 절벽 사이를 파고들어 뿌리를 내린다.


초여름이 되면 케이퍼는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줄기 끝으로 갈수록 꽃봉오리는 아주 작아진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는 크기 별로 번호를 매긴 아주 작은 케이퍼를 선호하기도 한다. 

당연히 꽃봉오리가 부풀어 꽃이 필 시기가 다가오면 꽃봉오리 크기는 커진다. 꽃이 필 시기가 다가오면 꽃봉오리 모양도 작은 완전한 구형에서 약간 각진 다이아몬드 형이 된다. 살짝 붉은 꽃잎이 밖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기가 지나면 빵! 하고 꽃봉오리가 터진다. 어쩌면 그런 작은 꽃봉오리에서 이런 화려한 꽃이 필까 싶다. 작은 고치 안에서 나비가 얇은 날개를 활짝 펼쳐 내듯이. 새하얀 얇은 하늘하늘거리는 꽃잎, 나비 다리 같은 얇고 긴 붉은 수술들. 아, 케이퍼 꽃은 얼마나 화려한지...... 녹두 만 한 크기의 꽃봉오리에서 완두콩만 한 크기가 되었다가 작은 공작새 모양의 꽃이 활짝 짠! 하고 펴진다. 



케이퍼 꽃봉오리, 꽃, 열매, 잎은 어떻게 요리에 사용할까?



꽃봉오리 '케이퍼 caper, 카페리 capperi'

초여름, 이른 아침, 꽃망울이 열리기 전에 새끼손톱보다도 더 작은 꽃봉오리를 똑똑 딴다. 여유가 있다면 딸 때부터 크기를 분류하자. 나중에 다 따고 나서 크기별로 나누다 보면...... 아...... 그래, 누군가는 자신의 '인내심 한도'를 알고 싶어 할 수도 있겠다. 그런 그대라면 그대에게 그 기회를 드린다.  

케이퍼는 크기별로 유리병에 나누어 소금에 절인다. 천일염 한 층, 케이퍼 한 층, 소금 한 청, 케이퍼 열매 한 층...... 시간이 지나면 소금 때문에 케이퍼 열매에서 물이 나오는데 물은 나오는 대로 곧잘 따라서 버린다. 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으면 그대로 밀봉해서 보관하면 된다.

요리에 사용할 때는 어떻게 할까? 필요한 양만큼 덜어 찬물에 우린다. 찬물에 우려 약간만 소금기만 빼서 생선 요리에 함께 사용한다. 너무 오래 물에 우리면 밍밍하니 니맛내맛도 없이 특유의 맛이 사라지니 유의하자.

소금 기운을 걷어낸 케이퍼는 기름진 생선 연어, 참치, 앤쵸비와 곁들여 낸다. 꽃봉오리 전체로도 놓는 경우도 있지만, 잘게 다져서 아몬드, 올리브 오일, 이태리 파슬리와 함께 곱게 갈아 파테를 만들어 사용해도 좋다. 다진 케이퍼는 여름철 냉파스타나 차가운 쌀 샐러드에 섞어도 좋고, 육회에 맛을 낼 때 다진 올리브와 함께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가끔은 튀기기도 한다. 찬물에 우려 소금기를 살짝 걷어낸 케이퍼를 깨끗한 천에 톡톡 두드려 물기를 빼고, 적당한 온도의 기름에 튀기면 그 작은 꽃봉오리가 신기하게도 활짝 벌어진다. 바삭하게 튀겨 기름기를 빼고 소금을 살짝 뿌려 생선 요리 가니쉬로 올려도 좋다. 

살짝 소금기 뺀 케이퍼를 잘 건조한 뒤 곱게  갈아서 사용해보자. 생선 요리나 육류 요리 위에 마지막 데코레이션으로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보통 아름다움이 절정인 꽃이 피면 케이퍼는 먹지 않는다. 보통은 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일 때와 꽃이 지고 길쭉한 수박 모양 열매가 되면 그때 먹는다. 하지만 지난번 글에서 언급하지 않았던가? 식용 가능한 열매가 열리는 꽃은 대부분 그 꽃도 먹을 수 있다고. (https://brunch.co.kr/@natalia0714som/21 )

그렇다! 케이퍼 꽃도 먹을 수 있다. 

어떻게 사용할까? 예쁜 꽃잎을 똑똑 떼어 샐러드에 섞어 먹자. 묽은 튀김 반죽을 만들어 바삭하게 튀겨 소금을 살살 뿌린 뒤 생선 접시에 함께 가니쉬로 내도 좋다.



열매 '쿠쿤치 cucunci'

케이퍼 꽃봉오리 딸 시기를 놓쳐 못 먹게 되었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공작새를 연상케 하는 작지만 화려한 꽃이 진 자리에는 길쭉한 꽃대가 길어 나오고 새끼손톱 만 한 길쭉한 수박 모양의 열매가 열린다. 그 열매를 똑똑 따서 길쭉한 꽃대 채로 소금물, 식초물, 올리브 오일 순으로 절여두면 생선 요리나 육류  마무리 플레이팅에 더할 나위가 없다. 특히 훈제 연어, 참치와 찰떡궁합이다. 살짝 식초 물에 피클처럼 절인 케이퍼 열매 쿠쿤치는 입 속에 남은 생선의 기름기를 깔끔하게 싹 닦아준다. 

특히 쿠쿤치는 피에몬테 안티파스토 '비뗄로 톤나또 vitello tonnato'에도 빠지지 않고 함께 접시에 올라간다. 바다가 먼 피에몬테에서는 육류 요리가 발달했지만, 생선에 대한 향수를 그들은 소금에 절이거나 익혀서 유통되는 생선으로 달랬다. '비텔로 톤나토'가 그것이다. 익힌 어린 송아지 고기를 아주 얇게 썰어 내고, 소스로 익혀 올리브 오일에 절인 참치, 케이퍼, 앤쵸비, 익힌 계란 노른자, 올리브 오일, 레몬즙을 함께 갈아 내는 것이다. 생선 소스를 얹은 고기 고리라니...... 언뜻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우리나라 얇은 소고기 편육에 새콤한 참치 소스를 얹은 맛이랄까? 그 특이한 맛의 조합에 케이퍼 열매가 화룡정점을 찍는 셈이다.


케이퍼 꽃봉오리나 열매에 비해 잎을 사용하는 경우는 이탈리아에서도 드물다. 하지만 동글동글한 잎도 생선이나 육류에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여린 잎을 따서 잘 씻은 후, 소금물에 한 번 식초 물에 한 번 차례대로 절임을 한다. 그 후, 물기를 잘 닦아내고 깨끗한 병에 작은 마늘, 뻬뻬론치노를 넣고 좋은 올리브 오일로 잘 채운다. 맛이 잘 들었을 때 생선이나 육류 요리에 함께 플레이팅 한다.  



꽃봉오리, 꽃, 열매, 잎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일석사조인 케이퍼. 언젠가 한국에 돌아가 내 레스토랑을 내게 되면 제주도나 남해 절벽 위에 심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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